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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별자리 개요

천문(天文)은 하늘의 글월이자, 하늘의 무늬이다. 아주 오래된 옛날부터 우리 선조들은 하늘에 새겨진 글월과 무늬를 통해 하늘을 해석하고 그 의미를 읽으려고 노력해 왔다. 점성술(占星術)은 바로 천체현상을 관찰하여 인간의 운명이나 장래를 점치는 방법이며, 이를 통해 인간사의 길흉을 예측하고 경험을 쌓고자 노력해 왔다.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천지인 합일 사상에 따라 하늘의 이치에 따라야 인간다운 삶이 이루어지고 다시 죽어서는 하늘로 올라간다고 여겼던 것이다.

우리 별자리는 서양 별자리와 비교해도 그 개(삭제)수에 있어 큰 차이를 보인다. 고대 서양은 하늘을 48개의 별자리로 바라보았지만, 고대 동양에서는 이미 300여개나 되는 별자리들로 하늘을 촘촘하게 엮었다. 우리 별자리는 북쪽 하늘의 중심에 하늘나라 임금이 사는 곳인 자미원, 신하들이 임금을 보좌하며 정사를 펼치는 태미원, 백성들의 시장이 있는 천시원 등 3원(三垣)이 있다. 또 하늘의 지방에 해당하는 28수(宿)는 각각 동방, 서방, 남방, 북방으로 7개씩 별자리가 속해 있다. 중국과 함께 2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가장 체계적인 천문관측기록을 남겨온 천문의 나라. 이제 우리에게 있어 고천문(古天文)은 단순히 별자리가 아니다. 천문은 바로 그 시대의 사상과 문화의 총화이자 핵심이기 때문에 그 속에 담겨진 우리 조상의 숨결을 느끼고, 잊혀졌던 우리 하늘과 천문에 대한 관심을 키우는 일이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성호사설 천지문(天地門)

조선 후기의 학자인 성호 이익(李瀷)의 대표적 저술이자 사성서는 바로 성호사설이다. 이 책은 <천지문(天地門)>, <만물문(萬物門)>, <인사문(人事門)>, [경사문(經史門)], [시문문(詩文門)] 등이 실려 있는데 그 중 천지문에는 태미원과 천시원을 설명하는 곳이 있다. 우리 선조들이 하늘을 바라보는 생각과 기준을 잘 엿볼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하늘의 성좌에는 세 곳의 원(垣)이 있다. 자미원 이외에 태미와 천시가 있어 이들이 한 곳에 나열되어 이를 삼원(三垣)이라 한다. 어찌하여 그러한가? 생각해 보면 자미는 임금의 궁중, 태미는 행정을 담당하는 정부, 북두는 그 중간을 가로질러 명령을 출납하는 임무를 맡는데, 삼태가 이를 보좌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그 쓰임이 더욱 중요하다. 그러나, 세상에서 이용도의 빈번과 물자의 출입은 시장(市)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다. 시장이란 물자가 모여드는 곳이다. 존귀한 천자도 부(富)는 물자에 의존하는 것이요, 국가의 성쇠와 인간의 죽고 삶이 모두 여기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성문(星文)이 이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면 사람들은 힘써 재물이 모일 것을 알게 된다.

현천 충효재 상량문

경기도 화성군 매송면 야목1리에는 현천 충효재가 있다. 이 건물은 창녕조씨의 현천종회에 해당하는 건물이며, 삼문(三門)을 들어서면 9층 계단 위에 드높이 자리한 충효재가 다가선다. 정당이라는 건물의 정면에는 상량문(上樑文)이 걸려 있는데, 상량문이란 집을 새로 짓거나 고칠 때의 내력과 이유, 공사한 날짜와 시간 등을 적어놓은 글이다. 그런데 이 현천 충효재 상량문에는 천문의 이치를 담은 명당에 건물을 지어 자손만대로 번창하기를 기원하는 내용이 실려 있다.

현천충효재 상량문
어기여차 들보를 동으로 던지니
칠보산 동쪽에 서광이 비치네
옥녀탄금(玉女彈琴) 장부혈(場浮穴)은
우리나라 제일가는 만산 중 대지로세
어기여차 들보를 서쪽으로 던지니
천마같은 청룡이요 서쪽은 백호로다
산형을 살펴보고 풍수설 들어보소
왕양(汪洋)한 조수가 서쪽에 왕래하네
어기여차 들보를 남으로 던지니
혁혁(奕奕)한 문필봉이 남쪽에 솟았네
일월과 삼태성이 안산처럼 비추었는데
봉황이 남쪽에서 상서를 드리네
어기여차 들보를 북으로 던지니
자미성 북쪽으로 뭇별이 공수(拱手)하네
경천위지 삼백도에
천축과 지축이 북쪽에 중심이라
어기여차 들보를 우으로 던지니
일월과 성신이 저 위에 있도다
인간의 오복(五福)을 어찌 다 갖추리
천상의 삼광(三光)이 위에서 비취네
어기여차 들보를 아래로 던지니
돈목(敦睦)한 여러 친척 한자리에 모였네
천추만세 오래도록 봉제향 하는 날엔
수많은 자손이 단란하게 모여 앉으리라

대들보는 건물을 세우는데 가장 중요한 기둥이 된다. 그 대들보를 동쪽으로 던지니 서광이 비치는 곳이요, 서쪽으로 던지니 청룡과 백호가 있는 풍수의 명당이다. 그리고 다시 대들보를 남쪽으로 던지니 일월과 삼태성의 기운이 비치는 곳이요, 북으로 던지니 북쪽 하늘 자미성의 축원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대들보를 위로 던지니 일월 성신이 빛나고 아래로 던지니 온 친척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곳에서 오래도록 제사를 지낸다면 자손 대대로 번창하리라는 내용을 담았다. 이 상량문을 통해 하늘과 땅과 사람의 조화를 이루려는 의미를 엿볼 수 있다.

천지서상지(天地瑞祥志)를 둘러싼 견해

천지서상지는 현재 일본 존경각 문고에 소장된 당나라 때의 희귀한 서적이다. 하늘과 땅에서 일어나는 각종 상서로운 현상들을 인간사에 대응시켜 해석한 일종의 천문지리서에 해당한다. 그런데 얼마 전 이 책을 둘러싸고 신라 문무왕 대에 활약했던 설수진(薛守眞)이 편찬한 천문서다 아니다라는 견해가 활발히 제기돼 학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

천지서상지는 신라의 설수진이 편찬한 천문서

일본 학자들은 이 책이 “당 고종 인덕(麟德) 3년에 천문과 역술을 담당하던 살수진(薩守眞)이 왕명에 의해 편찬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부산외대 권덕영 교수는 ‘천지서상지 편찬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란 논문에서 천지서상지의 실제 저자는 신라시대의 설수진(薛守眞)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 이유로는 7세기 중엽 신라 문무왕 대에 병법과 천문지리에 밝았던 설수진이라는 인물이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또 책이 쓰일 무렵, 당나라는 ‘건봉(乾封)’이란 연호를 사용했는데, 이미 폐지된 지 1년이 지난 ‘인덕’이라는 연호가 쓰였다는 점이다. 이는 지리적으로 중국과 떨어진 신라에서 ‘인덕’이란 연호를 여전히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말해준다. 또한 신라 문무왕과 부여 융과의 사이에 맺은 ‘취리산맹문’이 소개되어 있고, 삼국시대에는 살(薩)과 설(薛)이라는 한자를 바꿔 쓴 사례도 종종 있다고 한다. 이러한 정황으로 볼 때 ‘천지서상지’라는 천문서는 신라시대의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천지서상지는 당나라 살수진이 편찬한 천문서

정신문화연구원의 김일권 교수는 [천지서상지의 역사적 의미와 사료적 가치 : 찬자(撰者)에 대한 재검토와「고려사」소인(所引) 기사 검토]라는 논문에서 위 논문에 반박 내용을 밝히고 있다. 천지서상지는 당 고종 건봉(乾封) 원년(666), 천문과 역(曆) 등을 담당하던 태사(太史)인 살수진(薩守眞)의 저작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천지서상지에 인용된 다양한 상서나 재이, 의례, 문헌 등을 살펴볼 때 당나라 태사국(太史局)과 같이 방대한 천문 자료를 접할 수 있는 자만이 쓸 수 있는 내용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신라시대의 병법 전문가에 불과한 설수진이 천지서상지와 같은 대저작을 편찬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물론 설수진이 [삼국사기]에도 기록되어 있고, 고대 사회에서 병법가와 천문가가 전혀 무관하지는 않다고 해도 천지서상지의 저자로 보기에는 무리라는 것이다. 또한 신라 문무왕과 부여 융과의 사이에 맺었다는 ‘취리산맹문’의 자세한 주석 또한 각종 의례자료를 직접 접할 수 있는 당나라 태사의 신분에서 접하기 어려운 자료는 아니라고 전한다.
천지서상지가 당나라 시기에 출현한 것은 당나라 건국의 정통성을 천문으로 담아내고자 했던 것이며, 남북조의 대 혼란기를 겪으면서 흩어지고 혼란스러웠던 천문, 역법, 상서, 재이에 대한 총정리 작업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김일권 교수는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천지서상지는 우리와 전혀 연관이 없는 것일까? 고려사 정종 6년(1040)과 인종 8년(1130)의 기록에는 바로 이 천지서상지가 언급되어 있다. 또한 고대 고려와 일본에 천지서상지가 유통되었다면 통일신라 시기에 한반도에 유입되었던 것이 고려나 일본으로 전해진가 아닌가 하는 설정도 해보고 있다.

이처럼 천지서상지와 관련한 다양한 의견은 앞으로도 계속 연구되어야 할 과제이다. 이는 우리나라 천문 연구에도 새로운 시사점을 던져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들이 하나하나 모였을 때 우리 하늘을 우리 시각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좀더 확실히 세워질 수 있을 것이다.


- 노중평, [유적에 나타난 북두칠성], 1997, 백영사
- http://cdalbum.wo.to/cho/위대한조상/1충효재상량문.htm
- 네이버 백과
- 연합뉴스, [일본에 있는 고대 천문책은 신라 작품], 1999.07.13
- 이순지 저, 김수길·윤상철 공역, [天文類抄], 1998, 대유학당, p.2~6
- 박창범, [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 2002, 김영사, p.183
- 김일권, [天地瑞祥志의 역사적 의미와 사료적 가치 : 撰者에 대한 재검토와 「高麗史」所引 記事 검
토], 2002. 6「한국고대사연구」26집, 한국고대사학회, p.221-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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