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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궤의 재현읍성론(邑城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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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성론(邑城論)

읍성(邑城)은 치안과 외적의 방어, 곧 행정과 방위의 목적으로 도시 외곽을 성벽으로 둘러쌓은 성곽(城郭)을 말한다. 통치자나 군사들은 물론이고 주민 전체가 성벽으로 둘러싸인 곳 안에 살게 되는데, 이런 형태의 성곽은 비단 우리 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이웃 나라 중국은 물론 멀리 중동이나 유럽 등 세계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다. 특별히 형태가 다른 성곽으로는 중세 유럽의 성이나 16세기 이후 일본의 성처럼 성주가 거주하는 곳만을 따로 견고하게 축조하는 경우도 있다. 가장 일반적인 성곽의 모습은 도시 전체를 긴 성벽으로 감싸는 형태이다.
중국에서 비롯된 성곽이라는 말은 내성을 뜻하는 성(城)과 외성을 가리키는 곽(郭)의 합성어로서 내성은 왕이 머무는 궁성(宮城), 외성은 일반 백성들의 거주 지역이 된다. 많은 분쟁이 있었던 춘추전국시대 이후로 중국의 도성과 읍성 계획은 진나라 때와 후 한대를 거쳐 자리를 잡게 되는데, 일반적인 중국의 도성이나 읍성은 평탄한 지세를 따라 네모 반듯한 성곽을 이중 또는 삼중으로 쌓는 것이 특징이다. 성벽 바깥에는 반드시 깊은 해자(垓子)를 만들어서 적이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했으며, 성벽에는 일정한 간격마다 치성(雉城)이라는 돌출부를 두어 성벽에 접근하는 적을 감시하거나 공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와 비교해볼 때 우리 나라 성곽의 기본적인 형태는 중국과 동일하지만 세부적으로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 먼저, 우리나라의 읍성은 평탄한 지형을 택하는 경우가 드물고 대개 굴곡이 많은 곳에 자리잡았다. 그 때문에 성곽은 네모난 형태보다는 지형에 따른 불규칙한 모습이 일반적이다. 또 경사진 곳에 성을 쌓는 경우가 많아 호를 두르는 경우도 거의 없다. 특히 도성이나 읍성 주변에 산성(山城)을 갖추고 있는 것이 차이점이다. 조성왕조 시대에도 마찬가지로 행정상 또는 국방상 필요한 곳에 읍성을 만들었으며, 전략상 유리한 곳에 전쟁에 대비하여 산성을 만들었다. 그래서 결국 읍성 자체에는 이렇다 할 방어시설을 두지 않았다는 점이 중국과 다르다.
읍성의 특징으로는 곳에 따라서 일부 평지인 시가지를 포함하거나 일부는 후면에 있는 산의 산정(山頂)까지 에워싸서 성을 만드는 것이다. 이로 인해 성곽의 형태는 평양(平壤), 개성(開城) 등과 같이 내성 및 외성으로 된 것과 완산부(完山府, 지금의 전주)와 같이 정방형인 것, 청주목(淸州牧)과 같이 불규칙형인 것 등 각종의 형상이 있었으며, 그 규모는 대체적으로 크지 않았다.
읍성 계획에 있어서 공통적인 특징은 왕권을 상징하는 건물인 객사(客舍)가 가장 중요한 위치에 놓이고, 서쪽에는 문관이 사용하는 향청(鄕廳)이 놓이게 되며, 동쪽에는 중영(中營), 훈련원, 군기고(軍器庫) 등이 배치된다. 문묘(文廟)와 향교(鄕校)는 한적한 곳에 좀 떨어져서 건축되며, 사직단(社稷檀)은 서쪽에 놓인다.
남문에서 시작되어 객사에 이르는 가로가 남북주축 간선로를 이루어서, 객사가 노단경(路端景)을 형성하도록 되어 있으며, 동서 간선로는 남북주축로에 어긋나게 마주쳐서 3교차로를 형성한다. 결국 전체적인 가로망 형성은 자연 발생적이고 불규칙한 요소를 많이 찾아볼 수 있으며 3교차로, 우회로, 막힌 골목들이 사용되었다. 성곽 내외에는 순환로를 만들고, 광장으로는 객사 앞의 중앙광장과 교역을 위한 성문 앞 광장 등을 만들었다.
민가는 5-8호가 주거단위가 되고, 5-8개의 단위가 모여 한 부락을 형성하였다. 주거 단위에는 큰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공공 장소가 마련되었으며, 성 내외에 경치가 좋은 곳에는 정자를 마련하였다. 읍성의 경관은 대부분 비대칭적인 균형을 이루었으며, 진산(鎭山)을 배경으로 정자, 성곽, 문루(門樓), 객사 및 관아(官衙) 건물들이 읍성 경관을 상징하는 것이 되었다.



참고문헌 : 실학정신으로 세운 조선의 신도시 수원화성(김동욱,2002,돌베게),2002제 3회 정기학술발표회(사단법인 화성 연구회),한국건축사(윤장섭,2002,동명사),한국건축대계7 석조(장기인,1997,보성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