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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 신의 뜻으로

[등장인물]

- 고이왕

[줄거리]

"방금 뭐라고 했는가."

우보인 숙부 질이 그에게 간하였다.
중대한 내용이었으나 질은 느긋이 웃은 채 그의 잔에 차를 따라주며 조용히 되뇌었다.

"한나라의 부종사 오림이 이르기를 진한의 8국을 강제로 낙랑에 귀속하겠다고 공표했다하옵니다."
"삼한의 노인네들은 이번에도 조용하던가."
"하하하. 이번일은 다르지요. 아예 자기 나라 만들 속셈이라고 터놓고 말했으니 길길이 뛰고 있습니다."
"허나 또 그러다 말겠지. 그 노인네들은 그래. 항상 그래왔지. 공격하기보단 방어하려 할 거야. 바뀌기 싫어한단 말이지."

왕은 자세를 바로 잡아 고치며 신하가 따라주는 찻잔을 본체만체 그림 그리는 것에 집중하였다.
질도 그런 왕을 보는 듯 마는 듯 자신의 찻잔을 부여잡고 찻잔을 기울였다. 옥색 도자기의 위로 기품 있는 향이 증기가 되어 앉았다.

"때가 됐습니다."
"무슨 소린가?"
"왕이 때를 기다리고 계신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분명 그들은 왕의 말씀대로 공격보다 방어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들을 앞장서 그들을 끌어주기만 한다면 바로 공격에 들어갈 것이옵니다. 그들이 방어적인 것은 그들이 자신이 약세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옵니다. 나뭇가지 하나야 부러트릴 수 있지만 나뭇가지 여러 개는 부러트리기 어렵다고 합니다. 왕께서 나뭇가지를 엮으십시오."

왕이 고개를 들어 그와 마주하여 조용히 웃기를
"허허.....그래. 그리하면. 공의 생각으로는 내게 그들을 엮을 명분이 있다고 보시오?"
"명분은 없사옵니다. 허나 만들기 제일 쉬운 명분은 신의 뜻이라는 겁니다."
"하하하하 하하하하! 맹랑할세!"
"왕께서 비밀히 봉한 문서를 삼한 소국에게 돌리시옵소서. 3년 전 제단을 지어 천제께 제사를 지냈을 때용이 8개의 화살에 맞아 죽는 꿈을 꾸었다. 이것을 월관에게 신탁을 받으니 후에 8개의 나라가 하나의 큰 나라를 쳐부수어 크게 승리하리라고 하였더라고 넌지시 이르시옵소서. 그러면 그들은 용기를 얻어 낙랑군, 한군현과 싸우려고 할 것입니다."
"그래 그리하면? 그리하여 내가 얻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의 마한에서 백제의 입지는 너무나도 좁습니다. 그러나 이번 전투에 왕께서는 마한의 주세력에 합세하시게 될 겁니다. 아무래도 그들을 자극하여 봉기하게 한 입장이니까요. 그리한 다음에는 이 전투를 이용하여 백제의 위치를 한층 높이셔야 합니다. 이번 전투가 성공만 잘한다면 우리 백제는 이 소국들 사이에서 독자적이고 우위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이옵니다."

왕의 입에 웃음이 떠나지 아니 하였다.
"자네는 어째서 그렇게 확신하는가? 내가 보기엔 우리가 단연 불리하네. 질 것이 뻔한 전투로 보이는데....."
"당연히 질 것이옵니다."
"뭐? 진다고?”
왕의 놀란 눈을 보고도 그 또한 왕의 눈을 피하지 아니하며
"질 것이옵니다. 아니 당연히 져야만합니다. 처음 한번은 말입니다. 그것을 이용해야만 합니다. 마한과 연합하면 가까스로 그들을 이길지도 모릅니다. 허나 우리의 요점은 그게 아닙니다. 그들을 이긴다 하더라도 그들의 뒤에는 위나라가 버티고 있습니다. 연합이 아무리 젖 먹던 힘을 짜내 싸운다고 하더라도 이길 상대가 아니지요. 우리는 한군현과 낙랑군의 영향만 더 이상 이곳에 끼치지 않도록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일단 마한과 연합하여 같이 싸우는 척하고 잘 이겨갈 때 갑작스런 급습을 받은 척하며 마한에게는 급습을 받아 상황이 안좋은듯 하니 잠시 후퇴하는 것이 어떠한가하고 넌지시 전갈을 합니다. 그러면 마한은 승리에 도취해 있던 중이었기에 오만과 오기로 자기네들끼리라도 공격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독자적으로 싸우게 될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마한에는 철기가 거의 보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나마 제대로 된 철기를 가진 나라는 저희 백제뿐이죠...... 아마 마한은 철저하게 지게 될 것입니다....."

질이 식은 차를 들이켜 마시며 뜸을 들였다.

"그때에야 왕께서 아까 받은 신탁을 명분으로 마한의 패잔병을 거두어 군을 다시 재정비한다음 다시 한군현, 낙랑군 연합과 싸우셔서 이기셔야 합니다. 아무래도 거의 완벽하게 이기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것이 요점이지요. 그렇게 되기는 힘들겠지만, 만약 너무 완벽하게 이겨버리면 한나라에서 성이 나 원군을 불러와 아예 이곳을 토벌해버리려 할겁니다. 허나 약간의 위협만 가한다면 그들은 더 이상 우리의 힘을 알아채고 더 이상 건드리려 하지는 않게 될 겁니다.
이를 위해서 우두머리는 꼭 하나라도 죽이셔야 합니다. 어떤 군열이든 우두머리가 죽으면 제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합니다. 대군과 이길 가능성이 희박한 때이므로 어떻게든 우두머리를 죽여야만 합니다. 그래야 그들을 흐트러지게 하고, 또 그 상징성을 이용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를 죽이고 마한을 구한 신의 사자, 고이왕!! 어떻습니까...
결국 신의 사자인 고이왕의 예언은 결국 맞게 되는 것이고, 백제는 그 마한에서의 입지가 올라갈 것이며, 왕의 위상은 드높아 질것입니다. 지금의 마한의 연합왕이 목지국왕이지만, 잘만하면 이번 기회에 왕께서 되실 수도 있는 것입니다. 또한 반도의 영토를 차지하고 마한에게 간섭하고 영향을 끼치던 낙랑군과 한군현들을 토벌함으로써 간섭받지 않고 더 넓은 영토를 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잡을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왕은 그런 질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림을 다 그렸네. 한 번 봐줄 텐가?”

질이 왕이 든 그림을 보니 백제의 영수가 웃으며 종이의 중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왕이 그림 속 영수 처럼 웃으며 말했다.

"이 녀석 웃는 것이 나와 닮았지?”
"많이 닮았습니다.”
"어렸을 때 잠들 때면 악몽을 많이 꿨어. 그때 태후께서 내게 이렇게 생긴 돌 인형을 줬지. 그러자 악몽은 수그러들었어. 나는 그 후로 항상 고민이 있을 때마다 이 녀석을 그렸지. 나의 고민을 먹어줄 것이라고 생각했거든. 이번도 그랬어.
나는 자네의 말과 같이 때를 기다리고 있었네......... 용이 화살을 맞는다고?”

왕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 벽에 걸린 물소뼈로 만든 거대한 활을 들었다.

"내 화살은 조금 아플 것이라고 용에게 일러두게나.”

질은 찻잔을 든 채 조용히 웃었다.

"예.”

참고 : '삼국지' 동이전, 한 조, '삼국사기' 백제본기 고이왕 13년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