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형제가 살고 있었는데 모두 글을 좋아했다. 형은 지관이어서 살림이 풍족했지만 동생은 살림을 따로 사는데 매우 가난했다. 글만 읽고 그저 집에서 놀고 있으니 그 부인이 어절 수없이 방아품을 팔아 연명을 하였다. 하루는 부인이 남편에게,
"큰댁 서방님은 지술을 배워서 그렇게 잘 사시는데 당신은 그런 것이라도 못하오? 늘상 이렇게 놀기만 하면 어쩌오?"라고 말하였다.
동생은 형님의 패철이라도 훔쳐서 배워보자고 생각했다. 하루는 이웃에 제사를 지내는데, 자기 형이 패철을 지니지 않고 나와 있었다. 그 길로 바로 큰 댁으로 가니 형수가 조반을 짓고 있었다.
"왜 제사 집에 안 가셨소?"
"제사 집에 갔다가 형님 심부름으로 왔소. 패철을 안 가지고 왔다면서 나에게 가져오라고 하였소."
형수가 패철을 가져가라고 하자, 동생은 그것을 훔쳐 도망을 갔다. 한 80리쯤 가니 해도 저물어서 저녁이라도 얻어먹을 집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길을 가다보니 좋은 산소가 한 군데 있었다. 그 곳에 앉아 담배 한 대를 피우려니, 나무를 해 오는 아이들 서넛이 그 곳에서 잠시 쉬며 작대기로 돌을 치는 장난을 하였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하는 말이,
"할아버지! 이 산소 자리 좋지요?"
"그래, 좋구나,"
"여기가 안 진사네 산인데, 맹호출림 형국이지요. 안 진사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지금 산을 구하는 중이니 그 곳에 가보지지요."
동생이 아이들에게 가는 길을 물으니 가르쳐 주었다.
안 진사네 집을 찾아가니 의관을 잘 갖춰 입은 지관들이 사랑방에 여러 명 앉아 있었다. 상주가 동생을 보니 목에 패철을 걸었으니 지관이긴 한데, 떨어진 도포에 초라한 모양새라 다른 지관들과 같은 방에 들이기가 미안했다. 그래서 작은 골방에 동생을 들어오게 하였다. 동생은 맨 나중에 저녁 식사를 얻어먹고 방에 누워있었다. 사랑방에서 다른 지관들은 간식을 내다먹으며 이야기를 오래하다가 잠이 들었다.
그런데 소복을 한 젊은 부인이 소반에 주안을 차려서 골방으로 왔다. "할아버지, 주무십니까?"
"깨어 있소. 누가 이렇게 오시는가?"
"놀라지 마십시오. 돌아가신 이의 손주며느리입니다."
부인이 들어와서 대접하고는 한 가지 부탁을 하였다. "할아버지, 제가 시집살이를 하고 안 하고는 할아버지 손에 달렸습니다. 제가 작년 동짓달에 시집을 왔는데, 올 5월에 출산을 했습니다. 아기를 일곱 달 만에 남았다고, 할아버지 장사만 지내면 친정으로 가야만 할 사정입니다. 그러니 할아버지가 마음만 잘 써 주시면 제가 시집에서 살 수 있습니다."
"어떻게 맘을 써 야 하느냐?"
"첫자리를 보실 때, 동구 밖에 있는 증조할아버지 산부터 보신다고 하시오. 그 산은 맹호출림 형국입니다. 호랑이는 일곱 달 만에 새끼를 낳습니다. 그러니 그것에 빗대어서 저를 살게 해 주십시오."
"그러면 되었다. 돌아가거라."
이튿날 아침 식사를 한 후, 동생은 주인에게 구산(求山)을 하자고 하였다. 사랑방에 보름째 머무는 지관들은 답산 가자는 소리를 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상주는 매우 반가워했다.
"가더라도 나는 이 집 선산부터 봐야 하겠소."
"우리 고향은 여기서 멉니다. 우리 증조할아버지, 고조할아버지산이 다 밀리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 선조 산소가 없소?"
"할아버지 산소는 있습니다."
동생은 상주와 함께 할아버지 산소를 찾아가는데, 그 집에서 묵은 다른 지관들도 따라왔다. 산소에 도착하자 동생은,
"아, 참 산 자리 좋다. 맹호출림 형국이구나. 이 산을 쓰고 칠삭동이를 낳으면 삼정승이 나겠구나!"라고 말하였다. 이 말을 들은상주가 얼른 들아와서 동생을 붙잡고는,
"예? 이 산 쓰고 칠삭동이가 나면 삼정승을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정말이십니까?"라고 물으니, 동생은 그렇다고 하였다.
집으로 돌아가니, 상주가 동생에게 큰사랑으로 들어가라고 하였다. 동생은,
"그게 무슨 소리요. 내가 처음 정한 방에서 그 집일을 보고 떠나는 것이 원칙인데, 그럴 수 있나."라며 거절하였다 그러나 상주는 동생을 큰방에 모시고 돗자리도 펴주며 정성껏 대접하였다. 동생을 모셔놓고 셋째 며느리를 찾았다. 장사만 지내면 며느리를 쫓아내려고 준비 단단히 한 부인이 나오며,
"맏며느리도 있고, 둘째 며느리도 있는데, 왜 하필 셋째 며느리!“
라며 싫은 내색을 하였다.
"그게 무슨 말이요. 우리 할아버지 산소가 결국은 셋째 며느리에게 복을 내리는데."
영감이 한 마디 하자, 부인은 더 이상 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그 날 밤, 인적이 끊긴 후에 며느리가 다시 찾아와 말하였다.
"할아버지 덕분에 제가 시집살이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 사는 데가 어디입니까?"
동생이 사는 데를 일러 주자 며느리가 글로 써 두었다.
"지금 시할아버지 묏자리는 정해 두었습니다. 여기서 올라가면 옥녀산발 형국이 있는데 세 폭의 물줄터기로 자리를 손수 표시해놓으셨답니다. 지관을 불러서 거기 운만 맞으면 묘를 쓸 것입니다. 그러니 알고 보러 가십시오."
동생은 며느리가 일러 주는 것을 잘 들어두었다.
이튿날 다시 산 자리를 보러 갔다. 산에 오르니 며느리가 일러준대로 세 폭의 물줄터기를 묻은 데가 바로 보였다. 그래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그 곳에 털씩 주저앉으며,
"아, 산 자리 참 좋다. 옥녀산발형이구나!"라고 말했다. 상주가이 말을 듣고,
"아, 아버님께서 생전에 늘 말씀하시더니, 여기가 그렇게 좋습니까?"라고 물으니, 동생은 더 좋은 자리가 없다며 묘를 쓰도록 하였다.
집으로 돌아온 동생은 주인에게 도끼를 가져다 달라고 해서 패철을 두들겨 깨버렸다. 사람들이 이상히 여겨,
"아니, 패철을 왜 그렇게 하십니까?"
"아, 이 양반들아! 패철 하나를 가지고 좋은 묏자리 하나 보지, 둘 보는 법이 어디 있나?"
주위 사람들이 또 묏자리를 보아 달라고 하면 곤란하니 그렇게 한 것이었다. 그 곳에서 삼일장을 보고 떠나는데, 주인은 동생에게 엽전 백 냥을 말에 얹어 주었다.
한 보름 만에 집으로 돌아오면서 형님 집에 사죄하러 들어갔더니 집이 비어 있었다. 잠시 후에 형수가 와서,"서방님, 벌써 오셨소. 서방님은 한번 가더니 이렇게 큰 부자가 되어 오시네요. 권 진사네 집을 사서 그 곳으로 이사합니다. 형님은 솥 걸러 올라가셨지요.
"안 진사네 손주며느리의 친정이 큰 부자라, 이 집으로 많은 돈을 부쳐 그 돈으로 집을 사서 이사를 하고 댓섬지기 논도 가지게 되었다. 형도 내려와 동생의 손을 잡고,
"동생,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어떻게 되나마나, 형님의 패철을 없앴소."
"패철이야 다시 사면되지. 그래, 어떻게 이 횡재를 하였지?"
"그런데 오늘 솥을 잘못 거셨습니다. 그 집에 형님이 사시고, 제가 형님 집에 들 것을 잘 못 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나는 내 집이 있으니, 자네가 거기에 살아야지."
"그러면 형님이 논을 가지시지요. 형님이 봉제사를 하니 논을 좀 가져야 되지 않겠소. 논이 댓섬지기 된다니, 형넘이 세 지기 가지고, 내가 두어 지기 가지고."형과 아우가 이렇게 서로 위하면서 잘 살았다고 한다.
<<명풍수 얼풍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