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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해상활동

백제는 한반도가 가진 지리적 이점을 바탕으로 동아시아의 해상왕국으로 발전하였다. 백제가 위치하였던 한반도 중.서남부는 한강, 금강, 영산강을 비롯하여 많은 하천을 끼고 있으며, 인접한 바다인 서해와 남해는 서북으로는 중국대륙 동남으로는 일본열도에 닿는 동아시아 해상교통로의 중심에 위치하였다. 이러한 백제의 자연환경은 하천을 통한 내륙수운과 해상을 통한 연안해운을 자연스럽게 발전시켰다. 또한 중국대륙과 한반도, 일본열도를 잇는 국제해운을 경영하여 동아시아의 해상 네트워크를 구성하였다. 일부 기록에는 백제인들이 동북아시아 뿐만아니라 동남아시아와 인도에 이르기까지 먼 바닷길을 통해 활발하게 교류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백제의 활발한 해상활동은 우수한 조선기술(造船技術)을 바탕으로 하였다. 실제로 백제는 ‘방(舫)’이라는 선박을 운용하였으며, 왜국에서 ‘백제선’은 우수한 선박으로 통했다. 당시 중국측의 선박과 백제선의 형태 및 제작기법의 차이로 보아 백제만의 독자적인 조선기술을 보유했었으리라 추정할 수 있다. 이러한 백제의 우수한 선박은 동아시아의 바다를 장악하였고, 나아가 백제를 해상을 통한 문화교류 및 교역.물류의 중심 역할을 수행하게 하였다.

백제의 해상활동은 교역과 같은 단순히 한 부분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었으며 정치.경제.군사적 측면 등 다양한 방면에서 이루어졌다. 백제 최대의 라이벌인 고구려에 대항하기 위하여 한반도의 신라.가야, 중국 남조와 일본열도의 왜국과 연계하여 반고구려전선을 주도하였고, 경제적으로 국제교역의 중심지이자 문화적으로 선진기술과 문물의 전달자로 동아시아 문화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때로는 중국대륙의 혼란과 백제내부의 발전에 힘입어 중국대륙과 일본열도로 적극적으로 진출하기도 하였다.

신라 말의 학자 최치원은 '상대사시중장(上大師侍中狀)' 에서 “고구려와 백제의 전성시대에는 강병(强兵)이 백만이나 되어 남으로는 오(吳).월(越)을 침략하고 북으로는 연(燕).제(齊).노(魯)를 위협하여 중국의 근심거리가 되었다.”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연.제.오.월은 중국대륙의 해안지역이므로, 이 이야기는 백제의 서해를 무대로 한 군사활동을 보여주는 사례로 이해되기도 한다. 기록에 의하면 백제는 4세기 말 북중국의 혼란을 틈타 요서지역에 진출하였다고 전하며, 중국의 '남제서(南齊書)' 에도 “위나라는 기병 수십만을 동원해서 백제를 공격하여 그 국경안으로 쳐들어갔다. 동성왕은 사법령, 찬수류, 해례곤, 목간나 등을 보내 위나라 군을 습격하여 대파했다.”고 하여 5세기 말, 북중국의 왕조인 북위의 선단과 해전을 벌여 승리하는 모습 등은 백제가 강력한 해상능력을 보유하였고, 그것을 바탕으로 군사적으로도 활동하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백제는 고대 동아시아의 바다를 장악하고 경영하여 찬란한 문화를 보유한 해상왕국을 이루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