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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구단과 대한제국의 탄생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단인 원구단은 고종 34년(1897) 조선이 황제국인 대한제국이 되었으므로 독자적인 제천의식이 있어야 한다는 대신들의 주장와 연명상소에 의해 재건되었다. 원구단이라는 이름은 단이 둥글게 쌓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지신(地神)에 제사 드리는 사직단(社稷壇)이 음양론(陰陽論)에 따라 방형으로 쌓는 것과는 달리 원구단은 고대 중국의 전통적인 의례와 원이상천(圓以象天)이란 관념에 따라 둥근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다. 규모와 체제는 역대의 예전(禮典)을 기초로 하여 영선사(營繕使) 이근명(李根命) 등을 시켜 길지인 남교(南郊) 회현방 바로 지금의 소공동으로 건립지를 선정한 후 단(壇)을 건립하였다.

원구단 건립과 더불어 조선은 대한제국이 되었다. 새로운 국가와 새로운 정치가 요구되었다. “누가 새로운 시대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제국주의를 겪어온 대한제국의 정치가들에게 현실적인 맥락에서 읽혀졌고, 독립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황제권의 강화라고 인식되었다. 그러므로 대한제국은 민권의 신장보다는 황제권의 강화와 위상제고사업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나 권리는 없고 의무만 있는 대한제국은 백성들의 정치적 요구를 수용하지 못했다. 한편 빈약한 황실재정의 확보를 위한 무분별한 정책추진은 백성들의 반발을 가져왔는데, 대한제국은 그러한 반발을 정치적으로 해결하기 보다는 탄압을 통해 해결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러한 탄압은 독립협회의 폐쇄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독립협회 해산으로 고종에게 대립각을 세울 수 있는 존재는 사라진 듯 했다. 그러나 황제가 중심이 된 문명화의 길도 묘연했다. 대한제국이 독립국으로서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황권강화와 황실재정의 강화는 오히려 대한제국을 위기로 몰아넣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