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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독의똑딱선을습격

시대 : 1920
인물 :
신분 : 독립군

시대적 배경

1920년대에 일제는 동북의 남만에서 통치기반을 더욱 확대하고 공고히 하며 인민들의 반일 투쟁을 제압하기 위하여 동북군벌의 비호를 받아 도처에 영사관을 설치하였으며, 경찰과 특무들에 의하여 무단통치를 감행하였다. 일제영사관에서는 조선족가운데서 보민회라는 반동조직을 건립하여 이들의 앞잡이로 내세웠으며 이자들을 이용하여 조선족의 반일정서를 정탐케 하고 조선족들을 다스리는 한쪽 팔로 삼았다. 일제의 침략마수가 길게 뻗칠수록 조선족인민들의 반항은 더욱 컸으며 일제의 무장탄압이 심할수록 조선족인민들의 무장봉기가 더욱 광범위하게 일어났다. 이리하여 남만일대에서는 조선족들로 조직된 반일단체가 우후죽순마냥 일어났는데 반일조직과 반일무장대는 무려 40여개나 되었다. 1919년 11월에 남만일대에서 이상용, 이척, 김동삼 등이 서로군정서를 조직하였고, 최시흥이 천마산대를 조직하였고 박상호, 백삼규가 대한독립단을 조직하였고, 김승만, 오동진이 자기 집 가산을 몽땅 팔아 무장을 사서 광복군총영이라는 무장대를 조직하였으며, 현익철, 현정경, 이호원은 관전 향로구에서 반일무장조직인 광한단을 조직하여 일제와 싸웠다. 그리고 1922년부터 그 이듬해에 이르기까지 김동삼, 전덕원, 현정경 등이 통의부를 건립하였는데 그 내부의 파벌성으로 하여 전덕원과 채성덕은 거기에서 갈라져나와 참의부를 조직하였다. 그 후에 통의부는 그 명칭을 정의부로 개칭하였다. 이러한 반일단체들은 통일적인 지도부를 내오려고 힘을 썼으며, 1925년에는 화전에서 회의까지 열었으나 합의를 보지 못하였다. 이러한 반일 단체들은 파벌투쟁이 심하였는바 서로 단결하여 반일 활동을 전개하지 못한 문제는 있으나 일제에게 심대한 타격을 줌으로써 반일투쟁에 일정한 공적을 쌓았다. 1922년에 반일조직에서는 유하현 삼원포에 자리를 잡고있던 이른바 조선인민회라는 기관을 습격하여 우두머리인 일본인 구니이를 비롯하여 많은 악질주구를 처단하였다. 어떤 반일단체들은 압록강을 건너가서 조선에 있는 일제경찰의 주재소를 습격하고 돌아오기도 하였다. 특히 백광운이 이끄는 참의부에서는 반일무장투쟁을 아주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세부 사항

백광운은 제천시 덕산면 출신으로 본명은 채찬이며, 1905년 왜적과 싸우다가 만주로 망명 통화현(通化縣) 신흥무관 학교를 졸업하고 백서농장을 경영하면서 둔 전제를 실시하여 독립군을 양성하였다. 3·1운동 후 서로군정서에 가입 후 동지들과 국내에 잠입하여 일본기관 파괴, 경찰주재소 습격 등을 전개하였다. 1921년에는 의용결사대를 조직하고 중대장이 되었다. 그는 반일단체내부에 무원칙한 파벌투쟁이 계속되어 수습할 수 없는 정도로 만연하자 청년파들이라고 불리우던 통의부의 제1, 제2, 제3, 제5중대 등 4개중대를 이끌고 통의부에서 갈라져나와 참의부를 조직하고 일제와 더욱 과감하게 투쟁하였다. 백광운은 반일무장대오를 거느리고 1919년부터 압록강연안지대를 돌아다니며 일제경찰을 습격하여 수많이 소멸하였다. 1920년 8월에는 일제경찰과 결탁하여 반일지사들을 해친 민족의 반역자인 후창군수 계응규를 처단하였다. 그리고 유하현과 기타 지방에서 일제의 주구조직인 보민회 등 10여개소의 반동소굴을 습격하여 민족반역자들을 숙청하였다. 그 가운데서도 마시탄(馬?灘, 지금의 요녕성 관전현남쪽에 있음)에서 조선총독이 탄 똑딱선을 습격한 이야기는 남만인민들 속에서 널리 알려져졌다. 남만의 반일무장부대들은 그곳에 있는 일본영사관과 그 주구기관들을 들부셨을 뿐만 아니라 국경선을 넘나들면서 압록강 양안을 소란시켰다. 압록강 양안에 있는 일제경찰서와 영사관들이 화산목에 앉은듯 불안한 나날을 보낸다는 소식이 조선총독부에까지 보고되었다. 총독 사이토시쯔는 압록강 양안의 반일무장세력을 소멸하기 위한 작전을 세우기 위하여 경무국장 마루야마쯔루요사(丸山鶴吉)의 배동하에서 많은 일제관헌과 군경의 호위를 받아 국경지대에 시찰을 나왔다. 참의부에서는 사이도 일행이 1924년 5월 19일 오전 9시에 조선 평안북도 벽동군 고산진 하류에서 똑딱선을 타고 압록강을 거슬러 올라오면서 시찰한다는 소식을 입수하였다. 참의부의 책임자 백광운은 소대장 장창헌에게 8명의 무장대원을 주어 사이도 일행이 탄 똑딱선을 습격하라는 임무를 주었다. 장청헌은 무장대원들을 거느리고 압록강우안을 따라 내려갔다. 그들은 요녕성 관전현 남쪽 압록강변에 있는 마시탄이란 지방에 이르렀다. 습격대원들은 지새가 험준하고 강물이 급류를 이룬 곳을 선택하여 똑딱선을 습격하기로 하였다. 대원들은 낭떠러지를 진지로 삼아 매복하였다. 계절은 바로 5월중순이라 산은 산마다 녹색으로 단장하였고 들은 들마다 푸른 주단을 깔아놓은것 같았다. 습격대원들은 벼랑에 뿌리를 박고 서있는 나무에 음폐하여 적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강에는 뗏목도 뜨지 않았고 돛단배도 없었다. 성급하게 흐르는 강위로 산새들과 물새들이 날아다닐 뿐 사위는 조용하였다. 이전에는 해마다 압록강에는 뗏목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흘렀다. 그런데 근자에는 일본놈들이 이곳에서 야료를 부리고 때때로 일본군경과 반일무장대의 무장충돌이 일어나는 바람에 뗏목군들도 강으로 나설 계제가 못되었다. 한낮이 넘어 똑딱똑딱하는 똑딱선의 발동기 소리가 멀리서 간흘적으로 들려왔다. 습격대원들은 전투태세로 들어갔다. 이윽고 발동기소리가 점점 높아지면서 똑딱선이 어슴푸레 보이였다. 놈들은 강 양안의 경치를 구경하느라고 정신이 팔렸는지 아니면 강 양안의 지형지물을 살펴보느라고 정신이 팔렸는지 또한 반일무장대의 습격을 방비하여서인지 여하간 늑장을 부리며 조심스레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기에 50리 상류를 거슬러 올라오는데 몇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똑딱선이 사격권범위내에 들어섰다. 총창을 들고 이물과 고물에 지켜서서 망을 보는 일본군경의 얼굴윤곽이 보이고 선실에 앉아 무시로 망원경을 대고 강 양안을 살펴보는 일본놈들의 움직임도 보였다. 장창헌은 또 한번 대원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한방에 한놈씩, 겨누어 쏘시오!”
똑딱선은 강심에서 조금도 좌우로 기울어지지 않고 거슬러 올라왔다. 어떤 곳은 물곬이 강안으로 쏠려 배길을 그쪽으로 잡는것이 퍽 쉬웠겠지만 한대중 선로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 그걸 보아 똑딱선은 확실히 반일무장대의 불의의 습격을 경계하는것 같았다. 똑딱선은 습격대원들이 매복하여 있는 벼랑밑으로 접근하자 마시탄의 지형을 정찰할 심산이였던지 아니면 급류에 배가 뒤집힐가봐 그러는지 엉거주춤 멈춰섰다. 선실에 앉았던자들이 밖으로 나오려는 찰나 “사격!‘ >소대장이 명령하였다. 8명의 대원들은 일제히 똑딱선에 대고 불벼락을 안기였다. 선실밖에서 보초서던놈들과 선실에서 나오려던 놈들이 먼저 넘어졌다. 불의의 습격을 받은 똑딱선은 기급하여 선자리에서 어쩔줄 모르고 똑딱거리는 꼴이 마치 떼쓰는 당나귀 같았다. 습격대원들은 유리한 지형에 의거하여 진퇴유곡에 빠져 맴돌이치는 똑딱선에 몰사격을 퍼부었다. 선실에 앉아있던 놈들은 아연실색하며 선불맞은 승냥이새끼처럼 으르렁댔지만 한동안 어리둥절하였다. 다급해난 마루야마경무국장은 ”돌격!“”사격!“하고 마구 외쳤다. 배에 앉아서 어떻게 돌격하고 사격을 하라는건고? 하지만 일본군경들은 허공에 대고 눈먼총질이라도 하여야 했다. 사이도는 연신 ”뒤로! 뒤로!“하고 명령하였다. 그가 어찌 남대문역전에서 폭탄세례를 받았던 일을 잊어버렸으랴!, 똑딱선은 사이도의 명령에 정신이 펄쩍 들어 배머리를 돌려 마력을 다 내어 꽁무니를 빼기 시작하였다. 사이도는 이번에도 목숨을 부지하게 된것을 천만다행으로 생각하였다. 총독은 국경시찰을 그만두고 중도에서 철퇴시키는 체면이 깍였으나 마시탄에서 습격당한 일을 꿈에 봐도 머리끝이 곤두서는 바람에 그만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똑딱선에서 8명의 사상자를 낸 사실을 슬쩍 속이고 다만 시찰대가 수백명 되는 비적에게 불의의 공격을 받았으나 신국의 위력과 도움으로 겹겹이 둘러친 포위를 뚫고 무사히 나왔다고 넌지시 보고 하였다. 이 보고를 들은 장창헌소대의 대원들은 코웃을 쳤다. ”뻔뻔스러자식! 반일전사 여덟사람을 비적 수백명이라고 하다니....“
”글세, 사이도란놈이 그런 거짓말쟁인줄 알았더라면 아예 신국으로 보내버렸을걸 그랬내!“
그들이 이렇게 주고받는 말에 반일전사들은 모두 통쾌하게 웃었다. 사이도는 마시탄에서 습격에 어찌나 놀랐던지 그 후 다시는 국경시찰에 나설 엄두를 못냈다고 하였다.

참고 문헌

허룡구, 〈총독의 똑딱선 급습〉, 《조선족백년사화》, 요녕인민출판사, 19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