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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발

파발의 개념과 유래

파발(擺撥)이란 조선시대 변방으로 가는 공문서의 신속한 전달을 위하여 설치 운영한 통신수단으로, 1597년(선조 30) 처음으로 논의하고 실시되어 1895년(고종 32)까지 400여 년간 운영된 제도를 말한다.
파발제를 처음 개설한 나라는 중국의 송(宋)이었다. 송나라는 북방의 여진족이 세운 금(金)나라가 빠른 속도로 남하해 오자 이에 대비하기 위해 일종의 군사첩보 기관인 파포(擺鋪)를 설치하여 변경의 동정을 중앙에 전달케 하였는데, 전달방법은 보체(步遞), 급각체(急脚遞), 마체(馬遞) 등으로 나누어졌다. 보체와 급각체는 발빠른 포졸(鋪卒)들이 릴레이식으로 달려 문서를 전달하는 방식이고, 마체는 기마(騎馬)로 전달하는 방식인데, 급각체로는 하루에 400리를 갔으며, 마체로는 500리를 달렸다고 한다. 이 같은 파포체는 이후 원나라를 거쳐 명나라에서도 계승 발전되었는바, 이것이 임진왜란 때 조선에 원군으로 온 명나라 군대를 통해 조선에 소개되어 채용되기에 이른 것이다.

성립 배경

조선시대 초기부터 중앙과 지방을 연결하는 공공 통신망으로는 봉수제(烽燧制)와 역제(驛制)가 있었다. 봉수(烽燧)는 봉화(烽火)·낭화(狼火)·낭연(狼煙)이라고도 하는데 외적의 침입과 같은 변경의 급한 소식을 밤에는 횃불[烽], 낮에는 연기[燧]로 중앙에 전하는 군사적 목적의 통신 수단이었으며, 역제(驛制)는 주로 왕을 정점으로 하는 중앙의 통치 집단이 지방에 명령을 하달하는 하나의 지배수단으로서 이용되었다. 물론 원칙적으로 역(驛)의 기능에는 지방 혹은 변방의 이상 유무를 중앙에 전달하는 일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그보다 중앙의 명령 전달이 제1차적 목적이었던 데다가 관료의 사행(使行)을 돕고 지방의 세곡(稅穀)과 공물(貢物)을 중앙으로 전달하는 일만으로도 힘에 겨울 지경이었다. 게다가 외적의 침입과 같은 군사적 변고는 오로지 그것만을 위해 설치된 봉수제(烽燧制)가 이미 시행되고 있었으므로 상대적으로 전달 속도가 느린 우역(郵驛)의 기능은 자연히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