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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극장 터

이름

동양극장 터

카테고리

극장, 주점

연번

213

설치연도

2003

위치

중구 충정로1가 62 문화일보사

GPS좌표

37.567825°N 126.967897°E

표석문구

동양극장은 1935년 서울에 세운 최초의 연극 전용 극장으로 신파극을 공연하였다. 이 극장은 당시 대중 연극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호화선’과 ‘청춘좌’는 이 극장을 대표하는 2대 극단이었다.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연극이 공연될 때는 많은 장안 기생들이 모여 들었다고 하며, 광복 후 운영난으로 영화관으로 사용되다가 1976년에 완전 폐관되고 1995년에 철거되었다.

표석설명

1935년 개관한 우리나라 최초의 연극 전용 상설 극장



무용가인 배구자와 그의 남편 홍순언에 의해 설립된 동양극장은 648석에 회전무대를 갖추고, 연극을 자체적으로 소화하기 위하여 전속극단을 두고 연중무휴로 연극을 공연하였다. 동양극장은 전속극단으로 신파 중심의 ‘청춘좌’, 사극 중심의 ‘동극좌(東劇座)’, 희극 중심의 ‘희극좌’ 등을 두었으며, 주로 신파극을 공연하였다. 동양극장의 관객층은 주로 종로의 기생들이었는데, 50년대까지 [홍도야 울지 마라]를 비롯하여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어머니의 힘], [황진이], [장한몽], [유정무정], [북두칠성] 등등 기생들의 심금을 울리는 신파극 히트작을 끊임없이 공연하였다.

동양극장은 최초의 연극전용극장이라는 성격을 지닌 이전 극장들과 차별되는 특징 외에도, 극장의 운영에 있어서도 이전의 극장들과는 차별되는 모습을 보인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월급제도의 실시이다. 이전까지의 극단 단원은 공연의 개런티를 일급 또는 무급제도로 받았지만, 동양극장에서는 배우들을 고정 월급제로 채용하여 연극 활동에만 전념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동양극장은 이로써 우리나라 최초로 극단에 월급제도를 도입한 극장이 되었으며, 당시로서는 매우 획기적인 운영방식을 취한 극장이 되었다.

그러나 동양극장은 신파극이 점점 쇠퇴함에 따라 운영난을 겪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1950년대 이후 한때 영화관으로도 쓰이다가 1976년 2월 폐관되고, 1995년 철거되었다.

얽힌 이야기

동양극장의 연극인들



이 책은 총 14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내용은 각각 동양극장에서 공연하였던 신파극과 그에 관련된 이야기, 최초의 여배우와 극단에 관한 이야기, 최초의 창작 무용가이자 설립자인 배구자의 이야기와 역시나 설립자이자 흥행의 귀재였던 홍순언의 이야기, 최초의 전업 연출가였던 동양극장 연출가 박진 이야기, 흥행 극작가였던 임선규 이야기 등 동양극장과 관련된 여러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다.

참고문헌

1. 김승미(2008). 만원사례 예술경영학. 늘봄
2. 김영무(1998). 동양극장의 연극인들. 동문선

참고이미지
1935년 동양극장의 모습 1935년 동양극장의 모습
1970년대 영화관으로 변모한 동양극장의 모습 1970년대 영화관으로 변모한 동양극장의 모습
현재 주변 이미지
찾아가는 길

5호선 서대문역 5번 출구로 나와서 직진 하다보면 농업박물관이 나온다. 농업박물관과 롯데리아를 지나면 바로 옆에 문화일보사가 있는데 그 앞에위치. 표석 주변에는 본죽과 스타벅스 건물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