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 문화원형 라이브러리
인쇄 문화원형 스크랩

효도.열녀편

『삼국사기』의 「신라본기」에는 서기 512년 신라 22대 지증왕 13년 6월에 하슬라주(현재의 강릉)의 군주였던 이사부가 우산국의 항복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그 우산국이 울릉도와 독도를 중심으로 한 해상왕국이었다는 학자들의 해석을 토대로 하면, 독도는 울릉도와의 밀접한 상호관련성이 있음이 역사적으로 증명된다.
그리고 울릉도는 역사적으로 원주민(고대 해상왕국 우산국 등)이 살고 있는 주요 섬이며, 독도는 원주민 주요어업 활동공간이고 수산경제활동영역이며주요 삶터였다. 예로부터 독도는 울릉 주민(우산국 원주민 포함)의 일상생활의 영역이고 주요 생활공간임을 말한다. 그러므로 역사적, 문화적, 물리환경적(생활공간) 측면에서 독도와 울릉도는 매우 밀접한 유기적인 관련성을 띈다.
따라서 독도·울릉도 관련 각종 설화와 전설들은 두 섬 간의 생활환경(생활공간)의 유기적 상호관련성으로 인하여 상호간의 분리 혹은 양분될수 없으며, 독도·울릉도 권역(독도, 울릉도 및 인근 해양 포함)에 대한 통합적 개념으로 이해함이 타탕하다.



자료출처
여영택, 울릉도의 전설·민요, 정음사, 1984
울릉군, 울릉군지, 1989
경상북도청 관광진흥과 경북나드리 (http://www.gbtour.net)
포항KBS 울릉 (http://www.gbtour.net)

고려장

효성이 지극한 아들이 국법에 따라 70넘은 노모를 고려장하려 하였으나, 결국 어머니의 지고지순한 사랑과 아들의 효심으로 말미암아 국법을 어기게 되는데…

옛날 고려 때에는 남자나 여자나 70살에 고려장을 하였다. 이 섬에 효성이 지극한 아들을 둔 70살 되는 어머니가 있었다. 고려장을 하기는 해야 하는데 어머니를, 살이 있는 어머니를 산에 가져다가 묻을 수가 없었다. 망설이다가 망설이다가 하루는 고려장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산에 가 보니 높은 곳에 넓고 편편한 좋은 반석이 있었다. 이 반석에 어머니를 고려장하기로 결심을 하였다.
“어머니 ! 오늘은 내가 업고 놀러 갑니다.”
“어디를?”
“저 산에 좋은 반석이 있습디다.”
“그럼 그러지.”
아들은 어머니에게 거짓말로 놀러 간다고 하였다. 그러나, 어머니는 벌써 아들의 뜻을 알았고 아들이 할 수 없어 거짓말을 하는 것도 알았다.
“어머니, 업히시오.”
“오냐 ! ”
아들도 어머니도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지마는 서로 속내 말은 아니하고 업고 업혀 갔다. 길이 매우 멀었고 몇 번씩 쉬고 쉬면서 가는데, 어머니가 생각해 보니 먼 길을 업고 가느라고 고될 뿐 아니라 밑만 보고 걷다가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고 못 찾을까 봐 걱정이 되어서 쉴 때마다 나뭇가지를 꺾어 놓았다. 업혀서 가면서도 손이 닿을 때마다 나뭇가지를 꺾어 놓았다. 아들은 어머니가 나뭇가지를 꺾는 이유를 몰랐다. 아마 지리하니까 꺾어 보시려니 생각했다. 그럭저럭 목적지인 반석에 도착하였다.
“어머니, 여기요.”
“자리가 참 좋구나.”
어머니는 슬프기만 했다. 그러나 아들의 섭섭해 하는 마음을 아는지라 말로 나타내지는 않았다.
“오늘 잘 놉시다.”
“그러자, 너도 많이 먹어라.”
“예, 먹습니다. 어머니.”
“기운이 빠졌지, 업고 오느라고”
“괜찮습니다.”
“올해는 농사가 잘 되어야 할 텐데.”
“잘 될 겁니다. 비가 잘 오니까요.”
아들의 가슴은 매어지는 것 같았다. 자기를 고려장 하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아들이 잘 살기를 걱정해 주시는 어머니의 가슴은 여북 쓰리겠느냐 생각하니 아들의 가슴은 찢어지는 것 같았다.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가려고 했다. 아들은 하는 수 없이 거짓말로
“어머니 ! 여기 계십시오. 집에 가서 저녁밥을 가져오리다.”
“응, 그래라.”
어머니는 아들이 자기를 산에 남겨 두고 가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자기를 버리고 가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애야, 길을 찾겠느냐. 길을 모르겠거든 나뭇가지 꺾은 것을 보고 따라 가거라. 내가 올 때 가끔 나뭇가지를 꺾어 놓았다.”
이 말을 들으니 아들의 가슴에는 금이 가는 것 같았다. 집으로 오는 발걸음은 허둥지둥 갈피를 못 잡았다.
“왜 70살이 되면 고려장을 해야 하나. 원수 같은 일이로다.”
하고 한탄을 하면서 걸었다. 집에 돌아와서 어머니가 살림 걱정이며 길을 잃을 까 걱정하여 나뭇가지를 꺾어 두었더라는 이야기를 아내에게 했더니 아내도 울면서,
“여보, 법이 다 뭐요, 어서 어머니를 모셔 옵시다.”
“정말이오? ”
“정말이지요”
“법인데 !”
“그 법에 따라 우리가 벌을 받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아들은 아내 보기가 부끄러웠다.
“당신은 마음이 참 착하오.”
“어서 가 보시오. 어머니가 추우실 테니 밤에라도 가서 업고 오시오.”
“그럽시다.”
아들은 등불을 켜 들고 그 반석이 있는 곳을 찾아갔다. 반석이 가까이 가니까 무슨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상하다.”
불도 그 때는 꺼지고 없었다. 무서운 기운이 들었다. 머리카락이 위로 삐죽 솟아오르는 것 같았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신령님께 비나이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용왕님께 비나이다
우리아들 풍년들어
바리바리 실어다가
노적쌓아 두고두고
먹고남고 쓰고남고
오래오래 길이길이
부귀영화 누리도록
비나이다 비나이다 ”
하고 아들 잘 되기를 빌고 있지 않은가.
“어머니”
하고 앞에 꿇어앉으니, 아들도 울고 어머니도 울고, 온 산이 울음바다가 되었다. 70살이 넘었는데 고려장을 하지 않고 어머니를 업어 온 일이 온 누리에 퍼졌다. 그러자, 이 이야기가 임금님께 알려져서 아들이 임금 앞에 불려가게 되었다.
“너에게 70 노모가 있다면서?”
“예, 그렇습니다.”
“고려장을 했느냐?”
“못 했습니다.”
“국법을 어긴 까닭은?”
“예, 황송하오나 이러이러하옵니다.”
임금 앞에 끓어 앉은 아들이 전후 이야기를 죽 하자 임금님도 고개를 끄덕끄덕하더니
“아들이 고려장하려고 업고 가는 줄을 알면서도 아들이 길을 잃을까 봐 나뭇가지를 꺾었더란 말이지?”
“예, 그러하와 그 사랑에 가슴이 무너지게 느낀 바 있어 다시 집으로 어머님을 업어 왔나이다.”
“알겠다. 효성이 지극하구나.”
임금은 그 아들에게 양식과 베를 한 짐씩 상으로 주어 칭찬하고 그 때부터 법을 고쳐서,
“나이 70이 되더라도 고려장하는 것을 아니 하여도 좋으니라.”
하는 명령을 내렸다 한다.

울릉도 호박엿

울릉도 개척시 한 노처녀가 육지에서 가져온 호박씨를 심었으나 그 수확을 보지 못하고 멀리 시집을 가게 되었다. 너무나 잘 자란 호박의 맛이 엿처럼 달아 이를 편지를 써 알려주었다고 한다.

이 울릉도를 개척할 당시의 일이다.
처음에는 태하의 서달령 고개를 중심으로 하여 모두 15가구가 여기저기 산재해서 살고 있었다.
그 한 집에 나이 많은 노처녀가 있었는데 이른 봄철에 집 울타리 밑에 본토에서 가져온 호박씨를 심었다.
이 호박은 나날이 잘 자랐다. 그러나, 그 호박을 따먹기 전에 노처녀는 좀 멀리 시집을 가게 되었다. 노처녀가 시집을 간 뒤에 호박을 많이 열렸고, 그 가운데서도 하나는 유독 크고 모양이 좋았다. 가을이 되어 누렇게 익은 호박들을 따서 죽도 쑤어 먹고 떡도 해 먹었다.
“여보, 호박이 이렇게 클 수가 있소.”
“맛은 또 어떻고요.”
“그 애 말이요, 이 호박을 심기만 하고 먹지도 못하고 시집을 갔지.”
“그 애가 있었으면 제가 심었더라고 자랑할 건데.”
“그럼요. 이 맛이야말로 엿맛이네요.”
“엿보다 답니다.”
“울릉도 호박엿이지.”
“호박이냐 엿이지.”
“이 호박엿을 그 애에게도 보내 줍시다.”
“네가 심은 호박이 자라서 이렇게 엿처럼 단맛을 내는 호박이 열렸다고 편지도 쓰고요.”
“그럽시다. 이 호박엿을 그 애에게 맛보입시다.”
이렇게 주고받다가 호박엿과 함께 편지를 써서 보냈다. 이것은 딸을 시집보낸 부모의 섭섭한 마음을 일려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며, 울릉도는 토질이 좋아서 모든 농작물이 잘되고 맛도 특이한 맛을 내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울릉도 호박엿’이라는 이름은 많이 들어도 본 사람은 없다는데, 울릉도 호박엿의 유래는 이렇게 그 호박의 맛에서 온 것이다.

효녀와 약수

문둥병 걸린 아버지를 위해 딸은 칠성당에서 쉼없이 기도를 드렸다. 백일째 되던날 딸의 효심을 갸륵히 여긴 노인이 홀연히 나타나 약샘을 가르쳐주게 되는데…

“남자들은 상처를 하면 3년 이내에 장가를 들겠지요.”
“여보! 그런 소리 마오. 곧 나을 터인데.”
“나을 것 같지 않소. 멀지 않소.”
“그런 소리 말고 마음을 크게 먹으오.”
“아무래도 곧 죽을 것 같은데, 당신도 당신이지마는 분이가 더 불쌍하오.”
“살아야지요.”
“당신은 새 장가 가시더라도 분이를 잘 돌봐 주시오.”
옆에 앉았던 분이는 훌쩍훌쩍 울고 남편도 아내도 울었다.
가난하게 살다가 외로운 섬에서 중한 병을 얻었으니 속수무책으로 약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다. 그것뿐 아니라 무슨 병인지조차 모를 일이니, 사실은 죽는 날만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가난한 살림이었다.
“분이를······”
“분이를······”
하다가 아내는 영원한 나라로 가고 말았다. 남편과 딸은 슬픔을 못 이기고 나날을 보냈으나 젊은 사나이로 홀로 오래 지낼 수는 없었다.
다시 장가를 들었다. 계모의 버릇이란 한결 같은 모양으로 계모와 딸 사이는 공식처럼 좋지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가 딸을 생각하는 마음은 또 전과 다를 바 없었으니 그런 대로 재미있게 지냈다.
해가 가고 달도 가서 딸도 나이가 차고 인물도 났다.
“사위를 보게.”
“딸을 치우게.”
“짝을 찾아 줘야 해.”
“시집보냅시다.”
하는 말이 자주 입에 오르내렸다.
알맞은 혼처가 생기고 하여 정혼을 해 놓고도 혼례까지는 날짜가 있었다. 불행이란 예고 없이 오는 법, 그 처녀의 아버지에게 몹쓸 병이 나타났다.
‘문둥병’이라는 소문이었다.
소문은 소문을 나아 온 섬 안에서는 그가 문둥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그러자, 문제가 또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파혼을 하겠다.”
는 것이었다.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당황한 것은 딸을 가진 집이다. 그 가운데서도 딸인 처녀의 가슴은 무너지는 것 같았다. 잠이 오지 않았다. 아비의 병을 고쳐야겠다. 그것이 모두가 잘 되는 길이다. 일구월심 아버지의 병을 고칠 도리가 없을까 하고 궁리했다.
하루는 집 뒤 큰 후박나무 밑에 단을 모았다. 칠성단을 모았다. 매일 정수를 떠 놓고 빌었다. 아버지의 병이 하루 속히 낫도록 해 달라고 빌었다. 아는 말, 좋은 말이라면 모두 주워 섬겼다.
“칠성님네 칠성님네
비나이다 비나이다
불쌍하신 우리아비
하루속히 저병낫게
비나이다 비나이다
용왕님께 비나이다
불쌍하신 우리아비
하루속히 저병낫게
굽어굽어 보옵소서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나님께 비나이다
불쌍하신 우리아비
하루속히 저병낫게
굽어굽어 보옵소서

엄마엄마 우리엄마
영혼이라 있거들랑
불쌍하신 우리아비
하루속히 저병낫게
돌아돌아 보아주소

동네방네 사람보소
인정이라 있거들랑
방방곡곡 다녀보고
우리아비 좋은약을
구해다가 주어보소.”
이렇게 나날이 새롭고, 나날이 똑같은 넋두리를 수없이 되뇌었다. 밤중이면 이슬에 옷이 푹 젖었다. 불을 켠 초가 녹아 떡시루가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문둥이 집이라고 그 집에 발걸음을 끊고 오도 가도 않았다. 외롭기만 한 처녀는 밤낮이 없이 칠성당에서 빌고 빌어 석 달 열흘인 백 날째가 되었다. 그러나, 며칠째인지도 사실은 모르고 빌고 빌었던 밤중이다.
무서운 기분이 들었다. 안개가 끼고 바람이 일더니 촛불이 꺼졌다. 어둠 속에서 뭇엇인가가 어른거리더니 한 노인이 나타났다.
“기특하구나.”
“······”
“네 효성이 지극하니 내가 아비의 병을 낫게 해 주마. 따라 오너라.”
처녀는 귀신에 홀린 듯이 그 노인의 뒤를 따라갔다. 노인은 얼마를 가더니 바위 밑에서 솟아오르는 샘 앞에 발을 멈추었다.
“이 샘이 약샘이다. 여기에서 여러 날 몸을 씻으면 아비의 병이 나을 터이니 그리 알아라.”
하고는 어디론지 사라지고 말았다. 처녀는 하도 신기하여 집으로 돌아오자 아비를 데리고 노인이 가르쳐준 샘으로 가서 몸을 씻게 했다.
하루, 이틀, 사흘······
날이 갈수록 아비의 몸은 나아졌다. 두어 달이 지나고 나니 아비의 몸은 완케되었다.
“효성이 지극해서 하늘이 도운 것이로구나.”
하는 마을 사람도 있었다.
“그 처녀는 하늘이 알고 신령님이 알아주는 처녀야!”
하는 마을 사람도 있었다.
“그 처녀와 혼인을 하는 사람은 복을 받을 거야.”
하는 마을 사람도 있었다.
처녀의 지극한 효성은 아비의 병을 낫게 하였으며, 파혼 직전에 있던 제 혼사도 성공을 하게 하였다. 곧 시집을 가게 되었고, 아들 낳고 딸 낳고 집 짓고 배 모으고 잘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샘이 지금의 어디쯤에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효자샘

지금은 어디인지 모르지만 이 섬에는 효자샘이라는 약샘이 있었다고 전한다. 그곳은 문둥병을 앓고 있는 아버지를 위해 백일기도를 드린 아들의 효성에 감복한 신령이 가르쳐 준 곳이다.

지금은 어디인지 모르지마는 이 섬에는 효자샘이라는 약샘이 있었다고 전한다.
아버지가 문둥병으로 앓고 있었는데, 그 아들이 아비의 병을 낫게 하려고 신령님께 백 일 기도를 하였더니, 어느 날 신령님이 나타났다.
“네 효성이 지극하구나”
“황송하옵니다.”
“네 기도한 지 오늘이 며칠째인고?”
“예, 백 일째 이옵니다.”
“그래 !”
“신령님 ! 제발 아버님 병이 낫게 해 주십시오.”
“정녕 그게 소원이냐?.”
“예, 아버님 병이 나으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습니다.”
“정녕.”
“예, 그러하옵니다.”
“알겠다. 아무 데 아무 데 가면 샘이 있느니라.”
“예.”
“그 샘에 가서 매일 몸을 씻도록 해라.”
“예, 고맙습니다.”
하고 고개를 드니 신령님은 간 곳이 없었다. 그 후 그 효자의 아비는 그 샘물에 몸을 씻고 문둥병이 나았고, 그 뒤로 그 샘을 ‘효자샘’이라고 불렀다고 전한다.

촛대바위는 효녀바위

가난했지만 노인과 딸은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러다 먹을 것이 떨어져 추운 겨울 고기잡이하러 노인이 바다에 나갔으나, 풍랑을 만나 돌아오지 않았다. 추운 방파제에서 노인을 기다리던 딸은 그만 돌이 되고 마는데…

한 어촌에 홍 노인이라는 노인이 살고 있었다. 아내는 일찍이 죽고 딸과 둘이 살았다. 조그마한 배 한척과 손바닥만한 밭이 재산의 전부였다. 그 해 따라 밭농사인 옥수수는 바람 때문에 흉년이었다. 겨울양식이라고는 옥수수뿐이었는데 옥수수가 흉작이 되었으니 하는 수 없이 바다에 나가서 고기를 잡아야만 했다. 눈이 오는 날이라도 쉴 수가 없었다.
작은 배로 바람 부는 날 바다에 나간다는 것은 참 위험한 일이다. 그러나 눈이 온다고 쉬고 바람이 좀 분다고 쉴 수는 없었다.
눈이 뿌리고 바람이 이는데도 배를 타고 고기잡이에 나가야만 하는 아버지의 얼굴에는 수심이 떠올랐다.
배가 나갈 때는 파도가 심하지 않더니 해가 뉘엿뉘엿 서산에 기울 때쯤에는 파도가 세고 눈발도 더 거셌다. 아버지를 바다에 보낸 딸은 걱정이 되어서,
“굶더라도 오늘은 쉬셔야 했을걸.”
“옥수수농사나 잘 되었던들. ”
“바다가 원수다.”
하고 한탄을 하면서 기다렸으나 밤이 되어도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를 바다에 잃은 딸은 먹는 것도 잊고 바다를 바라보며 울고불고 부르짖었다. 마을 사람들이 찾아와서는,
“산 사람이나 살아야지.”
하고 미음을 권했으나 막무가내였다. 며칠을 굶은 홍 노인의 딸은 효성이 지극해서인지 며칠 뒤에는 아버지가 돌아온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버지가 돌아오신다니 바닷가에 나가보자 싶어서 바닷가로 나갔다. 파도는 약간 높았으나 파도와 파도사이에 돛을 단 배가 떠오고 있었다.
“배가 들어온다.”
홍 노인의 딸이 기뻐서 외쳤다.
“저만큼에서 보이니까 얼마 뒤에는 뭍에 닿겠지.”
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오고 있는 배는 오는 것 같기는 하나 뭍에는 닿을 줄을 몰랐다. 자꾸 보고 부르노라니 배에서,
“곧 간다.”
하는 소리가 들렸다. 딸은 기다리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마중을 가야지.”
싶어서 배가 있는 쪽으로 갔다. 파도를 헤치고 갔다. 때는 겨울이요 눈발이 시름시름 뿌리는데 파도를 헤치며 배가 있는 쪽으로 갔다.
효성도 바다는 이길 수가 없었다. 더 갈수가 없었다. 지지고 지쳐서 우뚝 서서 기다리다가 돌이 되었다.
‘촛대바위’ 또는 ‘효녀바위’라고 부르는 바위가 곧 이 홍 노인의 딸 효녀의 화석이라고 한다. 돌아온다던 아버지는 실은 헛것이 보였던 것이다.
지금의 저동 앞에 있다. 촛대바위는 방파제의 한 부분으로 우뚝 솟아 있다.

솔개와 노인

마음씨 고운 김노인이 살았는데. 그는 한날 나무를 하러갔다가 솔개를 구해주게 되고, 그 솔개가 보답으로 산삼있는 곳을 알려주어 부자가 되었다.

한 마을에 김 노인과 이 노인이 살고 있었다.
하루는 김 노인 산에 나무를 하러 갔더니 어디서,
“끼익 끼익.”
하는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서 나는 소리일까 하고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더니, 큰 소나무에 무엇인가가 매달려서 ‘끼익 끼익’하고 있었다. 사람인 것도 같고, 짐승인 것도 같아 보였다. 무엇이건 산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고 생각한 김 노인은,
“산 것은 다 귀한 것이야. 목숨을 살려 달라는 애원인데 살려 줘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소리나는 곳으로 가까이 가 보니 그것은 커다란 새였다. 큰 소리개 한 마리가 나뭇가지 사이에 발이 끼여서 발을 빼지 못해 거꾸로 매달려서 울고 있는 것이었다.
사람이 가까이 가니까 반가운 듯이, 더욱 슬픈 듯이 ‘끼익 끼익’하고 울었다. 김 노인은 갖은 애를 써서 그 소리개를 나뭇가지에서 빼내어,
“잘 가거라”
하고 공중으로 휙 날려 주었다. 그날은 그 소리개를 구해 주느라고 나무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마을로 내려 왔다. 밤에 김 노인은 마을 사람들과 만났다, 이 노인도 만났다. 김 노인이 낮에 소리개를 구해 준 이야기를 했더니
“야, 이 바보야.”
“멍충아.”
“천치다.”
하고 놀려 대었다. 이 노인도,
“잡아서 구워 먹지.”
하며 흉을 보았다.
“그것도 산 짐승인데.”
하고 한 마디 변명을 하려던 김 노인은 여러 사람들한테서 놀림감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김 노인의 마음속에서는,
‘내가 잘했지.’
하는 생각이 더 크게 움직이고 있었다. 김 노인의 눈에는 소리개가 공중을 몇 번이고 휙휙 날면서,
“끼익 끼익.”
하고 명량한 울음소리를 내면서 인사라도 하는 듯이 고마워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였다. 그 뒤로도 산에 자주 나무를 하러 다녔고 산에 갈 때마다 소리개가 김 노인을 보고,
“끼익 끼익.”
하고 인사를 하면서 공중을 몇 바퀴 나는 것을 보면 김 노인은,
‘산 것이 목숨이라 귀한 것 비록 짐승의 목숨이라도 귀한 것, 또 소리개같이 악한 짐승도 제 목숨을 살려주면 저렇게 고마와하는구면.’
하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후련하고 부자가 된 것 같이 기쁘고 흐뭇하였다.
하루는 나무를 하러 갔으나 날씨가 좋기 않았다. 산을 헤매다가 나무도 못하고 해가 뉘엿뉘엿 지려는데 나무는 못한 채라도 좋으니 전에 구해 준 소리개나 한번 만나고 내려갔으면 하는 생각을 했으나 그 소리개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런 일도 있는 거지.”
하고 혼자 중얼거리면서, 담배 한 대를 피우고 있으려니까 어디서,
“끼익 끼익.”
하는 소리개 소리가 들려왔다. 반가왔다. 이제 오늘도 만나겠구나 싶어서 반가왔다.
“끼익 끼익.”
소리가 전날보다 더욱 가까이까지 오더니, 마치 김 노인을 물어뜯을 듯이 울었다. 김 노인은,
‘설마 나를 쪼을 리야.’
하는 생각에서,
“이놈이, 뭣이 이리 좋으냐.”
하고 쫓으려 해도 막 가까이 오기만 하더니 소매를 물고 나는 시늉을 한다.
‘이상하다, 오늘은.’
하고 머뭇거리니 소리개는 자꾸 옷소매를 물었다가 놓고, 물었다가는 놓는 것이 따라오라는 것같이 느껴졌다.
‘허허 참.’
하면서 김 노인은 벗었던 지게를 지고 소리개가 나는 쪽으로 갔다. 김 노인은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점점 더 깊은 산중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저를 살려 준 사람을 날짐승인들 해롭게 하랴 싶기도 했다.
“이놈아, 어쩌자는 거냐?”
“끼익 끼익.”
그 우는 소리가 아무래도 다정한 것만 말이 들렸다. 해가 곧 서산마루에 걸터앉아서야 소리개와 김 노인은 커다란 바위 밑에 주저앉았다.
“끼익 끼익.”
소리개는 바위 밑 땅을 주둥이로 쪼았다. 보니 거기에는, 놀랄세라 거기에는 빨간 열매가 마치 딸기처럼 열려 있었다.
“야아, 이게!”
김 노인은 놀랐다. 이야기로만 듣던 산삼의 인상이었다. 한 포기를 캐고 나니 또 한포기가 나타났다. 모두 열 두 포기의 산삼을 캐고 나니 날이 저물어 어둑 사리가 들었다.
김 노인의 발은 날았다. 소리개와 같이 날았다. 지게꼬리에 산삼을 타래로 맨 김 노인은 날았다.
소리개 등에 업혀서 날았다. 마을에 도착하니 밤이 들었다. 어두운 밤에 열 두 포기 산삼에서 마치 황불처럼 빛이 났다.
“김 노인이 산삼을 캤단다.”
하는 소문이 온 섬에 퍼졌다. 온 섬 사람들이 축하를 하러 왔다.
“고생 많이 하더니 편하게 됐네.”
“인심이 좋으니 산신령이 도운 게지.”
“소리개를 구해 준 덕이라면서.”
“소리개는 영물이야.”
“지성이면 감천이지.”
하는 인사말을 아끼지 않았는데, 이 노인만은 같은 마을에 살면서도 빈정거리기만 했다.
“오다가다 만나면 눈앞에 있는 걸 누가 못 캐.”
하면서 김 노인이 산삼을 캔 일을 몹시 못 마땅해 하더라는 것이다.
김 노인은 그 이튿날 이 산삼을 팔아서 큰 배를 몇 척 사고 곧 큰 부자가 된 뒤에도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며 자기도 전과 다름없이 열심히 일하여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한편 이 노인은 김 노인이 산삼을 캤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튿날부터 산에 올랐다. 다른 약을 캐거나 나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산삼이 있는 곳만 찾아다녔다.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날이면 날마다 산을 헤매다가 보니 고기를 잡는 것도 아니요, 나무를 하는 것도 아니고, 농사를 짓는 것도 아니니 끼니조차 굶을 지경이 되었다.
마침내 이 노인은 산에서 헤매다가 죽고 말았다.

열녀비

한 단란한 내외가 살고 있었다. 하지만 남편이 바다에 나가 죽자, 그 아내는 바다 때문에 남편이 죽게 되었으므로, 바다에서 나는 것은 입에도 대지 않고 산에서만 나는 것으로 연명하였다고 한다.

아들 하나를 데리고 한 내외가 통구미에 살고 있었다. 농토라고는 손바닥만한 것도 없었고, 날마다 남편은 바다에 나가서 고기를 잡았고, 아내는 산에 가서 나무를 하기도 하고 나물을 뜯거나 버섯을 따거나 약초를 캐어 와서 팔아 살림을 꾸려 나갔다. 모두들 통구미 사람들은 이 최씨네 집을 가장 단란한 집이라고들 부러워했다.
하루는 아내인 김씨가 자다가 깜짝 놀라 일어나서는 남편이 누워 자는 것을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꿈이었구나.”
멀리서 파도 소리가 철썩철썩 오히려 평화롭게만 들렸다. 아내인 김씨는 남편인 최씨를 일깨워서는 꿈 이야기를 했다.
“내가 집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바람이 불고, 검은 구름이 하늘을 덮더니 번개와 뇌성이 일고 파도는 산더미처럼 기어오르고 배라는 배는 모두 뒤덮이는 꼴을 보았습니다.”하는 것이었다.
“개꿈이야, 봄꿈은 개꿈이야.”
“개꿈이면 좋겠는데 하도 생시 같아서요.”
“개꿈이라니까, 잠이나 잡시다.”
남편의 태연한 태도에 아내도 적이 안심이 되었다.
그러나, 아내는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은 이상한 생각을 씻을 수가 없었다.
날이 샜다. 오늘도 남편은 바다에 나갔다. 아내는 산에 나물을 캐러 나갔다. 아내는 산에 가서도 하늘을 쳐다보고 빌었다.
“제발 무사히 돌아오도록 해 주시옵소서.”
“무사히 오소서.”
하고 빌었다. 아니나다르랴, 맑던 하늘이 어제의 꿈처럼 검은 구름으로 덮였다. 아내 김씨의 마음에도 검은 구름이 덮였다. 이틀이 되어도 사흘이 지나도 바다에 나간 남편 최씨는 돌아오지 않았다.
슬픔에 잠긴 최씨의 아내 김씨는 남편을 앗아간 바다가 보기 싫었다. 바다에서 나는 고기 때문에 남편이 죽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자, 바다에서 나는 고기며 해초를 그 뒤부터는 한 낱도 입에 대지 않고 산에서 나는 것만 먹다가 죽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전해 들은 섬사람들은,
“열녀다.”
“섬에 열녀가 났다.”
하고 김씨를 칭찬했고, 뒤에는 열녀비를 이 통구미에 세웠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