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 문화원형 라이브러리
인쇄 문화원형 스크랩

고려의 혼속

고려시대에도 서류부가의 혼속이 관행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고려시대의 혼인풍속의 특징을 크게 구분하면 근친혼, 일부다처혼, 족외혼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혈족 내의 근친혼인은 왕실 내에서도 비난하는 한편 원나라에서조차 동성혼을 비난하게 되어 충선왕은 동성혼을 금하는 교서를 내리기에 이르렀다.


왕실의 근친혼은 신라 때부터 있었으며 고려도 개국 초부터 왕실의 기반을 튼튼히 하고, 왕통을 순수하게 유지할 목적으로 용의 후손이라는 용종설(龍種說)이 근거가 되었다. 고려의 혼례음식에 대한 기록은 다음과 같다.'계림유사(鷄林類事)'에는 “고려에서는 사위집에서 재물을 받지 않고 음식을 차릴 뿐이다” 라는 기록이 있고, '고려도경(高麗圖經),1123년'에는 “귀인, 사족(士族)은 혼가에서 대부분 폐(幣)를 하고 있으나, 민가에서는 오직 술과 쌀로 기쁨을 나눌 뿐이다.” 라고 하였다.


고려에서 행해진 폐백관습은 옛 문헌이 매우 적어서 단언하기 어렵지만, 위의 사례에서 볼 때 신라와 같았을 것이다. 혼례음식이나 폐백에 관한 일정한 규범은 없었으며, 형편에 따라 잔치를 열어 혼인을 공인 받는 의례로 삼았다. 단 왕가나 상류층에서는 폐백을 보냈으며, 폐(幣)라고 쓰여 있는 것으로 보아 포폐(布幣) 또는 옥폐(玉幣)등의 예물이 중심 물품이었다고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