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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절기 이야기입춘(立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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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立春)

- 농가에서는 입춘에 보리 뿌리를 뽑아 뿌리의 많고 적음에 따라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맥근점(麥根占)을 쳤다. 여주인이 소복을 하고 땅의 신에게 세 번 절하고 보리뿌리를 뽑아 세 가닥이면 풍년, 두 가닥이면 평년, 한 가닥이면 이면 흉년이 든다고 믿었다.

- 부녀자들은 오곡을 솥에 넣고 볶아서 맨 먼저 솥 밖으로 튀어나온 곡식이 그 해에 풍년 들 곡식이라고 믿었다.

- 입춘에는 `입춘굿`이라는 큰 굿을 한다. 많은 사람들이 구경하는 가운데, 농악대를 앞세우고 가가호호를 방문하여 걸립(乞粒)을 하고, 상주(上主), 옥황상제, 토신, 오방신(五方神)을 제사하는 의식도 있었다.

- 만물을 소생시킨다고 해서 비 내리는 것을 반겼다.

- 입춘축(立春祝)이라고 해서, 각 가정의 대문이나 기둥, 대들보, 천장과 벽 등에 ‘입춘대길(立春大吉)’과 같은 좋은 글귀들을 써서 붙이는 풍속이 있었다.
춘축(春祝) 또는 춘첩자(春帖子)라고도 한다. 집안의 사람이 직접 쓰거나 글을 쓸 줄 아는 사람이 없으면 남에게 부탁해서 붙이기도 했다. 다만, 상중에 있는 집은 입춘축을 하지 않았다.

- 적선공덕행(積善功德行)이라고 해서, 입춘날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착한 일을 꼭 해야 연중의 액(厄)을 면한다는 ‘적선공덕(積善功德)’의 복지(福祉)풍속이 있었다. 밤중에 몰래 냇물에 가서 징검다리를 놓는다든지 가파른 고갯길을 깎아 놓는다든지 다리 밑 동냥움막 앞에 밥 한 솥 지어 갖다 놓는다든지 행려병자가 누워있는 곳에 약탕을 끓여 몰래 놓고 온다든지 하는 것들이 있었다.



- 입춘(立春) 전후에 받아 둔 빗물을 입춘수(立春水)라고 하는데, 이 물로 술을 빚어 마시면 아들 낳고 싶은 서방님의 기운을 왕성하게 해준다는 믿음이 있었다.

- ‘선농제(先農祭)’라고 해서 신라 때부터 전해 내려오는 풍년기원제사가 있었다. 입춘(立春) 후 첫 해일(亥日)에 선농제, 입하(立夏) 후 첫 해일에 중농제(中農祭), 입추(立秋) 후 첫 해일에 후농제(後農祭) 도합 세 차례의 제사를 지냈는데, 농사를 다스리는 신(神)인 신농(神農)이 제사의 대상이며, 조선왕조에 들어와서는 동대문 밖에 선농단을 짓고 선농제만을 지내왔다. 그래서 동대문 밖에 이 제사에서 비롯된 제기동(祭基洞)과 전농동(典農洞)이라는 지명이 아직도 있다.

- 목우(木牛) 놀이라고 해서, 함경도 지방의 풍속이 있었다. 입춘이 되면 나무로 소를 만들어 관아(官衙)로부터 민가(民家)까지 끌고 나와서 돌아다니는 풍속이다. 이는 옛날 중국에서 흙으로 소를 만들어 내보내던 풍속을 모방한 것이고, 농사를 장려하고 풍년(豊年)을 기원하는 뜻을 지니고 있다.

- 아홉차리라는 입춘 풍속이 있었다. 모든 일을 ‘아홉’에 맞춰 부지런히 되풀이 하면 한 해 동안 복을 받는다는 교훈적인 세시풍속으로서, 밥을 먹어도 아홉 번 나눠먹고, 매를 맞아도 아홉 번 맞고, 나무꾼은 아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