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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세봉과 박창해

시대 : 1934
인물 : 박창해(朴昌海)
신분 : 밀정

세부 사항

일제의 밀정 박창해(朴昌海)가 혁명군을 직, 간접으로 후원하던 중국인 왕명번(王明藩)을 매수하여 환인현에 머물고 있던 장군을 찾아가 중국 항일군과 연합을 논의하자는 구실로 장군을 환인현 소황구(小荒溝)의 골짜기로 유인하였다.
1934년 8월 12일(음) 장군은 부관 김광욱(金光旭), 김성해(金星海), 김추상(金秋霜)과 같이 왕씨를 따라 나섰다. 일행이 대랍자구(大拉子溝)로 가던 도중 돌연 좌우 수수밭에서 수십명의 괴한이 뛰쳐나와 일행을 포위하는 순간 왕씨는 장군의 가슴에 총을 겨누고 “나는 지난날의 왕씨가 아니다. 이 탄환을 받지 아니 하려거든 일본군에게 항복하라”라고 고함을 쳤다. 장군은 두눈을 크게 부릅뜨고 위엄있게 꾸짖었으나 끝내 밀정 박창해와 중국인 왕씨 등 주구배들의 저격을 받아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 장군이 순국하자 동지들은 일제측에서 모르게 산 중턱에 평장(平葬)을 하였는데, 통화 일본 영사관 경찰이 이를 탐지하고 묘를 파헤치고 시신을 꺼내 목을 가져가는 만행을 저질렀다고 하니 인륜도 도덕도 없는 천하에 둘도 없는 야만이요 그 잔악상을 어찌 말로 형용할수 있을 것인가.
장군이 순국한 후에도 김호석(金浩石)이 총사령에 취임하였으나 조선혁명군은 급격히 세력이 위축되어 소규모 유격전으로 겨우 독립군의 명맥을 유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