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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 다시 일어서는 백제

[등장인물]

- 성왕: 백제 제26대 왕

- 태자 창: 성왕의 장남이며 백제 제 27대 왕이 됨

- 달기: 백제의 장군

- 한성 수문장 외 다수

[줄거리]

551년 천지 다리 위에 들꽃이 휘날리고 검은 비단이 자욱하게 깔리니 백제의 거리거리에 사람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침묵이 연이어 흐르고 긴장은 풀릴 세가 없으니 성왕은 자신의 침소로 아들 태자 창과 충신 달기를 불러들인다.

“폐하. 태자 창과 장군 달기 들었습니다.”
“들어오라”
“폐하. 이 야심한 시각에 어인 일이 옵니까?”

성왕이 목에 협갑을 묵고 허리에 환도를 차며 말을 이어나갔다.

“밤하늘에 달이 중천에 있고 구름이 달무리를 가리니 지금이야 말로 고구려 예(동예, 한반도 낙랑)족에게 받았던 치욕을 되돌려 줄때가 가까이 왔다. 창은 군부대에 알려 군사와 군량들을 긴밀히 소집하고 장군 달기는 급히 신라에 서신을 보내 군사적 도움을 요청하라.”
“폐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인시(寅時)경에 출발할 것이니 급히 준비토록 하라. 내 오늘은 기필코 한성을 찾고 말 것이다.”

성왕의 옥체는 고구려에 대한 숙분이 달빛이 빛나듯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하늘에 샛별이 소리 없이 떨어지니 한성을 지키는 고구려 파수병 군사 하나가 고개를 갸웃 거렸다.
“이보게, 오늘 따라 왜 이리 밤하늘에 별들이 지는 것인가?”
곁에 서서 엉덩이를 긁적이던 다른 군사가 말을 이어갔다.
“그걸 알면 내 이러고 있겠수? 어서 누가 오는지 망이나 보슈! 내 소피를 좀 보고 와야 것 소이다”
“어여 갔다 오슈. 갑자기 나도 가고 싶구..”
말을 하던 문사가 말을 멈추고 자신의 눈앞에서 비단 옷을 입고 천상의 여인 마냥 검무를 추는 계집을 보며 눈을 사정없이 흔들어 대었다.
“아니! 이런 궁협에 무슨 계집인가?”
소피를 보려던 군사 또한 내리던 단고를 재빠르게 주워입고 계집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안 그래도 수양만으로는 심신이 외롭던 참에 미천한 이 몸을 불쌍히 여기어 하늘님이 선녀를 보내 주셨구나. 이리보고 저리 보아도 가슴이 봉긋하고 세요(細腰)한 계집이니 나와 함께 얼굴을 마주보고 대무를......”

휘―익.
나직하고 청명한 소리가 울려 퍼지니 군사가 눈을 감았다 뜨기도 전에 그의 목에선 붉다 못해 검어진 피가 솟구쳐 흘러나오고 있었다.
성문을 지키며 서있던 군사들도 지금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도 못하고 등허리로 흐르는 식은땀을 온 몸으로 느끼고만 있었다. 군사의 목을 벤 이가 하얗고 눈가에 분을 칠한 가면을 벗고 비단옷을 찢어 버리니 그제야 문사들이 계집이 아니고 사내놈인 것을 알아챘다.

“웬 놈이냐!”

보이지 않는 적에 파수병들은 우왕좌왕 거리며 성문을 다시 재정비 하였다. 그때 다시 사내의 허리쯤 까지 오는 풀숲에서 화살이 날아왔다.

“뭣들 하는 게냐! 빨리 수문장께 이 사실을 고하 거라!”

갑자기 천지를 가르는 북소리가 사방에 퍼졌다. 둥둥둥. 이어서 우레와 같은 함성소리가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이 북소리는!... 백제군이다!”
“기습공격이다! 이 사실을 빨리 고하 거라! 눈앞에 적이 있다!”

“와!”
“진격하라! 한 놈도 남김없이 쓸어버려 한성을 되찾자!”

고구려 파수병들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재빠르게 성안으로 들어가 수문장께 백제군의 공격을 알렸다.
“뭣이라! 백제군이 기습공격을 하였단 말이더냐!”
“벌써 성문 앞을 에워싸고 있습니다! 여기저기서 불화살과 바위들이 날아오고 있고 성문이 열리는 것은 시간문제 이옵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한성 안에 있는 군사만으로는 백제군을 당해낼 기력이 없습니다. 어서 빨리 폐하께 사찰을 보내십시오.”
“더러운 백제 놈들 같으니!!!! 칼을 가지고 오너라! 내가 직접 놈들의 목을 벨 것이다!”

하지만 수문장은 자신이 지금 죽음의 문턱에 서 있음을 알았다. 살아오면서 수많은 전쟁을 치른 수문장이었지만 그가 느끼는 처음이자 마지막의 두려움이었다. 그의 눈은 성루 너머로 보이는 산비탈을 빽빽이 메운 백제군을 보았으며 그것은 개미 때를 연상하게 하였고 그 수는 자신이 짐작한 것보다 훨씬 능가 하였다. 성문을 지키는 대열의 선두가 무릎 끓듯 무너지고 성벽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먼저 성에 오르지 말라. 성을 깎아 허물어지는 때를 기다려 내가 태자와 함께 말을 타고 들어갈 것이다!”
성왕은 월도를 높이 치켜들고 태산같이 호통하였다. 이윽고 뱀이 허물을 벗듯 성벽이 힘없이 무너져 내리고 굳게 닫혀 있던 한성의 성문은 백제군으로 인해 종이처럼 구겨져 열려 버렸다.

"전쟁은 나라의 가장 큰 일중에 하나이며, 백성들에게는 생과 사의 문제뿐 아니라 나라의 믿음과 존망을 결정짓는 일이기도 하다. 또한 이번 전쟁의 승리는 빼앗겼던 우리의 한강을 다시 되찾음으로써 국제적인 위신도 크게 성장 할 것이니라. 그렇기에 우리는 기필코 승리를 거두어야 할 것이다. 백제의 부활을 위해, 백성을 위해, 나라를 위해 싸우는 그대들을 위해서 반드시 말이다."

성왕의 확신의 찬 목소리가 한성에 울려 퍼졌고 그 울림은 군사들의 가슴에 빠른 북소리처럼 가슴을 두드렸다.

“나의 아들들아!! 진격하라!”
“와!”
성왕은 태자와 함께 성안으로 진격하였고 그 뒤로 백제군의 기마병과 신라의 보병들이 합세하여 해일이 일듯 고구려 군을 공격하였다. 그 모습이 마치 자신의 목을 베려고 온 저승사자의 모습 같아서 고구려 병사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칼을 버리고 성의 뒷문으로 도망쳐버렸다.
하지만 이미 장군 달기와 보병들이 성 뒷문 풀숲 사이사이로 매복하고 있으니 도망치던 고구려 군들이 눈물을 흘리며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 하였다. 수문장이 어질한 머리를 잡고 소리쳤다.

“저런! 네놈들이 그러고도 천하에 고구려 병사라 할 수 있겠는가!”
“천하의 고구려군도 백제왕의 앞에서는 오금이 저려 서있지도 못할 것이오.”

태자 창이 수문장 앞에 다가와 말하였다. 그 뒤로 성왕이 먹이를 눈앞에 둔 야수의 눈빛을 하고 서있었다.

“그대가 이곳의 수문장인가”
수문장의 가슴은 이미 계속해서 커지는 심장의 방망이질로 터지기 일보직전이며 등으로는 사정없이 땀이 흐르고 목소리가 떨려왔다. 내 앞에 서있는 이 사람이 바로 천지가 사랑하는 백제의 왕이란 말인가. 올곧은 기세가 사방으로 뻗치니 우리 대왕님과 견줄 만하다.

“나는 고구려 대왕의 명을 받든 사람이오. 저 아래 것들처럼 구차하게 목숨을 빌진 않을 것이니 목을 베어 가시오.”
“그대는 진정 사내로구나”
하며 성왕이 친히 수문장의 목을 베어 고통 없이 하늘로 올려 보내 주었다.

참고 : '삼국사기' 백제본기 성왕 2,19년 조, '미륵불광사사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