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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 왕의 자질

[등장인물]

- 근구수왕(부여수): 근초고왕의 아들
- 근초고왕: 현 백제의 왕, 부여수의 아버지
- 사기: 고구려로 도망하였던 백제인

[줄거리]

“부르셨습니까.”

태자인 부여수는 왕에게 다가가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었다.
연못이 보이는 복도로 나와 뒤를 돌아 하늘을 바라보던 왕이 부여수의 말을 듣고는 말하였다.

“왔느냐.”

9월의 하늘은 놓고 푸르렀다. 가을의 약간은 시린 바람이 불어와 태자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무난간에 팔을 기대어 서 있던 왕은 잔잔한 호수에 바람결로 인해 파문이 이는 것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지금 치양 지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고 있겠지.”
태자는 왕의 심중을 파악하여 대답하였다.
“예. 고구려의 고국원왕이 민가를 공격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사옵니다.”
왕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었다.
“고국원왕이 쳐 들어왔다. 이것은 명백한 도전이라고 받아들여도 될 것이야.”

그 말에 긴장한 태자는 주먹을 꽉 쥐었다. 고구려의 왕이 도전해 왔다면 이쪽도 왕이 나가 싸워야 한다. 잔뜩 긴장한 태자를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등을 보이며 먼 하늘을 바라보던 근초고왕은 난간에서 손을 때며 말했다.

“내가 나서야 겠지... 허나.”

왕은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잔뜩 긴장하여 뻣뻣한 자세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태자가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미소를 지었지만 겉으론 들어내지 않고 점잖게 말을 이었다.

“이번엔 너를 내 보내려 한다.”

태자는 침을 꿀꺽 삼켰다.
시린 가을바람이 불어왔지만 전혀 춥지 않았다. 왕이 하는 말의 의미를 생각하며 긴장된 눈으로 앞에 서 있는 왕을 바라보았다. 하늘빛을 등지고 서 짙게 어둠이 깔린 모습으로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왕은 짙게 깔린 눈으로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다. 태자는 그 눈을 마주 바라보았다. 왕이 나가야 하는 전투에 태자를 보낸다는 것은 여러모로 많은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리라. 긴장을 한 탓에 온몸에 힘이 들어가 굳어버린 몸을 느끼고 긴장을 풀기위해 진땀을 뺐다.

“출정은 곧 이다. 준비할 수 있겠느냐.”

태자는 고개를 빳빳히 들어 의지가 엿보이는 눈으로 왕을 바라보며 답하였다.

“ 예. 명을 받들어 적을 토벌하고 돌아오겠습니다.”

바람이 불었다. 태자의 머리카락과 옷자락이 가볍게 흔들렸다. 바람에 흩날리는 것은 그 것뿐 태자는 자리에 서서 승리에 대한 열기를 눈빛으로 뿜으며 왕을 마주 바라보았다. 왕은 그러한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었다. 대단한 기개로 왕을 바라보던 태자는 다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출정 준비를 위하여 물러갔다. 뒷모습을 바라보던 왕은 다시 고개를 돌려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르렀다.

“이번 전투가 너에게 많은 것을 알려 줄 것이다.”

가을바람이 변덕스럽게 옷자락을 흩날렸다. 못가에 낙엽들이 하나 둘 떨어져 수면이 고요하게 파문을 그렸다. 왕은 입가에 슬쩍 미소를 띄었다.
“좋은 날이구나.”

태자는 병사를 이끌고 진격을 하여 반걸양에 이르렀다. 그리고 적을 앞에 두기 전에 진군을 멈추게 하고 작전을 짤 수 있도록 막사를 짓도록 명하였다. 전투를 하기위하여 착착 준비를 마치며 태자는 병사 몇을 불러 고구려 군의 수를 알기 위해 영탐을 시켰다.
막사에 앉아 소식을 기다리던 태자는 소식을 전해온 병사의 말을 듣고 머리가 아찔해짐을 느꼈다. 고구려 군이 압도적으로 수가 많았다. 백제군에게 매우 불리한 상황임에 틀림이 없었다. 승리를 다짐하며 달려왔던 태자는 작전을 짜기에 앞서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다. 그렇게 고민을 하루 이틀 하게 되면서 승리를 향해 투지를 불태우던 백제의 병사들은 점점 사기가 떨어져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허름한 차림을 한 남자가 태자마마를 뵈어야 한다며 백제 진영에 찾아왔다. 처음 그를 발견한 병사들은 전장에 홀로 출연한 이 남자를 보고 놀라 그를 쫒아내었다. 그러나 그 남자는 막무가내로 계속 찾아와 병사 한두명이 말리는 정도로는 무리였다. 밖에서 이렇게 씨름을 하다 보니 소리가 커졌고 막사 안에서 고민을 앓고 있던 태자는 의아하여 막사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한 쪽에서 소란이 있는 듯 많은 수의 병사들이 한 곳에 모여 있었다. 태자는 마침 그쪽으로 달려가는 병사 하나를 붙잡아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인데 전장에서 이리 소란인가.”
“태자마마. 한 사내가 태자마마 뵙기를 청하고 있사온데 그의 모습이 허름하여 내쫒고 있는 중입니다.”

말을 듣고 다시 소란스런 곳을 바라보니 허름한 차림의 한 남자가 보이는 듯 했다. 쫓아 버리라 명하고 들어가려 했으나 기를 쓰고 들어오려는 것이 왠지 마음에 걸리었다. 태자는 옆의 병사에게 그를 막사 안으로 데려오라 명하고 막사로 들어갔다.

“그래 무슨 일로 나를 보자고 하였는가.”

막사 안에서 몇 장군과 허름한 남자를 들여 용건을 물었다. 태자가 말하자 허름한 남자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태자마마, 저는 사기라고 하옵니다. 감히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백제군의 승리를 위하여 현 전투에 대하 한 말씀 올리고자 하옵니다.”

태자의 눈썹이 꿈틀 했다. 순간 막사 안이 술렁이기 시작했고 몇 장군들은 그 자를 내쫓아야 한다며 역정을 내었다. 그러한 장군들을 손을 들어 제지한 태자는 사기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것이 무슨 말인가.”
“예, 태자마마. 비록 고구려의 군사가 많아 보이나 모두 수를 채우기 위한 허위부대에 불과하옵니다. 정말 날쌔고 용감한 자들은 붉은 깃발의 정예부대 뿐 이옵니다. 먼저 붉은 깃발의 부대를 깨트리게 된다면 다른 부대는 당황하여 백제군 앞에 무릎을 꿇게 될 것입니다.”

사기는 절박한 눈으로 태자를 바라보았다. 태자는 그러한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입을 열어 말하려는 순간 한 장군이 흥분하여 격하게 말했다.

“태자마마! 이자는 왕께서 사용하시는 말의 말발굽을 상하게 하였는데 마땅히 그 벌을 받지 않고 고구려로 도망을 한 자이옵니다. 그런 자가 하는 말은 신뢰할 수 없습니다!”
이에 다른 몇 장군들도 흥분하여 외쳤다.
“그렇사옵니다. 죄를 저지른 자 이오니 오히려 잡아서 벌을 내려야 마땅할 것입니다.”
장군들이 격하게 반응을 하자 사기의 눈은 더욱더 절박해졌다.

오직 태자만을 바라보고 있는 사기의 눈을 바라보며 태자는 마음속의 갈등을 느껴야 했다. 이 자의 차림새로 보아서는 분명 고구려에서도 도망 나왔을 것이 분명하다. 어찌하여 벌을 받을 것을 빤히 알면서 다시 백제로 돌아와 이렇게 말을 한 것인가. 이 자의 행동도 그렇지만 발언 역시 머리를 아프게 만들었다. 이 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미 많은 날을 지내 지쳐있는 백제군에게 매우 유리한 상황이 된다. 허나 사실이 아니라면....?
턱을 괴고 앉아 곰곰이 생각해 보던 태자는 다시 사기를 바라보았다.
장군들은 태자를 바라보며 결단을 내리기를 바라고 있었으나 사기는 흔들리지 않고 태자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전장에 홀로 들어와 나를 바라보는 저 눈빛이 예사롭지 않구나, 거짓을 고하는 눈빛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그렇게 생각을 마치고 태자는 입가에 미소를 띄며 사기를 바라보고 말을 이었다.

“좋다. 그대의 말을 믿어 보도록 하지. 허나, 만약 사실이 아니라면 엄한 벌을 각오해야 할 것이야.”

장군들은 불만을 내 보였으나 태자는 명을 철회하지 않았다. 그리고 장군들에게 정탐을 명하여 붉은 깃발이 걸린 부대의 움직임을 주시하라 일렀다.
정탐을 위하여 몇몇 병사를 모아 정탐하였고 그리하여 몇 일간의 정탐 결과, 과연 붉은 깃발이 걸린 부대의 움직임은 기민하고 틀이 잘 잡혀있었고 나머지 부대는 오합지졸에 불과하였다. 사실의 유무가 확실해 지자 이에 태자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과연 사실 이었군. 장군들 이제 우리의 승리가 눈앞에 있네.”

그날 밤 태자는 장군들과 간단하게 작전회의를 마치고 전투에 임하기에 앞서 사기를 불러들여 백제에 가 살 수 있도록 하고 상을 내리겠노라는 약속을 하였다.
엎드려 절하는 사기를 뒤로 하고 병사들의 앞에 나아간 태자는 병사들의 떨어진 사기를 북돋아 주며 승리를 확신하였다.

“내일이면 드디어 전투를 개시한다. 우리 용맹한 백제군은 반드시 그들을 무찔러 승리 할 것이다. 내일 전투에서 그대들의 모든 힘을 발휘 할 수 있도록 오늘 밤은 많이 먹고 푹 자두도록 하여라.”

다음날 아침 차가운 공기를 마시며 태자는 명상을 하고 일어나 막사 밖으로 나와 대열을 맞춘 병사들을 죽 바라보았다.
그리고 검을 뽑아들어 돌격 명령을 내리어 백제의 군사들과 붉은 깃발의 부대를 집중 공격하여 분쇄시키었다. 먼지바람이 일고 칼과 칼이 부딪치고 많은 병사들이 부상을 입은 치열한 전투였으나 태자가 앞서 병사들을 이끌고 용맹하게 싸워 나갔다.
백제의 맹공격에 차츰 고구려의 붉은 깃발 부대가 무너지기 시작하여 그 기세를 타고 백제군은 파죽지세의 형세로 몰아 붙였다. 곧 붉은 깃발의 부대는 완전히 무너져 버리었고 이에 다른 부대들이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하나 둘 무너지기 시작한 고구려 군은 당황하여 항복하거나 도망하기에 바빴다.

참고 : '삼국사기' 백제본기 근구수왕 원년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