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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손

시대 : 1500
인물 : 조한손(曹漢孫) / 권맹형(權孟衡) / 최석만(崔石萬) / 차유(車宥)
신분 : 관리

시대적 배경

평안도 일대는 우리 나라의 문호로서 중국 사신이 왕래와 짐말의 전수(轉輸)가 쉴 새가 없고, 거기에 다시 방수(防戍)하는 장졸이 줄을 이어 서로 달려서 우역(郵驛)이 지탱하지 못하고, 군호(軍戶)가 함께 업무가 과다하였다. 이러한 때 오랑캐가 요즈음 말썽을 일으켜 국가에서 정토하려 하고 있어서 근심 거리가 되고 있었다. 설사 그들이 와서 복종한다 하더라도 기뻐할 일이 아니었다. 그들이 진심으로 귀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만일 그들의 거짓 꾀를 믿고 서쪽 길을 열어 주는 것을 허락했다가는 국가의 위엄을 손상할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경멸하고 업신여길 당할 수 있는 소지가 있었다. 조정에서는 변방을 굳건히 하고 우리 병력을 길러서 그들을 제어할 수 있는 방책을 강구하고 있었다.

세부 사항

연산군 6년에 적로(賊虜) 30여 명이 추파동(楸坡洞)에 출몰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우후(虞候) 조한손(曹漢孫)이 권맹형(權孟衡)·최석만(崔石萬)·차유(車宥) 등을 뽑아 보내어 요격하게 하였는데, 수저리동(水渚里洞) 내에 가서 정탐해 보니 적이 시초(柴草)를 쌓아 놓고 불을 피우다가 야심해지자 깊이 잠들므로, 권맹형 등이 일제히 용기를 내어 돌입하여 9사람의 머리를 베고 두 명을 쏘아 죽였으며 그 나머지는 또한 거개 화살을 맞고 달아났다. 이에 연산군은 그들의 전공을 정하여 군사들을 위로하도록 하였다. 이중에서 최석만은 이러한 정탐의 공을 인정받아 당상에 올랐다. 숙마(熟馬, 길들인 말)을 하사받기도 하였다. 당시 양계(兩界)에서는 비록 갑사(甲士)라도 오랑캐 한 사람만 잡으면 당상관에 승진하였는데, 이러한 제도에 힘입어 최석만(崔石萬)이 당상에 승진하여 첨사(僉使)·만호(萬戶)가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한 사람을 상주어 백 사람을 권장하게 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제도였다.

참고 문헌

《연산군일기》.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22 (조선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탐구당, 1995.
진단학회, 《한국사》근세전기편, 을유문화사, 1978.
강성문, 〈조선시대의 여진정벌〉, 《한민족의 군사적전통》, 경희정보인쇄(주),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