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 문화원형 라이브러리
인쇄 문화원형 스크랩

장군.도둑편

『삼국사기』의 「신라본기」에는 서기 512년 신라 22대 지증왕 13년 6월에 하슬라주(현재의 강릉)의 군주였던 이사부가 우산국의 항복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그 우산국이 울릉도와 독도를 중심으로 한 해상왕국이었다는 학자들의 해석을 토대로 하면, 독도는 울릉도와의 밀접한 상호관련성이 있음이 역사적으로 증명된다.
그리고 울릉도는 역사적으로 원주민(고대 해상왕국 우산국 등)이 살고 있는 주요 섬이며, 독도는 원주민 주요어업 활동공간이고 수산경제활동영역이며주요 삶터였다. 예로부터 독도는 울릉 주민(우산국 원주민 포함)의 일상생활의 영역이고 주요 생활공간임을 말한다. 그러므로 역사적, 문화적, 물리환경적(생활공간) 측면에서 독도와 울릉도는 매우 밀접한 유기적인 관련성을 띈다.
따라서 독도·울릉도 관련 각종 설화와 전설들은 두 섬 간의 생활환경(생활공간)의 유기적 상호관련성으로 인하여 상호간의 분리 혹은 양분될수 없으며, 독도·울릉도 권역(독도, 울릉도 및 인근 해양 포함)에 대한 통합적 개념으로 이해함이 타탕하다.



자료출처
여영택, 울릉도의 전설·민요, 정음사, 1984
울릉군, 울릉군지, 1989
경상북도청 관광진흥과 경북나드리 (http://www.gbtour.net)
포항KBS 울릉 (http://www.gbtour.net)

안용복 장군

안용복 장군은 17세기 말에 살았던 실존 인물로 일본인들의 영토야욕을 막은 큰 공로자이다.

도동의 약수탕을 지키는 듯이 안용복 장군의 기념비가 서 있다. 안용복 장군은 17세기 말에 살았던 실존 인물이기도 하다. 안 장군은, 울릉도를 나라에서 별로 가치없는 곳이라고 돌보지 않을 때 일본인들이 마치 저희들의 영토인양 구는 것을 막은 국토 보존의 큰 공로자이시다.
일본에 건너가서 왜인들을 호통쳐서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땅임을 확인하고 다시는 침범하지 않겠다는 증서를 받아서 가지고 오다가 왜인에게 다시 빼앗긴 바가 있었으며, 대마도에 가서 다시 독도가 우리 영토임을 확인하였다는데 대마도에 안 장군이 갔을 때의 이야기가 재미있다.
“조선에서 보내는 물자가 중도에서 많이 없어지는 것을 일본의 정부 막부에 알리겠다.”
“제발 그렇게 하지는 마십시오. 그렇게 하시면 제 자식이 큰 화를 당합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알리는 게 옳은 것이 아니냐. 너희들은 거짓말도 하고 생떼도 써서 울릉도와 독도를 차지하려 하는데.”
“아니올시다.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 땀임을 다시 확정받아 가시도록 하리다.”
만약에 조선에서 보내는 물자의 수량이 중도에서 속임을 받은 것을 알게 된다면 대마도의 도주인 자의 아들의 짓이니 대마도주와 그의 아들은 큰 화를 입게 되어 있었다.
대마도주의 아들이 막부의 물자를 취급하는 벼슬아치였고, 그 자가 조선서 보낸 물자의 숫자를 속여서 크게 치부를 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위협을 느낀 대마도주는 막부에 말을 하여서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 땀임을 재차 확인하는 증서를 안 장군에게 넘기었으며, 후하게 대접도 하였다.
안 장군은 이 사실을 그 당시의 우리 조정에 알렸더니,
‘허락도 없이 국경을 넘었다.’
하여 도리어 안 장군을 가두어 두고 죽이기까지 했다한다.
그러나 그 당시의 안 장군의 공이 이제야 깊이 느껴져서 해방이 되고야 비로소 그의 기념비를 이 땅 울릉도에 세우게 되었다.
울릉도와 독도는 해산물이 풍부할 뿐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위치에 있으며, 한치의 국토도 우리에게는 금싸라기처럼 중요한 것이다.

하늘사람

공도정책당시 왜인들의 노략질이 성하던 때의 일로, 독도근해를 지나다 일본인에게 잡혀온 두 청년들이 기지와 하늘의 도움으로 하늘사람으로 불리워지게 되었다는 이야기

우리나라에서는 울릉도를 빈 섬(공도)으로 두기로 하였던 때이고, 이 틈을 타서 왜인들이 울릉도에 숨어들어와 살면서 노략질을 하던 때의 일이었다.
독도 근처를 지나다가 왜적에게 사로잡히게 된 조선인 두 젊은 사람이 있었다. 힘이 모자란 두 젊은이는 하는 수 없이 울릉도로 강제 상륙을 당하였다.
여기에 상륙하고 보니 왜인들의 수가 상당히 많았고, 한국 여자를 사로잡아다가 심부름을 시키고 있음을 알았다. 왜인들은 이 두 젊은이를 돌집에 가두었다.
그러나 두 젊은이는,
“이놈들, 우리가 누구인 줄 아느냐?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
하고 왜인들을 향하여 외쳤다.
그러자 없던 구름이 모여들더니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고 뇌성이 치며 번개가 요란하였다.
“이놈들, 하늘 사람을 몰라보다니 네놈들은 조선 사람을 애먹이는 죄로 3일 이내에 큰 화를 입으리라. 3일 이내에 큰 화재가 날 터이니 그리 알아라.”
하고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고 위엄을 보이었다.
왜 놈들은 돌집에 가두려 할 때 갑자기 소나기가 온 일을 생각하여 은근히 겁이 났다.
“어찌할꼬.”
“뭣을 어째?”
“저 두 조선 사람.”
“가두어 두는 거지.”
“보통 사람이 아닌가 봐.”
“뭐, 조선 사람이면 조선 사람이지.”
“아니야, 하늘 사람이래. 3일 이내에 큰 불이 나겠다면서.”
“미신 같은 소리 말아.”
“속으로 겁이 좀 나는데.”
“마음을 크게 먹어.”
왜인이 이렇게 주고받고 있는 그믐밤인데,
“불이야!”
“불이다, 불!”
“큰 불이다.”
하고 왁자지껄하였다.
왜인들은 크게 놀랐다.
불은 왜인이 사는 곳 세 군데에서 나서 집들을 모두 태우고 말았다.
“예사 사람이 아니래도.”
“그런가 봐.”
“전에는 저분들을 가두려니 번개가 치더니 이번에는 예언한 대로 큰 불이 나지를 않나!”
“놓아 주고 빌어야 해.”
“정말 하늘 사람인가 봐.”
“잘 모셔야 하겠어.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몰라.”
“잘 모셔야지.”
왜인은 이 두 젊은이가 겁이 났다.
하루는,
“이놈들, 너희 놈들이 이제 수일 뒤면 한 놈씩 죽게 될 터이다. 어느 놈이 먼저 죽을지도 모른다.”
하고 두 젊은이가 또 예언을 외쳤더니,
“하늘 사람 할아버지, 살려 주십시오. 저희들이 잘 모시겠습니다.”
“네놈들은 네 나라로 가는 것만이 살 길이다. 그것뿐이다. 조선 사람은 모두 여기 모셔 놓고 가거라.”
“예. 그러하오리다.”
“제발 목숨만은 붙어 있게 해 주십시오.”
“고맙습니다.”
왜인들은 몸만 빠져 달아났다.
조선에서 배가 이 울릉도로 곧 올 것을 이 두 젊은이는 알고 있었다. 이 두 젊은이가 이 울릉도로 끌러올 때 같이 있던 사람들은 수군이었고 이 두 젊은이도 수군이었던 것이다.
갑자기 소나기가 오고 뇌성을 한 것은 우연이었으며, 그들이 갇히게 된 후 3일 만에 큰 불이 난 것은, 이 젊은이들이 외치는 소리를 듣고 있던 조선 여자들이 약속을 해서 불을 나게 한 것이었다.

호일 영감의 축지법

울릉도의 상봉에는 호일 영감이라는 노인이 살고 있었는데, 그 노인은 땅을 손아귀에서 마치 종이나 옷감을 주름잡듯이 해서 배를 타지 않고도 본토에 왔다갔다 한다고 전한다.

본천부 산줄기를 타고 산으로 올라가면 높은 봉우리가 있는데 여기를 상봉이라고 부른다. 이 상봉에는 이상한 늙은이가 살고 있었으니, 그는 곡식을 먹지 않았다. 무엇을 먹느냐. 주로 솔잎을 먹었다. 다음에는 나뭇잎, 풀잎을 먹었고, 머루나 다래, 딸기, 후박 열매, 망개, 도토리 같은 산에서 나는 식물성만 먹었다. 옷이라고는 깁고 기워서 거지같이 보이지마는 그의 눈매는 반짝반짝 유난히 빛이 났고, 얼굴은 백옥처럼 희었다. 나이는 아마 60이 넘었을 것이라는데, 마치 20살쯤 된 청년의 살결이었다. 수염이며 머리는 길 대로 길어서 사람으로 보기에는 어려울 정도로 생긴 그대로였다. 사는 곳이라 해야 볕이 드는 굴이었다. 굴 앞을 돌로 막았을 뿐 불을 피운 자취도 없었다.
나무하던 사람이나 나물 캐던 사람이 가까이 가도 아는 체하지 않았다. 길을 물어도 대답이 없었다. 얼굴도 잘 돌리지 않았다. 혹 해찰궂은 나무꾼 아이들이 돌을 던져도 모르는 체하였다.
누구의 입에서 언제 그렇게 불렀는지는 모르나 그를 호일 영감이라고 불렀다.
“올해가 10년째야.”
“그 호일 영감 말이지?”
“응, 내가 서른 살 봄에 나무하러 갔다가 그 사람이 그렇게 앉았는 걸 봤으니까, 이제 꼭 10년이 되지.”
“그 때는 말을 합디까?”
“응,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지.”
“지금은 말을 하지 않더군요.”
“지금도 며칠 목욕재계하고 난 뒤에 가서 만나면 답을 하고 대해 주지.”
“그렇습니까? 하도 이상한 노인이라서 만나보고 싶습니다.”
“그래. 좀 있으면 축지법을 쓰게 될 거야.”
“축지법이라니요?”
“그런 게 있어.”
“어른신네는 그 축지법하는 걸 보셨습니까?”
“보다마다.”
“어떻게 하는 겁니까?”
“눈을 깜짝하는 사이에 몇 백리씩 걷는 법이야.”
“그럴 수가 있습니까?”
“그걸 축지법이라 하는데 땅을 주섬주섬 손아귀에서 마치 종이나 옷감을 주름잡듯이 해서 한 발 뛰면 몇 백리를 한 발자국에 걷는 셈이 되지.”
“그 영감이 그렇게 한단 말이지요. 그 호일 영감이.”
“그럼, 그렇게 하기 위해서 그처럼 오래 공을 드리는 거지.”
이 마을 저 마을에서 이와 같은 이야기가 오고 갔다.
축지법을 배우겠다고 석 달 열흘을 목욕재계하고는 호일 영감을 만나러 가서는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눈 사람도 있었다. 다른 일은 다 따라서 할 수 있었으나 솔잎만 먹고는 사흘도 못 견디고 하산하고 말았다.
그러나, 같이 지내보면 호일 영감은 하루고 이틀이고 말도 안하고 꿇어않아서 무엇인가 입으로 중얼거리고 지내다가는 또 2, 3일 잠만 자기도 하고, 또는 2, 3일 어디론지 가 버리기도 했다. 한 1주일쯤은 아무것도 안 먹고 물만 마시고 살기도 했다.
밤중에 대륙에 가서 물건을 사 오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섬사람 가운데 호기심이 있는 사람은 며칠씩 공을 드리고는 이 호일 영감을 만났고, 마나서 몇 마디 이야기를 듣고 하다가 보면 이 호일 영감에게 혹해서 같이 며칠 몇 달씩 지내기도 했다.
그 가운데 어떤 이는 호일 영감이 주름잡고 걷는 발자국을 그대로 딛다가 잘못 디뎌서 물에 빠져 죽거나 산에 끼여서 죽기도 했고, 수양을 많이 하고 공을 잘 드린 사람은 꼭 그 발자국만 잘 밟아서 배도 안타고 대륙에 갔다 오기도 했다 한다.
같이 한자리에 앉아서 이야기하다가도 저 건너 산위에서,
“어이, 여보게.”
하고 외치는 소리를 들은 사름은 수십 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축지법하는 호일 영감을 본 사람이 많아지자 모두 그를 호일 영감이라 부르지 않고 ‘산신령’ 또는 ‘신선’이라 하기도 하고 ‘성인’이라 하기도 했다 한다.

추산 장군과 평리 장군의 싸움

옛날에는 울릉도에서도 싸움이 심하였는데, 그 중 추산 장군과 평리 장군의 싸움이 있다.

옛날에는 울릉도에서도 싸움이 심하였다. 이 마을과 저 마을이 서로 싸우기도 하였다. 추산에는 추산 장군이 살았고, 평리에는 평리 장군이 살았다.
추산 장군과 평리 장군이 싸움을 하게 되었다.
추산 장군이 평리로 가려면 높은 산을 넘어가야 했다. 산을 넘어서 평리까지 가면 군사들의 기운이 빠져서 이길 수 없어 군사들에게 좋은 의견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한 군사가 나섰다.
“장군님, 좋은 수가 있습니다.”
“어떤 수가 있느냐?”
“산에 굴을 파면 됩니다.”
“누구의 힘으로?”
“예 제게 맡기십시오.”
“그래!”
한 군사가 창을 비스듬히 들더니 산을 향하여 창을 던졌다.
산에는 커다란 구멍이 휜하게 났다. 그 구멍으로 군사들이 들락거릴 수가 있게 되었다.
평리에서는 아직 추산 장군이 도착하려면 멀었다고 생각되어서 푹 쉬고 있는데 난데없이,
“야아!”
“활 받아라.”
“창 받아라.”
하며 군사를 거느리고 추산 장군이 쳐들어왔다. 평리 장군과 그 부하들도 용감했기 때문에 승부는 쉽게 나지 않았지만, 추산의 기습을 받은 평리 장군은 기가 꺾이고 부하들도 사기가 죽었기 때문에 결국 추산 군사의 승리가 되었다.
이런 일이 있고 난 뒤로 이 근처를 ‘삐쭉산’ 또는 ‘송곳산’ 또는 ‘추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아마 코끼리 바위와 송곳산 일대를 일컬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금돼지 이야기

옛날 들판에 여자가 나가기만 하면 잡아가는 무엇이 있었다고 한다. 금실 좋은 부부가 한날은 두려움을 무릅쓰고 서로서로 명주실을 묶은채 들판으로 나가는데...

들판에 사이 좋은 부부가 살고 있었다.
이 들판에는 여자가 나가기만 하면 여자를 잡아가는 것이 있었다. 그래서, 여자는 이 들판에 가기를 매우 싫어했다.
“여보!”
“왜 그러시오?”
“나도 들판에 가 보고 싶소.”
“위태로운데.”
“평생 집에서 있으니, 가깝기도 하고요.”
“그래도 하는 수 없지 않소?”
“우리 둘이 손에 실을 매어서 갑시다.”
“그렇게 하면 되겠군.”
이리하여 남편과 아내는 명주실을 여러 벌 들여서 서로 손목에 매고 들판에 갔다.
처음 들판에 나가 보는 아내의 기쁨은 대단하였다. 시내가 있고, 숲이 있고, 고기가 놀고, 곡식이 자라고, 나비와 벌들이 놀았다. 마치 새로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 같았다. 아내는 말하였다.
“괜히 헛소문이었구면요.”
“뭐가 말이오?”
“들판에 여자가 나오면 잡아간다는 말 말이요.”
“글세.”
“이제 마음대로 들판을 다녀도 되겠네요.”
“그래도 아직 모를 일이니 조심합시다.”
“당신은 어디서 들은 이야기인데 괜히 헛소문만 믿고 있었소.”
“아니, 그 이야기는 수백 년 전부터 있는 이야기요.”
이렇게 정답게 들판을 걷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휘익 휙.”
“다다다닥.”
하는 소리가 나더니 들판이 갈라지면서 여자를 잡아가는 것이었다. 눈에는 보이지 않으면서 무엇인가가 잡아간 것이다. 남편은 의아하였다. 손에 맨 명주실이 풀려간 자취를 따라서 차차 들어가니 수백 리나 되는 머나먼 곳으로 그 명주실은 갔다. 허둥지둥 며칠을 걸려서 그 실의 자취를 따라 들어가니 거기에도 넓은 들판이 있었고, 그 들판에는 날아가는 듯한 기와집 한 채가 있었다. 실은 그 기와집 쪽으로 갔다. 남편은 무서움을 꾹 참고 그 기와집을 기웃거리니, 거기에 자기 아내가 고개를 숙이고 걱정스러운 듯이 앉아 있었다.
“여보! 여보!”
하니, 아내는 얼굴을 들었다. 남편과 아내의 눈은 서로 마주쳤다. 그 옆에는 눈부신 것이 있기에 보니 금돼지가 자고 있었다. 아내는 손짓을 하며 금돼지가 자고 있으니 깨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편과 아내는 꾀를 내었다.
“금돼지가 무엇을 가장 무서워하오?”
“알아보리다.”
하고 아내는 안으로 들어갔다.
“금돼지야! 금돼지야!”
답이 없다. 흔들어 깨우면서,
“금돼지야! 금돼지야!”
하고 불렀다. 금돼지는 코를 비비며 돌아누웠다.
“금돼지야, 금돼지야, 네가 가장 무서워하는 게 뭐지?”
“몰라 몰라.”
하면서 금돼지는 다시 돌아누웠다.
“금돼지야, 금돼지야, 이 잡아 줄게.”
“응, 좋지.”
“금돼지야, 금돼지야, 살결도 곱지.”
“응 그래.”
“금돼지야, 금돼지야, 이 세상에서.”
“응, 그래.”
“금돼지야, 금돼지야, 제일 무서운 건.”
“응, 그래.”
“금돼지야, 금돼지야, 뭐가 무섭지?”
“그렇게 알고 싶나?”
“금돼지야, 금돼지야, 아름다운 금돼지.”
“아름답지.”
“네가 가장 무서워하는 게 뭐냐?”
“녹비를 코에 붙이는 일이지.”
“그러면 왜 무섭지?”
“내가 죽어 버리거든.”
“아이구 무서워.”
“무섭지, 그러지 말아.”
“예쁜 금돼지야, 착하다, 잘 자거라.”
아내는 밖으로 나와서 남편에게 이 이야기를 했다.
“녹비를 코에 붙이면 죽어 버린답니다.”
“녹비!”
“예, 녹비요.”
“녹비라면 사슴의 가죽이 아니오?”
“맞습니다. 사슴의 가죽이지요.”
“내가 차고 있는 열쇠의 끈이 가죽인데 아마 녹비일거요.”
“그 녹비를 풀어서 코에 붙입시다.”
조용조용히 금돼지 코에 녹비를 붙였더니,
“쿠룩쿠룩”
“쿠룩꺽꺽”
하면서 금돼지는 다시는 숨을 쉬지 못하고 죽어 갔다. 남편과 아내는 금돼지를 메고 나와서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부자가 되어 잘 살았다고 한다.

구멍바위

천부 앞바다에 있는 구멍바위가 옛날에는 현포 앞바다에 있었다. 현포에 살던 기운 센 한 노인이 그것을 옮겼다고 한다.

지금은 천부 앞바다에 있는 구멍바위가 옛날에는 현포 앞바다에 있었다. 현포에 살던 기운 센 한 노인이 있었는데 이 노인은 큰 바위가 자기 마을 앞을 가리어 있는 것이 못마땅하였다.
“저 바위를 어디에다 가져다 버려야지.”
하고는 배를 타고 바다 가운데로 저어 갔다. 바위가 하도 크기에 밧줄로 묶었더니 잘 묶이지도 않았고, 배를 저으나 바위는 따라오지 않았다. 내 힘을 업수이여기다니 싶어, 노인은 또 하나의 큰 바위를 들고 구멍바위를 향해 던졌다. 구멍 바위에는 그 때 큰 구멍이 났다.
그러자 구멍이 난 바위는 배에 묶여서 따라오기 시작했다. 노인은 땀을 흘리면서 노를 저었다. 바위는 조금씩조금씩 움직였다. 천부 앞바다에까지 배가 왔을 때 바위를 묶은 밧줄이 끊어졌다.
“찌찌찍” 하고 큰소리가 났다.
“풍덩” 하는 소리와 함께 노인도 배도 물귀신이 되었다. 다만 노인이 끌고 가던 바위만이 지금 있는 그 자리에 뿌리박고 말았다.
천부에서는 밤사이에 큰 바위가 생겼으니 모두 놀랐다. 이제 곧 천부에 큰 변화가 올 거리라는 소문이 나기도 했다. 구멍바위를 구멍섬, 공암이라고도 부른다.

장군 발자국

성인봉의 상봉 가까이에 있는 바위에 장군 발자국이 있다. 이 자국은 성인봉에 살던 장군이 하늘의 구름을 잡기위해 힘을 주다 생긴 것이라 전한다.

성인봉의 상봉 가까이에 있는 바위에 장군 발자국이 있다. 마치 사람이 맨발로 디딘 자국이다.
옛날에는 성인이나 장군이나 위인들은 하늘의 구름을 잡아타고 다녔다고 한다. 어느 날 성인봉에 살던 장군이 하늘의 구름을 잡으려고 한 발은 이 성인봉의 바위를 디디고 한 발은 본토의 어느 산에 디뎌서 힘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하며, 바위가 이렇게 파일 정도로 장군은 힘이 세었다고 하니, 그 몸집이 얼마나 컸는가 짐작할 수 있다 한다.

장군이 나올 터

성인봉은 장군이 날 장소였으나, 일본이 그 곳의 혈맥을 끊으므로 더 이상 그 곳에 장군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성인봉에는 장군의 발자국이 바위에 새겨져 있는데 한쪽 발자국만이다. 그것은 왼쪽 발자국이며, 한 발자국인 오른쪽 발자국은 본토의 어느 곳에 있다고 하니, 그 장군의 한 발자국의 크기라는 것은 상상하기에도 어마어마한 것이다.
하루는 본토에서 사자(심부름군)가 왔다. 성인봉에서는 큰 장군이 날 듯하며 그 장군이 나게 되면 본토가 위협을 받을 것이니, 미리 그 장군이 태어날 만한 땅의 혈맥을 끊는다는 것이었다.
사자들은 성인봉에 올라갔다. 지리풍수설을 잘 아는 사람이,
“여기다.”
하고 가리키자, 사자들은 거기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한 길쯤 파니까 무엇이 불끈 솟았다. 핏줄기였다. 장군이 태어날 혈맥을 끊은 것이다. 피는 흐르고 흘러서 바다에까지 흘러 내렸다.
이때부터 울릉도에는 큰 장군이 나지 않게 되고 말았다 한다. 이 혈맥을 끊은 자는 일본인들이었다고도 전한다.

추산 수원지

옛날에 이 섬에 아주 힘이 센 장수가 살았는데 그 장수가 죽은 자리가 수원지가 되었다 한다

옛날 아주 옛날에 이 섬에 아주 힘이 센 장수가 살았다. 하루는 동네 사람들과 이 장수가 싸움을 하였는데, 이 장수가 지고 말았다.
며칠이 지나자 장수는 죽고 말았다.
장수가 죽은 자리에서는 많은 피가 흘렀다. 피가 흐른 자리가 바로 지금의 추산 발전소의 수원지인데, 그 피가 차차 물이 되어서 지금은 수원지가 되었다 한다.
이 물로 지금은 온 섬에서 풍부히 사용할 수 있는 발전을 하고 있다.

태하의 배성삼

개척 당시 배장군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그는 온갖 나쁜 짓은 다하고 다니며 일본과도 내통하려 하였다. 그를 알게된 주민들은…

개척 당시 전라도에서 이주해 온 사람 중에 키가 아홉 자나 되고 힘이 장사이며 용기가 대단한 한 사람이 있었다. 힘이 얼마나 세냐 하면 아무리 큰 황소일지라도 어깨에 메고 걸어갔으며, 어깨 뒤로 집어 던지기도 했다는 것이다.
성은 배씨이며, 이름은 성삼이었다고들 전한다.
항상 칼을 차고 다녔으며, 재물이고 부녀자이고 간에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섬의 무법자였다. 기운이 세고 용맹하기 때문에 무서워서,
“장군”
“배 장군”
“태하 장군”
이라고 불러 주었으며, 무섭고 귀찮으니까 모두 설설 피하여 가까이 하지 않았다.
특히 부녀자를 제멋대로 희롱하여서 온 섬사람들은,
“두고 보자.”
하고 별렀다. 그것뿐 아니라 그 때 일본 배가 울릉도 근방을 자주 지나다녔는데, 이 배 장군이라는 사람이 비밀히 일본 배에 문서를 보내어 일본 군사를 수만 명만 보내 주면 울릉도에 독립국을 세우고 제가 왕이 되겠다고 했다.
그 편지를 받은 일본 배는 파선이 되어 버렸으나 그 종이 문서가 울릉도 섬에 닿아서 배성삼의 일이 발각된 것이다.
섬사람들은 배성삼의 하는 말이 더욱 난폭하고 비위에 거슬려서 비밀리에 여러 번 회의를 열고 모의를 하였다.
하루는 큰 잔치를 한다면서 배 장군을 초청했다. 으례 이런 잔치에는 “배 장군 배 장군” 하면서 초청되었고, 제일 웃자리에 앉혔으며, 가장 좋은 음식을 대접해야 했다.
“잔치에 갔다오리다”
하고 배 장군이 아내에게 말하였다.
“오늘은 가지 마세요”
“안 가다니, 음식과 여자가 있을 터인데.”
“그러니까 가지 마세요.”
“요망스레, 여자가 무슨 소리를!”
“아니올시다. 꿈이 하도......”
“개꿈이야.”
“그럼 칼은 두고 가세요.”
“장군이 칼을 두고 가다니.”
“아니올시다. 어젯밤에 벽에 걸어 두었던 칼이 소리를 내면서 떫디다”
“바람이 불었던 거야.”
“아무래도 전과는 다른 예감이 드는데요.”
“이 울릉도에서 누가 나를 어떻게 한단 말이야. 나는 성인봉의 정기를 탄 사람이야.”
“그래도 칼은 두고 가세요.”
“장군이 칼을 두고 다니다니.”
“제발 부탁이예요.”
“재수없게 여자가!”
하고 긴 칼을 허리에 차고 잔치에 나섰다.
“오십니까?”
“장군님 오십니까?”
“모두 기다렸습니다.”
전에도 모두 앞에서야 굽실굽실하였지마는 그날따라 더욱 굽실거렸다. 배성삼은,
‘역시 잘 왔군’
싶었다.
그러나, 인사를 성실하게 하는 체하면서도 돌아서면서는 서로 눈이 맞닿을 때마다 입술을 깨무는 것을 그는 눈치채지 못하였다.
좋은 술들이 나왔다.
머루주 ? 청주 ? 약주 ? 옥수수술 ? 감자술 ……
좋다는 술은 다 나왔다.
“어찌 기생이 없을까!”
술이 거나하게 취하자 배성삼은 여자 생각이 났던 것이다.
“예, 곧 대령하겠습니다. 술을 좀 잡수시고서 ……”
“응, 그래.”
하는 찰나였다.
“휙.”
고춧가루가 배성삼의 눈에 날아들었다. 날아 들었다기 보다 던져 넣은 사람이 있었다.
“이놈!”
이놈이고 뭐고 연이어서 커다란 푸대가 배성삼의 얼굴을 덮었다.
“사정을 두지 말아라.”
몽둥이는 수십 명의 장정에 의하여 배성삼을 때리기 시작했다.
“이놈, 네 죄를 알겠지!”
“목숨만 살려 주십쇼.”
“살려 주면 보복당한다.”
하는 소리가 뒤에서 나왔다.
배성삼의 피해를 입지 않은 사람이 없었고, 그를 미워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꼼짝 못하게 묶어서 덕석에 둘둘 말았다. 그러나 워낙 기운이 센 자이라 덕석이 꿈틀꿈틀하였다.
“물, 물, 물!”
하는 소리가 났다.
“마지막길이니 물을 주어라.”
좌중에서 가장 나이 많은 늙은이가 말하자,
“그럽시다.”
하며 물을 떠 주었다.
덕석에 말린 채 머리만 내놓고 먹여주는 물을 두말이나 먹더니,
“내 죄를 알겠소!”
하고 목숨을 거두었다.
한편 배성삼의 아내는 지난밤의 꿈 생각을 하다가 궁금하여 잔치하는 곳으로 가다가 그 소식을 듣고 기절하였다.
이런 일이 있고 난 뒤부터는 이 섬에 도둑과 횡포를 부리는 자가 없어졌다고 한다.

장군수

장군수라는 샘물을 매일 마시고 이 물로 밥을 지어 먹으면 장군이 된다고 전한다.

석포 마을에서 삼선암이 보이는 동북쪽으로 바다 기슭을 돌아 나가면 바위틈에서 샘물이 흐른다. 이 샘물을 장군수라고 부르고 있다. 옛날 이 섬에 한 젊은이가 살았는데 매일 이 샘물을 마시고 이 물로 밥을 지어 먹었더니 기운이 세어져서 나중에는 장군이 되었다고 전한다. 지금도 이 장군수를 꾸준히 마시면 장군이 될 만큼 힘이 세어진다고 하는데 이 장군수를 먹으려면 바위사이를 걸어서 가야하기 때문에 물을 얻기에 힘이 많이 든다고 한다.

도동의 약수터

옛날 일본과 싸우던 장군이 그 곳에서 죽었는데 그 장군이 입었던 갑옷이 삭아서 흘러내리는 쇳물이 약수가 되었다고도 한다.

도동에는 맛이 이상하고 약이 되는 약수가 있다. 그 맛은 사이다 맛이고 쇠 냄새가 난다. 자주 마시면 위장병을 낫게 하는 물이라고도 하며 나병환자가 몇 달 동안 마시고 목욕하여 완치되었다고도 한다.
옛날 옛적 일본과 싸우던 장군이 돌아가신 뒤에 그 장군이 입고 싸우던 갑옷이 이 근처에 묻혔는데 그 갑옷은 쇠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 갑옷이 삭아서 흘러내리는 쇳물이 약수가 되었다고도 한다.

사자바위와 투구봉

우산국을 다스리던 우해왕이 대마도의 풍미녀에게 사로잡혀 정사를 돌보지 않자 결국 신라의 이사부 장군에 의하여 토벌되게 이른다.

서면 남양리에 자리하고 있는 이 사자암과 투구봉은 서기 500년 전 울릉도를 우산국이라 부를 때, 우산국의 비화를 담고 있다.
우산국의 우해왕은 대마도에서 풍미녀를 데려와 왕후로 맞고부터는 나라 일은 돌보지 않고 풍미녀의 환심 사기에만 급급하였다. 또 별님이란 딸을 얻고부터는 도가 심해져 갔다. 왕후의 사치를 위해 백성과 신하의 생명까지도 돌보지 않고 신라까지 노략질을 뻗쳤다.
한편 신라백성들은 왕에게 우산국을 토벌해 달라고 호소했다. 신라왕은 강릉군주 이사부를 보냈고 치열한 격전이 벌어졌으나 우산국 군선에 패하고 말았다. 이사부는 군사를 재훈련하고 계략을 세워 이듬해 다시 토벌의 길에 올랐다.
이사부가 먼저 항복을 권했지만, 우해왕은 한번 이긴 터라 이를 업신여기고 사자(使者)마져 죽여 싸움을 부추겼다. 이에 신라군은 짜여진 전략대로 전투를 이끌었다. 군선의 뱃머리에 목사자부터 일제히 불을 뿜게 하고 또 화살을 쏘개하며 군선을 몰게 했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짐승이 입에서 불을 뿜으며, 신라 군사들이 큰소리로 창과 칼을 즉시 거두지 않으면 이 짐승을 풀어 섬사람을 몰살시키겠다고 하자. 우해왕을 축출하고 신라의 속국으로 매년 공물을 바치는 조건으로 우해왕이 투구를 벗고 이사부에게 항복했다.
결국 목각사자 때문에 싸움에 지고 만 우산국왕은
"내가 죽더라도 그 불사자로 하여금 영원히 우산국을 지키게 해 달라"
는 말을 남기고 바다에 몸을 던졌다. 신라 이사부는 우해왕의 소원을 덜어주기 위해 목각사자를 물에 띄웠고, 그 순간 하늘에서 뇌성벽력이 쳐 목각사자와 우해왕이 던진 투구가 돌로 변해서 사자암과 투구봉이 되었다는 전설이다.

비파산과 학포

우해(于海)왕의 왕비인 풍미녀의 죽음을 기리는 제사와 얽힌 이야기

울릉도를 우산국이라 부를 때 가장 훌륭한 왕으로 우해(于海)라는 왕이 있었다. 용맹이 뛰어나서 대마도에까지 가서 대마도 왕에게 항복을 받고 그의 셋째 딸을 왕비로 데리고 왔다.
왕비는 우산국으로 올 때 학(鶴) 한 마리와 시녀 12사람도 같이 데리고 왔다. 왕비의 이름은 풍미녀였는데 왕비가 되고부터 사치가 너무 심해서 결국 우산국을 망치기까지 하였다.
사랑하는 왕비 풍미녀가 별님이라는 공주를 남기고 죽자, 우해왕은 슬퍼서 뒷산에 병풍을 치고 백날의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그 때 대마도에서 데리고 온 12시녀로 하여금 매일 비파를 치게 하고 왕비가 가까이하던 학도 같이 병풍 앞에 있게 하였다.
백날 째가 되던 날, 학이 슬프게 울며 지금의 학포로 날아갔다 하여 ‘학포’라는 이름이 생겼고, 그때 병풍을 둘러치고 비파를 울렸다 하여 ‘비파산’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