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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이야기조선 제일의 명당 김극뉴 선생의 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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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일의 명당 김극뉴 선생의 묘소

버스가 인계면 마흘리 용마 마을 광장에 섰다. 조선의 8대 명당 가운데 가장 먼저 꼽힌다는 이른 바 ‘말 명당’ 김극뉴(金克 ) 선생의 묘소가 전방에 보인다. 현무봉인 용마산(龍馬山)의 남쪽 자락이다.
선생의 묘소는 말의 머리 모양을 한 용마산이 비스듬히 내려와 앞으로 쭉 뻗은 능선 위에 있다. 마치 말의 콧잔등 역할을 하는 능선의 제일 앞 부분 위치이다. 바로 말의 코 구멍이다. 그 앞에는 둥근 야산이 두 개가 포개어 있다.
말의 형국을 한 명당은 본래 코끝 자리를 찾아야 한다. 코 구멍에 기가 응집하는 탓이다. 달리는 말의 씩씩거리는 소리가 코 구멍에서 나오지 않던가?
코 구멍 앞의 두 야산은 요석의 역할을 한다. 너무 세게 뿜어져 나오는 기를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솟구쳐 나오는 기운이 모두 공중으로 분산되지 않고 혈처에 맺히기 때문이다.
참으로 재미있는 모양새라고 여기면서 산자락을 타려는데, 초입에서 먼저 반달형의 연못이 나온다. 위쪽의 혈을 품고 내려오던 수기(水氣)가 모여 이루어진 진응수이다. 맑고도 서늘한 기운이 훅 끼친다.
능선에 오르자, 산의 정상 쪽으로 주욱 늘어선 묘들이 나온다. 대부분 광산 김씨들의 묘이다. 가장 위 약간 좌측으로 비껴 앉은 묘역에 김극뉴의 묘가 따로 있다는 안내이다.
옛날, 풍수에 도통한 함양(咸陽) 박씨(朴氏) 삼 형제가 있었다. 어느 날 삼 형제가 한 자리에 모였다. 삼 형제는 각각 실력을 발휘해서 자신들이 들어갈 자리를 삼 년 안에 찾아보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삼 형제는 서로 좋은 자리를 찾기 위해 돌아다녔다. 실력도 발휘할 겸, 자신들의 좋은 자리도 고를 겸 열심히 터를 찾아 나섰다.
삼 년 뒤, 삼 형제는 자신들이 고른 자리를 자랑삼아 서로 내보였다. 첫째가 잡은 자리는 뒷날 김극뉴가 차지하게 된 말 명당이었다. 둘째는 잉어 명당으로 유명한 임실의 갈담에 자리를 잡았다. 셋째는 임실에 금계포란형의 자리를 잡았다.
삼 형제가 잡은 이 세 자리는 오늘날에도 명당으로 유명한 자리들이다. 그런데 이 중에서 천하의 대길지는 역시 첫째가 잡은 말 명당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불행하게도 맏이에게 아들이 없었다. 그래서 고민하던 맏형은 이 자리를 사위에게 주기로 하였다. 그래서 이 자리는 광산 김씨의 후예 김극뉴에게 돌아간 것이다. 이 터를 잡은 박씨의 무덤은 딸의 뒷자리에 있다.
일설에는 박씨가 이 자리를 자신이 쓰려고 하였는데, 이 자리가 아주 좋은 자리임을 미리 안 딸이 꾀를 써서 채갔다는 것이다. 묘를 쓰기 전날 밤, 딸은 이곳에 물을 잔뜩 부어 흉지(凶地)처럼 꾸몄다고 한다.
아무튼 이 자리는 외손이 복을 받는 외손발복지지(外孫發福之地)로 유명한 곳이다. 그 바람에 광산 김씨들이 불같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광산 김씨들이 시제를 지낼 때마다 김극뉴의 장인이었던 함양 박씨에게 먼저 감사의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한편, 함양 박씨 문중에서는 이렇게 좋은 자리를 광산 김씨들에게 빼앗긴 것을 두고두고 서운해한단다. 그 당시, 만에 하나 조카에게라도 그 자리를 주었던들, 뒷날 광김들이 누린 그 많은 복을 자신들의 문중에서 누렸을 텐데 하며 말이다. 광김들 좋은 일만 시켰다고 툴툴댄다는 것이다.
위쪽의 묘역으로 오르는데, 좌측으로 흘러내린 하수사가 나타난다. 왼쪽의 과수원으로 흐른 조그마한 능선이 하수사이다. 그러나 하수사 치고는 아주 큰 하수사이다. 혈을 따라 흘러내리는 물기를 감싸서 걷어주는 역할을 아주 잘 해낼 수 있는 모습이다.
묘역에는 세 기의 무덤이 나란히 서있다. 제일 아래가 김극뉴, 중앙이 김극뉴의 부인이었던 함양 박씨이고, 제일 뒤가 이 자리를 점지했다는 김극뉴의 장인이다. 사위와 딸에게 자리를 내주고 자신은 뒤로 물러앉은 것이다.
우선 장인의 봉분 뒤로 올랐다. 장인의 묘도 혈을 결지했다. 바로 10m 뒤가 결인속기처이다. 넘치는 기를 잘 정제하여 혈을 토해내기 위해 목처럼 조인 모습이다. 건방(乾方)에서 내려온 용이다. 그 뒤로 소나무들이 지표면 밖으로 죄 뿌리를 드러내고 있다.
김극뉴의 무덤 앞에 섰을 때이다. 누군가 ‘뉴( )’ 자를 보고 매우 특이한 글자라고 하며 묻는다. 이는‘부끄러울 뉴’자이다.
김극뉴의 부친 김국광(金國光) 선생이 의정부의 일을 담당할 때이다. 당시 나라에 혼란스런 일이 거듭되어, 김국광 선생이 본의 아니게 의정부의 일을 혼자서 8개월이나 도맡았다고 한다. 이 때에 아들이 태어나자, 선생은 아들의 이름을 극뉴라고 지었다고 한다. 의정부의 집무를 혼자서 8개월이나 맡은 일은 아주 부끄러운 일이니, 아기인 너라도 자라서는 이런 부끄러움을 꼭 이겨내라는 기원에서 그렇게 지었다는 것이다. ‘극(克)’은 ‘이길 극’이란 글자이다.


전방은 역시 시원하다. 약간 몸을 튼 봉분은 정상부분에 바위를 드러낸 앞산을 안산으로 하고 있다. 이 바위는 흉살(凶煞)이라고 볼 수 있다. 순탄치만은 않은 삶이다. 그러나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만 해도 결코 순탄하지 않은 것이 우리네 삶이 아니던가? 그리고 높이 오르는 사람일수록 그에게는 좋지 못한 일이 일어나기 십상인 것이다.
안산의 우측으로는 벼슬을 재촉하는 천마사가 능선이 되었다. 그 뒤쪽에는 상서로운 구름들처럼 나지막한 산들이 이랑을 이루어 태평스럽다. 귀한 자손들을 낳는다는 상운사(祥雲砂)이다.
그런데 상운사 중앙 쪽으로 운무에 덮여 담묵색으로 솟은 문필봉이 우뚝하다. 이 혈을 맺은 용이 몸을 세우고 내려오기 시작한 조산(祖山)이다. 날씨가 맑은 날에는 이 조산이 앞으로 바짝 다가앉는다는데, 오늘은 날씨가 흐린 탓에 뿌연한 것이 아주 멀게 느껴진다.
문필봉은 글 잘하는 후손을 기약하는 봉우리이다. 재미 삼아 세어보니, 이 묘소에서 대략 네 번째 쯤 뒤에 앉아있다. 그래서 4대손이 되는 사계 선생이 이 땅에 나오신 것일까?
청룡과 백호는 첩첩으로 혈을 보듬는 좋은 형세이다. 묘에서 가까운 백호에도 단아한 문필봉이 솟아있다. 다만 하나, 보국(保局)을 싸안는 백호의 끝단이 혈을 찌르고 있는 점이 못내 서운하다. 이는 딸이나 지손들에게 가끔 가슴칠 일이 생겨날지 몰라서이다.
명당은 매우 너르고 평탄하다. 자세히 보면, 우측에서 좌측으로 약간 흐르는 모습인데, 명당이 넓은 만큼 전혀 우려할 일이 못된다. 둘레에 이 집안의 재물을 넘보는 탐봉(貪峰)도 없으니, 큰 부를 기약한다.
짚어보면, 부귀에다 문장을 기약하는 자리이다. 게다가 속발한다는 말 명당이 아닌가? 눈 어두운 내게도 정말, 정말 좋은 자리임에 틀림이 없다.
이 혈의 이름은 호마시풍형(胡馬嘶風形)이다. 북방산의 건장한 말이 바람을 맞으며 울음을 우는 형상이다. ‘호마(胡馬)는 의북풍(依北風)’이라는 유명한 시구가 있다. 호마는 고향의 냄새를 실은 북풍에 몸을 기댄다는 뜻이다. 이 혈은 북풍에 실려온 고향 냄새를 맞고 쏜살같이 내달리고 싶은 충동에 울음을 우는 호마의 형상이다. 그만큼 기가 뻗치는 혈이다. 그만큼 속발하는 자리이다.
김극뉴의 묘는 을진파(乙辰破)에 우수도좌(右水到左), 건좌손향(乾坐巽向)이다. 따라서 자생향(自生向)이다. 발복(發福)이 매우 빠르고, 자손이 번창하며 부귀를 이룬다는 아주 좋은 향이다.
내려오는 도중에, 우리는 능선의 제일 끝자락에서 산딸기나무에 매달렸다. 산딸기가 벌써 익어 우리들을 반긴 탓이다. 그러나 가뭄 탓인지 과육이 튼실치 못하다. 그래도 이게 어디냐며 모두들 부지런히 따서 입에 넣는다.
산딸기를 따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현무봉이 언뜻 말머리가 되어있다. 산딸기 줄기 사이로, 용마산은 아주 커다란 말머리가 되어 하늘을 등에 지고있다.
버스를 타고 마을을 빠져나오는데, 진천의 서 회원이 용마산을 돌아보라고 한다. 버스의 뒤창으로, 용마산은 바로 뒤의 약간 더 솟은 봉우리와 함께 쌍둥이처럼 서있다. 양쪽으로 솟아 말의 귀처럼 보이는 봉우리들이다. 둘 다 정상 부분에 바위를 몇 개씩 이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아주 매끄럽게 생긴 문필봉이다. 말머리가 어느새 붓으로 바뀌어 있다. 이 두 봉우리는 버스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더욱 단아한 문필봉으로, 귀한 모습이 된다. 귀인을 기약하는 귀인사(貴人砂)인 것이다.
버스 안의 시계는 4시를 지난다. 너무 시간이 촉박한 탓에, 담양의 김흥광 선생을 모신 단(壇)은 방문을 생략한단다. 곧장 망월동 묘역으로 향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