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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이야기풍수기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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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기초

풍수사상을 되돌아 보는 까닭

풍수에서는 땅을 인간에게 생명력을 베푸는 살아있는 생명체로 여긴다. 땅은 살아있는 생명체로 어머니와 같은 존재다. 어머니와 자식이 같은 몸을 나누듯이 땅과 사람은 한 몸으로 연결되어 있다. 어머니가 자식을 돌보듯이 땅이 사람을 돌보고 생명을 베푸는 것이 풍수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그러기에 풍수에서는 땅을 마치 사람의 몸 인양 여기고 대한다.

풍수지리에서 본 명당 풍수지리에서 본 명당

* 풍수사상은 땅에 대한 태도, 달리 말해 자연에 대한 태도는 공경과 조심스러움이었으며 생태계에 대한 슬기로움을 담고 있다.
땅이 생명을 유지시키고 끊임없는 자연의 순환과정을 담아내는 것을 잘 간파한 우리의 선인들을 땅에 대해 대단히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했다. 길을 내거나 우물을 파거나 건축물을 지을 때는 매우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지금처럼 땅을 함부로 파헤치고 들춰내는 태도와는 사뭇 달랐다. 옛날에는 집을 짓기 위해 터를 파고 기초를 세울 때 "개기제(開基祭)"라는 엄격한 땅에 대한 의식을 치뤘다. 이는 땅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고 땅에 대한 경건한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서였지 결코 헛된 미신이 아니었다.

* 다소 막연한 "자연"이란 말은 풍수 이론에서 산과 물이라는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산과 물의 짜임새를 잘 관찰하고 인간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살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 주는 전통과학이 바로 풍수지리이다. 산과 물이 조화를 이룬 곳이 풍수에서 말하는 생기(生氣)가득한 명당(明堂)이다.
풍수의 모든 내용은 산과 물(山水)의 조화, 그리고 산수로 대표된 인관과 자연의 조화를 살피는데 모아진다. 그래서 풍수는 산과 물의 조화를 살피는 지리학이다.

부석사에서 바라본 산세 부석사에서 바라본 산세

* 풍수에서 산은 땅 기운(地氣)이 발원하고 흘러다니고, 그리고 땅 기운을 내뿜어내는 생명의 원천이다. 사람에게 땅의 생기를 베푸는 존재가 풍수에서는 산이다.
이러한 산을 보는 눈은 꼭 풍수만의 것이 아니다. 중국의 고대 문헌인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산은 베푼다. 능히 기를 베풀고 퍼지게 하여 만물을 생성하게 한다."라고 하였는데 풍수의 산 관념이 동양적인 산에 대한 관념의 주류임을 잘 보여준다.
풍수에서 물은 산이 뿜어내는 땅 기운을 받아서 모아 갈무리하는 존재이다. 산이 볼아 온 땅 기운이 원료에 속한다면 물은 이 원료를 가다듬어 쓰임새 있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산과 물이 만나야 비로소 생명력을 충만하게 하는 생기가 만들어진다.
풍수는 생기를 찾고, 생기를 설명하는 내용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산과 물이 어떻게 배치되는가를 살피고, 이 배치에 따라 땅 기운이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살핀다. 이 때 산과 물의 배치를 설명하는 방식은 땅을 마치 사람의 몸인 양 여기고 한의학의 인체관을 그대로 땅을 보는 관념에 대비시키는 것이다.
풍수가 수용한 한의학의 핵심적 논리는 사람의 몸을 경락의 체계로서 이해한 부분이다.

음양오행도 음양오행도

* 경락은 경맥(經脈)과 낙맥(落脈)에서 나온 말로 경맥은 종으로 뻗은 맥이며 낙맥은 횡으로 뻗어 경맥과 경맥을 연결한다. 이렇게 날줄과 씨줄이 얽혀서 온몸을 구석구석 그물처럼 연결시키고 있는 경락은 그 맥을 통하여 소화를 통해 얻어진 정기인 기와 혈을 온몸에 순환시켜 준다. 우리 몸의 어느 부분 하나 경락에 연결되어 있지 않은 부위가 없다. 경락을 통해 몸은 유기적인 통일체를 이루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음앙오행설 음앙오행설

* 풍수에서도 땅에 대하여 경락의 체계를 설정한다. 한의학은 소우주인 인간의 몸에 천지의 구조를 도입하여 논리를 전개했고, 풍수는 땅에 사람 몸의 이치를 적용한 것이다. 한의학과 풍수는 모두 인체와 땅의 구조를 경락의 체계로 파악하였고 논리의 틀은 음양오행론이다.
한의학의 최고 경전인 [황제내경]의 <이합진사론>에 보이는 "훌륭한 의사는 치료할 때 반드시 인체와 자연을 긴밀하게 연관시킨다. 그러므로 하늘에는 천체의 운행 질서가 있고, 땅에는 경수(經水)가 있으며 인체에는 경맥(經脈)이 있다. 기후과 온화하면 땅에 있는 경수도 안정되고, 날씨가 추워 땅이 얼면 경수의 흐름도 멈추게 된다. 날씨가 더우면 경수도 흘러 넘친다. 갑작스레 바람이 불어오면 경수에도 파도가 용솟음 친다.
이와 마찬가지로 나쁜 기가 인간의 맥에 침입할 때 추우면 기혈(氣血)이 막히게 되고 더우면 기혈이 흘러 넘치게 된다. 허사(虛邪)가 경맥에 침입하는 것도 경수가 바람을 만난 것과 같다"라는 내용은 한의학의 소우주와 대우주간의 대응논리를 잘 나타내고 있다.

* "대개 풍수사가 땅의 맥을 살피는 것과 의사가 사람 몸의 맥을 살피는 것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다. 훌륭한 의사는 맥의 음양을 잘 살펴 약을 조제하고 훌륭한 풍수사는 땅에 있는 맥의 상태를 잘 살펴서 혈(穴)을 정하게 되는데 그 이치는 하나이다."
이는 송나라 때의 채원정(蔡元定)이 한 말로 풍수와 한의학의 관계를 제대로 대변하고 있다. 채원정은 주희(朱熹)에게 풍수를 가르쳐 준 것으로 유명하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대목은 맥의 음양을 살핀다는 말이다. 좋은 의사와 풍수가가 공통으로 지녀야 할 능력이 음양을 살피는 기술이다.
사람의 건강상태도 음양을 살펴서 보고 땅의 좋고 나쁨도 음양을 보아서 안다. 중국 청대의 문헌인 [산법전서(山法全書)]라는 풍수서에는 "지리가의 핵심은 음양으로, 이것을 이해하면 어려운 일이없다. 지리의 도(道)란 결국 음에서 양을 구하고 양중에서 음을 찾는 일에 불과하다." 하였는데 풍수 논리의 핵심을 이루는 말이다.
여기서 할 수 있는 것은 풍수가 찾으려 하는 좋은 땅은 음양이 조화를 이룬 곳이라는 것이다.

천성산 터널 공사 천성산 터널 공사

* 오늘날 우리는 너무도 땅을 혹사시키고 산천을 무참하게 파괴하고 있다. 잘리고 쓰러지고 뭉개져 풍수적 땅이란 설 자리를 잃고 말았다. 개발은 한마디로 인간이 자연에 손대서 자신을 위한 환경을 만들어내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문명의 건립은 자연의 무위(無爲)와는 구분되는 유위(有爲)의 행위이며, 유위는 곧 개발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인간의 목적을 위해 자연을 이용하고 변화시키는 일이다. 그 일은 자연을 대상화하고 수단화함을 내포한다. 이 때 자연은 철저한 이용의 대상, 착취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린다. 인간의 이기심을 자연을 철저하게 이용하고 이용가치가 떨어지면 철저하게 버리고 만다.
이러한 이용과 버림의 결과가 현상적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총체적인 환경 오염이다. 오염은 땅을, 자연을 소유와 이용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세태에 대한 당연한 보복일 뿐이다. 그리고 그 보복은 너무나 정당하다.

* 풍수에서 땅은 단순한 지질학적 퇴적물이 아니다. 땅을 경제적으로 이용하는 데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풍수에서는 땅의 생명럭을 그르치지 않고 온전히 보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본다. 그리고 공간을 모든 만물을 자라나게 하는 생명력, 즉 땅 기운으로 가득찬 것으로 보며 그 땅 기운의 특성은 각기 다른 것으로 본다. 각기 다른 땅 기운의 특성에 용도를 맞추는 것이다.
우리 선인들의 공간활동은 풍수의 논리에 맞게 명당의 규모나 그 땅이 담을 수 있는 용량, 혹은 그 땅의 특성을 감안하여 주위환경과 조화되게 인위를 가했던 것이다.
우리 주변의 야트막한 산은 백두산으로부터 뻗어 나온 산과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물도 지역의 벽을 넘어 상류에서 하류까지 하천 유역 전체가 "하나"로 연결되어있다.
이같이 우리 호나경을 구성하는 산과 물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그 연결을 전체적으로 인식해야 "나 하나"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생각을 떨칠 수 있다.

* 조선조 때에는 풍수로써 도시호나경을 엄격히 보호한 예가 있다. 바로 금산(禁山)제도였다. 도봉산, 북한산으로부터 한양 도성 안팎에 있는 모든 산들에 이르기까지 그 지맥(地脈)을 보호하자는 것이 금산 설치의 주된 목적이었다.
한양 금산의 예는 혈 주변의 산맥, 즉 지기가 흐르는 기맥을 보호하여 명당과 혈을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함부로 나무를 베거나 돌을 캐거나 흙을 파는 행위는 물론 밭을 갈거나 집을 짓거나 하는 행위가 모두 엄격한 처벌의 대상이었다. 이는 여백의 땅이 갖고 있는 공능의 중요성을 강조한 제도로서 현재의 수세적인 그린벨트에 비해 훨씬 공세적이고 적극적인 제도였다.
(한동환, "우리 식의 그린벨트를 찾아서? [풍수,그 삶의 지리 생명의 지리], 푸른나무, 1993, p.p 326-331)

* 금산은 방벽이 아니라 지맥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도시에 생명력인 지기를 보내는 근원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다. 그래서 금산의 나무들은 울창하게 보호되어야 했고 사소한 지맥 손상 행위도 용납되지 않았다. 금산제도는 조선왕조의 번영과 안녕을 위한 제도란 점에서 한계를 갖고 있긴 하지만 생태적으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숲이 우거진 것은 생태적으로 건강하다는 뜻이고, 산맥이 연결된 것은 생물과 물질의 이동을 도와서 생태적 안정성을 높이고 있다는 뜻이다. 금산제도는 그것이 엄격하게 생태적 지식을 갖고 자각적으로 시행되었는지의 여부에 관계없이 오늘날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제도였다.
"기는 원래 생긴 모습으로 인하여 흐름이 있는 것이니 잘라진 산은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요, 또한 기는 산이 모여야 있게 되는 것이니 잘려져 홀로 있는 산은 삶의 터전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산은 그저 단순한 개발의 장애물이 아니다. 대지의 기가 숨쉬는 터전이요 인간적 삶을 가능하게 하는 생기의 공급원이다.

* 많은 사람들이 풍수사상에 대해 막연하기는 하지만 매우 큰 기대를 하고 있다. 그러나 풍수사상이 현재의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해 준다거나 우리의 삶에 당장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다주지는 못한다. 그리고 풍수사상의 긍정적인 측면이나 슬기로움도 건축이나 조경분야에 현대적으로 적용하는데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풍수의 근복적인 원리나 지향점이 제대로 구현되지 않는 테크닉 위주의 적용이나 어줍잖은 흉내는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풍수사상에 무언가를 기대하는 폭은 다양하지만 대체로 풍수사상이 오늘의 산적한 토지 문제와 환경 문제에 커다란 기여를 할지도 모른다는 기대들이 깔려 있다. 물론 풍수사상이 환경 문제에 대한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그러나 풍수사상은 국토를 경영하는 계획가들에게 국토에대한 종합적인 시각을 제공해 줄 수 있다. 풍수사상은 산천을 미시적이거나 분석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거시적이고 종합적으로 살피기 때문에 원대하고 장대한 국토 계획 수립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옛부터 풍수사상은 경세학(經世學)으로 통했다.

리우선언 리우선언

* 환경과 개발에 관한 리우선언에는 "지역의 토착민이나 그들의 사회가 오랫동안 갖고 있던 지식과 전통적 관행은 환경 관리와 개발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므로 각 국가는 그들이 존재와 문화 및 이익을 인정하고 적절히 지지해야 한다"는 원칙이 들어 있다.
북미와 남미의 원주민들인 인디언와 인디오들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살려는 철학을 갖고 있으며 이들의 문화양식은 환경 보전에도 훌륭한 역할을 담당한다.
예컨대 이들은 후손을 위한 희생, 자연에 대한 윤리적 태도, 공동체에 대한 헌신 등의 문화 양식을 지켜오고 있으며 이는 환경 보전에도 연결되어 생물종 다양성을 보전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 자연에 대한 전통적 접근 방법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풍수사상도 오랫동안 자연을 다루는 전통적인 관행에 해당된다. 그리고 지리적 공간사사의 기본인 "거주 공간에서 자생적으로 이루어진 지리관만이 공간문제의 해답이 될 수 있다"는 원칙을 생각해 볼 때 우리의 심성에 깊게 깔려 있는 전통적인 지리관념인 풍수사상은 산적한 환경 문제와 공간문제에 커다란 공헌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물론 풍수사상이 농업을 위주로 하는 사회에서 나타난 지리관이지 산업화된 환경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사상이라는 의문을 던질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산업화된 공간과 사이버 공간이 범람할지라도 사람은 땅과의 관계를 설정하고 땅 위에서 삶을 꾸려나갈 수 밖에 없다. 오히려 산업화된 사회에서 우리의 환경이 더욱 열악해졌기 때문에 풍수사상의 공간관은 더욱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낼 필요가 있으며 이를 슬기롭게 현대적으로 적용할 필요가 있다. 다만 풍수사상의 현대적 해석이나 적용은 신중해야 한다. 무조건 풍수사상을 찬양해서도 안되고 무조건 백안시해서도 안될 것이다. 우리의 심성 깊은 곳에 깔려있는 풍수적 정서는 환경에 대한 새로운 자각과 실천을 일깨우는데 커다란 기여를 할 것이다. 풍수의 이치가 주위의 산과 물을 건강하게 지키는 지혜라는 인식이 확산되면 풍수사상은 환경을 가꾸고 보살피는 강력한 실천 윤리가 될 수 있다. 풍수사상은 환경 보호를 위한 개인들의 다양하고 구체적인 실천은 이끌어내는 동력이 될 수 있다. 환경을 가꾸기 위한 실천을 보다 효과적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풍수사상에 기초한 다양한 수준의 환경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일반인들의 자연에 대한 태도를 변화시키는데 커다란 기여를 할 것이다. 어린 아이들에게 풍수사상은 우리 문화 전통에 맥을 잇게하는 훌륭한 환경 교육 자료들이 될 것이다. 또한 장노년층의 환경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는 데 풍수는 큰 효과를 발휘하게 될 것이다. 땅을 유기체로 생각하는 풍수의 논리를 빌려, 왜 땅의 보전이 중요한지를 설명한다면 훨씬 설득력이 높아질 것이다. 이와 같은 환경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교육에 적극 활용하려면 우선 풍수에 대한 대대적이고 체계적인 연구 작업, 특히 학제(學際)적인 연구가 진행되어야 한다. 지리학, 건축학, 조경학, 철학 등 여러 학문 분야에서 풍수의 본질적인 측면 뿐만이 아니라 실제 생활에 적용시킬 수 있는 다양한 사례들을 연구를 통해 축적해 나가야 할 것이다.

* 풍수는 이제 삶의 공간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더 이상 개인의 음택이나 발복을 위한 도구로 쓰이지 말아야 한다. 나만의 명당을 찾을 일이 아니다. 주위가 오염되었는데 어찌 명당을 찾을 수 있겠는가. 명당은 그 자신이 홀로 명당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주변의 건강한 산과 물이 있어야 비로소 명당을 만들 수 있다. 내 집만이 건강하고 깨끗해질 수 없다. 주변의 환경이 깨끗하지 못하면 내 집도 깨끗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나와 환경이 안팎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깊이 자각해야 한다. 이제 풍수는 파괴된 산천을 가꾸고 주변 환경을 보살펴 다 함께 살아가는 대동의 삶터를 건설하는 데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하여 풍수는 인간과 자연의 유기적인 관계를 회복한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열어가는데 큰 지침을 제시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