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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 태자의 말발자국

[등장인물]

-근구수왕(부여수): 근초고왕의 아들
-막고해: 백제의 장군

[줄거리]

모래바람이 일고 쇠와 쇠가 부딪치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전장의 뜨거운 기운이 태자의 얼굴을 스치며 지나 다른 더운 공기와 합쳐져 더욱 뜨거운 열기를 뿜었다.
태자는 검을 높이 들어 눈앞의 적을 내리쳐 쓰러뜨리었다. 가을의 찬 공기에도 불구하고 땀이 비 오듯 내려 온몸을 적셨다. 다른 한 손으로 땀을 닦아 내리며 거친 눈으로 주위를 살펴보았다. 전세는 백제군에게 유리하게 진행 되고 있었고 마치 그렇다고 외치듯 커다란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태자는 고개를 들어 함성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보았다. 붉은 깃발이 찢겨져 나간 채 스르르 스러지고 있었다. 태자는 주먹을 꽉 쥐었다.

"해내었구나..!"

고구려의 붉은 깃발의 부대가 백제군의 맹공격에 의해 격파당한 것 이었다. 태자는 곧 주위를 돌아보았다. 사기의 말에 의하면 붉은 깃발의 부대가 정예부대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그들을 격파한 지금 다른 허위의 부대들은...!! 붉은 깃발의 부대를 격파한 백제군은 더욱더 사기에 불타올라 나머지 부대를 향해 돌진하여 맹공을 펼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고구려 군이 움칠하며 우왕좌왕 하는 것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였다. 태자는 유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백제의 병사들아! 승리가 눈앞에 있다!! 가자!!"

태자는 직접 전방으로 나서 고구려 군을 격파해 나갔다. 나머지 고구려 군은 처음엔 맞서 싸우다 나중에는 무릎을 꿇으며 항복을 하기 시작했다. 항복을 한 자들은 사로잡았지만 끝까지 싸우다 항복하지 않고 도망을 하는 자들이 생겼다. 태자는 승리감에 젖어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백제군 부대 몇을 이끌고 도망한 고구려 군을 추격하였다. 말을 달려 수곡성의 서북에 이르렀을 즈음 장군 막고해가 말을 태자의 옆에 붙이어 말했다.

"태자마마, 추격을 그만두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장군 막고해의 말을 들은 태자는 말을 멈추고 승리의 흥분에 열이 올라 잔뜩 상기된 얼굴로 눈썹을 찡그리며 장군을 바라보았다.

"그게 무슨 소리요. 장군. 저들을 붙잡아 백제의 위상을 드높여야 하지 않겠소."

이 짧은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도 고구려 군이 더 멀리 도망칠까 노심초사하여 태자는 자꾸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도망을 하는 고구려 군사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젊은 혈기로 인해 자꾸 몸을 꿈틀 거리는 태자를 바라보며 막고해는 태자를 진중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도가에서 이르기를 ‘만족할 줄 알면 욕되지 않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태자마마, 지금 전투에서 이겨서 얻은 것이 적지 않습니다. 이정도로 그치고 돌아가시는 것이 어떠실 런지요."

자꾸 먼지바람을 곁눈질로 주시하던 태자는 고개를 돌려 짙게 가라앉은 눈으로 막고해를 바라보았다.
장군 막고해는 여러 전장을 누비며 경험을 쌓아 넓게 볼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런 이가 나에게 괜스레 이런 말을 할 리가 없을 테지. 내가 흥분하여 상황을 보지 못하였구나. 태자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크게 숨을 쉬었다. 가을의 찬 공기가 머릿속을 맑게 해 주었다. 맑은 머리로 생각을 이어보니 과연 장군 막고해의 의견이 타당하다 여겨지었다.
고구려 군을 쫒아서 일망타진을 한다 하여도 시간을 많이 빼앗길 뿐 의미는 없을 것이었다. 태자는 자신을 바라보는 막고해의 눈길을 느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장군이 옳소. 내가 흥분을 하여 주변을 살피지 못하였구려."

태자는 웃음을 멈추고 아쉬운 듯 멀어지는 모래바람을 아스라이 지켜보았다. 막고해의 의견이 타당하였으나 아쉬움은 버릴 수 없었다. 그런 생각에 자조적인 미소를 띠고 고개를 숙이고 명을 기다리는 막고해에게 돌아가 나머지 부대와 함께 백제로 돌아갈 것을 명하였다.
격렬한 전투 후에 바로 추격전을 벌인 탓에 많이 지친 병사들의 대열을 정비하기 위하여 조금 지체가 되었다. 그 사이 시간에 태자는 눈에 보이는 널따란 바위를 발견하고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생각난 듯 투구를 벗어 땀에 젖은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후우하고 한숨을 내 쉬었다.
승리 하였다. 그 사실이 태자의 몸을 흥분하게 만들었다.
‘그래 승리하였다. 어려운 전투였으나 그들을 무찌르고 당당히 백제에 돌아갈 수 있게 되었어.’
승리의 흥분이 잘 가라앉지 않아 크게 심호흡을 하며 가을의 찬바람을 들이마셨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새파랗게 푸른 하늘이 지상에서의 격렬한 전투는 없었던 것처럼 태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음까지 파랗게 물이 들것 같은 하늘을 바라보며 흥분이 점차 가라앉고 차분히 생각할 수 있게 되자 태자는 이번 전투에 대해 차분히 돌아보았다.
‘이번 전투에서 승리 할 수 있었던 것은 사기와 장군들의 충언이 아니었다면 이룩해 내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아직 부족하구나.’
파란 하늘을 너무 바라보니 눈이 먹먹하여 눈을 감고 살랑대는 바람에 흔들리는 머리칼을 느끼며 바위에 드러누웠다.
‘그러나 그들의 말을 잘 수용하여 나라를 이롭게 하는 것이 군주의 도리이겠지. 나는 그들의 충언을 수렴하여 더욱더 매진 할 것이다.’
마음속으로 깊이 다짐을 하던 태자의 옆에 장군 막고해가 다가와 이동할 준비가 끝났음을 알렸다. 드러누워 있던 태자는 몸을 일으켜 투구를 잡았다.

"수고했소. 장군."
"아닙니다. 태자마마."

몸을 일으킨 태자가 일어서 말을 타러 가려하던 차에 막고해가 아련한 듯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꽤 멀리까지 도달했군요."

그 말을 들은 태자는 무심결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벌판과 푸른 하늘. 자신이 누웠던 널따란 바위. 정신없이 추격한 탓에 얼마나 달렸는지는 모르나 정말 꽤 먼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지나가려 했던 태자는 한 가지 생각을 떠올리고 빙긋 웃었다. 말로 돌아가려는 막고해 쪽으로 몸을 빙글 틀었다.

"확실히 많이도 왔군. 이 곳 까지 다다른 자가 과연 몇이나 있었을까."

막고해는 고개를 돌려 태자를 바라보았다. 태자는 정말 기분 좋다는 듯이 미소를 띠고 있었다.

"표지를 만들지 장군. 우리는 먼 이곳까지 다다라 승리를 이룬 거야."

태자의 눈이 빛나는 듯 했다.
"그리고 이것을 본 모든 자들은 백제의 위상에 감탄을 하게 될 것이야."

장군은 태자의 명을 받들어 병사 몇을 시켜 돌을 쌓아 표지를 만들었다. 만들어진 표지를 바라보고 자랑스럽게 빙그레 웃으며 태자는 말을 타고 병사들과 함께 기다리던 부대와 합류하여 백제로가 백성들의 환호를 받으며 귀환할 수 있었다.
후에 표지를 만들어 놓은 그 곳에 말발굽 같이 틈이 생긴 바위가 있는데 이후 고려 때 까지도 사람들이 그 곳을 일컬어 ‘태자의 말발자국’이라고 부르곤 했다.

참고 : '삼국사기' 백제본기 근구수왕 원년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