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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탁호텔

위치 : 현재 정동(貞洞) 29번지에 위치하였다. (지금의 정동교회와 정동극장 뒤에서 경향신문사 쪽으로 올라가는 길에 호텔의 터가 남아있다.)
내용 : 손탁호텔의 운영자는 러시아 공사 웨베르(Karl Waeber)의 처형인 손탁(Sontag : 1854-1925?)이다. 손탁은 1895년에 고종황제에게 하사받은 정동 29번지 소재(현 이화여고)의 사저(私邸) 1,184평을 철거하고, 1902년(고종 39년) 그 자리에 2층 양관을 지었는데, 이것이 손탁호텔이다.
경성에서 최초로 호텔식 다방을 선보인 손탁호텔은 1층은 보통실과 식당, 2층은 귀빈실로 이루어졌다.
1층 식당 곁에 다방이 있었다. 서양 외교관 대한제국 고위관리들의 사교장 역할 및 미국을 주축으로 결성된 정동구락부의 모임장소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1918년 문을 닫은 뒤 이화학당에서 사들여 기숙사로 사용하다가 1923년 호텔을 헐고 새 건물을 지었다. 그러나 6·25때 폭격을 당해 폐허로 남아 있다가 1969년 3층짜리 호텔로 지어져 이후 여관과 식당으로 운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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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1 : 고(故) 이태왕(李太王) 알견기(謁見記), 생각나는대로 단편단편(斷片斷片)으로

잡지명 : 삼천리 제4권 제10호
발행년월일 : 1932년 10월 01일
기사제목 : 고(故) 이태왕(李太王) 알견기(謁見記), 생각나는대로 단편단편(斷片斷片)으로
필자 : 배재고등보통학교장(培材高等普通學校長) 아편설라(亞偏薛羅) 배재고등보통학교장 아편설라
기사형태 : 회고·수기



(중략)
기자부기(記者附記)... 고(故) 이태왕(李太王)께서 로서아(露西亞) 공사관에 게섯슬때 음식은 주로 서양음식을 잡수섯다하는데 그는 로서아공사(露西亞公使) 배-벨의 족하딸인가 되는 「손탁」이란 독신(獨身) 여자가 전부 지어드리엿다. 이태왕(李太王)께서는 이 로서아(露西亞)여성 손탁의 정성을 깁부게 아시고 뒷 날 궁중에서 외국사신들을 초연(招宴)할 때의 음식준비 일체를 손탁 양(孃)에게 맛기엇다. 그리고는 또 땅과 집까지 지어주섯다는데 그것이 손탁호텔이요. 지금 정동(貞洞)잇는 이화학당 ? 교사(校舍)로 그 때는 외국의 육해군(陸海軍) 장교들이나 명사들이 반드시 여기에 투숙하엿다.
손탁 양(孃)은 그 뒤 일로(日露)의 풍운(風雲)이 끗끗내 파열되어 경성(京城) 주재하든 공사 이하 150여명의 로서아(露西亞)군대까지 서울을 퇴거(退去)하여 인천(仁川)으로해서 상해(上海)를 거처 본국으로 송환될 때에 그 재산을 모다 팔아 현금으로 만들어가지고 도라갓다 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