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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절기 이야기겨울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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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그네

겨울나그네

◎집필 의도
눈 속에 파묻힌 집안에 갇힌 할머니와 손녀와 손자.
할머니는 두 아이들에게 한 남자의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개요
7간의 시골집에서 할머니와 손자 손녀가 함께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할머니가 해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겨울을 나고 있었다. 할머니는 평생을 자신이 저지른 일들로부터 도망치며 사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다.

◆장르
액자식 구성의 모노톤 서사물.

◆방식
한 가지 이야기 안에 하나의 이야기가 더 들어가 있는 액자식 구성의 이야기.

◆전개
눈이 오기 전에 집 대청마루에서부터 마을 공터까지 잇는 밧줄을 묶어 두어야 한다는 할머니의 말을 손자가 지키기 않은 덕분에 할머니와 손자와 손녀 세 사람이 지붕까지 차 오르도록 내린 눈 속에 갇혀버리고 만다. 누군가가 눈 굴을 파고 찾아와 주거나 비극적인 경우 그 안에서 봄이 오기 전에 죽게 된 상황. 손자는 그 실수를 어떻게 만회해야할지 모르는 그 상황에서 도망쳐 버리고 만다. 할머니는 손자에게 평생을 자신이 저지른 일로부터 도망 다닌 한 남자의 이야기를 손자에게 해준다.

◎스토리 요약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서부터 도망친 손자에게 할머니는 평생을 자신이 저지른 일로부터 도망 다닌 남자의 이야기를 해준다. 마음은 착했지만 고집쟁이였던 그 남자는 자신을 절제하고 제어하는 것을 굉장히 어려워했다. 그 때문에 많은 일들이 엇갈리고 꼬이기 시작했고 남자는 자신이 저질러 놓았던 일로부터 도망 다니기 시작한다.

등장인물

-할머니
넉넉한 마음으로 손자와 손녀에게 이야기를 해주며 화톳불에 고구마와 감자를 구워주신다.
-손자
할머니가 꼭 당부 하셨던 일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다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된다. 자신이 저지른 일로부터 도망가려고 애쓰다가 할머니가 해주시는 이야기에서 도망치는 인생의 끝에 대해 알게 된다.
-손녀
남매 중에 누이이다. 공정한 사고를 하려고 노력한다.

◆시대배경

도시들은 모두 현대화되었지만 할머니는 모든 것이 단절되다시피 한 산골마을에서 100년전의 모습으로 살고 계신다.

◆전체적인 장소 개요

태백산맥 북쪽에 겨울이 되면 지붕까지 파묻힐 정도로 눈이 내리는 산골 마을

시놉시스

발단1 - 대설
하늘에서 눈의 결정들이 쏟아져 내린다. 구름에서 떨어져 나와 얼어붙은 육각형의 결정이 하늘에서 천천히 느리게 지상을 향해 낙하한다. 지붕 위의 다른 눈 더미 위로 눈의 결정이 내려앉는다. 나무가 가지 위에 두껍게 내려앉아 있던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기이한 소리를 내며 부러진다. 부러진 가지는 지붕까지 차 오르고 그 위로 더 가득 쌓인 눈들 때문에 그 곳이 마을이라는 것을 눈치채기 힘들 정도이다. 그리고 그 가득 쌓인 눈 아래 기와가 지붕이 천장이 드러나고 그 아래의 방에 잠이 들어 있는 두 아이와 일어나서 화톳불을 정리하는 할머니가 보인다.
방안은 장지문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흰 빛으로 그럭저럭 실내 안을 볼 수 있다. 새벽의 여명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밝고, 그렇다고 햇볕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기엔 너무나도 흐린 빛이었기 때문에 아이들은 늦게까지 잠들어 있었다. 화톳불을 정리한 할머니는 몸을 일으켜서 괘종시계에 태엽을 감아주고 방에서 이어진 문으로 부엌으로 나가 아궁이 바닥의 재들을 잘 고르고 밥을 지으신다. 할머니가 밥을 다 차리고 나서야 꾸물꾸물 일어나는 아이들. 밥상을 들여온 할머니는 그 다음에서야 아이들을 정신차리도록 깨우신다. 세수하고 오라는 할머니의 말에 부엌에서 뒷문으로 나가 우물에 있던 손이 얼어붙도록 차가운 지하수를 길어 올려 세수를 한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 아이들은 할머니에게 나가서 놀아도 되느냐고 묻는다. 할머니는 웃기만 하실 뿐 별 제지가 없으신다. 비료부대를 끌고 나가 썰매를 탈 계획을 가지고 있던 아이들은 덧문을 열자마자 드러난 새 하얀 벽에 깜짝 놀란다. 빔세 내린 눈이 가득 쌓여 지붕까지 덮고 나자 그제야 그들은 자신들이 육지 위에서 무인도에 떨어진 것 마냥 조난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할머니는 손자와 손녀에게 간식으로 주기 위해 묵묵하게 고구마와 감자를 화톳불에 묻어 두신다.

발단2 - 동지

자신이 할머니가 길을 찾기 위해 묶어 두라고 했던 밧줄을 게으름 부리느라 묶어두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조난 당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손자는 그 책임을 추궁 당하는 것이 괴로워 방어적으로 변해 버린다. 어차피 얼굴이 안 보이는 곳에 있을 수도 없었다. 처마 밑의 약간의 공간과 아궁이가 있는 부엌. 아궁이에서 지펴진 열이 가장 잘 전달되는 안방. 좀더 멀어서 약간 더 추운 옷방. 그리고 화장실 밖에 없었다. 결국 다시 안방으로 돌아와 누나와 할머니와 화톳불을 마주 보게된 손자는 두 사람의 눈을 계속 피해가며 말도 하지 않으려고 든다. 손녀는 그런 1차원 적인 방법으로 도망가는 것을 그만두라고 하지만 하루의 대부분을 그저 안방 화톳불 앞에서 보내는 동안 내내 손자의 그런 행동은 점점 더 도를 지나쳐 갈 뿐이었다.


급기야 밥 먹는 것도 그만두고 아궁이 열이 잘 닿지도 않는 옷방에 두꺼운 솜이불 안에 들어 누워서는 할머니도 누나도 모두 외면하려고 들었다. 손녀는 기가 막혀서 차라리 실수를 한 것이 걱정이 되면 남자답게 당당히 나와서 사과를 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손자는 그런 누나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옷방에 틀어 박혀서 나오지 않았다. 어쩌면 그냥 할머니와 누나에게 게으름부려서 이렇게 되었다고 미안하고 사과하고 나면 그냥 넘어갈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아마 네가 게으름 부리지 않았다면 이 런일 없었을 텐데 라는 안타까운 비난도 몇 번은 들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아마 지나가고 나면 아무렇지도 않을 일이기도 하지만 손자는 자신에게 그것을 견디어낼 준비가 되어있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그런 비난들을 들으면 할머니와 누나에게 까칠하게 대할 것 같았다. 두 사람이 결코 틀린 말을 하구나 잘못 된 말을 한 것은 아니지만 손자는 역시 그것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손자가 할머니와 누나에게 말하지 않은 것도 2주나 흘러갔다.

발단3 - 소한, 대한

여전히 마을 광장에서 밧줄을 묶어두지 않은 할머니의 집까지 눈 굴을 파서 구조해 오는 손길은 오지 않았다. 할머니의 집은 마을 광장에서 제법 떨어져 있었으며 길도 제법 복잡한 편이었다. 열심히 눈 굴을 팠는데 도랑을 만나거나 남의 집 담벼락으로 가기 쉬웠기 때문에 아직 도착하지 않은 편이라고 손녀는 애써 좋게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마을에서 세 사람을 포기했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이 많은 눈들이 다 묵는 4월 중순 혹은 4월말이 되기 전에 식량과 땔감이 모자라 사람들이 구하러 올 때쯤엔 이미 사이 좋게 시체 세 구가 되어있을 테니...


평안을 유지하려고 애쓰고는 있지만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는 손녀와 단 둘이 안방에서 지내면서 곁에 있는 손녀에게 소소한 이야기를 해주며 지내던 할머니는 달력에 대한이라고 체크된 것을 보고는 밤고구마를 화톳불에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서 옷방에 있는 손자에게로 가신다. 식사 대신으로 가져다 주는 구운 감자나 고구마 같은 것들을 먹은 쓰레기가 한 쪽에 쌓여 있는 것 외엔 대체 어떻게 생명활동이 이어지고 있는 건지 의심스러운 방에서 뜨끈뜨끈한 솜이불 밑에 누워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손자에게 잘 구워진 밤고구마를 식히고 껍질을 벗겨내서 손자의 손에 쥐어준 할머니는 누워있는 손자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빗겨 넘겨주곤 손자에게 이야기를 하나 해주겠다고 한다. 광에서 단밤을 꺼내다가 구워서 껍질을 벗겨 줄 테니 안방으로 와서 이야기를 들어주면 좋겠다고 부탁하는 할머니를 거절하지 못하고 손자는 할머니 손을 잡고 안방으로 돌아온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을 데려와 주기를 기다렸던 것처럼. 안방 아랫목에 방석을 깔고 벽에 등을 기댄 채 할머니는 느리게 숨을 쉬면서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신다. 그 남자의 이야기는 만물이 깨어나기 시작하는 봄에서부터 시작했다.

전개1 - 입춘

언젯적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마을에 한 남자가 살고 있었다. 엄격하지만 자식들에게 자상하려고 노력하는 아버지와 자식들을 잘 돌보려는 의욕이 앞서던 어머니, 그리고 그 두 분의 기대를 자신은 만족시킬 수 있다는 듯이 반듯하게 행동하던 여동생, 그리고 그 남자. 그렇게 네 사람이 한 가족이었다. 꽤 행복한 가족이었다. 대화도 많은 편이었고 여동생은 애교가 많았기 때문에 집안에서 웃을 일도 참 많았다. 다만 그 남자는 어딘가 그런 가족들에게서 벽을 느끼고 있었다. 어렸을 때 나타나서 점점 더 커지고 있던 그 벽은 그와 가족들의 심리적 유대를 점점 가로막았다.


어느 날이 남자는 잘못을 저지른다. 맡아서 해야 할 일이 있었는데 봄바람에 이리저리 놀며 차일피일 미루다가 우수가 오기 전에 해줬어야 할 일을 우수가 지나도록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남자는 뒤늦게 잘못했다는 것을 깨닫고 그 것을 수정하려 했지만 이미 시간은 지나치게 흘러 일어난 사고를 뒷수습할 시간 마저 부족했다. 남자는 이제 곧 자신이 엄청난 비난들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누가 내 사정을 이해해 주겠어. 아무도 내 사정엔 신경 쓰지 않지. 라고 생각하며 그는 도망갈 준비를 했다. 부모님도 여동생도 그 남자가 마을에 머무르게 하는 이유가 되질 못했다. 아마 부모님과 여동생은 인정하고 싶진 않았지만 벌써 오래 전부터 가족 안엔 담이 쌓여 와 있었다. 그 담은 너무나도 견고하고 튼튼한데다가 부모님 쪽에서도 함께 무너뜨려야 했지만 그런 게 있다는 것조차 인정하지 않는 부모님이 그 담을 없애야 갰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비난과 가로막힌 소통으로부터 남자는 밤중에 구름이 달을 가려 빛이 없을 때를 틈타 마을에서 떠났다.

전개2 - 춘분

마을에서 떠난 남자는 일단 끊임없이 걸었다. 가급적 사람들을 피해서 산길로 걸었다. 추위가 조금씩 가셔가며 얼어붙어 있던 땅들을 녹이기 위해 봄비가 내렸다. 추위에 말라 붙어있던 나무들이 뿌리에서부터 물을 빨아들여 가지를 살찌우기 시작했다. 마른 나뭇가지에 새싹들이 피어나는 것을 보며 남자는 계속 걸었다. 그는 걸으면서 도망친 스스로에 대해 생각해 보고 있었다. 하고 있던 일을 마무리짓지도 못한 채 거기에 대한 비난들이 듣기 싫다는 이유로 도망쳐 나온 스스로에겐 솔직히 무슨 말을 가져다 붙여도 그 일을 합동화 해서 당당하게 만들어 줄 수 는 없었다. 하지만 스스로에게는 그 것이 필요했다. 남이 아니라 자신에게도 합당한 이유를 대어야지 만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고 앞으로 살아나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끊임없이 걸으면서 스스로를 합리화 시켜 보았다.


일을 하는데 좀 더 잘 집중하고 싶을 뿐이었다. 주의를 딴 데로 잡아끄는 것이 있다면 속시원하게 그것 먼저 해치워 놓고는 해야 할 일에 마음 편하게 집중하고 싶었다. 하지만 다양한 것들이 그의 눈에 들어오면서 마음이 다른 곳으로 가기 시작했다. 해야만 하는 일이 뒷전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스스로가 잘 자제가 되지를 않았다. 차라리 절에 들어가서 스님이 되었다면 좋았을걸 그랬어 라고 생각하며 남자는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았다. 그 안에는 하고 싶은 것을 먼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7살짜리 어린애가 들어 있었다. 떼쟁이일 뿐인 그 어린애는 그다지 귀엽지 않았다. 남자는 자신의 마음속 안에 들어있는 7살짜리 어린애를 데리고 이 곳에서 저 곳으로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떠돌아 다녔다. 남자는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있는 그 7살짜리 어린애가 좀 어른이 되어야 갰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마음속에 있는 그 어린애가 어른이 되는 걸까.

전개3 - 소설

구운 감자를 먹으면서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던 손자는 자신의 행동을 돌이켜 보았다.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있는 애도 그렇게 까지 나이가 많을 것 같지는 않았다. 게으름 부리고 실수한 다음 그것에 대한 뒷감당이 싫어서 도망을 친 셈이었으니 아무리 나이를 많이 쳐주려고 해봤자 그건 8살짜리 꼬마 애의 짓이었다. 스스로의 죄책감에 억눌려서 마음에 여유가 하나도 없었다. 자신이 행한 일에 합당하게 돌아오는 그 뒷감당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그렇기 때문에 도망쳤던 것이다. 자신의 여린 속살이 상처받는 것을 견딜 수 없어서 고슴도치 마냥 잔뜩 가시를 세우게 되어버리는 것. 손자가 곰곰이 생각하는 것을 본 할머니는 고향에서 뛰쳐나온 남자의 이야기를 이어 나가신다. 고향에서 도망 나온 남자는 일단은 자신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갔다. 자신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 장소를 찾아서 발걸음을 옮겨 놓았다. 다른 새로운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던 손녀는 생전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행복하긴 얼마나 행복할 수 있겠느냐며 의문을 제기한다.
할머니는 이 남자의 입장에서는 그랬다고 하지며 이야기를 뒤를 이어 나가신다.


고향을 떠난 남자는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꽤 오랫동안 머무르며 살았었다. 하지만 그는 고향에서처럼 또 다른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또다시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면서 그는 또다시 정붙이고 살던 곳에서부터 도망치는 신세가 되었다. 이번에도 그가 저지를 실수는 고향에서야 크게 다르지 않은 일이었다. 해야 할 일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실패하는 그런 식의 실수 이었다. 이미 한 번 같은 일을 저질러서 고향에서 도망 나왔음에도 똑같은 실수를 그대로 반복하는 스스로를 바보처럼 느끼면서 그는 그 마을에서도 오래 머물지 못하고 또 새로운 마을로 도망가 버렸다.

전개4 - 청명과 곡우

처음에 했던 실수를 고치지 못해 두 번째 마을에서 도망쳐야 했던 남자의 방랑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세 번째 마을에서도 네 번째 마을에서도, 사람들과 막 사귀고 그 곳에서 지낸 지 오래 지나지 않아 남자는 다시 실수를 저지르게 되고 그는 그 실수에 대해서 다른 사람이 자신을 비방하기 전에 다른 곳으로 다른 곳으로 도망치는, 어찌 보면 쳇바퀴 같은 굴레였다. 12번째 마을에서였던가? 그 남자는 열 두 번째 마을에선 생각보다도 오래 버티면서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 하지만 한 해가 지나고 나자 실수를 저지른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전까지 실수를 저지르고 도망쳤던 것처럼 그는 그 마을에서부터 도망쳤다. 열한 반의 마을을 거치면서 진심으로 마음을 열어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것 대신 겉으로만 대면 사귀는 그 얕은 인간관계에 익숙해져서 1년이 넘는 시간동안, 오래도록 지속되는 인간관계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었다. 더 오랫동안 사귀게 되면 그 사람과는 어떻게 지내야 하는 걸까? 어느 정도까지 내 사적인 영역을 그 사람과 공유해야 있는 걸까. 결국 남자는 그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도망치듯 사람들 사이에서 또 다른 무리의 사람들 사이로 도망 다녔다.


100여 번째 마을에서였던가. 그 마을엔 아주 커다란 산이 있었다. 남자는 그 산에 올라가서 살아야 갰다고 생각하고는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하루를 꼬박 올라가고 능턱의 산지기의 집에서 잠이 들었다가 산지기로부터 정돈만 하면 살 수 있는 작은 산장이 자신의 산장으로부터 반나절 거리에게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남자는 이번에야말로 자신에게 맞는 생활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산의 높은 곳에서 혼자 살면서 가끔 내려와 사람들을 만나거나 혹은 산을 넘기 위해 자신의 산장에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잘 곳을 빌려주면서 살면 딱 자신에게 어울리겠다고 생각했다.

전개5 - 대설

산 마을에 눈이 내려 갇힌 지 어느새 한 달이 더 넘게 지나 있었다. 매일 같이 덧문을 열어, 혹시 누군가가 눈 굴을 파 들어오고 있지는 않을까 확인했지만 아무런 기척도 볼 수 없었다. 한 달 동안 눌려 있던 눈이 더 이상 삽으로 쉽게 파낼 수 있는 부드러운 눈이 아니라 정과 곡괭이로 바위를 깍아내듯 파들어가야 하는 단단한 얼음이 되어서 늦어지는 것일 수도 있었다. 어쩌면 마을 주민들은 이 세 사람이 눈 속에서 이미 죽어버렸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부엌과 부엌뒤켠에 비축해 두었던 땔 깜은 벌써 반도 넘게 써버렸고 광에 모아두었던 식량도 더 이상 그다지 넉넉하지 못했다. 하다 못 해 바깥과 연락이 되어 누군가가 구하러 오고 있다는 희망만이라도 전해들을 수 있다면 목숨을 부지하는데 훨씬 도움이 되련만 할머니의 집엔 외부와 연락이 될만한 그 어떤 것도 구비되어 있지 않았다. 할머니가 식어 가는 아궁이에 새 땔감을 집어넣고 화로에 구워먹던 감자와 고구마로 감자전과 고구마 밥을 지어 항아리 안에 잘 재워둔 김장김치와 함께 상을 차려 방으로 가지고 들어갔다. 아이들은 할머니가 차려준 밥상을 먹고는 이불 안에서 뒹굴 뒹굴 거리며 할머니가 그 남자의 뒷 이야기를 해주기를 기다렸다.


할머니는 솥 뚜껑 위에다가 지난 가을에 저장해둔 사과를 얇게 썰어서 구워 아이들에게 간식으로 가져 오셨다. 한 달이나 다른 사람들과 연락도 끊어지고 이 작은 집에 감금되다시피 해서 지내면서도 아이들은 그것에 나름대로 잘 적응해 가며 살고 있었다. 두 아이는 한 아이가 눈을 감고 있는 동안 다른 아이는 봄의 들판 여름의 시냇가 가을의 과수원을 실감나게 묘사하면서 마치 자신이 그 곳에 있는 것처럼 상상하는 놀이를 하면서 지냈다. 할머니는 두 아이가 노는 것을 조금 안타깝게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아이들에게 다시 이젠 산꼭대기에서 살게 된 남자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위기1 - 소만

사람보다 구름이 더 자주 방문하는 산장에서 살면서 남자는 자신이 정말 좋은 피난처를 찾았다고 생각했다. 가끔 아래 산장에 가서 식료품을 좀 받아오고 하루 종일 마치 자신이 새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풍경 속에서 지내는 것이 아주 행복했다. 사람들과 섞이지 않으니 실수할 일도 없었다. 자신이 저지르는 실수의 피해는 자기 홀로 받을 뿐이었다. 사람대신 구름과 대화하는 법을 익히고 난 다음엔 모든 것이 다 행복했다. 가끔 산장에 오는 사람들에게선 제정신이 아닌 괴짜 취급을 받았지만 그 정도야 충분히 감안할 수 있는 문제였다. 가끔 사람들이 전해오는 소식들을 들으면서 요즘 사람들은 무슨 생각들을 하고 사는지 전해 듣는 것 정도로도 넉넉하게 사람이라는 존재들에 대한 관심과 혐오를 동시에 유지 할 수 있었다.


남자는 산을 넘어 다니는 여행자들에게로부터 소식을 하나 듣는다. 사고로 온 식구가 단 한 순간에 모두 죽어버린 가족의 이야기 이었다. 남자는 여하튼 나라에선 제대로 일하는 게 아무 건 아무것도 없구나라며 그 이야기를 전해준 여행자들과 나눈다. 여행자들이 다시 산에서 내려간 후로 남자는 여느 때처럼 평화롭게 산에서 생활한다. 가끔 여행자들중에 풍경에 반해 여기서 산장일 을 돕고 싶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남자는 혼자 있기를 고집했다. 혼자서 산장에 있으면서 지내는 것이 가장 좋았다.
어느 날엔가 산 위의 하늘 전체가 새파란 맑은 하늘이었다. 대화할만한 구름도 하나 없이 산장 밖의 작은 공터에 의자를 하나 꺼내놓고 앉아서 멍하니 건너편 산의 나무들이 바람에 잎사귀 흩날리는 것을 바라보던 남자는 문득 얼마전 여행자들에게서 들었던 소식들을 머릿속에서 하나씩 되 끄집어내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그러다 가장 최근에 들었던 사고로 온 식구가 한 번에 모두 죽어버렸다는 그 소식을 정리하면서 가족의 이름들이 꽤나 낯익다는 생각을 한다. 그 가족을 내가 알던가 하고 어색하던 그 남자는 자기 이름도 기억이 잘 안 난다는 사실을 문득 기억해 낸다. 그저 `두 번째 산장의 산지기`라고만 불릴 뿐 이젠 이름을 쓸 일도 없었던 것이다.

위기2 - 망종

느긋하게 산 위에서의 천국 같은 생활을 즐기던 남자는 어느 날 첫 번째 산장에서 온 구조요청봉화를 보고는 급히 내려온다. 절벽지대에서 한 무리의 여행객들이 조난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남자는 산장에서 종종 사용하던 등산 도구를 챙겨 첫 번째 산장 주인과 함께 구조에 나선다. 꽤 많은 인원들이었던 탓에 첫 번째 산장과 두 번째 산장에서 나눠서 수용하기도 하는데 두 번째 산장의 손님들 중 몇 명은 심각한 정신적 상처를 받은 건지 표정들이 굉장히 어두웠다. 그렇게 치료를 해주고 여행객들이 돌아가고 나자 북적거리던 산장 또한 다시 조용해 졌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 첫 번째 산장보다 두 번째 산장으로 여행객들이 더 많이 몰리기 시작했다. 나중에 첫 번째 산장의 주인이 여행객들에게 물어보니 두 번째 산장의 주인인 남자의 이야기가 소문이 번져 나갔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다친 손님들을 정성껏 돌본 것이 좋은 소문이 나게 된 것이다.
그 후 두 번째 산장의 산지기는 꽤 바빴다. 예전엔 사람들이 적을 땐 첫 번째 산장에서 묵고 두 번째 산장에선 물이나 먹고 가는 정도였으면 이제는 첫 번째 산장에서 좀 쉰 다음 일부러 두 번째 산장까지 무리해서 올라와 자고 가는 사람들이 생겼던 것이다. 이건 첫 번째 산장 지기에게도 두 번째 산장 지기에게도 불행한 일이었다. 첫 번째 산장 지기는 찾아오는 사람이 줄었기 때문에 슬퍼했고 두 번째 산장 지기는 혼자만의 시간을 침해받았기 때문에 그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첫 번째 산장의 산지기는 마음이 넉넉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생겼다고 해서 두 번째 산장의 산지기에게 심술을 부리거나 하는 일 없이 항상 식료품과 향신료들을 전달 해다 주었다.

위기3 - 하지

눈 속에 갇힌 지 어느새 두 달이 흘러 있었다. 한동안 날이 풀려 눈이 좀 녹으려나 했었는데 그 후로도 녹을 만 하면 두어 번은 더 눈보라가 몰아쳐서 거의 얼음지층에 파묻힌 것처럼 단단하게 파묻혀 갔다. 집에서 열이 뿜어져 나오니 덧문 밖으로도 어느 정도의 거리까지는 녹았지만 두어 발자국 밖에서부턴 바깥의 두꺼운 얼음 층에 갇혀 급속도로 식어버리는 탓인지 썩 멀리까지 얼음이 녹지는 않았다. 광에 식료품들이 점점 바닥을 들어내고 있었다. 할머니는 딱히 말을 하지 않으셨지만 아이들도 어느 정도는 눈치채기 마련이다. 더 이상 화로에 구운 고구마가 쫀득거리지 않는 대던가 군밤에서 윤기가 더 이상 나지 않는 다던가 하면 말이다. 그 외에도 구워 먹는데 질려서 이것저것 다른 방식으로 먹어보려고 해도 부재료가 모자라서 그렇게 먹을 수가 없었다. 아이들은 투정을 부렸지만 할머니는 묵묵히 할머니가 만들 수 있는 요리 중에 그나마 아이들이 군소리 않고 먹는 음식을 계속 만드셨다. 그것도 한 2주쯤 지났을 때부턴 잠잠했다.


땔깜도 바닥에 가까워져 갈수록 습기에 상해있던 오래된 장작들을 태우기 시작하자 숯이 제대로 만들어지질 않아 더욱 더 많이 태우지 않으면 집의 온도가 유지되질 않았다. 불을 조금씩 태우면서 장작들을 오래도록 아낄 것인지 아니면 마지막 땔깜까지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는데 쓸 것인지를 결정해야 했다. 할머니는 절반씩 선택했다. 그동안 때워오던 온도는 조금 낮추고 대신 땔깜을 조금 더 오래 보존하는 쪽이었다. 온도를 낮추는 것은 아이들에겐 별 탈이 없었지만 할머니의 몸에 더 영향을 많이 끼쳤다. 할머니의 몸이 좋지 않아지자 아이들은 이전보다 더욱 예민하게 절망을 느끼며 감정표현들이 격렬해져 갔다. 할머니는 만약에 땔깜을 다쓰게 되면 그 다음엔 무엇을 태울 수 있을지 고민하셨다.

절정1 - 소서

할머니의 몸 상태가 나빠지자 손녀와 손자 중에 더 예민해진 것은 손자 쪽이었다. 처음에 밧줄을 제대로 묶어 두지 않는 실수를 저질렀던 탓인지 할머니와 누나가 자신을 바라보기만 해도 그 일로 자신을 비난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해 남에게 더욱 거칠게 굴었다. 할머니는 그런 손자의 충동을 이해하고 용서하고 넘어가셨지만 누나인 손녀는 아니었다. 처음에야 동생이 자신의 잘못 때문에 신경이 예민해져서 그러려니 보다 넘어 갔었지만 그 일이 반복되기 시작하자 오래도록 동생에게 너그럽게 대하지는 못했다. 할머니의 몸이 나빠지면서 자신들에게도 느껴지는 어떤 위협,- 어쩌면 죽음에 이를지도 모를 경험을 하고 나자 그들은 더욱 이기적이 되고 그것이 자신의 생존에 이득이 되는 것처럼 굴었다. 구석에 아껴 먹으려고 숨겨놨다가 결국 곰팡이가 피어버린 찐 고구마라던 지 나눠먹지 않고 혼자 먹으려고 한 입에 가득 집어넣어 먹는 버릇이 들려 아이들은 짧은 기간 동안은 도리어 몸이 둔해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살이 쪘다.


할머니는 아이들이 찌는 것에 대해선 괜찮다고 생각 하셨지만 두 아이가 티격태격 거리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하셨다. 특히 손자아이가 나타내는 자기 방어적인 공격성향은 더더욱 할머니의 근심을 자아냈다. 차라리 그 아이가 기대하고 있는 대로 그 아이를 비난한 다음 용서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지만 할머니는 그것이 의태까지 쌓아 왔던 아이들과의 신뢰를 깨버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할머니는 손녀에게 동생이 격고 있는 심적 고통에 대해 최대한의 이해를 구했다. 손녀는 어느 정도는 피상적으로 이해했지만 동생이 정말로 자신에게 달려들며 이를 갈고 있을 때는 그 이해도 순식간에 빛이 바래고 말았다. 동생은 이 얼음에서 나가고 나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집중했지만 누나는 얼음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집중했다. 두 아이의 마찰은 피 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절정2 - 대서

여느 때처럼 산장지기 일을 하고 있던 남자는 어느 날엔가 자신을 아는 사람을 손님으로 맞게 된다. 예전과는 모습이 많이 달라졌던 건지 산장에서 머무는 내내 계속 힐끔 힐끔 쳐다봐서 성가시게 했던 그 사람은 떠나는 날이 되어서야 혹시 내가 아는 아무개가 아니냐며 새삼스레 반갑게 인사하고는 신기한 듯이 산장을 떠난다. 손님들이 떠나고 난 후 뒷정리를 하던 남자는 새삼 내 이름이 그랬다니 하고 신기해한다. 그러다가 예전에 들었던 온 식구가 사고로 사망한 가족들의 이름이 생각나고 거기서 자신의 이름과 유사성을 찾은 남자는 막연하게 내가 그 사람들의 가족이었던가.. 라는 생각을 해낸다. 벼락 맞은 듯 충격이 일었다던가 하는 것도 아니고 마치 마른 종이에 물이 스며들듯이 빠른 속도로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그리고 남자는 자신이 도망쳤던 것을 기억해 냈다. 왜 도망 쳤던 것인지 그 이유도 기억해 냈다. 하지만 그 이유랍시고 기억난 것이 너무나 하찮고 어이없어서 남자는 도리어 거기에 당황해 버리다. 왜 고작 그런 이유로 도망 쳤을까. 어째서 그런 것 때문에 돌아가질 못했을까.


그건 너무나도 바보 같은 일이었다. 쓸데없이 움츠러든 어리석은 자아였다. 그 순간 그 사람이 내게 터트리는 불평에 겁먹지 말고 그 문제를 응시 했었더라면 해결될 문제였다. 한 순간의 비난에 겁먹었다가 평생동안 도망 다니는 신세가 되었던 것이다. 동시에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비난 사람에게 얼마 커다란 상처가 되는 것인 가를 상기해 낸다. 무심하게 이야기한 말이 사람에겐 때론 무시무시한 트라우마를 남기고 그 것은 마치 나비효과처럼 아무것도 아닌 공포로도 사람의 일평생을 뒤흔들어 놓는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는 것이다.
남자는 산을 내려가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 보기로 한다.

절정3 - 처서와 백로

손자는 누나와 할머니에게 자신의 게으름에 대해 사과했다. 자신의 감정만을 바라보느라 두 사람의 기분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했다. 자신의 실수 때문에 이 곳에서 죽게 될지도 모를 두 사람에게 사과했다. 그렇게 사과하는 손자의 눈에서는 할머니의 이야기에서 그 남자가 그러했다는 것처럼 눈물이 흘렀다. 한 두방울 떨어지다가 그치는 것이 아니라 눈물이 흐르고 마르기 전에 또 새로운 눈물이 흐르고 그 눈물이 마르기 전에 새 눈물이 흘러 한 마디 한 마디 내뱉는 순간 내내 울고 또 울고 있었다. 처음엔 울먹거리지 않았지만 마지막 말을 내뱉는 순간에는 눈물에 말이 젖어 비통하고 서러운 목소리로 용서를 구했다. 그런 목소리를 듣고 누가 그를 용서하지 않을 수 있을까. 손녀는 다가가서 동생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자신의 마음속에 남아있던 동생을 미워하던 마음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자신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고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스스로 되돌이키지 못해 슬퍼하는 동생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랫목에 기대어 흐느껴 우는 손자와 그를 달래는 손녀를 보면서 할머니는 희미하게 웃으셨다. 할머니의 이야기가 진짜인지 혹은 그저 손자에게서 사과를 끌어내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였는지 더 이상 두 아이는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았다. 할머니는 이 아이들에게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지기를 바랐다. 한 번의 잘못으로 이 곳에서 죽게 되지 않기를 바랐다. 우는 손자의 얼굴을 명주 손수건으로 훔치고 할머니는 그 남자의 마지막 이야기를 해주겠다고 하신다. 두 아이는 이불을 돌돌 만 상태로 숯이 죽어가는 화로에 둘러 앉아 할머니가 들려주는 그 남자의 이야기가 어떻게 끝나는 지를 귀 기울여 들었다. 그 남자는 그 후 고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아무도 남지 않았다고 해도 그 곳은 여전히 한 시절을 자라났던 고향임을 부정 할 수 없었다.

결말1 - 상강과 한로

아무도 남아있지 않은 고향에 돌아온 남자는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평생에 걸쳐왔던 그 도피의 생활동안 처음엔 그토록 미친 듯이 그리웠던 고향이 그저 여행중 지나쳤던, 그 저 좀 오래 머물렀던 뿐인 다른 마을과 별반 다르게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필요로 했었던지. 보고 싶었던 사람들이 살아 있을 땐 미처 오지 못하고 그들이 다 떠나고 나서야 돌아와 그들을 그리워하는 자신의 마음속엔 아직도 어린 아이가 들어있다고 남자는 생각했다. 고향은 건물들도 많이 새로 지어져 있었고 가게엔 모르는 사람들의 얼굴이 많아 그가 그 곳이 자신의 고향이었다고 말해도 아마 아무도 알아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남자는 어린 시절을 보냈던 자신의 집을 찾아갔다. 큰 도로변은 자주 새 건물이 들어섰으니 이미 어린 시절 그 자리에 무엇이 있었는지 조차 기억할 수 없었지만 집이 있는 작은 골목골목들은 집은 새로 지어졌을 지언정 그 좁은 도로들은 그대로 남아 있어서 향수에 젖을 수 있었다.


남자는 오랫동안 비어있던 고향집의 대문 앞에 서있었다. 그는 열쇠가 없었지만 그 옛날 가족끼리 문을 잠그고 걸어가면 항상 열쇠를 넣어두던 작은 항아리 안에 그대로 열쇠가 남아있었다. 녹이 잔뜩 슬어있어 대문의 열쇠 구멍에 넣고 돌리는 것이 굉장히 뻑뻑했지만 그럭저럭 문은 열렸다. 고향집의 정원은 나무들이 웃자라고 온갖 잡풀들로 빼곡해서 정글을 연상시킬 정도였다. 대문에서처럼 현관 옆의 선반 위에서 현관 열쇠를 찾은 남자는 먼지가 가득 덮여 있던 방안의 가구 사이들을 돌아보았다. 아마 이것들을 전부 치우고 정원을 다듬어 예전의 모습을 찾는데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할 터였다. 그는 입고 있던 옷의 상의를 벗어서 정원의 장식용 돌절구 안에 남아 있던 빗물에 적셔서 집안의 구석부터 닦아 나가기 시작했다.

결말2 - 입동

식량도 거의 다 떨어져 가고 장작도 얼마 남지 않은 안방에서 화톳불 또한 사그라져 가고 있는데 할머니와 손녀와 손자는 힘이라도 아껴보자는 의미에서 방안에 세 사람 다 누워 있었다. 할머니가 해주던 평생을 돌아다니던 남자의 이야기를 생각하며 손자는 만약에 누군가가 와서 할머니와 누나와 자신을 발견하고 살게 된다면 자신도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어떤 사람이었던지 간에 여행중인 사람은 도와줘야 하는 여행자라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 냉골의 방안에서 체온으로 데워진 두꺼운 이불 속에서 누워 옆에 있는 할머니와 누나의 손을 꼬옥 잡고 누군가의 구조를 기다리면서 할머니의 손자는 그런 생각을 했다.


누군가가 구하러 와서, 마침내 저 단단한 얼음벽에 출구가 생겨서 숨이 끊어지기 전에 살아남게 된다면 손녀는 이 집에서 나와 다른 사람들과도 이야기를 나누고 교제도 쌓아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을 너무 두려워하고만 살았던 것이 아닌가 라는 자기의문이 들었었다. 어떻게 보면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은 운일지도 모른다. 새롭게 사귀는 사람이 꼭 좋은 사람이리란 확실한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하지만 변화를 모른 채 자신이 손닿는 범위 내에서만 살아가는 것 또한 희망도 없고 가망도 없는 짓이었다. 하다 못 해 자신이 마을 사람들과 교제가 있었다면 그 사람이 나를 구하러 와줄지도 모른 다는 희망이 있었을지도 몰랐다. 지금의 그녀에겐 누군가가 반드시 와서 구해 줄거라 는 믿을을 가질만한 친분이 너무나도 없었다. 할머니는 누워 있는 손녀와 손자를 위해서 콧노래를 나지막하게 부르셨다. 절망에 빠지지 말자는 뜻도 있었고 방안이 너무 조용했던 탓도 있었다. 할머니의 나지막한 콧노래를 들으면서 아이들은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