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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이야기한양은 고려 중엽 때부터 당시의 수도였던 개성과 평양에 버금가는 도시로 각광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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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은 고려 중엽 때부터 당시의 수도였던 개성과 평양에 버금가는 도시로 각광을 받았다

한양은 고려 중엽 때부터 당시의 수도였던 개성과 평양에 버금가는 도시로 각광을 받았다. 개경(개성), 서경(평양), 동경(경주)과 함께 4경의 하나였던 남경이라 불리던 한양은 정치적 사건이 있을 때마다 개성지기쇠퇴설(開城地氣衰退說)과 함께 남경천도설(南京遷都說)이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고려의 수도 개성은 도선국사가 천년 도읍지로 정한 명당이었는데 도선이 개성의 지리를 살필 때 날씨가 너무 흐려 개경을 엿보는 남경의 삼각산을 미처 보지 못했다고 한다.

날씨가 맑은 날 다시 보니 삼각산이 마치 개성을 훔쳐가려는 모습을 하고 있어 고려 왕조는 500년으로 끝나고 반드시 한양에 새로운 왕조가 세워질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러면서도 한양이 개성의 지기를 훔쳐 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삼각산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 장명등을 설치하여 불을 밝히고, 쇠로 만든 열두 마리의 개를 세워 삼각산을 감시하게 하였다. 그러나 중엽이후 고려의 국운이 점차 쇠미해지고 왕권은 약화되고 권신들의 반란이 끊이지 않게 일어나자 군신들 사이에서 개성보다 지덕이 왕성한 길지로 도읍을 옮겨야 한다는 천도론이 부상하기 시작했다.

특히 고려의 31대왕 공민왕은 "남경으로 도읍을 옮기면 열 여섯 나라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조공을 받치게 된다"는 승 보우의 도참설에 마음이 끌려 남경으로 도읍을 옮기려고까지 하였다. 그후 개성의 지기쇠퇴설과 천도론의 부각은 "남경인 한양은 장차 이씨가 도읍할 땅이다"라는 도참설이 유행하여 고려 조정에서는 이씨의 왕기를 누르기 위해 남경에 이씨를 상징하는 오얏나무(李)를 심어놓고 무성해지면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을 시켜 베어 버리게 했다.

위화도회군과 쿠데타로 조선 왕조를 세운 태조 이성계는 민심을 혁신하고 새로운 정치를 펼치려면 도읍의 천도가 불가피하다고 보았다. 그는 계룡산의 신도안을 비롯하여 지금의 서울 신촌 일대인 무악(毋岳)과 한양 등을 돌아보고 도읍은 마땅히 나라의 중앙에 위치해야 국가 전체가 균형적인 발전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한양 천도를 결심하였다. 한양은 북쪽에 북악산(면악산, 백악산)과 서쪽에 인왕산, 남쪽에 목면산(남산), 동쪽에 낙산(동대문 근처)이 둘러 싸여 있는 터를 말한다.

고려 때 지은 남궁(南宮)이 지금의 경복궁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이성계는 개성에서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권신들의 극렬한 반대를 물리치고 서둘러 천도를 강행한다. 그리고 새로운 궁궐을 짓게 하고 도성을 쌓도록 하였다. 도성은 북악산, 인왕산, 남산, 낙산을 연결하는 산의 능선을 따라 쌓은 것인데 둘레가 약 17Km에 이른다. 서울이라는 지명은 도성 공사를 하면서 어디서 어디까지 성을 쌓아야할지 계획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는데 어느 날 큰 눈이 내려 살펴보니 눈이 하나의 선을 따라 선 밖에는 눈이 쌓여있고 선 안쪽에는 눈이 없었다. 이 태조는 이러한 현상은 우연이 아니고 필시 하늘에서 내린 뜻이라 생각하고 그 선을 따라 도성(都城)을 쌓도록 하였다. 사람들은 눈이 울타리를 만들었다고 하여 `설(雪)울`이라 불렀고, 설울이 `서울`로 발음되면서 오늘날 서울이 유래되었다.

서울의 산맥을 보면 우리나라 모든 산의 시조산인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남으로 뻗어 나온 백두대간용이 지리산 천왕봉까지 가는 도중에 추가령에서 한북정맥을 분맥한 다음 서남진(西南進)하여 평강 백암산(1110m), 김화 적근산(1073m), 대성산(1175m), 포천 백운산(904m), 운악산(현등산, 935.5m), 죽엽산(600.6m), 광릉 운악산(234.8m), 용암산(476.9m), 축석령 고개를 넘어 양주 불곡산(360.8m), 의정부 홍복산을 거쳐 서울의 태조산인 도봉산(716.7m)을 기봉한다.

태조산이란 한 산맥의 처음 출발지이자 일개 지역을 대표하는 산으로 마치 불꽃이 타오르는 것처럼 수많은 석산(石山) 첨봉(尖峰)들이 하늘 높이 솟아 서기가 빛나는 산을 말한다. 염정(廉貞) 화성체(火星體)인 도봉산의 중심 맥으로 출발한 대간룡(大幹龍)은 크게 낙맥(落脈)하여 우이령에서 과협(過峽)한 다음 다시 위로 솟구쳐 단정 수려하고 서기가 비추는 탐랑(貪狼) 목성체(木星體)인 제일성(第一星)을 기봉하니 바로 인수봉이다.

제일성은 앞으로 행룡(行龍)할 용의 기본정신을 표현 한 것으로 풍수지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즉 제일성이 구성(九星)중 어느 성에 속하느냐에 따라 주룡의 오행 기본정신이 결정되고, 주룡이 앞으로 행룡하다가 혈을 결지하고자 할 때에는 주산(主山)과 혈을 제일성과 똑 같은 형태와 정신으로 기봉하고 결지한다. 다시 말해서 제일성봉이 탐랑 목성체인 인수봉이니 앞으로 용이 전진하다가 인수봉과 똑같은 형태의 산이 나타나면 주산이 될 것이고 그 주산에서 다시 중심 맥으로 내려간 용맥이 행룡을 멈추고 기를 모아 혈을 결지 하는 곳이 이 산맥의 주혈(主穴)이 될 것이다.

제일성인 인수봉에서 탐랑 목(木)의 오행 정신을 부여받은 대간룡은 다시 행룡하여 백운대와 만경대를 일으켜 이 세 봉우리가 삼각산이라고도 부르는 북한산을 만든다. 북한산을 출발한 용은 다시 용암문과 동장대, 대동문이 있는 능선을 마치 커다란 용이 물위를 헤엄쳐 가듯 굴곡, 기복, 위이 하면서 행룡하여 중조산인 보현봉을 일으킨다.

중조산의 역할은 용의 기를 정제하고 순화시키는데 있다. 기세 충천한 염정 태조산에서 출발한 용은 그 기운이 아직 정제되지 않아 살기 등등하므로 험하고 억세다. 혈의 결지는 정제되고 순화된 용맥에서만 가능한데 이 험한 살기를 정제시키기 위해서는 용의 박환(剝換), 개장(開帳), 천심(穿心), 과협(過峽) 등 여러 변화가 필요하다. 발전소에서 발전된 전기의 전압을 낮추려면 변전소를 통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태조산에서 보내온 억센 기를 정제 순화시키려면 변전소 격인 중조산이 필요하다. 또 용이 분맥하거나 크게 방향을 바꾸려면 중조산이 필요한데 서울을 만드는 대간룡도 보현봉에서 방향을 바꾸어 정릉 쪽을 향했다.

대간룡이 방향을 바꾸면서 기가 흩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문수봉이 보현봉 뒤를 받쳐주고 있다. 보현봉에서 방향을 바꾸어 낙맥한 용은 기를 더욱 정제 순화시키고 순수한 생기만 모으기 위해서 정릉 고개에서 크게 과협 하는데 그 길이가 길어 용의 기운이 오히려 약해질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중간에 형제봉(462m)이 있어 생기를 보호해준다.

정릉 고개에서 과협한 용은 다시 북악스카이웨이 봉우리를 만들고 계속 변화하면서 팔각정휴게소를 지나 좌측으로 한 능선을 낙산(駱山)까지 내려보내 청룡을 만들고 대간룡은 앞으로 더나가 수려 단정한 탐랑 목성체인 북악산(342m)을 기봉한다.

북악산의 형태와 정신이 제일성봉인 인수봉과 같으니 북악산이 바로 대간룡의 주산이 된다. 주산인 백악산은 뒤로는 태조산(도봉산)과 제일성봉(인수봉)의 정신을 계승하고 앞으로는 혈(경복궁)을 서로 같은 정신으로 결지하게 하므로 응성(應星)이라고도 한다. 북악산은 우측으로 능선을 뻗어 백호인 인왕산을 만들고, 청룡과 백호의 보호를 받은 중심 맥은 청와대 뒤로 돌아 내려가다가 서출동류(西出東流)로 흐르는 청계천을 만나 행룡을 멈추고 산맥의 정기를 모아 혈을 결지한다. 이곳이 지금의 경복궁이다.

서울을 만들기 위해서 음인 용은 백두산에서부터 천리를 넘게 온갖 변화를 하면서 행룡(行龍)해왔고, 양인 물 역시 남한강 북한강이 천리 밖에서부터 흘러나와 양수리에서 합류하여 한강을 이루고 서울을 휘어 감아 주니 산수교합 즉 음양교합이 완벽하게 이루어졌다.

서울의 내청룡(內靑龍)은 삼청터널 위로 혜화동, 동숭동, 이화동을 거쳐 이화여자대학 병원이 있는 낙산까지 이어지는 능선이다. 내백호(內白虎)는 북악산 우측으로 창의문(자하문), 인왕산, 무악재를 지나 금화터널 위로 이어지는 능선이며, 안산(案山)은 백호 능선이 이어져 북악산을 바라보고 서있는 남산이다. 경복궁 혈지를 중심으로 북쪽은 백악산(342m), 서쪽은 인왕산(338.2m), 남쪽은 남산(262m), 동쪽은 낙산(111m)이 둘러싸고 있어 내사산(內四山)을 이룬다. 또 외사산(外四山)은 북쪽에 서울의 진산인 북한산(810.5m), 동쪽에는 외청룡인 면목동의 용마산(348m), 서쪽에는 외백호인 행주의 덕양산(124.8m), 남쪽에는 서울의 조산인 관악산(629.1m)이 겹으로 둘러싸 큰 보국(保局)을 이루고 있다.

서울은 산세뿐만 아니라 물도 수태극(水太極)의 명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당수인 청계천은 서북쪽인 북악산과 인왕산 사이에서 득수하여 서울을 감싸 안아주면서 동쪽으로 흘러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대강수인 한강과 합류하여 서울 전체를 감아주어 태극의 형상을 하고 있다. 수태극은 용의 생기를 가두어 밖으로 흩어지지 않도록 할뿐 아니라 여의도와 밤섬은 한강수의 유속을 조절하고 보국 안의 생기를 보호하는 섬으로 외수구(外水口) 역할을 하고 있다. 이처럼 서울은 풍수지리적으로 천하의 명당으로 한나라의 수도의 요건을 모두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현대적 도시 요건으로도 큰산과 큰 강을 끼고 있어 조금도 손색이 없는 곳이다.

그러나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는 법이다. 한북정맥의 대원국(大垣局)인 서울도 흠은 있다. 첫째 태조산인 도봉산과 주산인 백악산이 불과 60리로 너무 가깝게 있다. 태조산의 험한 살기가 완전히 정제 순화되려면 적어도 100리는 행룡하여 혈을 결지 해야 하는데 서울은 완전히 살기를 벗지 않은 상태에서 혈을 결지 했기 때문에 험한 일을 많이 당한다. 둘째로 서울은 백호와 안산에 비해 청룡이 너무 낮고 허하다. 풍수지리에서 청룡은 남자와 장자를 관장하고, 백호는 여자와 차자 등 지손을 관장하는데 조선 왕조의 역사를 통해 볼 때 장자보다는 지손들이 훨씬 잘되었으며 여인네들과 외척의 발호가 드세었다. 또 동쪽이 허하다보니 동쪽에 있는 외적의 침입에 약했다. 셋째로 황천방(黃泉方)이라고 하는 건방(乾方)이 푹 꺼져있어 황천풍을 받아 험한 일을 많이 당하고, 서북쪽에 있는 적의 침입에 속수무책이었다. 넷째로 좌향(坐向)이다.

궁궐의 좌향을 남향으로 하느냐 동향으로 하느냐를 가지고 유학자인 정도전과 승인 무학대사는 의견을 달리 했는데 왕은 남향을 하여야 한다는 정도전의 말에 따라 서울은 임좌병향(壬坐丙向)을 하였다. 서울의 내당수인 청계천은 서북쪽 건(乾)방에서 득수하여 동쪽 을진(乙辰)방으로 파구된다. 우수도좌(右水到左)하는 물이 을진파(乙辰破)인데 임좌병향을 하면 팔십 팔향법(八十八向法)으로 불립태향(不立胎向)에 충파향상관대궁(庶破向上冠帶宮)으로 총명한 자손이 상하고 퇴패전산(退敗田産)하여 마침내 패절(敗絶)하는 흉한 향이 된다. 만약 무학대사가 주장했던 유좌묘향(酉坐卯向)으로 동향을 하였다면 자왕향(自旺向)으로 부귀왕정(富貴旺丁)하는 길한 향이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몇 가지 흠에도 불구하고 서울은 앞으로도 더욱 발전할 수 있는 도시다. 왜냐하면 보국을 이루게 하는 용과 물이 장원(長遠)하여 천년 이상 보국을 지탱해줄 것이며 서울의 외수(外水)인 한강수는 파구가 여의도 쪽으로 방위는 신술(辛戌)이다. 신술파(辛戌破)에 좌수도우(左水到右)하는 물과 임좌병향은 부귀왕정(富貴旺丁)하는 정왕향(正旺向)이다. 조선 500년이 청계천 내당수에 의한 전반기 서울의 운이었다면 앞으로의 서울은 한강 대강수 외당수에 의한 운으로 더욱 발전해 나갈 것이다.

서울의 풍수지리를 논할 때 청와대 터에 대한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다. 도선국사가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로 점지한 땅으로 대 명당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제 총독부터 대한민국의 역대 대통령들이 암살, 망명, 투옥을 비롯해서 좋지 않은 결과가 나타나는 걸 보면 흉지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직접 청와대에 가보지 않고 자세한 내용을 살피지도 않고 청와대에 대해서 논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청와대 터가 정혈이 아님은 분명하다. 혈이 주산 바로 아래에서 결지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혈이란 주산에서 출발한 용이 길게는 몇 십리 짧게는 십여리 행룡하면서 많은 변화를 하여 기를 더욱 정제 순화시킨 다음 순수한 생기만 모아서 결지 하는 것이다. 북악산이 탐랑 목성으로 수려 단정하다고는 하지만 아직 살기를 모두 탈살하지 않은 석산(石山)이다. 그 밑에는 양택지든 음택지든 있을 수 없으며, 청와대는 산 중턱에 자리잡아 괘등혈이나 연소혈 등 괴혈이 아니면 혈을 결지 할 수 없는 곳이다.

남산에서 청와대를 바라보면 청와대는 북악산에서 출맥한 용이 경복궁을 향하여 가는 주룡 능선 아래에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곳은 산맥의 정기를 받을 수 없는 곳이다. 혹 청와대로 내려간 능선을 용맥으로 보는 경우도 있을 수 있겠으나 그 용맥은 주룡을 지탱해주고 보호해주기 위한 요도지각(橈棹地脚)에 불과하다. 국가 권력의 핵심인 청와대를 옮겨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데 과연 어디로 옮겨야 할 것인가. 조선 태조 때 하륜(河崙)이 주장했던 무악(毋岳)은 연희동과 홍제동에 있는 안산(295.9m)을 주산으로 하는 곳으로 지금은 연세대학교가 자리 잡고 있다. 그렇다면 무학대사가 주장한 인왕산을 주산으로 하여 유좌묘향(酉坐卯向)의 동향을 한자리는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의 사직동과 필운동 일대로 제대로 발복이 되려면 청계천을 다시 살려야 한다는 조건이 따른다. 도심 한가운데로 이름 그대로 청계천(淸溪川) 맑은 물이 흐르는 서울을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