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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혈광복단

시대 : 1919
인물 : 윤준희, 최봉설, 임국정, 한상호, 박응세, 김준, 엄인섭(嚴仁燮), 전홍섭(全洪燮)
신분 :

시대적 배경

1919년 3월 13일, 조선의 3.1운동을 계기로 간도지역에서도 대규모의 반일시위운동이 일어났다. 이 운동은 비록 진압되었지만 반일지사들로 하여금 무장투쟁의 새로운 노선전환을 가져오도록 하였다. 그 후 간도지역에서는 수십개의 반일무장단체가 본격적으로 결성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무장근거지를 건립하고 군사훈련소, 사관양성소 같은 것을 대량 설립하여 군사인재들을 양성하는 한편 민간에 있는 엽총과 재래식총을 거두어들여 재빨리 자신을 무장하기 시작했다. 반일무장대의 건립에는 결사대모집, 훈련에 뒤따라 막대한 자금을 수요하고 있었다. 비록 이들 반일단체에서는 당지 한인사회로부터 군자금을 징수하고 부호나 친일분자로부터 다액의 군자금을 강제징수 하였지만 이 역시 제한되어 있었다. 가장 신속하고 효과적인 방법이 적의 수중에서 무력 탈취하는 것이었다. 간도15만원탈취사건은 군자금 마련의 일환으로 철혈광복단의 열혈애국청년들이 치밀한 계획 속에 진행한 기습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우리의 독립운동가들의 대담하게도 일본의 조선은행자금을 직접 탈취하여 무기구입 등의 독립운동자금으로 활용하려 했다는 점에서 일제식민당국에 충격을 주었고, 국내외의 독립운동가들과 한인사회에 통쾌한 소식을 가져다 준 일대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또한 사건 발생 후 불과 27일 만에 주동인물 3명이 일제당국에 체포되어 처형되고, 자금 거의 모두를 빼앗기게 됨으로써 안타까운 결말을 가져오고 만 사건이기도 하다.

세부 사항

15만원탈취작전에 직접적으로 참가한 애국지사들은 철혈광복단의 윤준희, 최봉설, 임국정, 한상호, 박응세, 김준 등 6명이다. 이들은 빠른 기일 내에 군자금을 얻으려면 일본은행을 습격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1920년 초, 이들은 일제의 조선은행 회령지점에서 동 은행 용정파출소에 보내는 송금을 탈취하기로 밀모하고 회령 지점원인 전홍섭을 포섭하여 송금노선과 구체내막을 알아내었다. 전체적인 밀모과정과 탈취내막은 라영순의 쓴 <15만원 탈취기>에 잘 드러나 있다. 그들은 일제 금융기관의 활동을 면밀히 조사하는 가운데서 국민회 회원인 전홍섭이 조선은행 용정출장소 서기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였다. 윤준희는 전홍섭에게 용정총 예수교병원뒤쪽 공동묘지에서 만나자는 편지를 띄웠다. 약속한 시간에 윤준희는 임국정과 함께 전홍섭을 만나서 상급의 지시와 군자금 모금정황을 소개한 후 “일본놈들이 회령에서 용정은행으로 보내는 은행권수속금액과 그 구체적 시간만 알 수 있다면 군자금모집은 아주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전홍섭은 자기도 놈들의 은행권수송에 몇 번 참가한적 있다면서 정보를 수집하는 즉시로 연락을 취하겠다고 했다.
그러던 1919년11월 20일에 철혈광복단에서는 용정으로부터 전홍섭이 보내온 비밀정보를 받았다. ‘일본정부에서는 용정주재 일본영사관에 반일투쟁 탄압경비로 15만원을 보내기로 하였음. 그런데 일제강점자들이 그 경비를 가지고 언제 떠나겠는지 그것은 딱히 알 수 없음. 그놈들의 출발기일에 대한 소식은 기다려야 하겠음.’
비밀정보를 입수한 철혈광복단 지도부에서는 곧 닥쳐올 사건에 대처할 계략을 주밀하게 세웠다. 지도부의 결정에 의하여 15만원을 탈취할 성원들로는 윤준희를 비롯하여 임국정, 최봉설, 한상호, 박웅세, 김준 등 6명의 반일투사들이 선정되었다. 그들은 와용동, 또는 용정 제창병원 등에 모여 일제 강점자들에게서 돈을 빼앗기 위한 행동계획을 짰다.
그들은 행동계획에 따라 먼저 명동에 있는 최봉설의 장인 김하규의 집에 들어가 숨어 있으면서 조선은행 회령지점 용정파출소에 있는 전홍섭으로부터 보내올 비밀기별을 기다리고 있었다. 1919년 양력 섣달 그믐날, 그들 반일투사들은 그렇게도 초조하게 기다리던 비밀정보에 접하였다. 이 소식은 그 때 용정 제창병원에서 반일비밀연락사업을 하고 있던 임국정의 둘째형인 임윤정이 전해주었던 것이다. 조선 회령에서 보낸 전홍섭의 비밀편지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었다. ‘놈들은 새해 초사흗날에 이곳 회령에서 용정으로 떠나오 만일 내가 동행하게 된다면 일행을 습격할 때 당신들은 나의 넙적다리에도 총을 쏘아 부상을 입게 하오, 이후에 이곳에서 계속 사업하기 위해서요.’
전홍섭의 쪽지를 받은 김하석은 윤준희와 최이붕더러 인차 명동에 있는 김계하의 집에 찾아가서 거기에 대기하고 있는 박웅세와 김준을 만나 행동계획을 면밀히 짜라고 지시했다. 1월3일 윤준희, 김준, 박웅세, 최이붕, 한상호, 림국정 등 6명은 교동에 있는 김계하네 집에 집결하여 습격계획을 짰다. 습격지점을 동량어구로 정하고 행동편리를 위하여 여섯 사람을 두 개 조로 나누었다.
1920년1월4일, 집집의 굴뚝마다에서 늦은 아침의 연기가 모락모락 피여 오르고 이따금 개짓는 소리가 평화롭게 들려오는 동량리 마을은 오늘따라 느닷없이 한가롭게 보인다. 권총, 포승, 철봉은 휴대하고 명동촌을 떠나면서 여섯은 사자산과 선바위를 바라보면서 오늘의 거사가 성공되리라고 굳게 믿었다. 저녁무렵에야 동량리어구에 도착한 이들은 한족 류충괴, 리수옥이 경영하는 주막에 들여 식사한 후 두 개조로 나뉘여 큰길옆 버들방천에 숨어 송금대오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1시간이 지났는데도 은행권수송대는 나타나지 않는다. 대지에 어둠이 깃들기 시작했다. 4일 아니면 5일이라 했으니 혹 래일 오는 것이 아닐가. 래일 다시 와서 기다려야 하는걸가. 대원들은 추위속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서성이기만 했다. 윤준희는 최이붕더러 한 개 소조를 데리고 계속 버들방천에서 기다리게 하고 박웅세, 김준과 함께 회령방향으로 정찰을 떠났다. 반시간후에 윤준희일행은 짐실은 말을 앞세운 적들의 수송대를 발견했다. “수송대가 틀림없소! 김준형, 어서 최이붕소조에 소식을 알리오!” 윤준희는 간단히 명령하고 박웅세와 함께 길옆에 매복했다. 김준에게서 소식을 받은 최이붕일행은 인차 전투태세를 갖추고 적들이 오는 방향을 향해 줄달음쳤다. 아무것도 모르는 적들의 수송대는 거들먹거리면서 동량어구에 들어섰다. 100미터, 50미터, 30미터...수송대가 점점 똑똑히 알렸다. 은행권을 실은 말이 앞서서 오고 그 뒤로 우편물을 실은 말이 따르고있었다. 일행은 도합 6명, 룡정에서 파견한 은행원 하루구찌, 회령은행출장소 서기 김용억, 일본순사 나가도모, 박연흡, 상인 진길풍 그 외에 우편원 하라가시이였다. 우편물을 실은 말과 은행권을 실은 말을 앞세우고 그 뒤로 진길풍과 나가도모순사가 말을 타고 따르고 있었고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하루구찌은행원과 박순사, 맨뒤로 하라가시가 따라오고있었다. “땅! 땅!” 겨울밤의 정적을 깨뜨리면서 맵짠 총소리가 되알지게 울렸다. 윤준희의 사격신호였던 것이다. 대원들은 일제히 일본순사호송대를 향해 집중사격을 퍼부었다. 맨 앞에서 말을 타고 오던 일본순사와 상인 진길풍이 총에 맞아 말위에서 굴러 떨어졌다. 습격대원들은 맹호같이 버들방천에서 뛰쳐나와 혼비백산해 어쩔줄 모르는 적들을 몰아세웠다. 말에서 떨어진 일본순사 나가도모가 최후의 발악을 했지만 박웅세와 김준의 철봉에 맞아 당장에서 목숨을 거두었다. 그런데 총소리에 놀란 말이 내처 앞으로 내달렸다. “빨리 말을 잡아타오!” 윤준희는 소리치면서 은행권을 실은 말을 잡아탔다. 최이붕도 달려와 우편물을 실은 말을 잡아탔다. 윤준희와 최이붕은 15리 떨어진 팔포강 산중턱에서 말을 멈춰세웠다. 조금후 한상호가 달려왔다. 마바리에 실은 흑색주머니를 헤치는 순간 셋은 환성을 터치였다. 10원짜리 지페 5만원, 5원짜리 지페 10만원 도합 15만원의 새 돈이 꽉 차있었던 것이다.


셋은 돈을 나누어가지고 오도구를 거쳐 해란강을 건넌후 삼봉동, 조양천을 경유하여 부르하통하를 건너 회합지점인 와룡동에 도착할 작정이였다. 한편 박웅세와 김준은 습격지점에서 자기들의 종적을 감추기 위하여 우편물을 실은 말을 몰고 윤준희일행이 떠난 반대방향으로 달려갔다.
일행은 간고한 급행군을 하여 새벽 3시경에야 와룡동에 다달았다. 그들은 와룡동 최이붕네 뒤산 가둑나무숲속 귀틀집에서 저녁 8시까지 늘어지게 잔 후 소달구지에 돈을 싣고 김하석이 있는 의란구 유채구로 출발했다. 의란구에서 모든 준비를 갖춘 윤준희, 최이붕, 한상호, 임국정 등 4명은 김하석과 함께 1월10일 돈을 휴대한 후 무기를 구입하기 위하여 블라디보스토크를 향해 떠났다.
사건 직후 일제놈들은 혈안이 되어 날뛰었다. 1월5일 용정주재 일본령사관에서는 도난사건을 사출해내려고 수백명의 중일경찰들을 평강일대에 파견하여 조선족인민들을 검거 체포했다. 1월6일 일제는 일본경찰 36명과 지방순경 57명을 동원하여 와룡동을 수색하면서 도난사건의 실머리를 집게 되었다. 하여 최이붕의 종적을 찾아 사처를 수색망을 펼쳤지만 최이붕일행은 이미 적들의 추격에서 벗어난 후였다. 일제가 윤준희 일행을 체포하기 위해 악에 받쳐 발광하고있을 때 이들은 신한촌에 머물러 있으면서 무기상들과 연계를 맺기 시작했다. 일이 순조롭게 진척되기만 하면 갖고 온 돈으로 3만여 자루의 총을 살수 있었다.
무기구입을 책임진 임국정이 친분이 있는 엄인섭을 찾아가 무기구입을 두고 상론한 것이 끝내 화근으로 되고 말았다. 엄인섭은 과거 이범윤, 최재형, 안중근의사와 같이 의병을 이끌고 국내로 진입하였다 실패한 자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가 변질하여 블라디보스토크의 반일투쟁대오에 숨어들어 일제의 졸개노릇을 하고있었던 것이다. 엄인섭은 감쪽같이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일본헌병대에 상황을 밀고해버렸다.
일본정부는 현병대의 정보를 제공 받은 후 즉각 조선 나진항구로부터 일본해군 군함을 블라디보스토크에 파견하였다. 조선인반일투사들을 일망타진할 주밀한 계획을 세운 일제는 1월31일 밤 신한촌을 대검거하기 시작했다. 윤준희 등은 무기교섭을 위해 연회를 베풀어 즐겁게 술을 마셨는지라 눕자마자 꿈나라에 떨어지고 말았다. 한밤중 개들이 자지러지게 짖어대는 통에 잠을 털고 일어나 일행은 왁작대는 바깥동정에 정신을 차리고 준비했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전신무장을 한 일제군경들이 이미 그들이 투숙하고 있던 박참봉네 집을 물샐틈없이 포위하고 있었던 것이다. 윤준희, 한상호, 임국정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뒤문으로 빠져나가려 했다. 갑자기 앞뒤문이 벌컥벌컥 열리면서 시커먼 총아구리들이 이들을 향해 들이닥쳤다. 셋은 어쩔새 없이 체포되고 말았다. 뒤방문 곁에서 자고 있던 최이준희 등은 무기교섭을 위해 연회를 베풀어 즐겁게 술을 마셨는지라 눕자마자 꿈나라에 떨어지고 말았다. 한밤중 개들이 자지러지게 짖어대는 통에 잠을 털고 일어나 일행은 왁작대는 바깥동정에 정신을 차리고 준비했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전신무장을 한 일제군경들이 이미 그들이 투숙하고 있던 박참봉네 집을 물샐틈없이 포위하고 있었던 것이다. 윤준희, 한상호, 임국정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뒤문으로 빠져나가려 했다. 갑자기 앞뒤문이 벌컥벌컥 열리면서 시커먼 총아구리들이 이들을 향해 들이닥쳤다. 셋은 어쩔새 없이 체포되고 말았다. 뒤방문 곁에서 자고 있던 최이붕이 사태의 엄중성을 파악하고 문을 박차고나가면서 앞에 서있는 일본군을 발길로 걷어찬 후 나는 듯이 달려가면서 키 넘은 담장을 훌쩍 뛰어 넘었다. 일본군헌병들이 최이붕을 향해 집중사격을 퍼부었다. 오른쪽어깨에 총탄을 맞은 최이붕은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붉은 피를 한손으로 감싸면서 맨발로 계속 앞으로 내처 뛰였다. 얼마 안가 이번엔 왼쪽발에 또 상처를 입었다. 몇 번이나 눈앞이 캄캄해나는 것을 참으면서 뛰고 또 뛰였다. 최이붕은 반일비밀공작원인 채성하의 집으로 찾아갔다. 이번 사건으로 하여 현장에 있던 일본돈 13만원과 권총, 탄약 등은 압수되고 말았다. 윤준희, 임국정, 한상호 3인은 압송되어 청진지방법원과 경성복심법원에서 사형언도를 받고 상고되었으나 기각되었으며, 1921년 8월 25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되고 말았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최이붕은 그 후 “적기단”을 결성한후 단장직무를 맡고 러시아와 간도에서 무장투쟁을 벌린 한편 지하공작을 계속하였다. 학계에서는 철혈광복단구성원들이 무기구입당시 밀고자로 엄인섭 이었다는 데에는 의의가 없다 다만 당시 밀고자 엄인섭이 한일합방전후부터 지속적으로 반일운동을 펼쳐온 엄인섭인지 아니면 제2의 엄인섭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결론이 없는 실정이다.
엄인섭은 최재형의 누나의 아들로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군 통역이었으며 러시아 훈장을 수여받았다. 1908년 동의회(同義會)를 조직하여 이범윤의 의병부대에서 좌영장(左營將)을 맡아 국내 진공작전을 지휘한 대표적인 함경도파 인물이다. 일제가 한때 가장 위험한 인물로 꼽았던 자이다. 그는 성격이 포악하여 살상을 뜻대로 하였다고 하며 사격술이 매우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러시아측 한국어통역관 문관 짐이라는 자의 조사에 의하면, 엄인섭은 요수를 잘부리고 투전꾼이며 본처이외에 몇 명의 첩을 거느리고 품행이 아주 좋지 못한 것으로 보고하였다.(러시아연 방(聯邦) 외무부산하 제정러시아대외정책자료보관소 소장, 문관 짐이라는 한국어통역관이 국경행정관에게 보낸 문서, 1909.1.30) 그리고 1911년 초부터 그는 일본총영사관에 정보를 팔고 있었음이 확인된다. 그는 러시아경찰 을 도와 이범윤을 체포케하였고 혹은 일본을 위하여 '폭도(의병-필자)'의 정보를 내통(사료관소장(史料館所藏), 헌기제(憲機第)786호(號)(1911. 4.29), 포조사덕지방(浦潮斯德地方) 선인상황(鮮人狀況)ノ건(件))했다고 하며 이종호와 함께 권업회를 발기하는 등 활약하고 있는 중에도 일제에 정보를 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료관소장(史料館所藏), 헌기제(憲機第)974호(號), 제(第)267호(號)(1911. 5.24), 오월십일일엄인섭(五月十一日嚴仁燮)ヨリ득(得)タル정보(情報) )

참고 문헌

서굉일·동암 편, 《間島史新論》 상권, 우리들의 편지사, 1993.
강덕상, 《現代史資料》27권, 1977.
국가보훈처, 《獨立軍의 手記》, 1995.
반병률, 〈간도15만원사건의 재해석〉, 《外大史學》,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