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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이야기나무 기러기를 날려 명당을 찾은 남원양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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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기러기를 날려 명당을 찾은 남원양씨

남원양씨는 오래전부터 여러 대에 걸쳐 남원에 세거(世居)해온 순수 한족(韓族) 토착 성씨(姓氏)다. 그런데 하마터면 절손(絶孫) 될 뻔했던 남원 양씨를 오늘날 명문(名門)으로 남게 한 여인이 있었다.개성 출신인 이씨 부인이다. 그녀는 우왕 3년 부자(父子)가 급제한 집안으로 출가하여 주위의 부러움을 한껏 받았다. 그러나 부귀영화를 누릴 것으로 기대됐던 그녀의 일생은 신혼의 단꿈이 깨기도 전에 시아버지와 남편을 한 해 사이에 사별하는 불행을 당했다. 더욱이 그녀는 임신 중이었다.

남편의 장례가 끝나자마자 친정에서는 개가를 권했다. 고려시절만 해도 남편을 사별한 여인은 얼마든지 재혼을 할 수가 있었을 때다. 이씨 부인은 반대했지만 청상과부로 혼자 살 딸의 운명을 걱정한 친정 식구들의 성화는 열화와 같았다. 이씨 부인은 아이를 낳고 나면 개가를 하겠다고 말미를 구한 다음 몇 달 뒤 아이를 낳았는데 아들이었다. 친정 집에서는 이제 개가를 해야 할 것이 아니냐며 재촉이 심하자 그녀는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열녀는 두 지아비를 섬길 수 없다는 서찰을 남기고 어린 유복자 양사보(楊思輔)를 품에 안고 천리 길을 걸어 남편이 살았던 남원 옛집으로 향했다.

천신만고 끝에 이씨 부인이 남원에 내려와 자리를 잡자마자 왜구 아지발도(阿只拔都)가 운봉(雲峰)으로 쳐들어온 난리가 일어났다. 남원은 전쟁으로 황폐화가 되었다. 일점 혈육 양사보를 품에 안은 이씨 부인은 오직 어린 아들을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키울 것인가 만을 생각하고 남원을 떠나 순창으로 피난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바라본 순창 무량산(無量山)의 산세가 너무 아름다웠다. 저 아늑한 곳에서 논밭을 일구고 살면 두 식구 안전은 물론 생계도 걱정이 없을 것 같았다.

그녀는 아주 이사를 결심하고 살만한 터를 찾기 위해서 나무로 만든 기러기 세 마리를 날려보냈다. 그러자 한 마리는 지금의 순창군 동계면(東溪面) 관전리(官田里)로 날아갔고, 또 한 마리는 동계면 구미리(龜尾里)로, 또 한 마리는 순창군 적성면(赤城面) 농소리(農所里)로 날아갔다. 재산이라고는 족보와 남편의 문과 합격증이 전부인 그녀는 어린 아들을 업고 구미리로 내려갔다.

구미리에 도착한 부인은 나무 기러기가 떨어진 집으로 갔다. 그 자리에는 이미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 집에서 방 한 칸이라도 얻어 살려고 마음먹고 집주인을 찾았다. 그런데 집에 살던 노인은 자기가 진짜 주인이 아니고 집주인이 올 때까지 집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진짜 주인이 누굽니까?"하고 이씨 부인이 묻자 노인은 "나도 누군지를 모릅니다. 다만 양씨라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귀가 번쩍 뜨인 이씨 부인이 "내 등에 업힌 아기도 양씨인데 방 한 칸 정도 빌려 쓸 수 있겠군요."하며 집안으로 들어가자 노인은 두 모자(母子)를 유심히 살펴보더니 "바로 부인과 아드님이 집주인입니다."하고는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이 곳에 정착한 이씨 부인은 밤낮으로 일을 하면서 어린 아들을 훌륭하게 키웠다. 아이는 자라서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했고 벼슬길에 나가 함평 현감을 지내는 등 가문을 일으켰다.

지금도 남원에서 순창가는 24번 국도에 있는 비홍치(飛鴻峙)는 이씨 부인이 나무 기러기를 날렸다는 전설에서 비롯된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