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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편

『삼국사기』의 「신라본기」에는 서기 512년 신라 22대 지증왕 13년 6월에 하슬라주(현재의 강릉)의 군주였던 이사부가 우산국의 항복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그 우산국이 울릉도와 독도를 중심으로 한 해상왕국이었다는 학자들의 해석을 토대로 하면, 독도는 울릉도와의 밀접한 상호관련성이 있음이 역사적으로 증명된다.
그리고 울릉도는 역사적으로 원주민(고대 해상왕국 우산국 등)이 살고 있는 주요 섬이며, 독도는 원주민 주요어업 활동공간이고 수산경제활동영역이며주요 삶터였다. 예로부터 독도는 울릉 주민(우산국 원주민 포함)의 일상생활의 영역이고 주요 생활공간임을 말한다. 그러므로 역사적, 문화적, 물리환경적(생활공간) 측면에서 독도와 울릉도는 매우 밀접한 유기적인 관련성을 띈다.
따라서 독도·울릉도 관련 각종 설화와 전설들은 두 섬 간의 생활환경(생활공간)의 유기적 상호관련성으로 인하여 상호간의 분리 혹은 양분될수 없으며, 독도·울릉도 권역(독도, 울릉도 및 인근 해양 포함)에 대한 통합적 개념으로 이해함이 타탕하다.



자료출처
여영택, 울릉도의 전설·민요, 정음사, 1984
울릉군, 울릉군지, 1989
경상북도청 관광진흥과 경북나드리 (http://www.gbtour.net)
포항KBS 울릉 (http://www.gbtour.net)

삼선암의 유래(왕자와 미녀)

용궁에서 명령을 어기고 육지의 총각과 만났다는 죄로 쫓겨난 용왕의 딸과 울릉도를 다스리는 신라의 왕자간의 사랑 이야기

울릉도의 개척 역사는 사실 오래되었다. 신라 시대에도 여기에 사람이 살았다. 근세 조선 선조 대왕 때의 일이었다.
선조 대왕은 정치를 퍽 잘해서 많은 백성들의 추앙을 받았다. 본토는 고루 평화롭게 잘 다스리었으나 이 울릉도까지는 왕의 힘이 잘 미치지 않아서 질서가 없고 무법지대였다. 이것을 안 선조 대왕은 왕자를 이 섬에 보내어 정치를 하도록 하였다.
“그 섬은 멀고멀지마는 가서 백성을 잘 다스려라.”
“황송하옵니다.”
왕자는 왕명이라, 하는 수 없이 섬으로 떠나기로 작정하였지만 겁이 났다.
“특히 여자를 조심해야 하느니라.”
“황송하옵니다.”
왕자는 수륙 수천 리를 무사히 항해하여 이 울릉도에 도착했다.
서울을 지금의 현포에 정하고 정치를 하니, 온 백성이 즐거워하고 온 섬이 평온하여 모두 살기 좋았다. 왕자는 정치가 잘 되어 가는가를 살피기 위하여 이 곳 저 곳으로 암행하였다.
하루는 석포에 와서 하룻밤 자게 되었는데 그날따라 잘이 밝고 바다가 고요하여 어디에선가 이상한 소리가 계속 들리었다. 왕자는 소리 나는 곳으로 가 보았다. 소리 나는 곳이 차차 가까워지자 그 소리는 사람의 소리였고, 그 소리는 슬픈 울음소리였다. 달은 밝고 바다는 고요하지마는 머리끝이 쭈삣 섰다.
“누구요?”
대답은 없고 사방이 고요하여 왕자는 더욱 무서워졌다. 숨을 죽이고 있으니 얼마 뒤에 또 울음소리에 섞여서 슬픈 노랫소리가 들렸다.
애닯도다 우리부모
애닯도다 우리부모
외딴섬 울릉도에
헌신짝 버리듯이
딸을 버리시다니
잘못은 고치고
버릇은 가르치지
이렇도록 버리실까
아이답답 우리부모
달이야 밝다마는
어느누가 나를알리
바다는 고요한데
내마음은 거칠거칠
몸붙일곳 전혀없네.
대강 이런 뜻의 노래였다. 왕자는 아마 무슨 사연이 있을 것을 짐작하고 더 가까이 가면서,
“누구요? 사람이거든 대답을 하오.“
하고 말했다.
“사람이 올시다”
하고 답을 하는 것을 보니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왜 이런 외딴 곳에 있소?”
“말 못할 사연이 있습니다.”
“그 사연 좀 들읍시다.”
“안 될 말입니다.”
왕자가 가까이 가 보니, 키 크고 머리 좋고 달덩이 보다 더 아름다운 처녀가 혼자 서서 달을 보고 있었다.
“그 사연 좀 들어 봅시다.”
“안 됩니다.”
“혹 딱한 사정을 풀 수도 있지 않습니까?”
“나의 비밀을 알려고도 하지 마시고 가까이도 하지 마시오. 나를 구하시려면 왕자의 생명이 위태롭습니다.”
왕자는 깜짝 놀랐다. 왕자라는 표를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왕자라는 말이 나왔을까. 예사 처녀가 아니로구나 싶었다. 그날 밤은 그만 돌아갔으나 다음날에도 그 자리에 가 보았더니, 그 처녀가 바다 저쪽만을 바라보며 힘없이 서 있었다.
“또 왔습니다.”
“왜 또 오십니까?”
“아무래도 무슨 깊은 사연이 있는 것 같아서 이 곳을 떠날 수 없소.”
“가까이 마십시오.”
왕자는 여러 날을 이렇게 그 곳을 찾았고, 처녀는 그때마다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여러 날을 만나다가 보니 처녀의 입이 열렸다.
“말씀드리리다. 저는 용궁에 있는 용왕의 딸이 온데 용궁에서 명령을 어기고 외부의 총각과 만났다는 죄로 이렇게 쫓겨났습니다. 제가 인간 세상에서 착실히 수양을 하면 귀양이 풀려서 용궁으로 갈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영영 용궁 구경을 다시 할 수 없습니다. 부디 저를 가까이 하지 마십시오. 왕자님께도 해로우시고 제게도 불리합니다. 부탁입니다. 이제 찾아오시지 마십시오.”
듣고 나니 더욱 호기심이 났고 만날수록 달덩이 같은 인물에 마음이 이끌리었다.
“저는 낭자 곁에 있는 것이 가장 행복합니다. 부탁입니다. 인간 세상에 머무르는 동안 자주 만나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간곡히, 그리고 정답게 대하는 왕자를 처녀도 뿌리칠 수는 없었고 또 그 인품에 이끌리었다. 그 뒤로는 처녀도 왕자가 나타나기를 은근히 기다렸고, 왕자는 밤이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이 바닷가에 나타났다.
왕자는 정치를 돌아보고 서울로 돌아가야 할 처지인데도, 이 핑계 저 핑계 대고 이 섬에 머물면서 주로 석포에서 지내는 날이면 이 낭자를 만나는 데 정신이 빠졌다. 만날수록 두 사람 사이에는 정이 두터워지고, 드디어는 사랑의 꽃이 피고 인정의 샘이 솟는 꿀 같은 나날이 지났다. 하루는 왕자가 가까이 가자, 낭자는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디 편찮으십니까?”
“아니올시다.”
“걱정이 있으십니까?”
“아니올시다.”
“왜 내가 미워지셨습니까?”
“아니올시다.”
“그러시다면 왜 반겨하지 않으십니까?”
“오늘이 1년이 되는 날입니다.”
“무슨 말이신지요?”
“오늘이 제가 이 인간 세상에 온 지 1년이 되는 날이온데......”
“부모가 그리우시는군요.”
“왕자가 걱정입니다.”
“무슨 짐작이 있으십니까?”
“방금 용궁에서 사자가 왔다가 갔사온데, 제가 내일이면 용궁으로 가게 됩니다.”
“안 될 말이오.”
“왕명을 또 어길 수 없습니다. 왕자님! 사실은 인간세상에서 1년을 지내고는 인간 세상의 총각 한 분을 같이 데리고 가야만 용궁에 갈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내일 못 가면 또 1년을 더......”
하고 낭자는 울기 시작했다.
“걱정 마시오.”
“걱정이 안 될 수 있습니까?”
“저는 낭자를 못 잊겠고, 낭자도 저를 못 잊으시겠다면서요.”
“저는 1년을 더 이 땅에서 기다려도 좋습니다. 왕자는 왕명을 수행하고 서울로 무사히 가시기 바랍니다.”
“낭자! 서울로 가느니보다 차라리 낭자를 따라 용궁으로 가리다.”
“아니 되올 말씀입니다.”
“낭자가 내일 길을 떠날 채비를 차리시면 나도 따르리다.”
“아니 되올 말씀.”
낭자도 속으로는 왕자와 같이 있고 싶었고, 왕자도 사실 낭자와 같이 있고 싶었다.
이튿날이 되었다.
낭자가 용궁에서 이 땅에 온 지 만 1년이 되는 날 밤이 되었다.
“낭자는 아버님 어머님을 뵙고 싶으실 터이니 어서 용궁으로 가도록 하시오.”
“왕자를 잊고 떠날 수는 없으며, 혼자는 용궁에도 못가고 이승에도 저승에도 못 갑니다.”
하며 낭자는 이래도 저래도 못 하는 안타까운 심정을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지둥하였다.
“낭자, 길을 재촉하오. 나도 같이 가리다.”
왕자는 낭자의 팔을 잡고 바닷속으로 “푸덩” 뛰어들었다.
두 사람이 바다에 빠지자 바닷속에서 번쩍하더니 무엇인가가 나타나는 순간 왕자의 낭자를 모셔 가는 것이었다.
왕자와 낭자가 빠진 자리에 큰 바위가 솟아났으니, 남쪽에 있는 바위는 왕자가 변한 아비바위이고, 중간에 있는 뚱뚱한 바위는 낭자가 변한 어미바위이고, 북쪽에 좀 떨어져 있는 바위는 왕자가 짚고 있던 지팡이가 변한 아들바위라고 한다.
이 아비바위, 어미바위, 아들바위를 가리켜 삼선암이라고 불러서 선녀, 신선이 된 것을 나타내었고, 이 근처의 크고 작은 바위들을 보면 마치 사람들이 앉거나 서거나 굽히거나 엎던 것 같다 하여 이 일대를 신선촌이라고 부른다.
이 세 바위를 삼선암이라고 부르기는 오래 되었고, 아비바위, 어미바위, 아들바위라는 이름은 어느 시인이 여기를 지나면서 지었다 한다.

용녀의 맵시

딸 하나만 있었으면 하는 한 늙은 할머니, 그리고 그 점을 가엽게 여긴 용왕이 내려준 하늘사람과의 짧은 애정을 그린 이야기

석포 마을 가에 한 오막살이가 있었다. 늙은 할머니가 혼자 살고 있었다. 늙은 할머니가 혼자 살고 있었다. 아들도 딸도 없이 홀로 가난하게 사는 할머니는 김을 긁을 때에는 김을 긁노라 바다에 나가고, 미역을 뜯을 때가 되면 미역을 뜯노라 바다에 나가고, 또 전복을 따러 바다에 나가니 바다는 할머니의 일터였다.
일을 하다가 지치면 쉬고, 쉬다가 일을 하고 하여서 먹고 살기야 하지마는 외로와서,
‘딸이라도 하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가셔지지 않아, 할머니는 때때로 까끼섬이 있는 쪽으로 향하여 빌었다.
“용왕님네! 용왕님네! 딸이라도 하나 점지해 주옵소서.”
이렇게 빈 지 3년이 되는 어느 날이었다. 동에서 밀어 닥치는 파도가 울릉도를 송두리째 삼킬 듯한 밤이었다. 바람도 세었다. 불을 켤 수도 없는 무서운 밤이었다. 할머니의 귀에는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파도 소리도 아니고, 바람소리도 아닌 소리였다. 사람 소리로만 들렸다. 여자의 소리같이 들렸다.
“사람 살려.”
“사람 살려.”
하는 소리 같았지마는 어느 쪽에서 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상한 소리는 자꾸 가까이 오는 것 같았다. 할머니는 무서움을 무릎 쓰고 동네 뒤쪽 후박나무 밑으로 가 보았다.
“어미네 어미네.”
하는 소리는 분명히 여자의 목소리였다. 이 밤중에 웬일일까 싶어서 더 가까이 가 보았다. 후박나무 밑에서 여남은 살쯤 된 여자아이가 울고 있었다.
“어미네.”
하고 부르다가 부르다가 지쳐서 울고 있었다. 할머니는 우는 아이를 부둥켜안고 집으로 와서 따뜻한 방에 누이고 전복죽을 끓여 주었다.
“어디 사는 아니냐?”
“몇 살이냐?”
“성은 무엇이며, 이름은 무엇이냐?”
물어도 깜박 잊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겠다는 대답이었다. 아이는 할머니를 보고, ‘엄마’라고 불렀다. 할머니는 아이를 보고 ‘용녀’라고 부르기도 했다. 용왕님께 빌었더니 용왕님이 아이를 점지해 준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할머니와 용녀는 서로 외로움을 달래어 가면서 오손 도손 살아나갔다. 할머니가 바위에서 김을 긁어 오면, 용녀는 김을 김틀에 붙였다. 용녀가 전복을 따오면, 할머니는 이고 가서 팔았다. 용녀가 이 집에 들어온 다음부터는 살림에 재미가 붙었다. 용녀도 나이 스무 살이 되었다. 몸맵시가 더욱 좋아졌다. 돋아 오르는 반달 같은 얼굴은 보는 사람마다 칭찬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딸 치우시오.”
하고 찾아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 마을이며 이웃 마을 젊은이들은 애써 이 집에 놀러오는 것이었다.
“할머니 계십니까?”
하고 찾아오는 사람의 손에는 오징어 꾸러미며, 감자자루며, 꿀딴지 들이 쥐어져 있었다. 할머니의 집은 이제 오히려 남이 부러워할 만큼 살림살이가 늘어났다. 할머니를 찾아오는 젊은이들의 속셈은 용녀의 고운 모습을 보자는 것이었다. 용녀는 얼굴이 곱고 몸매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마음씨도 착하였고 바느질 솜씨며 어른을 섬기는 일들이 많은 사람들의 칭찬을 받을 만하여 온 섬에 소문이 났다.
“석포의 용녀한테로 장가가는 사람은 복 많은 사람이다.”
“용녀는 시집을 안 가겠단 다더라.”
“용녀는 성이 없대.”
“주워 온 애래.”
용녀를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지자 용녀는 걱정을 하게 되었다. 밥도 잘 못 먹고, 잠도 잘 자지 못하였다. 할머니는 걱정되었다. 바람 불고 파도치는 어느 날 밤에 용녀가 없어졌다. 간데 온데 없어졌다. 용녀를 후박나무 밑에서 만났을 때와 비슷하게 바람 불고 파도치는 날 밤이었다.
온 마을 사람들이 횃불을 켜 들고 찾았으나 용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틀을 찾고 사흘을 찾아도 용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할머니를 지극히 섬기던 용녀가 아무 말 없이 사라진 것이 이상하기도 했다. 할머니는 음식도 먹지 않았다. 잠도 잘 자지 못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용녀가 할머니 앞에 나타났다.
“할머니! 그 동안 신세 많이 졌습니다. 저는 이제 가야 합니다. 저는 본시 하늘나라 사람이온데 잠시 인간 세상의 물정을 살피고자 왔더니 용하게 할머니를 만나게 되어 그 동안 편히 지냈습니다. 저는 올 때는 와다리(지명)의 용굴에 나타나서 여기까지 왔으며, 갈 때는 천부(지명)로 가서 거기서 하늘로 올라갑니다. 부디 편안히 계십시오.”
꿈이었다. 서운하였다. 그러나 하는 수 없었다. 잘 가라는 말도 제대로 한 마디 못 한 것이 더욱 서운하였다.
이 소문이 퍼지자 어떤 사람은 천부(지금의 본천부)에는 그날 밤 무지개가 하늘로 뻗었더라느니, 수년 전에 용굴에서 이상한 옷을 본 일이 있다느니, 그것이 용녀가 입고 왔다가 입고 간 옷일 것이라느니, 말이 꼬리를 물고 퍼졌다.
용녀를 그리워하던 석포 사람들은 여기를 ‘정들포’라고도 불렀다 한다. 용녀가 정을 들이고 간곳이라는 뜻이다.

동백꽃의 사연

본토로 떠난 남편, 그리고 그 남편을 오매불망 기다리다 지쳐 병을 얻어 죽게된 부인은 동백꽃이 되었다.

어느 마을에 매우 정다운 부부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남편이 볼일이 있어서 본토로 건너갔다. 오마고 하던 예정일이 다가왔다. 아내는 예정일이 가까워 오자 바닷가로 나가서 멀리 바다를 바라보며 나날을 보냈다.
오마고 하던 날은 이미 지나고 날이 가고 달이 가도 남편은 소식이 없었다. 그래도 아내는 기다리며 나날이 바닷가에 나갔다.
“오늘 오는가
내일 오는가
오지 못하면
소식이나 오는가
기별이나 오는가
꿈에라도 오는가“
하며 기다리기 1년에 아내는 병이 들었다. 아무 약도 효험이 없었다. 효과가 있을 수 있는 것은 다만 남편이 돌아오는 일이었는데, 남편은 소식이 없었다. 아내의 병은 나날이 더하여 가서 마침내는 죽고 말았다. 죽기 전에 아내는,
“내가 죽거든 대륙에서 오는 배가 바라보이는 곳에 묻어 주오.”
하고 숨을 거두었다. 마을 사람과 친척들은 장사를 잘 지내 주었다.
“내외 금슬이 참 찹쌀 궁합이야.”
“인정이 그렇게 두터울 수가!”
“그 남편은 복도 많아.”
“죽기까지야 할 것 있어.”
“어디 남자가 그 남자뿐인가.”
“열녀야 열녀.”
이런 뒷이야기가 오고가면서 그녀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는 어느 날, 그러니까 장례를 지내고 3일이 되는 날 그 집 앞 후박나무에는 전에 없이 많은 먹비둘기가 와서 구슬피 울었다.
“아이 답답
열흘만 더 기다리지
넉넉잡아
온다
온다
남편이 온다
죽은 사람 불쌍해라
원수야 원수야
열흘만 더 일찍 오지
넉넉잡아서.“
하는 것같이 울어 대어서 마을사람들은 기이하다고 생각했다. 밤이 깊은데 그 대륙에 갔던 남편이 돌아왔다. 남편이 또 목놓아 우는 모습에 마을 사람들도 모두 같이 울었다.
“왜 죽었나
일년도 못참더냐?
십년도 못참더냐?
열흘만 참았더면
백년해로 하는것을
원수로다 원수로다
저한바다 원수로다
몸이야 갈지라도
넋이야 두고가소
불쌍하고 가련하다“
하며 아내의 무덤 옆에 가서 울고 울었다. 이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의 죽음을 슬퍼하며 여러 달을 울다가 옆을 보니 빨간 꽃이 피었더라는 것이다. 눈이 와 있는데도 지금까지는 보지 못하였던 빨간 꽃이 만발해 있었다. 이 꽃이 뒤에 울릉도에 널리 퍼진 ‘동백꽃’이라는 것이다.
울릉도의 전설에 의하면, 곧 정다운 내외가 살다가 남편이 대륙에 가서 안 오자 그 아내가 죽고 그 아내의 무덤 옆에 핀 꽃이 동백인데, 곧 남편을 골똘히 생각하는 아내의 넋이 꽃으로 화한 것이라 한다.

우해왕(于海王)과 풍미녀

우산국을 다스리던 우해왕과 대마도에서 온 풍미녀간의 애정이 지나쳐 나라를 망하게 하였다는 이야기

지금의 울릉도를 옛날 신라시대에는 우산국(于山國)이라고 불렀다. 우산국이 가장 왕성했던 때는 우해왕(于海王)이 다스릴 때라고 한다.
우해왕은 기운이 장사요, 신체도 건장했으며, 바다를 마치 육지처럼 주름잡고 다녔다. 작은 나라이지마는 근처의 어느 나라보다도 바다에 서는 힘이 세었다.
이 때 우산국에 와서 가끔 노략질을 해 가는 왜구가 있었다. 그 왜구의 본거지는 주로 대마도였다. 우산국의 우해왕은 왜구의 본거지를 찾아서 군사를 거느리고 대마도에 갔다. 대마도의 왕을 만나서 담판을 하였다.
“앞으로는 우산국을 침범 안하리다.”
하는 항서를 받았다. 우해왕은 대마도에서 푸짐한 대접을 받았다.
“고맙소. 서로 사이좋게 지냅시다. 푸짐한 대접을 받아서 고맙기 한이 없소, 내일이면 떠나려 하오.”
하고 우해왕이 대마도를 작별하려고 하는데 대마도의 왕이 무엇인가 할 말이 있는 듯 주저주저하였다.
“아마 할 말씀이 있으신 모양인데 해 보시오.”
하였더니,
“사실은 저에게 딸이 셋이 있사온데 그 가운데서도 셋째 딸이 인물도 마음씨도 뛰어났습니다. 풍미녀라고 부르지요, 이 풍미녀가 우해왕을 따라 가고파하는데 어떠하실는지요?”
우해왕은 뜻밖의 일에 놀랐다.
“생각해 봅시다.”
“풍미녀가 우해왕을 뵈옵고부터는 왕을 모시며 충성을 다하겠다고 굳게 마음먹고 있습니다. 만약 왕이 데려가시지 않으시면 풍미녀는 굶어 죽겠다고까지 합니다. 부디 데려가 주십시오.”
“그렇게 마음이 굳어졌다면야.”
우해왕은 풍미녀를 데리고 우산국으로 돌아왔다. 풍미녀의 용모와 마음가짐이 단정하여 왕후로 삼기에 가장 적당하다고 생각한 우해왕은 풍미녀를 왕후로 삼기로 했다. 우산국 백성들은 우해왕과 풍미녀를 받드느라고 온 힘을 다하였다.
우산국은 풍미녀가 왕후로 들어앉고부터는 우해왕의 마음이 전과 달라짐에 놀랐다. 전에 같으면 왕은 백성들의 생활을 걱정하기를 제 일 같이 하였지마는 풍미녀를 왕후로 앉히고부터는 사치를 좋아했다. 풍미녀가 하는 말이면 무엇이고 들어주려고 했다.
우산국에서 구하지 못할 보물을 풍미녀가 가지고 싶어하면, 우해왕은 신라에까지 신하를 보내어 노략질을 해 오도록 하였다.
신하 가운데 부당한 일이라고 항의하는 자가 있으면 당장에 목을 베거나 바다에 처넣었으므로, 백성들은 우해왕을 매우 겁내게 되었고 풍미녀는 더욱 사치에 힘썼다.
“망하겠구나.”
“풍미 왕후는 마녀야.”
“우해왕이 달라졌어.”
이런 소문이 온 우산국에 퍼졌다. 신라가 쳐들어오리라는 소문이 있다고 신하가 보고를 하였더니, 우해왕은 도리어 그 신하를 바다에 처넣었다.
“왕의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 자는 죽인다.”
이 꼴을 본 신하는 되도록 왕을 가까이하지 않으려 했다. 풍미녀가 왕후가 된 몇 해 되에 우산국은 망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