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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전투원형진주성(晉州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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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晉州城)

이 칭 : 촉석성(矗石城)
시 대 : 조선
소재지 : 경남 진주시 남성동, 본성동
규 모 : 지정면적 173.028㎡
지정사항 : 사적 제118호
관련전투 : 진주성전투(晋州城戰鬪)(1차) 진주성전투(晋州城戰鬪)(2차)
관련인물 : 김시민(金時敏) 김천일(金千鎰)
상세내용

조선시대 축성된 석축 평산성.

내성과 외성으로 되어 있으며, 현재 현재 수문·암문·장대·포루 등의 유적지와 촉석루·함옥헌·서장대·진남루·창렬사·포정사 등의 건물이 남아 있다. 이 성은 원래 백제시대의 거열성(居烈城) 터였다고 하며, 고려 공민왕 때도 7차의 중수가 있었다고 하나 그 후 성벽이 무너진 채 방치된 것을 조선 세종 19년(1437) 관민이 합력하여 성을 보수하였다. 임진왜란 이듬해인 1593년 제2차 진주성전투에서 패했을 때 옛 북문과 신북문, 남문에도 옹성을 축조하고 근대전에 적합하도록 내성에 이어 지금의 너비로 다시 쌓았다. 1605년(선조 38) 병사 이수일(李守一)이 진을 성 내로 옮기고 성이 너무 넓어 수비가 곤란하다 하여 내성을 구축하였다. 1607년에는 병사 김태허(金太虛)가 포루 12개를 증축하였다.

이곳에서의 가장 유명한 전투는 임진왜란때 치른 두 차례의 진주성전투이다. 1592년(선조25) 10월 5일 진주에 이른 왜군 약 2만이 수천의 대나무 다리를 만들어 공격해오자 진주 목사 김시민(金時敏)이 3,800여의 조선군을 이끌고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조선군은 성문을 굳게 닫고 화약을 장치한 대기전(大岐戰)을 쏘아 대나무 다리를 파괴하고, 마른 갈대에 화약을 싸서 던지거나 끓는 물과 큰 돌을 던지는 등 필사적으로 왜군을 방어하고 왜군의 북진을 막아냈다. 제1차 싸움에서 패배한 왜군은 전열을 정비하여 1593년 6월에 다시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이 당시 진주성에는 창의사 김천일(金千鎰)을 비롯하여 삼천 사백여명의 군대와 민간인이 방어하였다. 왜군은 귀갑차(龜甲車) 등 특수한 병기로써 파상공격을 거듭하였고 치열한 공방 끝에 진주성은 함락되었다. 성이 함락되자 왜군은 군사, 백성 등 6만과 가축 모두 사창(司倉)의 창고에 몰아넣고 불태워 학살하였다. 이 전투는 임진왜란 중에 일어난 전투 가운데 최고의 격전이었으며, 왜군 또한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