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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백제

한성백제의 왕도로 추정되는 풍납토성 한성백제의 왕도로 추정되는 풍납토성

한성백제시대(BC 18년 ~ AD 475년)

백제는 수도(왕도)를 한성(서울)에 두고 한반도의 가장 풍요로운 지역에 자리하면서 국가의 기틀을 다져왔다. 그 결과 고대 삼국 중 가장 먼저 전성기를 맞이하는데, 백제를 최고의 전성기로 이끌었던 이는 제13대 근초고왕(?~375)이다. '삼국사기' 에는 그를 ‘체격과 용모가 빼어나고 원대한 식견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근초고왕은 왕위에 올라 한반도 북부지역과 중국의 동북지역을 지배하던 고구려와 전쟁을 하게 되는데 당시 고구려는 삼국 중 가장 큰나라로 백제보다 3~4배 넓은 땅을 가진 나라였다. 하지만 백제는 치양(현재의 황해도 배천 비정)전투에서 승리하고 평양성(현재의 평양) 전투에서 고구려의 고국원왕을 전사시키기도 하였다.

또한 마한의 남은 세력들을 백제에 편입시키고 한반도 동남부에 위치한 가야에까지 진출하여 명실상부 삼국 중 가장 강한 나라를 이룩하였다. 근초고왕은 한반도에서 백제의 안정을 바탕으로 대외적으로도 팽창하는데 중국대륙에서 통일왕조가 무너지고 북중국이 혼란해진 상황을 틈타 요서지역으로 진출하기도 하였다. 요서진출에 관해서는 정복이냐 해상활동을 위한 거점의 확보냐 또는 사실무근인가에 대해서 논란이 있으나 진출시기에 관해서 백제의 최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근초고왕 무렵이라는데 이견은 없다. 전쟁에서의 승리뿐만이 아니라 근초고왕은 중국 동진, 일본열도의 왜국과 활발한 교류를 통해서 동북아시아 문화발전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백제의 이러한 전성기는 오랫동안 지속되지 못하였다. 고구려의 광개토왕, 장수왕과 같은 걸출한 왕들이 배출되면서 백제는 위기를 맞게 되는데, 서기 475년 장수왕의 침공으로 왕도인 한성이 함락되고 21대 개로왕은 전사하게 되었다. 고구려군은 한강 북쪽으로 철수하였으나 이미 폐허가 되고 언제 적이 쳐들어올지도 모르는 곳을 왕도로 유지할 수는 없었으므로 결국 신라에 구원군을 요청하기 위해 남쪽으로 떠났다가 돌아온 개로왕의 동생 문주가 남쪽의 웅진(지금의 공주)으로 수도를 옮겨 백제를 이어나가게 되었다. 500여년의 한성시대를 마감하고 바야흐로 웅진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