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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군수

시대 : 1258
인물 : 현군수, 문황, 최주, 이수지, 김준
신분 : 하급장교

시대적 배경

최의가 주살되는 1258년(고종 45)의 무오정변으로 최씨정권은 종말을 고하고 왕정복고의 절차가 취하여졌다. 그러나 물론 그렇다고 하여 이로써 왕정 복고가 실현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형식적인 행사로 그치고 실권은 정변의 주체자들에게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정변이 있은 다음 달인 4월에 그의 주역 8명에게 위사공신호가 주어졌는데, 그들을 서열별로 보면 대사성 유경ㆍ별장 김인준(김준)ㆍ낭장 박희실ㆍ섭랑장 이연소ㆍ장군 박송비ㆍ대정 김승준ㆍ낭장 임연ㆍ섭랑장 이공주였다. 이 가운데 문신은 유경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무신들로서, 그나마 박송비를 제외하고는 한결같이 하급장교들이라는 점이 주목을 끌거니와, 이들 가운데에서 유일하게 문신이었던 유경은 그 몇 달 후에 권력의 핵에서 밀려나고 있다. 따라서 무오정변은 김준을 대표로 하여 무장세력이 중심이 된 새로운 무신정권을 발생시켰다.
그런데 김준은 그 뒤 자기의 측근세력을 주변에 모아 집권의 터전을 더욱 공고히 하여갔다. 1262년에 작성된 문서에 의하면 무오공신 가운데 그의 동생인 김승준이 서열 4위로 뛰어오르고, 아들인 대재ㆍ용재ㆍ식재 역시 공신대열에 끼여 들어가 있는 것에서 그 같은 권력구조의 변동을 짐작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임연과 이공주는 각기 서열 11ㆍ12위로 처지고 있다. 김준은 이러한 기반을 배경으로 하여 마침내 원종 5년에는 교정별감의 자리를 차지하고 다음 해에는 시중이 되는 동시에 진양공의 고례에 따라 해양후에 책봉되어 입부하기까지에 이른다. 최씨정권 때의 상황이 재연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편 김준은 무오공신집단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교정별감으로서의 위세나 사병조직 등도 최씨정권 때에 비하여 약화되어 있었다. 원종 9년에 그가 국왕에게 바치는 내선선 2척을 빼앗았다가 왕의 지적을 받고는 당황하여 되돌리려 한 것을 보면 왕권과의 비중을 볼 때 왕을 압도할 정도는 못했던 것 같다. 김준 정권은 원종 9년 12월 임연에 의해 붕괴된다. 임연은 본래 김준을 아버지라고 부를 정도로 그를 믿고 따랐다. 임연은 무오정변 당시 많은 공을 세웠으나, 그 뒤 김준이 자기의 동생ㆍ아들 등을 중심으로 권력의 기반을 다져 가는 과정에서 그로부터 소외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김준과 임연 사이가 더욱 벌어지게 되자, 국왕인 원종은 그의 측근 환자들을 임연과 통하여 하여 궁중에서 김준을 암살하고 일당을 제거하게 된다.

세부 사항

김준의 초명은 김인준(仁俊)이며 그 아비 김윤성(金允成)은 본래 천예(賤隸)로서 그 상전을 배반하고 최충헌에게로 투신하여 종노릇하는 사이에 김준과 김승준(金承俊)을 낳았다. 김준은 풍골이 늠름했으며 천성이 관후하고 아랫사람에게 공손하였다. 또 궁술에 능했으며 남에게 베풀어 주기를 좋아해서 여러 사람들의 인심을 얻었고 날마다 호협한 청년 자제들과 교유하고 모여서 술을 마시었으므로 제 집에는 재산이라곤 없었다. 하루는 어떤 술수(術數)를 하는 중이 그를 보고 말하기를 “이 사람이 뒷날에 반드시 국권을 쥘 것이다”라고 하였다. 박송비(朴松庇)와 송길유(宋吉儒) 등이 최이에게 김준을 칭찬하였으므로 최이가 드디어 신뢰하게 되어 매양 출입할 때면 반드시 김준을 시켜 부축케 하였으며 전전승지(殿前承旨) 벼슬을 주었다. 그 후 김준은 최이의 애첩 안심(安心)을 간통하여 고성(固城)에서 수년간 귀양살이하다가 돌아왔다. 최이가 최항을 후계자로 결정한 데는 김준의 힘이 컸다. 그 후 최항이 습권(襲權)하여서 별장으로 임명하고 더욱 신임하였다. 최항이 죽은 후에는 최의가 최양백(崔良伯)과 유능(柳能)만을 신임하고 김준을 소원하게 대했으므로 김준은 불평을 품었으며 송길유가 실각한 후부터는 더욱 최의를 서로 의심하였다.
고종 45년에 유경(柳璥), 박송비 등과 함께 최의를 죽이고 정권을 왕에게 복귀시키면서 김준은 왕에게 건의하기를 “최의가 백성을 돌보지 않고 굶어 죽어도 방관시하면서 양곡을 내어 구제하지 않았으므로 저희들이 의거(義擧)해서 죽였습니다. 양곡을 내어서 주린 백성을 구제하여 백성의 기대를 만족시켜 주기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즉시 장군 벼슬과 위사공신(衛社功臣) 칭호를 주고 그 공훈을 제2로 논정하였으며 이어 우 부승지로 임명하였다. 권시(權施)라는 자는 최이의 기생 첩의 딸에게 장가 들고 복야(僕射) 벼슬을 했으며 그 아들 권수균(權守鈞)은 장군이 되었고 권수균의 사위 문황(文璜)도 소경(小卿) 벼슬에 있었는데 권시의 부자가 무슨 일로 파면당하고 최의 또한 처단당한 후 문황은 항상 마음이 우울해서 김준을 살해함으로써 최의를 위하여 복수하려 하였다. 그리고 문황의 아들 문광단(光旦)과 문영단(英旦)은 대정 최주(崔注), 녹사 유종식(柳宗植), 이수지(李秀之), 교위 현군수(玄君壽) 등과 친교를 맺어 왔는데 하루는 문황이 비밀리에 최주와 이수지를 권유하여 김준을 죽일 것을 모의했더니 두 사람이 허락하고 곧 군수를 불러서 의논한즉 군수는 주저하였다. 또 이수지가 유종식에게 권유하니 유종식은 허락했다. 그래서 문황의 부자와 밀실에서 외인은 일체 금하고 모의하였는데 각자의 친한 용사들을 끌어서 거사하기로 하였다. 그런 후에 유종식이 별장 김인문(金仁問)의 집으로 가서 벽상에 걸린 활과 검을 내려서 어루만지면서 말하기를 “그대는 대장부라 이런 시절에는 이것을 가지고 정승도 할 수 있는데 어찌 아녀자처럼 녹녹히 지낼 수 있는가!”라고 하였으나 김인문은 그 말을 이상히 여기고 대답하지 않았다.
유종식이 간 후 김인문은 자기에게 화가 미칠 것을 염려하여 드디어 지유 백영정(白永貞)을 통해서 김준에게 고발하였으므로 김준이 유종식을 체포해서 문초한즉 과연 사실을 자인했으나 김준은 유종식이 평소에 미치광이 같아서 그 말이 농담일 따름이라고 인정하고 견책하여 석방했다. 현군수가 유종식이 체포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 밤으로 별초영(別抄營)으로 가서 문황 등의 음모를 고했으므로 김준은 그 말을 듣고서 문황, 최주, 문광단, 문영단, 이수지 등을 국문한 후에 죽이고 권수균 부자와 유종식을 섬으로 귀양 보내고 문황과 권수균의 가산을 몰수해서 김인문과 현군수에게 주었다. 또 눈먼 중 백량(伯良)이 그 음모에 대하여 길흉을 점쳐 주었다 하여 바다에 던져 죽이고 그 집을 몰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