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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이야기수모목간의 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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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모목간의 한반도

<<편년통록(編年通錄)>>에는 송악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작제건(作帝建)의 아들로 태조 왕건의 아버지인 세조(世祖) 용건(龍建)이 송악의 남쪽에 새집을 창건하려고 하였을 때, 도선이 세조에게 영접되어 곡령에
올라 산수의 맥을 두루 살피고 위로 천문을, 아래로 시수(時數)를 살피면서 “이곳의 지맥은 임방(壬方)인 백두산으로부터 수모목간(水母木幹)으로 하여
내락마두(來落魔頭)의 명당을 일으킨 곳이니 당신은 수명(水命)을 따라 수(數)의 대수(代數)인 육(六)의 제곱수 삼십육구(三十六區)의 집을 지으면 천지의
대수(代數)를 부응(符應)받아 명년에는 반드시 성자(聖子)를 낳을 것이니 마땅히 왕건이라 지으라.”고 하였다(<<고려사>>, <世系條>)
여기서 “수모목간”이란 오관산, 송악 등 개경을 내맥(來脈)이 북방에서 발원하여 동쪽에 척량(脊梁)을 두고 이어진 맥세(脈勢)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점은 그 뒤 공민왕 6년에 사천소감(司天少監) 우필흥(于必興)이 비기(秘記)를 인용하여 우리 나라의 방위적 토성(土性)을 “우리 나라의 지맥은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지리산에서 끝났으니 그 형세는 수근목간(水根木幹)의 땅”이라고 설명한 대목과도 부합된다.

북쪽 백두산에서 발원하여 동쪽을 등마루로 하고 있다는 것을 수모목간으로 표현한 것은 북고남저(北高南低), 동고서저(東高西低)의 한반도 지체구조를
지모상(地貌上)으로 파악하고 있었다는 증명이 된다.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지형은 경동지괴(傾動地塊)로, 대체로 원산 - 서울을 연결하는 추가령지구대를 경계로 하여 남북 한반도는 그 지질과 지체구조 및 지형에 있어 상당한 차이가 있다. 지형만을 고려하여 보면 일반적으로 북한은 고도가 높고 험준한데
비해 남한은 고도가 낮고 산세도 비교적 낮고 평탄한 편이다.
결국 수모목간이란 말은 개경 내룡(來龍)의 맥세에 대한 설명일 뿐만 아니라 한반도 전체에 걸치는 지체구조를 이해한 말로 보아도 될 듯하다.
이와 같은 한반도 지체구조에 대한 파악은 신라말, 고려초기에 이미 국토를 조직적으로 보고자 하는 합리성이 깊이 내재되어 있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합리성이 가장 잘 나타나는 것이 국토공간의 중심적 위치를 한반도 동남단에 치우쳐 있는 경주로부터 중부지방으로 옮기고자 생각했던 신라말 선승들의 생각에서 잘 나타난다. 신라말의 선승들은 풍수논리를 당시의 시대상황과 접목시키고 보강하여 정치, 사회적 풍토를 새롭게 재편하고자
노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