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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百濟)의 수박과 택견

설명

백제는 지리적 이점을 살려, 중국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이를 꽃피워서 일본에 전하는 가교(架橋)의 역할이 있었으므로 그들과 교류가 빈번했던 것이다. 왕을 비롯한 귀족층이 고구려 사람들이었다고 본다면 고구려의 풍속이 백제에 그대로 전해진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선배제도의 수박(手搏)도 백제에서 시행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문화는 고구려나 신라보다 앞섰던 것으로 보이며, 계백(계백:?~660 의자왕 20)과 신충(信忠)같은 장군의 출현을 생각하면 무술(武術)도 상당한 수준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관련자료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본서에 의하면 전라도 여산군 작지 마을에서는 해마다 7월15일 백중이 되면 근방 충청도와 전라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수박희(手搏戱)를 하여 승부를 겨루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즉, 백제의 옛 땅에서 시행된 기예인 만큼 수박희(手搏戱)가 백제 시대에도 시행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일본의 일본서기(日本書紀)
백제의 벼슬아치 및 수박(手搏)에 능한 무인을 일본 조정에서 초청하여 일본의 무술인과 상박(相搏)하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백제와 교류가 많았던 일본이 백제로부터 수박(手搏)을 수입한 기록이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