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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창의 모습

군산지역은 조운의 요로로 군산창이 설치되었던 곳이다. 당시에는 육상교통에 많은 제한이 따라 세곡을 바닷길로 운송하였으며, 일찍부터 군산지역은 조창이 설치되어 세곡운송의 거점이 되었다. 중종 7년에 설치된 군산창은 용안의 득성창이 옮겨온 것으로, 조선 초에는 노인성창이 있었다. 군산창은 영광의 법성창과 함께 전라도의 대표적인 조창으로 영·정조대의 경우 전주, 진안, 장수, 태인, 금구, 임실, 군산 등의 세곡을 관장하였다. 조선시대 군산의 역사는 조운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다. 군산창은 옥구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쪽의 한 갈래 길을 통하여 육지와 연접하였고, 그 나머지 3면은 바다와 연접하여 밥을 싸들고 바람을 기다릴 장소의 거리로 30리 정도이고 진영 앞 포구는 사철 물이 차 있어 조운선을 대기에 편리하며 진영 뒤의 창고 밑에는 두 언덕이 바람을 막아주어 조운선에 짐을 싣기가 편리하다. 진영의 서쪽으로 좀 평탄한 곳에는 봉세청(捧稅廳)이 있고, 봉세청 좌우에 7개 고을의 창고가 있으며, 그 곁에 7, 8채의 민가가 있다. 만약 이 민가를 옮기면 4,50간의 창고를 더 지을 수 있는 지리적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군산창의 조함은 18척이며, 조구는 816명이었다. 군산창 주변에는 숙박시설인 주막을 비롯하여 객주, 여각 등이 줄지어 서 있고 장사꾼이 많았던 항구였다.

2칸 세고
4칸 세고
8칸 세고
세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