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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조

시대 : 1920
인물 : 정찬조(鄭燦朝), 최일명(崔日明), 고창희(高昌熙), 강성리(康聖利), 이탁근, 김기욱,
신분 :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특파원

세부 사항

정찬조(鄭燦朝)는 1895년 4월 24일 평양시 관후리(?後里)에서 출생하였다. 그는1913년 3월에 평양숭실중학교(崇實中學校)를 졸업하고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여러 동지들을 규합하여 만세 시위운동을 일으킨 후, 각처를 돌아다니며 항일 독립운동에 활약하고 있던 중 일경이 체포하고자 하므로 등년 10월 만주로 건너가서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에 가입하고 그 특파원이 되어 국내에 잠행하여 들어왔다.
그는 귀국하자 1920년 1월경부터 평양에서 일제 기관인 평남 도청·평양 부청(府廳)·경찰서 등을 폭파할 계획을 세우고 등지 이근수(李根洙)·이학근(李學根)에게 준비하였던 폭탄을 나누어 주고 거사할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거사 직전인 그 해 5월 9일 새벽 4시경 사전에 이 사실을 탐지한 일본경찰이 숙소를 포위하고 기습하여 동지 8명이 잡히게 되었는데, 정찬조만은 일경에 항거, 격투 끝에 일시 피신할 수 있었으나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마침내 체포되어 경찰서 2층에서 심문 조사를 받게 되었다. 찬조는 이때에 조사하는 경찰관과 격투하고 2층에서 뛰어내려 시가지로 피신하니 일경은 소방대원까지 총동원하여 가가호호를 이 잡듯이 뒤졌다. 그는 수사망을 피하여 하수구(下水口) 속에 은신하고 있던 중, 남문 안에 살고 있던 어떤 장사치가 일경의 유혹과 협박을 견디지 못하고 그가 숨은 곳을 알려주니, 그는 추격해 오는 일경을 피하려고 하수구에서 나오자 일경은 총을 난사하며 뒤쫓았다. 그는 빗발치듯 날아드는 총탄을 뚫고 탈주하려 하였으나, 결국 다시 잡히고 말았다. 일경은 그가 손바닥에 총탄이 맞아 피가 낭자하게 흐르는 것을 포승으로 꽁꽁 묶어가니 그 처참한 광경은 보는 사람마다 눈을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한다. 그가 체포된 것을 보도하는 우리 신문들은 ‘상해임시정부특파원 정비장(鄭飛將) 체포’라는 대문짝 같은 큰 제목을 붙이고 대서특필했다.
그는 1920년 10월 27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징역10년 언도를 받고 평양 감옥에서 1년간 복역한 후, 서울로 이감(移監)이 되었었는데 그 이듬해 3월 1일을 당하여 당시 재감중이던 정치범 전원이 3.1 기념으로 독립 만세를 불렀다. 이 때에 동지 이근수와 이학근은 옥리(獄吏)에게 매 맞아 죽고, 정찬조와 백기환·최일명(崔日明)은 무수한 악형을 당하고 구사일생으로 목숨만은 부지할 수 있었다. 그 때 여러 동지들의 형량은 이근수·백기한·고창희(高昌熙) 각 징역10년씩, 강성리(康聖利)·이탁근 각 징역8년씩, 최일명 징역6년, 김기욱 징역3년이었다.

참고 문헌

《독립운동사 제7권 : 의열투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