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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이야기조선왕조의 뿌리 삼척 이준경 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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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의 뿌리 삼척 이준경 묘 이야기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 산149번지에는 강원도 기념물 제43호(1981.8.5지정)로 지정된 조선 태조 이성계의 5대조인 이양무(李陽茂) 즉 준경(濬慶) 묘가 있다. 그 위쪽으로는 이양무의 부인인 영경 묘가 있다.

삼척에서 태백가는 38번 국도를 따라 가면 활기리가 나온다. 활기리에서 오른쪽으로 진입하여1.5km쯤 가면 준경묘 입구가 나온다. 입구에서 도보로 1.8km(30분 소요) 거리에 위치하여 있는데 백두대간룡의 중심에 해당된다.

이준경은 태조의 5대조이며 목조(4대조, 이안사)의 아버지다. 본래 그들은 전주에서 살았다. 이안사(李安社)는 전주관아에 관직을 맡아보았는데전주 부사가 총애하는 관기(官妓)와 사랑에 빠졌다. 이를 알아차린 부사가 이안사를 역적으로 몰아 그 가족까지도 모두 죽이려 하였다.

이안사는 늙은 아버지 이양무를 등에 업고 식구들을 모두 데리고 밤에 도망을 쳐 전주에서 멀리 떨어진 삼척에 도달하였다. 갖은 고생을 다하며 이곳까지 왔지만 먹고살일이 걱정이었다. 할 수 없이 그는 부자집 머슴살이를 하였다. 그가 하는 일은 산에가서 나무를 해오는 일이었다.

하루는 나무를 한 짐 해놓고 나무 그늘 아래서 쉬고 있는데 아래쪽에서 사람 소리가 들렸다. 이안사는 숲 속에 몸을 숨기고 그들을 지켜보았다. 노승이 동자승에게 말하기를 이 자리는 5대손에 제왕이 날 자리라고 가르치어주고 있었다. 그러면서 소 일백 마리를 잡아 제사를 지내고 관은 금으로 싸서 장사를 지내야 제대로 발복이 된다고 하였다.

연로한 아버지가 언제 돌아가실지 몰라 묘자리를 찾고 있던 이안사는 귀가 번쩍뜨였다. 집에 돌아온 이안사는 생각에 잠겼다. 살림이 가난하여 소 백마리와 금관을 도저히 구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러다 그는 한가지 방법을 생각해냈다. 소 백(百)마리는 흰(白)소 한(一)마리로 대신하여 백(百)을 만들고 금관은 보리짚이 황금빛이 나므로 이것으로 관을 싸면 되겠구나 하고 마음을 먹었다.

얼마 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는 흰소 한마리를 잡아 제사 지낸후 아버지 관을 보리짚으로 잘싼 다음 노승이 동자승에게 일러준 자리에다 장사지냈다.

그 후로 얼마있었는데 삼척으로 새로 부임한 부사가 전주 부사였다. 이안사는 부사의 눈에 띠면 죽음을 당하므로 남은 식구들을 데리고 함경도 덕원으로 멀리 피신을 하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양무의 5대손 이성계가 때어나 조선을 건국하여 왕위에 올랐다. 묘를 쓴지 약150년만의 일이다.

이태조는 즉위하자마자 삼척에 있는 조상 묘를 찾도록하였는데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이 태조는 삼척을 조상 묘가 있다하여 부(府)로 승격시키고 홍서대를 하사하였다. 세종29년에야 이 묘를 찾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