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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화궁 터

이름

순화궁 터

카테고리

궁터

연번

92

설치연도

1999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일반 194-27

GPS좌표

37°34.334N 126°59.068E

표석문구

조선조 헌종(憲宗)의 후궁 경빈김씨(慶嬪金氏) 사당인 순화궁이 있었던 자리이다.

표석설명

조선 24대왕 헌종이 자신의 후궁인 경빈 김씨를 위해 지어준 것



순화궁(順和宮)은 인사동 194번지에 위치한 것으로, 조선 24대왕 헌종이 총애하는 후궁인 경빈김씨의 궁으로 지어준 것이다.

경빈김씨는 이곳에서 ≪국기복식소선(國忌服飾素膳)≫과 ≪사절복식자장요람(四節服飾資粧要覽)≫ 두 권의 책을 썼다. 그리고 이를 ≪순화궁첩초(順和宮帖草)≫라고도 부른다. ≪국기복식소선≫의 내용은 왕과 왕비의 기일인 국기(國忌)에 비빈(妃嬪)을 위시한 내시의 복색·머리모양·화장·노리개·반지 등의 수식의 복제에 관한 것이다. ≪사절복식자장요람(四節服飾資粧要覽)≫은 궁중 제일의 명절인 탄일(誕日)과 정월·동지·망간(望間: 정월의 마지막 명일인 보름날)의 문안예시(問安禮時)의 복식을 설명한 것이다.

얽힌 이야기

후궁문제로 유생에게 비판 유소까지 받은 헌종



정원용이 정승으로 있을 때 일이다. 경상도 어느 유생이 정원용에게 격렬한 상소를 올려, ‘헌종이 순화궁(경빈김씨)을 총애한 나머지 왕비 홍씨를 박대하고 있다. 요녀에게 빠져 정궁을 소대함은 크게 잘못이다.’고 간청해 왔다.
왕은 크게 노하여 친히 국문할 뜻을 품고 정승 정원용을 불러 그 유생의 죄가 가히 죽일 만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원용은 왕에게 그 상소문을 볼 것을 청한 후 만조관원들 앞에서 크게 소리내어 읽고는 도로 올린 다음 말했다.
“나라에 이처럼 곧은 유생이 있사오니 가히 진하 받으실 만합니다.”
으레 별말이 없이 자신의 뜻이 관철되리라 믿었던 왕은 정원용의 말을 듣고 노기가 등등하였다.
“정승이 저러고야 나라가 망하지 않을 수 있나?”
그리고는 일어나 내전으로 들어가려 하였다. 영의정 정원용은 앞으로 기어가 왕의 용포 옷자락을 붙잡고 정색으로 칼날같이 부르짖었다.
“인군이 이리하시고는 나라가 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칫하면 목이 달아날 그때였다.


몰래 세금 걷다가 적발된 순화궁 궁감



순화궁(順和宮)의 궁감(宮監)이 평안도와 황해도의 경계인 철도(鐵島) 지역에서 이름도 없는 온갖 세금을 새로 만들어서는 선박에 대해 함부로 세금을 부과하였다. 세금을 납부하지 못한 자는 불러다가 곤장까지 쳐서 장사치들이 병이 드는 경우가 발생하여 백성들의 불만을 샀다. 평안 감사가 장계를 올려 이를 보고하자, 세금을 거두던 궁감의 자리를 없애고 법사(法司)에 이송하여 엄중히 처벌하게 하였다. 아울러 각 도의 도신으로 하여금 각 궁(宮)과 각 사(司)에서 이와 같은 횡포가 있었는지의 여부를 조사해서 보고하도록 했다. 이는 곧 백성을 괴롭히는 폐단을 막기 위한 조치의 하나였던 것이다.

참고문헌

1. 서울문화재 http://sca.seoul.go.kr/korean/index.jsp <고도서 > 고문서>국기복식소선 및 사절복식자장요람(國忌服飾素膳 및 四節服飾資粧要覽) >

2. 한국역사정보통합시스템 http://www.koreanhistory.or.kr/ “순화궁” <연속간행물 국민보 1962-12-05 >

3. 한국고전번역원http://www.itkc.or.kr/ “순화궁” <고전번역서 > 국조보감(國朝寶鑑) > 국조보감 제88권 >

4. 서울문화재 http://sca.seoul.go.kr/korean/index.jsp 고도서 > 고문서>국기복식소선 및 사절복식자장요람(國忌服飾素膳 및 四節服飾資粧要覽)

참고이미지
경빈김씨가 집필한 ≪순화궁첩초(順和宮帖草)≫ 경빈김씨가 집필한 ≪순화궁첩초(順和宮帖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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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각역 3번출구 나온 반대방향으로 나와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200m 직진 후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130m 후에 있는 맥도날드 본사 건너편 태화빌딩 표석 아래 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