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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 용의 기염

[등장인물]

- 무령왕 : 동성왕의 둘째 아들 백제의 왕

- 좌평 백가

[줄거리]

“반란이라 하였느냐.”
“그렇사옵니다. 좌평백가가 일을 쳤다 하옵니다.”

고개를 괸 채로 고개를 끄덕이던 왕이 소식을 가지고 온 병사에게 물러가라 명 하였다. 그가 물러가고 나니 조용했던 대신들이 하나둘씩 소곤거리기 시작 하였다.

“전하. 좌평백가라면 선왕을 시해한 그 자이옵니다.”
“그렇지.”
“더 이상 둘 순 없습니다. 출전명령을 내리어 주시옵소서.”

옥좌에 깊숙이 앉아 턱을 괴고 앉아있던 왕은 머리를 조아리고 명령을 기다리는 대신들을 바라보았다.

“나도 그들이 하는 작태를 가만히 보고 있을 생각은 없네.”

대신들이 고개를 들어 간절한 눈초리로 왕을 바라보았다. 왕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을 바라보는 눈들을 주욱 둘러보며 말했다.

“그들에게 벌을 주어야겠지.”
그리고는 예의 인자한 미소를 띠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역할은 내가 할 것이야.”

대신들이 물러가고 왕은 처소로 돌아가 술상을 받고 모두를 물린 뒤에 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병관좌평 백가.. 그래 그가 움직였군. 술잔에 술을 따르는 소리가 또로록 하니 맑다. 앞에 권할 이도 없으나 술잔을 들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 이 술잔이 승배가 될 것인가. 아니면...’
발이 드리워진 어두운 내부가 촛불의 작은 빛에 의존하여 일렁인다. 술잔에 비친 그 빛을 가만히 바라보던 왕은 술잔을 들에 단숨에 들이켰다. 찬 술이 머리를 맑게 하는 듯 했다. 홀로 조용히 술을 마시고 그 기운으로 잠이 드려했던 왕은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오히려 잠이 달아나 버렸다. 술잔을 탁 소리가 나게 내려놓고 술병을 다시 집어 들었다. 촛불에 일렁이는 내부는 극히 적은 면만을 비추고 나머지는 어둠에 묻히어져 미소를 띠는 왕의 얼굴도 괴기하게 보였다.

“좌평백가.... 그래 이 내가 그리 만만하게 보였는가.”
왕은 잔을 들고 일어서서 창가에 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에 박힌 달빛이 차다.

“그렇게 생각한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야.”
그리고 다시 술잔을 입에 대었다. 취기는 오르지 않는다. 왕의 입가에는 여전히 미소가 걸려있었으나 왕의 눈은 차갑게 불타올랐다. 아침을 알리는 새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궐 안에서는 병사들이 대열을 정비하고 비장한 모습으로 서있었고 그 앞에 장군들이 용맹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이윽고 무장을 한 왕의 모습이 보이었다. 왕은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잔뜩 긴장과 흥분을 한 듯 한 병사들을 보았다.
‘ 이들을 이끌고 승리 하여야 한다. 나의 잘못으로 이들이 쓸데없이 목숨을 잃어서는 아니 되는 일이야.’
병사들을 주욱 바라보며 승리를 다짐하던 왕은 말에 올라 출정을 명하여 군대를 이끌고 우두성을 향하여 달리었다. 이윽고 우두성에 다다른 무령왕은 병사들을 멈추게 하고 한솔 해명을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병사들이 만든 막사 안은 봄임에도 불구하고 병사들의 긴장과 지열로 인해 후끈한 공기로 가득하였다. 작은 탁자에 지도를 펼치고 앉아있던 왕이 고개를 들어 무릎 꿇고 앉은 그를 맞이하였다.

“어서 오시게, 와서 이리로 앉지.”

왕은 탁자을 가운데 두고 맞은편 의자를 가리켜 그가 앉도록 하였다. 왕은 긴장하지 않은 듯이 미소를 띤 모습이었다. 한솔 해명은 그러한 왕의 모습에 속으로 감탄을 하며 앉아 왕을 바라보았다.

“내가 그대를 부른 이유를 알겠나?”

한솔 해명은 신뢰를 담아 왕을 바라보았다. 전장의 한 가운데서 현명한 왕이 자신을 부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매우 간단했다. 전쟁에 관한 것. 그러나 그는 대답하지 않고 왕의 말을 기다렸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왕은 빙글빙글 웃으며 말하였다.

“허허허 그렇게 대답하면 어찌하나. 이 사람. 내가 홀로 적진을 향해 돌격하라 하면 어찌하려고 그러나.”

한솔 해명은 고개를 숙이고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라 하시면 하겠습니다.”

허허허 하며 웃던 웃음을 멈추고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대단한 사내로군. 과연 생각하던 대로 한솔 해명의 왕에 대한 충성심은 강하였다. 왕은 그의 충직스런 모습을 바라보며 탁자에 놓여있던 물병을 들어 잔에 따랐다. 막사 바깥에서는 장군들의 호령소리와 바쁘게 움직이는 병사들의 발걸음 소리로 시끄러웠으나 막사 안은 물을 따르는 왕의 절그럭 거리는 갑옷소리와 또르르르 하는 물을 따르는 소리만이 가득 찼다. 고요한 침묵의 가운데 물로 목을 조금 축인 왕은 그를 향해 말했다.

“대단한 기개로군. 그 기개로 우리 군을 승리로 이끌 수 있을 것이야.”

한솔 해명은 고개를 들어 왕을 바라보았다. 왕은 언제나처럼 미소를 짓고 있었으나 그 눈은 평소와는 달라보였다. 처음 막사 안으로 들어와서 보았을 땐 긴장 따윈 하지 않았을 모습이라고 생각했었으나 아니었다. 왕도 앞둔 전쟁으로 인해 긴장을 하고 있었다. 한솔 해명은 그 진지한 왕의 모습에 주먹을 꽉 쥐었다. 꽉 쥔 손에서 땀이 났다. 왕이 입을 열었다.

“한솔 해명. 가서 적을 토벌하게.”
“명을 받들겠습니다.”

한솔 해명은 자리에서 일어나 왕께 고개를 숙이고 충성을 담아 인사를 하고 막사를 빠져나갔다. 왕은 그의 그런 모습을 지켜보다가 스르르 일어났다.

“시작이구나. 백가.. 자네는 선왕 때부터 너무 활개를 치고 다녔어. 이제 그 결과로 자네는 철퇴를 맞게 될 것이야.”

탁자을 바라보던 왕은 고개를 돌려 막사를 나와 저 먼 곳에 있는 우두성을 먼눈으로 바라보았다. 그와 동시에 높은 함성과 함께 한솔 해명의 지위에 따라 병사들이 진군을 하였다. 치열한 전투가 이어졌다. 왕을 보좌하던 장군과 병사들이 왕에게 위험하니 막사 안으로 들어가 계시라고 계속 청하였으나 왕은 고개를 저으며 전투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성에서 불길이 일었고 그 불길은 불식간에 퍼지었다. 활활 타오르는 성을 보며 백제의 병사들은 뒤로 물러나 반란군이 나오기를 기다려 그들을 잡아 들였다. 그 모습을 주욱 지켜보고 있던 왕은 병사를 일러 그들을 생포하여 자신의 앞에 불러들이라 명한 후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왕의 앞에 모습을 들어난 좌평백가의 모습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높은 불길을 피해 도망하느라 온 몸에 시꺼먼 먼지가 가득 붙어있었고 소란을 피해 도망 나온 그의 얼굴은 10년은 더 늙은 듯 보였다. 반란을 일으키던 기개는 찾아볼 수 없는 초라한 모습이었다. 그는 거의 죽을 듯 한 모습으로 무릎을 꿇고 있다가 왕이 나타나자 고개를 번쩍 들고는 왕의 앞에 무릎발로 기어나가 절을 하며 빌기 시작 하였다.

“살려주십시오! 우둔한 저의 잘못입니다. 제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높으신 폐하!! 부탁드립니다 저를 불쌍히 여기어 목숨만은 살려주시옵소서!”

땅에 머리를 박고 왕의 앞에 매달려 목숨을 빌던 그는 급기야 끅끅 거리며 흐느끼기 시작하였다. 장군들과 부하들이 바라보는 가운데 그렇게 힘없이 스러져 비는 그는 불쌍해 보였다. 그의 뒤에 같이 붙잡혀와 무릎 꿇고 바라보던 병사들도 눈물이 핑 돌아 흐느꼈다. 그러한 모습을 왕은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병관좌평 백가. 고개를 들라.”
백가는 흐느끼다 힘겹게 고개를 들어 왕을 바라보았다. 왕은 그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을 본 백가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왕에게 감사의 경배를 올리려 한 순간 왕이 말을 이었다.
“그렇게 자신 있게 반란을 일으키고서는 왜 내 앞에서 비는 것인가? 그대는 나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기에 반란을 일으킨 것이 아닌가?”

빙글빙글 웃으며 그렇게 말하는 왕을 바라보며 화색이 돌았던 백가의 얼굴에선 핏기가 싹 가셨다. 미소를 띤 왕의 모습이 너무나 무섭게 보였기 때문이다. 백가는 두려움에 떨기 시작하였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며 왕은 미소를 잃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그래. 그 뿐만 아니지. 그대는 선왕을 시해하는 행위도 저질렀다. 그 벌의 무게를 알고서 지금 나에게 용서를 구하는가?”

왕이 말을 하며 한발자국 백가에게 다가섰다. 백가는 공포에 ‘히이익’ 소리를 내며 뒤로 물러났다.
왕은 개의치 않고 느린 걸음걸이로 그에게 다가섰다.

“그대는 나에게 용서를 빌면 안 돼. 그대의 죄는 용서를 빌고 하는 문제들과는 다른 죄야. 용서를 빌면 안 돼지.”

왕은 마침내 백가의 앞에 다다랐다. 미소를 짓던 왕의 입가에 미소가 사라졌다. 얼음장처럼 차갑게 변해버린 얼굴로 왕은 백가를 노려보았다.
“빌면서도 사실 속으로는 알고 있겠지. 그대는 죄 값을 치러야해.”

왕은 무서운 얼굴로 차고 있던 검을 뽑아들었다. 스릉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백가는 덜덜 떨었다. 그의 얼굴에 왕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백가의 눈에 비치는 왕은 불타는 성의 일렁이는 불길을 받아 너무나 무섭게 보였다.

“폐, 폐하 목숨만은....!”
그 소리를 마지막으로 백가는 다시는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왕이 들고 있던 칼로 야차와 같은 모습으로 그의 목을 베어버렸기 때문이다.
저 멀리 불길의 노랗고 붉은 빛을 받아 서 있는 그 공포스러운 모습에 장군과 병사들이 몸을 떨었다.

“이 자의 목을 백강에 던져 버리고 나머지 도망한 나머지 병사들을 붙잡아라.”
아무도 보지 않은 채 그렇게 말하던 왕은 뒤로 돌아 자신의 막사로 돌아갔다. 병사들은 언제나 미소를 띤 인자한 왕의 다른 모습에 두려움에 몸을 떨며 왕의 명령을 실행에 옮기었다.

참고 : '삼국사기' 백제본기 무령왕 원년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