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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절기 이야기단오의 유래와 중국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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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오의 유래와 중국 전설

단오는 설날, 한식, 추석과 함께 4대 명절의 하나로, 음력 5월5일이다. 단오(端午)라는 단어 자체가 5월 5일이라는 뜻인데, 즉 ‘단(端)’은 첫 번째를 의미하고, ‘오(午)’는 오(五), 곧 다섯의 뜻이므로 ‘초닷새’가 된다. ‘수릿날’, ‘중오절(重五節)’, ‘천중절(天中節)’, ‘단양(端陽)’ 등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열양세시기(列王歲時記)』에는 이 날 밥을 수뢰(水瀨: 물의 여울)에 던져 굴원을 제사지내는 풍속이 있으므로 `수릿날`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단오는 중국 초나라 회왕 때의 충신 굴원이 나라가 망하자 이를 한탄하며 멱라수에 뛰어들어 자결한 것을 기리는 제사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한다. 그날이 5월 5일 이었다고 한다. 이것이 우리나라에 전해져 단오가 되었는데, 그 유래의 자세한 내막은 아래와 같다.



기원전 300년 경, 중국은 ‘전국시대’라고 해서 강대국인 진나라가 나머지 약소국인 여섯 개 나라를 압박하던 시기였다. 이 나라들 중 초나라가 있었는데, 회왕 아래에 굴원(屈原)이라는 충신이 있었다. 그는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내부적으로 강력한 개혁정치를 주창하는 한편, 나머지 여섯 개 나라가 힘을 합쳐 진나라에 대항해야 한다는 이른바 ‘합종(合從)’책을 지지했다. 백성들은 그를 사랑했으나, 너무나 당연하게도 기득권층인 간신들은 그를 미워했다. 이들의 간사하고 끈질긴 모함에 회왕은 솔깃해져 굴원을 권력의 핵심에서 제외하게 된다.

왕이 바뀌어 태자 횡이 경양왕이 되었지만 굴원은 여전히 인재를 등용하고 정치제도를 혁신할 것을 주창하고 상소하였다. 그러나 간신모리배들에게 둘러싸인 경양왕은 옳고 그름을 분별할 능력을 상실하고 있었다. 그는 굴원을 국경지대로 유배 보내버리게 된다. 유배지에서도 굴원의 충성은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경양왕은 그를 다시 부르지 않았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 더욱 강성해진 진나라는 드디어 초나라를 공격했다. 못난 임금의 당연한 최후로서, 경양왕은 수도를 버리고 도망가 버리게 된다.
이 소식을 들은 굴원은 조국이 망하고 백성들이 진나라의 폭정에 시달리는 것을 차마 지켜볼 수 없어 목 놓아 울다가 커다란 돌덩어리를 안고 멱라강에 뛰어들어 자결했다고 한다.



이후 초나라 지역인 중국 남동부에서는 매년 5월 5일, 용모양의 배로 경주를 하고 찹쌀에 대추, 돼지고기, 팥, 호두 등을 넣고 대나무나 갈대 잎에 싸서 쪄 먹는 만두류의 음식을 먹으며 굴원을 기리게 된다. 이 행사가 우리나라에 건너와 단오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