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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풍수지리김정호의 대동여지도와 한반도-산줄기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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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의 대동여지도와 한반도-산줄기찾기

산줄기찾기
<천지도> <천지도>

가. 대동여지도 읽기
1) 대동여지도
현대지형도는 지형이해를 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따라서 지형도를 읽을 수 있으면 대지의 선정이나 건축물의 좌향을 결정할 때 매우 유익하다. 따라서
지형도 읽는 공부가 필요하고, 형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산도를 그릴 수 있어야 하는데 대동여지도와 산경표가 많은 참고가 된다.

대동여지도의 대동(大東)은 우리나라를 중국의 동쪽으로 보는 사상에서 비롯된 이름이며, 청구도에서의 청(靑)도 방위의 개념에서는 같은 것으로 해석된다. 여지도(輿地圖)의 여(輿)는 수레바퀴의 뜻으로 천하도의 형태와 관련이 있는데 종합적인 지도의 의미를 가진다.

2) 대동여지도 제작의 목적
국가발전의 기틀로서 국세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하여 좌도(左圖)로서의 지도와 우서(右書)로서의 지지(地誌)의 필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국토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갖고 여지학자(輿地學者)로서 풍부한 학문적 지식을 통하여 모든 사람이 쉽게 활용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대동여지도를 판각한 후 인쇄본으로 발간하였다.

3) 대동여지도의 정밀성
가) 목판의 지도
목판각 기술의 탁월함은 이미 고려의 대장경을 제작한 것에서 잘 나타나있다. 대동여지도의 판각기술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섬세한 목각뿐만 아니라 조각조각으로 제작된 목판을 오차 없이 서로 조립해야하는 점 때문이다. 7m x3m 크기의 지도를 하나의 지도로 조립할 수 있는 형식으로 판각한다는 것은 현대의 기술로도 쉽지 않은 일이다.
나) 서울중심의 지도
현대지도에서 적도가 위도의 기준인데 비해 대동여지도의 경우는 서울의 기점이 기준이 된다. 따라서 대동여지도의 경우는 서울을 기준으로 남북으로 멀어짐에 따라 위선의 길이가 점차 확대 되었다. 경도의 경우는 전체의 평균치가 201리 것으로 보아 ‘대동지지’에서 정한 천지일도(天之一度), 지지이백리(地之二百里)와 맞아 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현대지도와 비교해볼 때 남부지방의 경우 경위도의 편차가 적게 나타나는데 비해 북쪽으로 갈수록 오차가 커지게 되는 것이다.

<김정호가 제작한 지도의 비교> <김정호가 제작한 지도의 비교>
<<방위표>> <<방위표>>

다) 오차 줄이기
김정호는 한국의 윤곽을 그린 다음 전국의 중요도읍의 위치를 지정하고 산맥과 하천을 그린 것으로 판단된다. 하천과 산맥이 도로나 도읍에 의해서 절단된 곳이 없이 연속되어 있다는 점은 주목할만하다. 전국도읍의 위치는 서울의 기점을 중심으로 직선의 도로망을 통해 거리와 방위를 정했다. 그 후 334개의 군현의 위치를 정하고 그려 넣었다.

4) 대동여지도의 제작과정
가) 인간 김정호(古山子)
(1) 김정호(金正浩)는 탄압받은 인물이 아니다.
김정호는 자신에 관한 어떠한 기록을 남긴 것도 없고 당시의 관문서에도 어떤 기록이 남은 것이 없다. 조선총독부 시절 김정호 생존시에 관해서 조선조정이 인재를 아끼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 “김정호의 생애가 구성 되었다.”

(2) 김정호의 후원자
혜남(惠南) 최한기(崔漢綺)는 김정호의 친우로서 양반출신이고 여지학에 조예가 깊은 석학으로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다. 김정호와
여도비지(輿圖備志)를 공동 저술한 최성환(崔?煥)은 평민출신인 김정호가 얻기 힘든 지도에 관한 자료를 많이 제공해주었다. 대동여지도의 제작에 있어서
최성환은 발행자이고 김정호는 저자의 관계였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나) 대동여지도 제작이전의 작업
(1) 세 개의 지지(地誌) 저술 :여도비지(輿圖備志), 동여도지(東輿圖志), 대동지지(大東地志)
김정호는 30여년에 걸쳐 여도비지(1834) 동여도지(1852-1856) 대동지지(1861-1866)등의 세 개의 지리지를 저술하였다. 이중 대동지지(大東地志)는 도단위 내용보다 군현 수준에서 자세히 다루었다는 것이 앞의 두 지리서와 비교된다. 대동여지도에 걸맞는 지지(地誌)로서 저술한 것이 대동지지(大東地志)이다.
여도비지(輿圖備志)는 대동여지도제작의 기초 자료로서 각 군현의 극고, 방위, 거경직선 등을 자세히 다루었다. 대동지지에서는 역사지도를 다루고 여도비지에서는 도별지도를 다루고 있다.

(2) 3편의 지도 제작 후 대동여지도의 제작 : 청구도(靑邱圖), 동여도(東輿圖), 대동여지전도(大東輿地全圖)
김정호는 대동여지도의 제작 전에 3편의 지도를 제작하였는데 그것이 청구도(靑邱圖), 동여도(東輿圖), 대동여지전도(大東輿地全圖)이다. 청구도는 호구,
군적 등의 사항을 면단위로 수록하여 상세한 지도책으로 분류되고, 반면에 동여도는 대동여지전도의 원본의 역할을 하는 것이고 대동여지전도는 대중용으로 판각하여 배포한 것이다.

다) 직접답사에 의한 제작인가?
김정호가 전국을 세 번씩이나 답사했고 백두산을 여덟 번씩이나 등정 했다는 사실에도 의문이 간다. 김정호가 지도제작과정에서 일부지역을 답사했을 것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세권의 지리지와 4편의 지도를 제작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 김정호로서는 답사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특히 한반도 북부 지방의 인적이 드물었던 지역의 경우에 대동여지도상의 오차가 크게 나타난다. 당시의 상황으로 미루어 볼 때 백두산의 답사의 경우 매우 험한 코스를 혼자서 20여일이 넘게 지도제작을 위한 답사를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음은 충분히 짐작이 된다. 이상과 같은 점을 미루어 볼 때 김정호는 전국을 답사하여 지도의 자료를 모았다기 보다는 그가 수집할 수 있는 지지나 읍지 또는 많은 지도를 참조하였고 의심나는 부분에 대하여
필요에 따라 부분적인 답사를 통해 확인하는 형식으로 대동여지도를 완성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5) 대동여지도 읽기
가) 축척(스케일)
대동여지도는 손으로 그린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현재 자로 재어서 거리를 알 수 있을 만큼 축척이 있는 지도이다. 대동여지도의 원판의 크기는 7m x 3m의 대형지도이다. 대동여지도의 축척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의 견해가 주장되고 있다. 하나는 1:160,000축척이라는 주장으로서 이는 10리를 4km로 계산했을 때의 축척이고 또 하나는 1:216,000축척이라는 주장으로서 10리를 약 5.4km로 계산했을 때의 축척이다.

나) 산악투영법에 의한 지도
김정호가 제작한 4가지의 지도 청구도, 동여도, 대동여지전도의 경우 점차 발전 된 표현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각지도상에 산맥의 표현기법은 큰 차이를 보여주는데 특히 대동여지도의 경우는 산악투영법의 방법을 이용하여 표현하고 있다. 대동여지도의 산맥표현기법은 45도 각도로 위에서 산지를 조감한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 이러한 기법은 산을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로 느껴지게 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관악산 일대> <관악산 일대>

다) 기호
(1) 편(片), 단(段)의 구분
대동여지도는 전국을 남북 22단, 동서 19편의 도엽으로 나누어 목판인쇄 하였다. 대동여지도의 제1단, 제1편은 지도의 z표지가 되고 여기에 대동여지도라는 제명과 함께 발행연도인 당우 십이년신유(1861년)가 있고 저자인 고산자교간(古山子交刊)이라는 저자명이 좌하단에 있다. 축척을 나타내는 방격표는 가로
80리, 세로 120리를 하나의 편으로 하였다. 이우형 선생이 펴낸 대동여지도의 축소판은 한 페이지당 4개의 방격표가 합쳐진 것이다.

<대동여지도 색인표> <대동여지도 색인표>
<대동여지도 기호> <대동여지도 기호>

(2) 14개 항목 22종의 기호
대동여지도의 기호가 당시에 출간된 다른 지도에 비해서 우수한 것은 도로상에 십리의 거리를 나타내는 방점을 찍은 것이다. 또한 전국의 군현의 경계를 점선으로 표시하고 있어서 당시의 지도를 이용하는 사람들이나 오늘날 역사적인 자료로서도 가치를 더하고 있다. 하천의 경우도 단선표시와 쌍선표시로 구분되는데 배를 띄울 수 있는 지점이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를 알 수 있게 표현되어 있다.

















<대동여지도상의 석모도> <김정호가 제작한 지도의 비교> <대동여지도상의 석모도> <김정호가 제작한 지도의 비교>

라) 과거와 현재의 지형변화 비교자료
(1) 강화도의 석모도
강화도의 석모도는 현재 하나의 섬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대동여지도 상에는 2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두 섬 사이의 퇴적물의 토양분석에서 밝혀진 사실이다.
(2) 낙동강하구
홍수의 범람이 잦은 낙동강 하구의 삼각주는 대동여지도상에 명지도(鳴旨島), 오량도(鰲梁島), 칠점산(七點山), 야요도(耶要島), 사두(蛇頭)의 5개섬으로 표시되어있다. 현재의 지도에는 이들 섬이 모두 합치어 하나의 섬이 되었다.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지형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물에 의한 것이다. 자연적인 것이든 인위적인 것이든 지형은 계속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3) 한강
뚝섬은 저도(楮島), 또는 독도(毒島)였으며, 잠실의 상도(桑島)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