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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이야기하늘의 뜻으로 왕터를 잃은 이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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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뜻으로 왕터를 잃은 이의신

조선 선조 때 해남군 마산면 맹진 마을에 학식을 갖춘 이의신(李懿信)이라는 명풍수가 살고 있었다.
소년시절, 의신이 다니는 서당은 오호만을 굽어보는 만대산 북록 골짜기의 높은 자리에 있어서 매일 열길 벼랑을 낀 ''둠벙샘거리''를 지나서 서당에 갔었다. 이목이 수려하고 머리가 좋아서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안다할 정도여서 인근에 그 이름이 자자했다. 그러나 한가지 주위사람이 안타까워 하는 일은 소년의 처지가 정실 소생이 아닌 점이었다. 나라의 큰 계목이 될 수 있었지만 이때의 제도가 서얼을 쓰지 않았으므로 모두들 가슴 아파하였다.
어느날 이 소년이 저녁을 먹고 밤공부를 가는데 ''둠벙샘거리''를 지나다가 한 소녀를 만났다. 어스름 달빛에 비치는 소녀의 모습은 어린의신 소년의 눈에도 그지없이 예쁘고 요염했다. 의신 소년이 벼랑길에 거의 나아갔으나 소녀는 꼼짝을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 길은 좁고 바로 벼랑에 닿아 있어서 소녀를 거기 두고는 비껴갈 수가 없었다. 의신은 안되겠다고 돌아서는데 등 뒤에서 옥같이 밝고 고운 음성이 들렸다.
"도련님 서당은 이쪽이에요!"
막상 집으로 돌아간다 해도 어머님이 걱정하실 것 같고 또 그 이유를 말하기가 복스러울 것 같았다.
"낭자가 길을 막고 서서 서당을 가라 하니 내가 어떻게 갈꼬?"
소년이 혼잣말하듯 하자 소녀가 까르르 웃었다. 소녀의 웃음은 하늘의 음악같이 청아하고 애절한 기운이 있었다.
이 일이 있은 후부터 소년에게는 남모르는 비밀이 생겼다. 저녁마다같은 자리에서 소녀를 만났고, 그러면 으레 소녀는 자기 입 속에 넣었던 구슬을 꺼내어 소년의 입에 넣어 주면서 갖은 교태를 부리며 희롱했다. 꿈결 같은 일이 계속 되었다. 소년은 자신도 모르게 파리하게 야위어 갔다. 부모님은 물론 모든 사람이 그의 일을 걱정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서당 훈장이 소년에게 말했다.
"네가 미구에 죽을 것임을 아느냐?"
"죽기는 왜요? 전 아무렇지 않은데요. 왜들 법석인지 알 수 없어요."
도리어 의아해 하는 소년을 보며 훈장은
"의신아! 내 말을 믿거라. 너의 거동을 살폈더니, 저녁이면 너를 희롱하는 소녀는 여의주를 머금은 백년 여우가 분명했다 천지의 이치를 우리 인간이 어찌 다 알랴마는 네 정기를 모두 빼앗기는 날이면 여우는 사람이 되고 너는 죽게 될 것이다. 내일 소녀를 다시 만나 네 입 안으로 구슬이 들어 왔을 때 꽉 물고 달려서 내게 오너라, 그러면 내가 너를 살릴 것이다. 지금 네가 사는 길은 오직 이뿐이다."
다음 날 소년이 다시 소녀를 만났을 때, 그녀는 왠지 초조해 하면서도 더욱 다정다감했다.
"이제 하루만 더 기다리셔요. 도련님은 곧 이 세상의 고뇌를 잊고 편안해 진답니다. 선생의 말을 믿으면 슬픈 일이 생긴답니다."
그 남자는 은근하게 말하였다. 이 말에 소년은 정신이 들었다. 구슬이 아직 도자기 입 안에 있는 것을 깨달았다. 구슬을 문 소년은 소녀를 떠밀면서 죽을 힘을 다해 뛰기 시작했다.
"안돼요! 안돼요!"
하고 슬프게 소리치는 소녀의 음성이 소년 등 뒤에서 메아리치고 있었다. 그러나 정신없이 서당 마당에 들어섰을 때의 일이다.
후다닥 문을 차고 나오면서, 훈장이 "의신아 여기다."하고 소리쳤다. 그 서슬에 힘이 풀린 소년은 디딤돌에 걸려 앞으로 넘어졌다. 꿀꺽하고 구슬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것을 느끼며 소년은 마당바닥에 얼굴을 파묻은 채 정신을 잃었다. 그 때 늙은 여우의 슬피 우는 소리가 밤하늘에 아득히 길게 메아리 쳤다.
다음날 서당의 훈장은 의기소침한 몰골로 마을을 떠나면서 다음과 같이 중얼거렸다.
"아! 아깝다. 하늘을 보지 땅은 왜 봐. 여의주가 지관 하나를 만들고 말다니, 슬픈 일이다. 그러나 세상은 명지관을 얻었다 기뻐할 것이다."
의신이 장성하자 학문과 문장이 높아 그와 나란히 설 사람이 없다 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 아우는 선조(宣祖)때 등과해 관직에 나아가는 영광이 있었으나, 서얼 출신인 의신은 갈데 없는 지관이 되어 팔도를 주유하는 우울한 신세가 됐다.
그런 가운데 별당의 모친이 장성한 아들의 우울한 나날에 가승을 않다가 병을 얻어 이내 세상을 떠났다. 그 어머니의 마지막 말씀은 ''내죄가 하늘에 닿았다. ''였으니 그것은 하늘이 내린 큰자식을 자기의 미천한 신분 때문에 엄매이게 한 모정의 깊은 한을 드러낸 외침이었다.
그러나 그와같은 어머니의 장지를 잡음에 있어 그 무렵 벌써 명지관의 이름이 놓았던 의신의 태도는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 오호 건너 영암 땅에 어머니의 장지를 잡았는데 더러운 물이 절금거리는 천하의 몹쓸 땅이었다. 사람들이 어찌된 일이냐고 묻자, 의신은 대답하기를 어머니로서 자식에 대한 도리를 못했으니, 이만하면 걸맞다 했다 사람들은 그러한 의신을 가리켜 그 학문이 아까운 천하의 불효자라 했다.
그 후, 삼년이 지나자 난데없이 나타난 의신은 그 모친의 이장을 서둘렀다. 이번에는 그 자리가 딱딱하여 누워있기에 고생스러운 자리를 잡아 어머니를 이장 할 것인데 그럼으로써 어머니에 대한자기의 원한을 한겹 더 풀 것이라고 했다.
막상 이장하는 날이 되자 의신의 태도는 그의 말과는 달리 사뭇 진지했다. 삽질 한번, 곡괭이질 한번에도 극도로 조심하였다. 이제 곧 천관을 하여야 할 차례였다. 그때 한 초립동이 나타나 의신의 앞에 정중히 인사하고 말하기를,"지금 사또께서 여기를 지나시다가 높으신 선생님이 그 모친의 장지를 닦고 계시는데 한 번 뵙고 가르침을 받았으면 한다고 정중히 여쭙고 오라 합니다."
하는 것이었다. 의신은 이장꾼들에게,
"이제 곧 암반이 나을 것인 즉 연장을 조심하여 쓰고 암반이 보이면 나를 기다려 천관하도록 하여라."
하고 초립동을 따라 한 두발을 떼어 놓았을 때였다. 분명히 앞에서 걸어가던 초립동이가 보이지 않았다. 삽시간에 질린 얼굴이 된 의신이 모둠 발로 뛰어 장지에 돌아오는 참이었다. 한 인부의 곡괭이가 땅에 닿는 순간 "펑"하는 소리와 함께 그 자리에서 안개가 피어올랐다. 안개 속에선 두 마리의 학이 공중 높이 솟아 올랐다. 그 중, 한 마리는 바다북쪽으로, 한 마리는 남쪽으로 날아갔다. 이를 본 이의신이 탄식하며"허사로다"하고 학이 날아간 곳을 바라보니 두 마리의 학이 떨어져 섬을 이루었다. 그래서 후대에 까지 북쪽 섬을 허사도(許沙島)라 부르고, 남쪽으로 누런 학이 바다에 떨어진 곳을 황도(黃島)라 불렸다 한다. 이의신은,
"하늘이 내 일을 막으니 사람의 지혜로 어찌 하늘의 이치를 당한다할 것인가?"
하고 돌아와 묘혈을 보니 바닥의 암반이 둘로 갈라져 깊은 구멍이 나있었다.
곡괭이질을 함부로 했던 인부가 그 일을 사죄하나 의신은 쓰게 웃을뿐 서둘러 이장을 마치라는 말을 남기고 그 자리를 떠났다. 그 후에 의신이 명나라에서 주부 벼슬에 올랐다는 소식이 이 땅에 전해지고 동시에 의신이 그 모친을 이장한 자리가 왕터였으나, 하늘이 말려 그와 같은 변괴가 있었다 하는 말이 떠돌았다.

<<조선의 명풍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