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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이야기곤륜산의 맥을 잇는 백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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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륜산의 맥을 잇는 백두산

곤륜산의 맥을 잇는 백두산
백두대간의 시발점인 백두산 백두대간의 시발점인 백두산

풍수의 목적은 땅의 생기를 탐으로서 흉함을 피하고 길함을 추구하는 것이다. 만물이 생겨나는 것은 바로 땅의 생기인 지기(地氣) 즉 땅속의 것(地中者)에 힘입지 않은 것이 없다. 이것은 땅속에 생기가 있기 때문이며, 생기를 타면 길하고 반하면 흉하게 된다. 이것은 자연의 이치이다.

땅속의 생기인 지기는 어디에서부터 오는 것인가. 생기가 어디서 오는가의 문제는 풍수용론(風水龍論)에 해당되는 것이며, 풍수이론에서 제일 먼저 등장하는 개념이다. 풍수에서 산을 용이라 이름하는 것은 그것이 크고 작고, 엎드리고 일어서고, 뒤틀고 쪽 뻗으며, 숨고 드러내기도 하여 변화막측, 조화무궁한 것이
마치 용과 같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을 맥이라 표현하는 것은 사람의 맥락(脈絡)이 기혈(氣血)의 운행됨을 관장하여 맥이 맑으면 귀하고 탁하면 천하며,
길하면 안녕하고 흥하면 위급하니, 땅의 맥도 역시 그러한 까닭이다. 용을 말하면서 그 용맥의 근원이 어디로부터 비롯되는 것인지를 모른다면 보는 바가
가까워 멀리를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탐구하는 바가 얕아 깊지 못할 것이고, 또한 살피는 바가 좁아 넓지 못할 것이다.

모든 풍수가들은 생기의 근원인 용의 조종(祖宗)이 간혹 수미산(須彌山)이 거론되기도 하지만, 곤륜산(崑崙山)이라는 데는 이론이 없다. 수미산은 범어(梵語) 수메루에서 온 말로, 세계의 한가운데 솟아 있는 높은 산이라는 고대 인도인의 우주관에서 나온 관념의 산이다. 그러므로 비록 수민산이 후대 풍수설에 습합되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관념적인고 상상의 산이기 때문에 풍수논리에서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아마도 제석천이 산꼭대기에 살고, 사천왕이 중턱에 살고 있어 풍수의 스승인 선승들이 곤륜산의 개념과 혼용하여 사용한 것 같다.
수미산은 상상의 산인 반면에 곤륜산은 실재하는 산이다. 풍수에서 곤륜산은 모든 산의 조상 할아버지의 산을 의미한다. 그러나 중앙아시에 있는 곤륜산이 풍수에서 말하는 곤륜산이라고 단정해서는 안된다.
풍수에서 말하는 실재하는 곤륜산은 중국의 서쪽 끝 티베트 자치구와 신강, 위구르 자치구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곤륜의 보이는 바를 설명하면, 최고봉은 7,723미터의 울무스타그이고 그 주위에 6,000m급의 봉우리가 60여 개나 있다. 전장(全長) 2,500킬로미터의 대산맥으로 아직도 인적미답한 곳이 수두룩한
신비의 만년설지대이다.
곤륜산의 중요성은 동아시아 여러 민족의 깊이 감추어진 의식 속에서 찾아야 한다. 중국인들은 산의 조상은 곤륜이요 물의 조상은 황하(山之祖宗崑崙
水之祖宗黃河)라고 믿었다. 그리고 이 양자를 합하여 곤륜산을 황하의 수원(水源)으로 받아들였다. 생명의 원천인 물을 대어주는 산이니 곤륜이 지기의
근원지가 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실제로 황하의 수원지가 오늘의 곤륜산인 것은 아니다.
그런데 풍수에서는 <산이 시작되는 곳을 알려면 물이 일어나는 곳을 알아야 하고, 용이 끝나는 곳을 알려면 물이 머무는 곳을 살피라>라는 말이 있다.
신령한 지기의 근원인 생기는 산에 거처하는 것이며, 그 생기를 운반하여 사람에게 직접 부여하는 것은 물이다. 그 물의 근원처에 있는 신성한 산 곤륜은
이 세상 모든 기의 근원(萬氣之源)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동쪽으로 맥을 잡아 밀어온 것이 압록강의 원류 백두산이 된다. 백두산은 우리 민족의 조상산(祖上山)이다. 명나라 때 나온 풍수 집대성서인
『인자수지(人子須知)』에서는 주자의 말을 인용하여 곤륜에서 중국으로 흘러드는 물이 황하임을 밝히고, 또 여진족이 일어난 곳에 압록강이 있으니, 천하에
대수삼처(大水三處)가 있다고 하였다. 이것이 바로 黃河, 長江, 鴨綠이다.

한반도 산들의 조종산(祖宗山)이 되는 백두산 한반도 산들의 조종산(祖宗山)이 되는 백두산
사람들의 심성 깊은 곳에 자리잡은 성스러운 백두산 사람들의 심성 깊은 곳에 자리잡은 성스러운 백두산
민족의 성산 백두산 민족의 성산 백두산

곤륜산에서 백두산까지의 맥세는 우리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그런데 주자는 곤륜이 땅의 중심이라고 하였다. 이것을 받아 우리의 용맥도 곤륜에 원기를 대고 있다고 생각한 것은 아마도 주자학이 이 땅에 들어온 뒤 불가피하게 벌어진 현상이었을 것이다. 오히려 중국의 풍수이론이 유입되기 이전, 우리의 자생풍수에서는 곤륜보다도 백두산을 생기의 시원처로 삼았을 것이다.
우리 민족이 백두를 산의 조상이라고 보게 된 까닭은 너무나 당연한 곳에 있다. 조그마한 마을 자리에서 커다란 고을 터에 이르기까지 주민들은 그 주위에
있는 가장 수려한 강산에 몸과 마음을 의지케 된다. 그런데 오늘날의 우리들의 사고방식대로 그 강산이 저 홀로 생겨나 그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디엔가
이어져 기맥을 통하고 있는 것으로 보았을 것이다. 세상 모든 일이 그 하나로 생겨날 수가 없다는 생각은 우리 조상들의 믿음이었기 때문이다. 산은 물로써
알 수 있다.

예컨대 고구려의 옛 서울 평양의 대동강을 바라보는 고구려 백성들은 그것이 광량진의 봉수산, 도회령을 거쳐 월봉산에 맥을 대고 결국 묘향산, 낭림산으로 이어지는 청남정맥(淸南正脈)의 줄기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낭림산의 자취를 밟으면 끝내는 백두대간의 맥을 타고 백두산에 닿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조상은 백두산임을 확인한 것이다.

백두대간을 달리던 산줄기는 금강산에서 분수령을 지어 서남쪽으로 겪어져 김화 오갑산, 불정산 그리고 도봉산, 북한산을 지나 서울 들판을 이룬 후 한강에 닿게 된다. 이것은 한북정맥(漢北正脈)이 백두대간에 젖줄을 댄 셈이다. 이처럼 모든 산들이 종국에는 백두산을 뿌리로 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후에는
백두산이 땅의 정기의 원천임을 믿어 의심지 않게 되는 것이다.
곤륜산과 백두산, 곤륜산의 맥을 잇는 백두산에 대한 논쟁은 다양하게 전개되어 왔다. 아마도 풍수가들과 식자층들은 백두산을 중국의 곤륜산에 의탁하려는 의도가 강하였던 것 같다.『擇里志』의 저자 이중환(1690-1756)은 백두산의 원맥이 곤륜에 있음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그는 ‘백두산은 곤륜산의 한 지맥이 대사막(타클라마칸 사막을 지칭한 듯함)의 남쪽을 지나 동쪽에 이르러 의무려산(醫巫閭山 : 만주 요령성 서쪽 陰山山脈의 한 줄기)이 되고 이곳으로부터 크게 펼쳐져 요동평야가 되는데 평야를 건너서 다시 일어선 것이 백두산이며『山海經』에서 말하는 不咸山이 곧 이것이다. 산의 정기가 북으로 천리를 뻗치고 두 강을 사이에 끼고 남쪽으로 향한 것이 영고탑(만주 길립성 영안현으로 淸朝의 발상지이다)이 되고 그 뒤의 한 맥이 높이
뻗치어 조선 산맥의 우두머리가 되었다’고 하였다. 이것은 백두산은 조선과 청나라 모두의 조상산이 됨을 은연중에 드러낸 셈인데 아마도 당시 실학자들의
일반적인 산맥에 대한 사고체계였을 것이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은 그의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에서, “四海안에는 모든 산맥이 서로 연결되지 않은 곳이 없는 것이니, 백두산의 맥도 곤륜산과
연결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곤륜산을 조상으로 받들고 백두산을 손자로 아래에 두어야 할 이유는 못 된다. 대지전체는 원래 둥글고 높고, 낮음이 없던 것인데 개벽 이후에 물에 씻기고 흙이 깎여 굳은 곳은 자연 산이 되었다”고 갈파하였다. 이것은 좀더 문제의 본질에 접근한 시각을 보여준다.

張志淵(1866-1921)은 의무려산의 맥세가 虎坤雄(길림성 서쪽의 산 이름)를 지나 우리 백두산이 되었으며, 그 아래로는 혼돈강이 흑룡강을 합하여 북해로
들어가는데 이러한 명산대천이 있음으로 해서 요동 방면에서는 인재가 많이 배출되고 물자가 풍부하며 예로부터 중국과 항전하는 터가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요나라, 금나라, 원나라가 이 지방을 중심으로 크게 일어나기도 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旅庵 申景濬(1712-1781)은 일본의 여러 산들까지도 백두의 자손이라고 지적하였다. 그는 『旅庵全書』「疆界考」에서 “장백산은 조선인들이 백두산이라 부르는 산으로 삼국의 뭇 산들의 조종이 되는 것으로서, 서쪽으로 흔하 이남, 압록강 이북으로 밀어나간 지맥은 중국의 금주, 연해지방의 여러 산으로
연속되고. 동북쪽으로 흔돈강 이동, 흑룡강 이남, 두만강 이북으로 밀어나간 지맥은 동해 이서의 여러 산을 이루는데, 그중 동쪽으로 뻗어나간 한 가닥 산맥이 바다를 건너 일본의 여러 산이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민족의 성산이 백두산이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리고 우리의 조상산이다는 것을 구태여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한 지방에 붙박혀 살고 있는
사람에게 있어서 백두산은 너무나 멀고 너무나 생각 속에 아득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가까이에 눈으로 보고 몸으로 직접 느끼며 의지할 수 있는 산을 별도로 상정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바로 명산, 명악론이다. 지기의 공급처인 산이 있어야 하지만 백두산을 내놓고는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공통적으로 받들 산이란 것이 쉽게 떠오르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다양한 명산, 명악론이 생기게 되었다. 이것은 한 고을의 진산 개념과는 달라서, 아무리 지방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도의 산이라고는 해도 반드시 전국적 대표성은 지녀야 하는 것이 원칙이었고, 공통적으로 백두산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우리는 제일 먼저 삼신산을 거론할 수 있겠지만, 삼신산에 대한 개념은 민간신앙과 결합되어 의식의 저변을 점령한채 크게 거론되지 못하였다. 그
대신에 식자층들에 의해 기상이 돌출한 산들이 뽑혔고, 이에 대한 글들인 남겨지면서 명산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 중의 하나로 조선의 4대 명산을 들 수
있다.
명산들은 동서남북 각 방면에서 주로 경치가 뛰어난 곳으로 동의 금강산, 남의 지리산, 서의 구월산, 북의 묘향산을 말한다. 서산대사는 4대 명산을 두루 돌아보고 마지막에 묘향산에 들어가면서 “금강산은 때어나지만 장쾌함이 미치지 못하고(秀而不壯), 지리산은 웅장하기는 하나 아름다움에 빠짐이 있으며(壯而不秀), 구월산은 때어나지도 장쾌하지도 못한데(不秀不壯), 묘향산은 빼어나면서도 웅장하니(亦秀亦壯) 가장 훌륭하다”는 감상을 남겼다. 4대 명산과는 달리
우리의 생활과 밀접히 연관 지으며 나라 안의 네 개의 산을 뽑은 사람도 있다. 이중환은 무릇 산의 형세는 반드시 수려한 바위로 봉우리를 이루어야만 산이
빼어나고 물 또한 맑은 것이며, 또한 반드시 강과 바다가 교류하는 곳에 위치하여야만 큰 힘을 갖는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이러한 곳이 나라 안에 네 군데가 있다고 하였다. 그중 하나는 개성의 오관산이요, 또 하나는 진잠의 계룽산이며, 또 하나는 한양의 삼각산이고, 나머지 하나는 문화에 있는 구월산이다.
이 외에도 명산이 될 만한 곳으로 춘천의 청평산, 금구의 모악산, 안동의 학가산, 원주의 적악산과 사자산, 공주의 무성산과 천안의 광덕산, 해미의 가야산,
남포의 성주산, 부안의 변산, 영평의 백운산, 곡산의 고달산, 광주의 무등산, 영암의 월출산, 장흥의 천관산, 흥양의 팔영산, 순천의 조계산, 대구의 팔공신과
비파산, 청도의 운문산, 울산의 원적산, 청하의 내연산, 청송의 주황산 등을 꼽았다. 이 산들은 대체로 평지돌출이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와 같이 풍수의 정설은 지기의 본원처가 곤륜산이라는 것이다. 풍수세계에서 중심인 곤륜산의 생기는 일정 경로를 따라 백두산에 유입이 되고 백두산은 그 생기를 받는 저장고 역할을 함은 물론 그것을 한반도 전역, 경우에 따라서는 일본에까지 지기를 공급하는 원천으로서 기능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백두산 천지 백두산 천지

백두산의 지기는 白頭大幹, 長白正幹, 洛南正脈, 淸北正脈, 淸南正脈, 海西正脈, 漢北正脈, 洛東正脈, 漢南錦北正脈, 漢南正脈, 錦北正脈, 錦南湖南正脈, 錦南正脈, 湖南正脈 등의 한반도 곳곳으로 핏줄처럼 뻗어 있는 용맥을 따라 고을고을 마을마을마다 생기를 불어넣는다. 이것은 지기가 어디로부터 오는가의 물음에 대한 답을 준다. 그러나 사람은 결코 지기의 공급처인 명산, 명악 바로 아래는 살지 않는다. 심장은 血流의 원동력이지만 그곳이 원천이라고 해서 생기인 피를 얻겠다고 바로 그 심장에 구멍을 뚫어서는 않되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명산, 명악으로부터 다시 동맥과 실핏줄을 타고 신체의 각 기관으로 산소와 양분이
공급되는 것처럼, 용맥도 그로부터 나와 마을과 고을터 그리고 산소자리까지 연결되어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 혹은 시신에게 생기를 공급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풍수 看龍法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