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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로(東來路)

지방 유생들이 청운의 꿈을 품고 과거를 보러 가는 '과거길'이었고, 외국의 문물이 전파되는 일차적인 경로이기도 했던 동래로, 항시 사람들로 붐볐음은 물론 이를 중심으로 취락이 발달하고 문물이 이동하는 중요한 기능을 담당했던 길, 서울 남대문을 시작으로 충주, 문경새재를 넘어 칠곡, 대구, 청도, 밀양을 거쳐 동래에 이르는 950리 길이다. 조선시대에는 삼국시대 이래 군대의 이동로로 이용되었고, 고려 말에는 왜구의 피해를 막기 위하여 세곡 수송로로 이용되었던 한강과 낙동강 수로를 연결하는 교통로를 따라 새로 개발된 이 도로가 바로 한강과 동래를 연결하는 동래로, 지금의 영남대로이다.

경복궁 근정전 - 경복궁은 조선시대의 정궁(正宮)으로 사적 제117호이며 도성의 북쪽에 있다고 하여 북궐(北闕)이라고도 불리었다. 조선왕조의 성립과 더불어 창건되어 초기에 정궁으로 사용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전소된 후 오랫동안 폐허로 남아 있다가 조선 말기 고종 때 중건되어 잠시 궁궐로 이용되었다.
경복궁 근정문 - 조선시대 정궁인 경복궁의 중심 건물로, 신하들이 임금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거나 국가의식을 거행하고 외국 사신을 맞이하던 곳인 근정전을 기점으로 근정전 앞 금천교(錦川橋) 건너 건너편에 있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중층(重層)이며, 외삼출목(外三出目)·내삼출목(內三出目)의 전통목조건축 양식인 우진각지붕의 근정문을 나선다.
이태원 가는 길 - 서울 도성의 남쪽 정문인 남대문을 지나 이태원으로 가면 조선시대 역원(驛院)제도에 의거하여 서울 남쪽 남산기슭에 위치하였던 공무 여행자의 숙박시설로 서울에서 동래로 가는 영남로의 첫 번째 원을 만날 수 있다.
한남대교 아래 한강나루 - 현 이태원 너머 대사관가를 지나면 현 한남동, 옛 나루터인 한강나루(漢江度)를 만날 수 있는데 원래 나루는 강가나 냇가에 배가 건너다니는 곳에 설치한 수상교통 시설로서 일반적으로 교통의 요충지에 설치되었다. 지금은 한남대교가 옛 한강도의 기능을 대신하고 있다.
달래내 고개 - 지금의 서울 양재역에서 성남 판교 낙생에 이르는 사이에 있는 최초의 큰 고개인 달래내 고개는 조선 초기에는 천천현(穿川峴) 또는 월천현(月川峴)이라 하였다. 천천현 도로는 양재-낙생대로를 잇는 교통로로서의 역할을 하여 도성(都城)-한강진(漢江津)-신원(新院)-원천현(月川峴;縣川店)-판교점(板橋店)-험천(險川)을 지나 용인-충주로 이어지는 삼남(三南;충청,경상,전라)의 인구와 물산이 유통되는 교통로였으며, 사행로로서의 역할을 하였던 곳으로 달래내 고개에서 외동까지는 옛길이 남아 있어 옛스러운 정감이 느껴진다.

판교 - 경부고속도로와 분당 신도시 개발로 인하여 옛길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지만 현재 성남시 분당구 판교동. 일찍이 이곳에는 판교점(板橋店 ;주막의 일종), 또는 판교원(板橋院;공공여관,숙박시설)이 있었으며 낙생역(樂生驛)이 설치되어 통행인에게 숙박을 제공함으로써 역참마을을 이루게 되었다. 임금이 광주의 낙생역 앞뜰에서 강무(講武;일종의 군사훈련)를 행함으로써 행차의 주정소(晝停所)가 되었으며, 세종의 온천행길이나 성종의 영릉(英陵) 참배길에도 낙생역에서 유숙하였다 한다.

양지향교 - 판교에서 용인을 거쳐 조선시대 양지현 이었던 양지면에 도착하면 현존하고 있는 향교를 만날 수 있다. 양지향교는 1523년(중종 18)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과 명륜당·내삼문(內三門) 등이 있고, 건축배치는 대성전-중문-명륜당-외삼문 구조로 되어있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좌찬역터 - 1차선, 2차선, 4차선 이렇게 3세대 다리가 나란히 있는 양지면 월곡리를 지나 달래내 고개, 메주고개에 이어 영남대로에서 세 번째 나타나는 좌찬고개에 도착한다. 좌찬고개의 아래에 좌찬역(佐贊驛)이 설치되었는데 오늘날의 좌전마을(좌항리)이 여기에 해당된다.

죽산 매산리 미륵당, 미륵불, 5층석탑 - 이 미륵당에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7호이며 고려시대 몽고군을 물리친 송문주 장군과 김윤후 장군의 우국충정을 기리고 그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 건립되었다는 미륵불과 고구려 양식을 계승한 탑으로 고려 초기의 문화적 특징을 잘 보여주는 5층 석탑이 있다.

달천교, 달천나루 - 충북으로 진입하여 검단리란 마을을 지나면 강이 앞을 막는다. <오누이전설〉에 의하여 달래강 또는 감천(甘川)이라고도 부르며 길이는 약 116㎞로, 괴산군 칠성면의 쌍천(雙川)과의 합류지점까지 40.2㎞는 지방하천인 달천(達川)나루가 있다.

단월역터 - 단월역(丹月驛)은 충주 남쪽 10리에 위치하였는데 오늘날의 유주막삼거리 앞의 달천취수장 근처로 추정된다. 한 때 단월역에는 역노(驛奴) 103명, 역비(驛婢) 89명, 그리고 大馬 2필, 騎馬 7필,卜馬 5필이 배정되어 사신접대 및 역마를 제공하였다.

안보역터 - 충주 수안보온천에서 문경새재 방향 소조령(小鳥嶺) 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로 옛 안보역(安保驛;安富驛이라고도 함)이 있었던 대안보 마을을 지난다.

신혜원터비 - 수안보온천에서 소조령을 지나 조령(鳥嶺) 제3관문 가는 길목의 고사리마을에 있는 옛 신혜원터를 지나 문경새재로 향한다.



제3관문 조령원 - 영남대로가 백두대간과 교차하는 문경새재에서 먼저 제3관문을 만난다. 숙종 때 북적(北賊)을 막기 위하여 고개 위에 조령산성을 쌓았는데 이것이 곧 제3관문인 조령관으로 현재 경상북도와 충청북도의 경계를 이루는 조령고개에 위치한다.

제2관문 조곡관 - 제3관문을 지나 제1관문에서 3㎞ 떨어진 곳에 제2관문인 조곡관(鳥谷關)과 중성(中城)이 있다. 중성은 1594년(선조 27)에 축성된 것이며, 조곡관 앞의 조곡교를 건너 제1관문으로 통한다.

제1관문 주흘관 - 제2관문을 지나면 조선시대 신·구 관찰사가 부임할 때 관인(官印; 印信이라 함)을 인수인계하던 정자라는 교귀정이 제법 엄정하게 서있다.

남적을 방비하기 위하여 세운 것으로 초곡성(草谷城) 또는 주흘관(主屹關)인 제1관문은 1890년대에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정면 3칸, 측면 2칸에 협문 2개가 있는 누각은 팔작지붕으로, 높이 3.6m, 너비 3.4m, 길이 5.4m의 홍예문(虹霓門)과 좌우의 성벽이 옛 모습대로 남아 있으며, 성벽에는 총안(銃眼)이 있는 성가퀴(성 위에 낮게 쌓은 담)가 설비되었고, 오른쪽에 커다란 수구문(水口門)이 설치되었다.

복원된 주막 - 영남대로의 문경새재에는 제1관문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초곡(草谷)주막이 유명하다. 오늘날의 상초리(上草里)에 해당하는데 초곡 주막민들은 주막운영에 종사하면서 유사시에는 성곽을 지키거나 첩보원으로 또는 산불 방지 임무도 수행하였다고 한다.

조령원터 - 원(院) 조선시대 공적인 임무를 띠고 지방에 파견되는 관리나 상인 등 공무 여행자에게 숙식 편의를 제공하던 공공 여관으로 영남대로의 문경새재의 조령원(鳥嶺院)은 고려시대의 초점원(草岾院)에서 유래되었고 1977년의 발굴결과 고려시대의 온돌유지가 노출되었으며 그 외 와편, 토기편, 자기편, 철제화살촉 및 마구류 등이 출토되었으며 방형석주(方形 石柱)의 돌문과 장방형의 돌담을 축성한 특색이 있다.

관갑천잔도 - 관갑천잔도는 옛 용연(龍淵;지금의 영강)의 동쪽 벼랑에 난 좁은 길로 하천변의 절벽을 깎아 내어 만든 길로서 돌을 파서 구불구불 6,7리 정도의 길을 냈는데 흔히 토천(兎遷)이라한다. 고려 초기 태조 왕건이 이곳에 이르러 길이 막혀 갈 바를 몰라 하고 있는데 마침 토끼가 벼랑을 타고 달아나면서 길을 열어 주어 군사를 이끌고 진군할 수 있었다는 전설에서 비롯되었다.
고모산성 - 잔도를 따라 비탈을 오르면 삼국시대의 성, 고모산성이 있다. 축성 유래는 고모할미와 고부할미가 경쟁을 하여 하룻밤사이에 쌓았다는 전설이 있으며 삼국시대 신라의 방어진지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축성형태는 오정산(烏井山)의 산줄기를 따라 포곡식의 석축 산성. 둘레1,256m, 익성(翼城;石峴城)의 길이 390m를 포함하여 전체 1,646m이며 현재 동문터와 남문터가 남아 있다.
유곡역터 - 유곡역(幽谷驛)이란 경상도 문경시 유곡동에 설치된 역으로 경북 서부 역들을 관장하는 찰방본역이 있었고, 행정업무를 보는 부속건물로서 동헌(東軒)· 내동헌(內東軒)· 작청(作廳) 또는 인리청(人吏廳)· 사령청(使令廳)· 통인청(通引廳)· 관노청(官奴廳)· 창고(倉庫)· 문루(門樓)· 마당(馬堂)· 누정(樓亭) 등의 시설물들이 있었는데 현재 보이는 사진은 유곡역의 관아터로 추정되는 곳이다.

유곡역 비석거리 - 문경시 유곡동 점촌북초등학교 정문 앞 국도 3호선 변에 세워진 비석거리의 비석은 모두 19기가 있는데 관찰사, 순찰사 및 찰방 등의 송덕비(頌德碑)이다.

유곡역 마방터 - 유곡역에 왕래하는 사신들의 역마를 관리하던 곳으로 말구유 등을 비치하여 말먹이를 주던 곳. 현재 유곡동 국도를 따라 상·하 2군데가 있었다고 전한다.

낙동나루와 낙단교 - 태백산 황지(黃池)에서 발원하여 상주지역으로 흘러가는 낙동강에 설치된 나루로 현재 상주시 낙동면 낙동리 소재하고 있다. 낙단교는 낙동 나루터 위에 설치된 다리로 상주시 낙동면 낙동리에서 구미시 도개면 낙정리 마을을 연결하는 다리이다.

관수루 - 낙단교를 지나 낙동강 나루터 강가에 세워진 관수정이 멀리 보인다. 이 관수정은 이규보, 안축의 제영(題詠)이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말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외에 김종직, 권상일, 이황 등의 시문(詩文) 그리고 관수루중창기 등이 걸려있어 안동의 영호루, 밀양의 영남루와 같이 옛 선비들의 정취를 물씬 풍기는 곳으로 유명하다.

선산 낙산리고분군(善山 洛山里古墳群) - 경북 구미시로 접어들면 삼국시대의 분묘군으로 사적 제336호인 선산 낙산리고분군을 볼 수 있다. 이 고분군은 낙동강 동안에 접한 해발 70m 내외의 구릉지대에 흩어져 있는데, 고분의 형태는 대체로 토광묘,옹관묘 및 횡혈식석실(橫穴式石室)이며 바닥에는 자갈돌이 깔려 있다.

금호나루와 금호대교 - 금호강은 경상북도 포항시 죽장면의 가사령(佳士嶺,500m)과 기북면 성법령(省法嶺, 709m)에서 발원하여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강으로 조선시대에는 이 금호강에 나루를 설치하여 진선(津船)으로써 사람과 물자를 운송하였다. 오늘날은 금호나루터 주변에 현대식 다리를 건설하였는데 금호대교가 그 하나이다.



김충선과 녹동서원 - 대구에서 지방국도를 따라 청도방면으로 가다보면 어느샌가 모습을 드러내는 이 마을이 바로 임진왜란 당시 귀화한 왜장, 김충선의 후손들이 모여사는 우록동이다. 김충선(金忠善;1571~1642)은 조선 중기에 조선에 귀화한 일본인으로 1592년 임진왜란 때 가토(加藤淸正) 휘하의 좌선봉장으로 침입하였다가 경상좌병사 박진(朴晉)에게 귀순하였다. 조선에 귀화하여 조총기술을 전수하고 경주·울산 등지에서 전공을 세워 선조로부터 김충선이라는 성과 이름을 하사받았다. 그는 임진왜란 외에도 정유재란, 이괄의 난, 정묘·병자호란 등에 큰 공을 세워 삼란공신(三亂功臣)이라 불렀다. 노후에 우록(友鹿)으로 낙향하여 향약을 지어 지역민을 교화하였다. 정조13년(1789)지방유림들에 의하여 그의 충절보국의 삶을 기리기 위하여 녹동서원이 건립되었다

팔조령 - 영남대로의 대구에서 청도로 가는 길목인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과 이서면사이에 있는 큰고개 팔조령. 워낙 고개가 험하고 산적이나 호랑이가 자주 출몰하므로 왕래하는 사람들이 고개 아래에서 8명이 모여 힘을 합쳐서 넘었다는 전설에서 팔조(八助)고개라 하였다. 지금의 팔조령후게소 자리가 옛 주막터라 한다. 길을 닦은 석축 흔적들이 남아 있다.

군자정 - 청도군 화양읍 유등리의 유호연지(柳湖蓮池)에 모헌(慕軒) 이육(李育)이 중종 26년(1531)에 세운 정자이다.

청도읍성의 객사 도주관 - 청도군 화양읍 서상리에 있는 청도의 옛 읍성. 경북 유형문화재 제212호이다. 청도읍의 중심에 축조된 읍성으로 지금까지 남아 있는 건물로서는 객사로 사용되던 도주관(道州館)과 동헌이 있다. 정청(政廳)인 도주관(道州館)은 정면3칸,측면 4칸의 맞배지붕의 익공양식으로 지어 사신을 접대하던 곳으로 이용되었다.


밀양강 - 영남대로를 달려 울산광역시 울주군의 고현산(高峴山 ,1,033m)에서 발원하여 S자형의 유로를 그리면서 남류하다가 동창천(東倉川), 청도천(淸道川)과 합류하여 밀양시 부근에서 낙동강 본류에 합류하는 강으로 유로에 비하여 유역면적이 넓은 것이 특징이다.

영남루 - 밀양시에 있는 강가의 영남루(嶺南樓)는 관광명소의 하나로 매년 아랑제가 열리고 있다. 이 영남루는 조선시대 밀양도호부 객사(客舍)의 부속 건물이며 손님을 접대하거나 주변 경치를 보면서 휴식을 취하던 곳으로 전체적으로 부재도 크고 기둥 간격도 넓으며 중층(重層)으로 되어 우리나라 건축 중에서는 크고 우람한 외관을 갖추고 있다.

동래읍성 - 동래읍성지는 동장대가 있는 충렬사 뒷산에서 마안산을 거쳐 서장대가 있는 동래향교 뒷산까지의 구릉지와 현재 동래 시가지 중심지역인 평지를 일부 포함하는 지세에 전형적인 평산성(平山城) 형식으로 축조되어 산성과 평지성의 장점을 두루 갖춘 대표적인 읍성이다. 동래읍성을 축성하게 된 배경은 ≪고려사≫에 의하면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우왕 12년(1387) 박위(朴威)가 축성하여 외적 방어의 제1관문 역할을 하였다. - 서장대, 북문, 북장대의 사진을 순서대로 보여준다.

동래부 동헌 - 부산광역시 동래구 수안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관아인 동래부는 정3품 당상관인 부사가 재임하던 곳이며, 관방(關防)으로 대일(對日) 외교상 중요시되었던 곳이므로 관아도 다른 고을에 비하여 규모가 크고 격식이 높았다.

동래부 향교 -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동에 있는 향교로 유형문화재 제6호이다. 1605년(선조 38)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반화루(攀化樓)·내삼문(內三門)·외삼문(外三門)·동무·서무·동재(東齋)·서재(西齋)·좌우협문(左右夾門) 등이 있으며, 그중 대성전은 5성(五聖), 송조2현(宋朝二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