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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 성종 10년

제목 : 고려사 성종 10년
저술자 : 김종서, 정인지
기록일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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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묘 10년 춘 2월 신유에 제도에 안위사를 보내어 민간의 질고를 존문하게 하였다. 윤월 계유에 처음으로 사직단을 세우고 교하기를 [내가 듣건대 사는 토지의 주신이라 땅이 넓어서 다 공경할 수 없으므로 봉토하여 사를 세움은 그 공에 보답하고자 함이요 직은 오곡의 장이라 곡이 많으므로 두루 제사지내지 못할 새 그러므로 직신을 세워 써 제사하는 것이다. 예에 말하기를 왕이 군성을 위하여 사를 세우는 것은 대사라고 하고 스스로를 위하여 사를 세우는 것은 왕사라고 하며 제후가 백성을 위하여 사를 세우는 것은 국사라고 하고 스스로를 위하여 사를 세우는 것은 후사라고 하며 대부 이하가 공동으로 사를 세우는 것은 치사라고 한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국가가 있으면 사직을 세우지 않을 수 없다. 위로는 천자로부터 아래로는 대부에 이르기까지 근본을 보이고 공에 보답함을 갖추지 않을 수가 없다. 이에 성조로부터 누대를 지나도록 하송의 사를 두지 못하고 아직도 주율의 인이 결하였던 것이다. 짐이 계위한 후로 모든 시책을 반드시 예전에 의거하여 자목부소의 실(종묘를 말함)을 방불하게 경영하고 춘기추보의 단(사직단을 말함)을 바야흐로 장차 창립하고자 하나니 군공으로 하여금 장소를 가려서 단을 설치하도록 하라]고 하였다. 이 달에 최항 등에게 급제를 사하였다. 하 4월 경인에 한언공이 송으로부터 돌아와 대장경을 바치매 왕이 내정 맞아들여 중을 불러 개독하고 하교하여 사하였다. 추 7월에 가물었다. 기유에 하교하기를 [늦여름은 이미 다 가고 초가을도 반이나 되었는데 아직도 시우가 오지 않으니 깊이 마음속에 걱정된다. 알지 못 커라 정화가 쇠퇴함인가 형상이 적중하지 못함인가 옥문을 열어서 죄수를 방면하고 정전을 피하며 상선을 감하고 부지런히 절에 기도하며 산천에 망사하여도 비올 징조(석연)는 보이지 않고 도리어 햇빛 쪼임(김오지혁)만 더함을 보게 되었다. 나의 양덕으로 말미암아 이 같은 항양을 이루게 됨이니 양노의 은을 널리 베풀어서 농사를 걱정하는 생각을 표시하고자 하노라. 옹희 3년에 노인에게 사급한 규제에 준하여 서울에 있는 서민으로 나이 팔십 이상 된 자는 소사에서 성명을 구록하여 신문하도록 하라]고 하였다.

동 10월 무진에 서도에 행차하였다. 지나는 주현의 부로들이 우주를 가지고 와서 바치는 이가 있거늘 술은 군사에게 나누어 주고 소는 돌려보냈다. 압록강 외의 여진을 백두산 외에 쫓아내어 살게 하였다. 한림학사 백사유를 송에 보내어 불경과 어제를 보내 준 것을 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