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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 부처의 나라로 전진하다

[등장인물]

- 겸익 : 백제 승려

- 배달다 : 인도의 배달삼장승려

- 그 외 다수

[줄거리]

세상의 바다를 통하는 모든 사람, 물건, 짐승들이 꼭 한번은 들르는 곳, 바로 여기 백제가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가고 그들의 생각과 말들은 백제의 저자거리를 쉴 새 없이 맴돌았다. 말도 다르고, 행동하는 바도 서로 달랐지만 백제 땅에서 안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 모두를 자신의 백성처럼 돌보는 왕이 자신을 지켜주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백성들은 자세히는 몰랐지만 백제왕은 부처의 지혜를 가지고 부처의 법을 수호하여 누구도 배고픈 사람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왕의 옆에서 또한 그러한 세상을 꿈꾸고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젊은 승려 겸익이었다.
백제에서 학문이 뛰어나고 계행이 맑고 슬기로워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받던 승려로 앞으로 백제의 왕사로 벌써부터 손꼽히고 있었다.
겸익은 지는 버들나무 잎을 바라보며 묵상에 잠겼다.

“심신(心身)이 편하고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으니 이렇게 평화로운 날이 없도다. 하지만 불가에 무릇 만족감이 없고 마음에 깨우침이 없으니 어찌하면 좋으리오.”

세상의 이치를 깨우치고 겨우 열다섯의 나이에 삼장경문을 다 익힌 겸익은 언제나 자신이 무능하다 여기었고 지금에 만족하지 않고 더 훌륭하고 뛰어난 불교의 학문, 스승을 접하고 싶다는 생각에 늘 목말라있었다.

“이렇게 있다가는 부질없는 생각에 휘말려 머리가 텅 빈 돌덩이가 될 것이 분명하니 그 보다 더한 경죄가 어디 있더냐. 하늘빛이 푸르고 따스한 햇살이 내 앞길을 비추고 있구나. 부처의 은혜로 경문을 외우며 굽어 살피시어 좋은 땅으로 인도하여 주십시오.”

이로써 겸익은 주위의 만류를 뒤로한 체 백제왕과 하직 후 법을 구하기 위해 천축으로의 길을 오른다.

“우리 백제는 언제나 한 꺼풀 중국의 색으로 덮여왔던 불경과 문화만을 접하였으니 원컨대 원래의 불교의 색, 고유 천축의 색깔을 접하고 올 것이오. 그러니 잠시 동안의 이별을 슬퍼하지 마시고 다시 만나는 날을 기약함이 어떠하더이까.”

황해의 크고 작은 섬들을 지나 홀로 외로이 죽음을 각오하며 겸익은 드디어 세상 끝의 태양보다 밝은 부처의 나라 천축에 도착하게 된다.

“여러 곳을 객려 하였지만 천지에 고국 백제만한 곳이 없었다. 태양 빛이 눈을 멀게 만들고 부처의 자손들이 늘어서서 하늘을 떠받치고 불교를 진정으로 원하니 내 일찍이 이런 곳은 처음 보는구나!”
보이는 것마다 신기하여 눈앞에 아른거리고 만지는 것 하나하나가 독특한 이국적인 문화의 향기를 흩날리니 어찌 애틋한 마음이 들지 않겠는가.

“극락에 왔으니 그의 주인을 뵙는 것이 고승으로써 예절 아니겠느냐.”

겸익은 자신의 발을 옮겨 부처가 탄생한 룸비이니 동산, 부처가 득도했다는 붓다가야아의 보리수나무 아래, 처음 부처가 설법한 베나레스의 교외 녹야원, 그가 열반한 구쉬나가라의 사라수등 성역을 돌며 중인도 까지 이르러 당시 굽타왕조였던 천축에서 석교미술의 극치였던 아잔타 석굴 사원과 엘로라 동굴을 향한다.

그러던 도중 겸익은 어미를 잃어 배를 곯은 듯 한 목후가 몰래 상인의 평과를 훔치는 것을 보았다.
“이보시오. 지금 저 목후가 그대의 평과를 훔쳐 달아났는데 모르시었소?”
그러자 상인이 대답하길
“하늘이 달과 별과 함께 떨어지고 당이 산과 숲과 함께 하늘로 올라가고, 바다가 다 말라 버리는 일은 있을지언정 사람이 죽고 태어나는 일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필시 저 목후는 나의 배 다른 아우거나 먼저 부처 품으로 가신 형님이시겠지요.”
라 하였다.

겸익은 잠시 머무르고 있던 상가나대율사(常伽那大律寺)로 돌아와 빈방에 홀로 앉아 굽어 살피니
“어려서부터 불가에 마음을 빼앗겨 부처의 정신을 깨치고 받드니 백제의 불교는 다만 목마를 때에 마시는 한잔의 정화수와 같구나.
슬프도다. 이곳은 미천한 상인조차 율을 깨치고 있으니 최상의 교리와 진실 되고 참된 불가가 이곳에 있어 백제까지 전하질 못하니 내 어찌 한탄치 않을 수 있겠느냐. 내 이곳에서 불법을 다지고 꺼져있던 마음 속 열반의 경지를 다시금 불태우게 하니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아니하고 도를 닦을 것이니라.”

풍토와 언어가 다른 이 머나먼 땅에서 드디어 겸익은 그렇게 갈구하던 황홀한 법열을 느끼게 된 것이다. 이리하여 겸익은 밥 핫 숟갈, 물 한 모금조차 마시지 않고 쉴 틈 없이 경론을 외웠다. 사흘 밤낮이 바뀌고 오시가 되던 시각 기갈자심을 참지 못하던 겸익은 몰래 방에서 나와 어주로 들어가 군임석을 찾아 해 메었다.
그러자 외국승려에 대해서 좋지 않은 편견을 가지고 있어 곱지 않은 눈으로 겸익을 바라보았던 배달다라는 인도승려가 그를 불렀다.

“어찌하여 이토록 이른 시각에 어주에서 무얼 하고 계신건가?”
“부처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기다 너무 허기가 지어 군임석을 찾았습니다.”

배달다 삼장이 입가에 미소를 띠우며

“한때 사원안의 금을 노리고 침입하여 든 도적들이 많아 그대를 쭉 지켜보고 있었거늘 어떠한 승려보다도 영력하도다. 얼굴이 다르고 색이 다르다 하여 그를 우습게보았던 내가 천지의 주우로구나. 그대야 말로 현생에 살아있는 불타가 틀림없도다. 내 한 몸 받쳐서라도 불가에 대한 그의 정진에 도움이 되고자 하니 어찌하면 좋겠는가.”

이리하여 배달다 삼장은 그에게 천축어와 천축의 지리를 상세히 알려주었다. 또한 4년 넘게 상가나대율사(常伽那大律寺)에서 상가나 계율을 연구하면서 불교의 참된 뜻을 함께 소통하나니 천하의 하나밖에 없는 벗이 되었다.

"겹겹이 친 구름들이 저녁볕을 가리는 때에 고국의 고운 노래가 내 귓가에 하염없이 들려오나니 벌써 천축으로 넘어 온지 일십년을 훨씬 넘은 세월이 흘렀구나. 승마향이 향기롭고 하늘에서 부처 살살 부는 바람이 내 살결을 감싸 안으며 살며시 사라지니 내 나라의 왕은 안녕하신지 궁금하구나.”
“이제야 고국이 그리운 것이냐. 내 오랜 벗이여. 내 간간한 이야기를 하나 해주겠노라.”
“해보시오. 즐거운 마음으로 들으리다.”
“수년전 마가다국 수도에 순금으로 만들어진 황금불상이 있었나이다. 모자란 도인 하나가 그 불상을 손에 넣고자 수도승으로 변모하여 불경을 외고 좌선을 하기 시작했지. 그러다 다시 수십 년이 흘러 이제 그 도인은 범접할 수 없는 고승이 되었다네. 그 고승은 자신이 불상을 손에 넣기 위해 수도로 들어온 것을 잊고 말아 버린 게야. 하하하. 어떻게 시작했는지 불타의 교리를 깨우치진 않았는가는 중요한 것이 아니야. 겸익. 그대는 이미 길고 긴 불법을 큰 역량과 발원으로 헤아려 이르렀으니 이 범문율부(梵文律部)를 가지고 가서 아직 사문을 깨치지 못한 자들에게 부처의 진리를 전파하게나.”

겸익과 배달다 삼장이 서로의 눈빛을 바라보며 떨리는 감정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이윽고 겸익이 무거운 입을 열며
“배달다삼장이시여. 백제 불교의 가르침에 만족하지 못하여 천축으로, 아니 상가나대율사(常伽那大律寺)에 오기까지 많은 세월이 흘렀소. 또한 고국에서 살아온 나날의 절반가량을 이곳에서 생활하구려. 그대 또한 나의 도반이시니 미천한 소인과 함께 대백제로 함께 떠나심이 어떠하리오.”
“나의 벗이 그리 말씀해 주시니 그대와 함께 떠나리다.”

봄빛의 비단이 하늘과 땅으로부터 온 사방에 깔리고 암수 정답게 노는 새들과 노루가 뛰어노는 성왕 즉위 4년(526)의 봄, 겸익과 배달다삼장은 산스크리트어로 된 율문(律文)을 가지고 백제로 돌아오게 된다.

참고 : '미륵불광사사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