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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의 호랑이 신돌석

줄거리

1895에서 1896년 사이에 일어난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단발령은, 의병단의 조직과 그 활발한 활동에 불을 붙였다. 이 중에선 천민 출신의 의병장이 등장하기도 했는데, 그가 바로 신돌석이라는 인물이다.

그는 본 이름인 “태호”보다 의병대장 신돌석이란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졌는데, 태백산의 호랑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출중한 무예를 지녀, 특히 택견과 같은 맨손 무예의 명수였다고 한다.

영해부사 경광국이 “그의 안광은 횃불 같고, 그의 다리 힘은 바다를 건널만 했다”고 말할 정도로, 신돌석은 장대한 체구에 엄청난 힘, 또 뛰어난 택견의 기예를 지닌 사람이었다. 특히 수십 장이나 되는 구룡을 수월하게 뛰어 넘는 ‘발질’ 위주 택견 기예의 소유자였는데, 한편으론 두름치기의 명수였다고도 전해진다.

거의 모든 싸움에서 맨손으로 싸웠던 신돌석은, 일제가 조선에 대한 군사적 지배에 전속력을 가하고 있을 무렵, 청도지방을 지나다가 전선 가설작업을 하는 일본군 공병들을 목격하고, 당장 그들에게 달려들어 일본군을 5명을 때려눕히고 전주를 뽑아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게 뛰어난 의병장이었던 신돌석도, 1908년엔 암살을 당하고야 말았다. 어느 날 밤, 일본에게 매수당한 비열한 배신자 김상열 형제의 집에서 만취해 잠이 든 새, 도끼를 든 두 형제의 공격을 받게 된 것이었다.

가슴에 도끼를 맞은 그는, 그 상태에서도 벽을 쳐서 부수고 세 번이나 10여 장 가량 뛰어올랐다가 담장 밖 10여 보 되는 능상으로 피했다. 그러나 끝끝내 뒤쫓아 와서 공격하는 형제를 당해낼 수는 없었다. 뛰어난 기량과 용기를 지녔던 신돌석은, 김상열 형제가 내려치는 도끼에 여러 차례 맞고서, 아까운 생에 결국 종지부를 찍게 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