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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병원 이야기한의사의 또다른 이름, 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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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의 또다른 이름, 의생

대한제국시기에는 양의사나 한의사 모두 의사(醫師)나 의사(醫士)로 불렸다. 1900년 반포된 의사규칙(醫士規則)에는 일단 현존하는 한의사 중 내부 위생국의 시험을 거친 이들을 ‘의사(醫士)’로 인정하되 향후 ‘의과대학과 약학과’를 졸업하고 내부 시험을 거친 이들, 즉 양의학을 배운 이들을 의사로 인정할 것을 표방했다. 정부병원인 광제원(廣濟院) 의사는 대다수가 한의였으며 황실의 전의(典醫)도 한의와 함께 에비슨이나 분쉬, 안상호(安商浩) 등과 같은 양의들이 함께 기용되는 등 대한제국기에는 양자가 거의 대등하게 공존했다.
한편 명치 초기부터 서양의학을 국가의 공식의학으로 채택한 일본은 식민지 조선에서도 서양의학을 배운 의사만을 ‘의사’로 인정하면서도 일본과는 달리 한의사들을 의사와 구분하여 ‘의생’으로서 합법화시키는 조처를 내렸다. 이것이 바로 1913년 말 제정된 의사규칙(醫師規則)과 의생규칙(醫生規則)이었다. 의생규칙에 따르면 당시 20세 이상으로 2년 이상 의업에 종사한 자와 3년 이상 한의학을 배운 자에 한하여 향후 5년 동안만 당국에 면허 신청을 할 수 있게 했다. 법대로라면 1910년대 중반 5,800 여명으로 파악된 한의사들 외에는 신규 면허는 하지 않을 방침이어서 한의사들은 시간이 갈수록 절멸될 상황이었다. 총독부의 발상은 제한적이나마 서양의학 지식을 습득한 한의사들에게 ‘의생’의 면허를 주어, 일반적인 환자 진료 외에 전염병 예방이나 검시檢屍 등 비교적 간이한 공중위생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하여 양의사들의 부족을 보충하려는 것이었다. 한의사들은 한방의생회(漢方醫生會), 의학강구회(醫學講究會) 등 다양한 단체를 만들고 총독부와 교섭하는 한편 한의학과 함께 양의학을 배울 수 있는 자체 강습을 통해 새로운 체제에 적응해갔다. 의료인력 수급에 애로를 겪던 총독부는 1921년 의생규칙을 개정하여 의료인이 없는 지역에서만 활동하는 한지限地 면허로 신규면허를 허용하기도 했다.
당시의 병원의 진료비나 약값은 일반 서민이 감당하기에는 상당히 부담스러웠으며,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내과 관련 질병을 중심으로 한의학에 대한 선호가 여전했다. 따라서 양의사들을 대하기가 힘든 지방민이나 서민층이 의생들의 주 고객이었다. 의생들은 점차 연로하거나 사망하면서 자연 감소하여 1942년에는 3,453명으로까지 줄어들었다. 당시 양의사가 3,557명이었으니 의생들은 식민지시기 말까지도 양의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에서 의료수급체계의 저변을 담당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