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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건국 신화(삼국유사)

단편명 : 고구려 건국 신화(삼국유사)
구술자 : 일연
수집지점 : 미상
수집시기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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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동명왕설화)

高句麗(고구려)

高句麗(고구려)는 곧 卒本扶餘(졸본부여)다. 혹은 지금 和州(화주) 또는 成州(성주)등이라 하나, 모두 잘못이다. 卒本州(졸본주)는 遼東方面(요동방면)에 있다. 國史(국사) 高麗本紀(고려본기)에 始祖(시조) 東明聖帝(동명성제)의 姓(성)은 高氏(고씨)요 諱(휘)는 朱蒙(주몽)이니, 이 앞서 北扶餘王(북부여왕) 解夫婁(해부루)가 東扶餘(동부여)로 避(피)하고 夫婁(부루)가 돌아간 후 金蛙(금와)가 位(위)를 이었다. 이때에 (金蛙:금와) 太伯山(태백산) 南(남)쪽 優渤山(우발산)에서 한 女子(여자)를 만나 물으니, 대답하되 나는 본시 河伯(하백)의 딸로 이름은 柳花(유화)인데, 여러 아우들과 나와 놀고 있을 때, 한 男子(남자)가 있어 自己(자기)는 天帝(천제)의 아들 解募漱(해모수)라 하며 나를 熊神山下(웅신산하) 鴨綠江(압록강)가의 집 속으로 꾀어 私通(사통)하고 가서 돌아오지 않으므로【檀君記(단군기)에는 「檀君(단군)이 西河(서하) 河伯(하백)의 딸과 친하여 아들을 낳아 夫婁(부루)라 이름하였다」하였는데, 지금 이 記事(기사)에는 解慕漱(해모수)가 河伯(하백)의 딸을 私通(사통)하여 뒤에 朱蒙(주몽)을 낳았다고 한다. 그리고 檀君記(단군기)에 「아들을 낳아 夫婁(부루)라 이름하였다」하니夫婁(부루)와 朱蒙(주몽)은 異腹兄弟(이복형제)일 것이다】父母(부모)가 나의 중매 없이 혼인한 것을 꾸짖어 이곳으로 귀양 보낸 것이라 하였다. 金蛙(금와)가 이상히 여겨 (그를) 방속에 가두었더니 日光(일광)이 비쳐왔다. (그가) 몸을 避(피)하매 그리로 쫓아와 비치며 그로 인해 태기가 있더니 알 하나를 낳았다. 크기가 닷 되만 하였다. 王이 그것을 버리어 개와 도야지에게 주니 모두 먹지 않고 또 길에 버리니 牛馬(우마)가 避(피)하고 들에 버리니 새와 짐승이 덮어주었다. 王이 (이를) 깨뜨리려다가 못하고 그 어미에게 돌려주었다. 그가 물건으로 싸서 따뜻한 곳에 두었더니 한 아이가 껍질을 깨고 나왔다. 骨格(골격)과 외양이 英特(영특)하고 奇異(기이)하였다. 나이 겨우 七歲(칠세)에 숙성하여 凡人(범인)과 다르고 혼자 활과 살을 만들어 백번 쏘면 백번 맞추었다. 國俗(국속)에 활 잘 쏘는 것을 朱蒙(주몽)이라 하므로 그렇게 이름 지었다. 金蛙(금와)에게는 아들 일곱이 있어, 항상 朱蒙(주몽)과 노는데 技能(기능)이 따르지 못하였다. 長子(장자) 帶素(대소)가 王(왕)에게 말하되 朱蒙(주몽)은 사람의 所生(소생)이 아니니, 진작 처치하지 않으면 後患(후환)이 있을까한다 하였다. 王(왕)이 듣지 않고 (朱蒙:주몽에게) 말을 기르게 하였다. 朱蒙(주몽)은 駿馬(준마)를 알아보아 (일부러) 적게 먹여 파리하게 하고 駑馬(노마)는 잘 먹여서 살찌게 하였다. 王(왕)이 살찐 말을 自己(자기)가 타고 파리한 말은 朱蒙(주몽)에게 주었다. 王(왕)의 여러 아들과 신하들이 朱蒙(주몽)을 장차 죽이려고 꾀하니 朱蒙(주몽)의 어머니가 알고 그에게 말하되 國人(국인)이 장차 너를 죽이려고 하니 너의 才略(재략)으로 어디를 간들 못살겠느냐, 속히 도망하라 하였다. 이에 朱蒙(주몽)은 烏伊(오이)등 세 사람으로 벗을 삼아 淹水(엄수)【지금은 자세치않다】에 이르러 물에 告(고)하되 나는 天帝(천제)의 子(자)요 河伯(하백)의 孫(손)인데, 오늘 도망하는데 쫓는 자가 거의 닥치게 되었으니 어찌하면 좋으냐고 하였다. 이때에 고기와 자라가 다리를 이루어 건너게 하고 곧 흩어지니, 쫓아오던 敵騎(적기)가 건너지 못하였다. 卒本州(졸본주)【玄?郡(현토군) 지경】에 이르러 도읍을 하였으나, 미처 官室(관실)을 지을 餘暇(여가)가 없고, 다만 집을 沸流水(비류수)위에 짓고 거기에 居(거)하여 國號(국호)를 高句麗(고구려)라 하고 인하여 高(고)로써 氏(씨)를 삼았다【本姓(본성)은 解(해)였는데 지금自己(자기)가 天帝(천제)의 아들로 日光(일광)을 받고 낳다하여 스스로 高氏(고씨)로 하였다】이때 나이 十二歲(12세)였으니 漢孝元帝(한효원제) 建昭二年甲申(건소이년갑신)에 卽位(즉위)하여 王(왕)이라 일컬었다. 高(句)麗〔고(구)려가 全盛(전성)하던 때는 二十二萬(22만) 五百八十戶(580호)가 되었다.珠琳傳(주림전) 第二十一券(제21권)에 記載(기재)하되 옛날 寧稟離王(영품리왕)의 侍婢(시비)가 姙娠(임신)하였는데 相(상)장이가 占(점)쳐 가로되 貴(귀)히 되어 王(왕)이 되겠다고 하였다. 王(왕)이 말하기를 나의 자식이 아니니 죽이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다. 侍婢(시비)가 아뢰되 하늘로부터 (무슨) 기운이 내려와 姙娠(임신)한 것이라 하였다. 그 아이가 태어나매 상스럽지 못하다하여 도야지 우리깐에버리니 도야지가 입김을 넣어 주고, (또) 마굿간에 버리니 말이 젖을 먹여 죽지않게 하여 마침내 扶餘王(부여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