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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대하소설소재구미호의 작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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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호의 작난

남쪽 성문 밖 사십 리쯤 되는 곳에 자운산이라는 산이 하나 있었다. 산 둘레가 삼백 리나 되니 그 모습이 꼭 병풍을 두른 것 같았고, 앞 뒤의 폭포만 해고 칠십 개가 넘었다. 잔잔하게 흐르는 물이 큰 못이 된 곳이 있었는데 그 주위가 삼십 리가 넘었고 깊이가 일 천 척을 넘었다. 사람들은 그 못을 와룡담이라 했다.

바로 이 못과 산이 남과 북에 걸쳐 있고 그 가운데에 한 골짜기가 있었으니 이곳이 바로 장현동이다. 장현동은 둘레가 백 리쯤 되었는데 평탄하기가 마치 유리를 깔아 놓은 듯했다. 자운산은 온통 울창한 소나무와 푸른 대나무가 사시사철 우거졌으니 그윽하고 빼어났다. 봉우리가 열둘인데, 세상이 처음 생길 때의 맑은 정기와 신비한 기운이 이 와룡담과 자운산에 오로지 모인 것 같았다.

골짜기 속에 한 처사가 있었으니 이름을 유백이라 하였다. 대대로 높은 벼슬을 지낸 집안의 후예였다. 그 조상이 한나라와 당나라에 걸쳐서 재상 벼슬을 했는데, 천하가 요란한 시절을 만나 유백은 이곳에 은거하였다.

유백의 부인은 오씨로 참정 벼슬을 지낸 오진경의 장녀였다.
이때, 황제의 덕이 지극하셔서 온 백성들이 존경했지만 유백은 끝내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 승상 조보와 석수신 등이 황제에게 유백을 천거하자 황제께서 안거사마란 벼슬을 하사하셨는데, 유백이 사관을 대하여 말하기를,

“예로부터 은거한 사람은 많았다. 지금 성상의 은택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벼슬에 마음이 없으니 만일 성상께서 굳이 핍박하면 죽어서 뜻을 지킬 것이다.”
라고 하였다.

사관이 이대로 황제께 고하니 황제께서 차탄하셨다. 그리고 그 마음을 빼앗지 못하시어 호를 유초부라 하여 곧은 절개를 드러내셨다.
처사는 이후 골짜기에 한가롭게 처하며 학을 춤추게 하고 오현금을 타며 세월을 보냈다. 공명을 헌 신 보듯 하고, 혹 나귀 타고 천하를 유람하며 혹 돛배를 띄워 세상을 두루 구경하였다. 깊은 산중에서 모진 짐승을 만났을 때, 처사가 한 곡조 노래를 불러 늑대 무리를 쫓았고, 만경창파에 바람이 거세게 불어 돛을 엎칠 듯 하다가도 처사가 글을 지어 읊으면 물결이 고요해졌다. 문장과 덕행이 이와 같았고 또한 용모와 풍채가 일월 같고 예절을 지킴에 있어서는 더할 나위 없이 준엄하였다. 일찍 부인과 같이 산지 십 년이 넘었지만 부인이 처사의 못마땅한 부분을 보지 못했고, 처사 또한 부인이 웃거나 함부로 말하는 것을 듣지 못했다. 다만 군자는 묵묵하고 숙녀는 정정하여 출입할 때 서로 일어나 맞이하고 방석을 피하여 앉으니 하인들과 일가 친척들은 부부가 가까이 앉아 있음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 이런 처사에게도 한 가지 걱정은 있었다. 처사는 팔대 독자였는데 나이가 삼십이 넘도록 자식이 없었으니 이로 인해 깊이 근심했다. 부인이 걱정되어 대장군이었던 석수신의 서녀와 평민의 딸인 이씨를 구하여 처사에게 권했다. 처사는 그들을 사양하고 운명에 맡기고자 하였다.
그러나 수 삼 년이 지나도록 자식이 들어서지 않으니 처사가 탄식하며 말하기를,
“이것은 나의 팔자라.” 하였다.
그런 와중에 갑자기 오부인이 잉태하니 처사가 크게 기뻐하며 아들 낳기를 기원했다. 그러던 중, 산달이 임박하자 처사가 향을 피우고 축원하여 아들 낳기를 바랬다.
하루는 다음과 같은 꿈을 꾸었다. 자운산 위에서 학소리가 크게 나고 두어 도사가 비단옷을 휘날리며 내려와 처사의 손을 잡고 미소를 띄면서 말하기를,
“별후(別後) 무양하신가? 그대는 아들이 없을까 걱정하지만 이제 하늘에서 점지하시었으니 더 이상 후사를 염려 말라.“
처사가 급히 절하며 말하기를,
“여러 어진 형님들과 일찍이 얼굴을 뵌 일이 없거늘 어찌 저의 일을 아십니까? 제가 지은 죄가 많아 한 명 아들이 없으니 대가 끊어질 것이라. 선인께서 어찌 저의 심곡을 알며 하늘이 점지했다 하심은 무슨 까닭입니까?“
이에 선관이 소매에서 일척(一隻) 백옥(白玉)을 내어놓으니 금으로 장식한 기이한 그림이 은은하게 그려져 있었다. 처사가 받아 보니 이는 옥룡이요, 금장식은 구름 형상이었다. 그 구름이 용을 에워싸고 있으니 옥룡이 구름을 토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선관이 웃으며 붓을 들어 구름 운(雲)자 열 개와 빛날 수(琇)자 다섯 개를 써 처사에게 보이며 말하기를,
“이는 너의 손자들이니라.”
했다. 처사가 왈,
“어찌 감히 손자를 바라리요?”
선인 왈, “나는 남두성(南斗星)이요, 저 사람은 태을노군이라. 영보도군이 원시천존과 태상노군으로 상천 미와궁에서 잔치를 하고 있었는데, 옥황상제께서 그대의 정성에 감동하셨다. 그대는 본래 하늘에서 지은 죄가 있어 후사가 없었으나, 현생에 덕이 많고 청렴하였으니 어찌 후사를 끊게 하리오? 그러나 팔자에 없었던 아들을 점지하는 일로 여러 곡절이 있을 것이 염려될 뿐이다.”
하였다. 유처사는 선관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아들을 점지해줄 것을 다시 한번 간청했다. 그러자 선관이 웃으며 말하기를,
“그대는 염려 말라. 영보도군이 그대의 은혜를 입은 까닭에 자원하여 팔십 오일 말미를 받아 내려왔나니 후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

처사가 매우 기뻐하던 중 선인이 큰 소리를 내는 바람에 놀라서 깨니 한낱 꿈이라. 하도 이상하여 부인에게 꿈 꾼 것을 말하였는데 공교롭게도 부인 역시 같은 꿈을 꾸었다고 했다. 부부가 서로 기뻐했다.
이윽고 산달이 되어 오부인이 옥동자를 낳았으니 산실(産室)에는 신비한 향기가 코에 자욱했다. 처사가 놀라서 바삐 아기를 보니 일척 배옥이라. 용모가 산천의 빼어난 기운을 완연히 지녔더라. 유처사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고 집안 사람 모두가 함께 기뻐하였다.
유처사는 이 아들에게 정경(靜境)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자는 용선(龍鮮)이라 하였다. 그는 산모에게 감사와 위로를 하고 다시 득남한 행복을 느꼈다.
이렇게 태어난 정경은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정경은 봄날의 새싹처럼 무럭무럭 자랐다. 세 살 때 벌써 장래를 알아 볼 수 있었고 일곱 살이 되자 기상과 풍채가 어른다웠다. 이러한 아들을 바라보는 유처사와 오부인의 행복은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였다.
정경이 일곱 살이 되자 오처사는 비로소 친히 글을 가르쳤는데, 하나를 들으면 열 가지에 통하고 열 가지를 배우면 백 가지를 깨달았다. 아침마다 아버지께 나아가 학문을 익혔는데, 한 번 가르치면 새겨들어 곧 외우므로 가르치는 데 힘들 것이 없었다.
정경의 총명함이 이처럼 대단할 뿐 아니라, 사람의 도리에도 밝아 효성이 매우 지극했다. 새벽이면 양치질하고 세수를 한 뒤 아버님과 어머니가 계신 숙소 창 밖에 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문안인사를 했는데, 반드시 부모님의 회답을 기다렸다가 두 번 절하고 물러났다.
날이 밝으면 의관을 정제하고 밝은 얼굴로 아버지 앞에 나아가 공부를 했다. 정경은 반드시 하루에 네 번 문안인사를 하였으며 행실이 어른과 같았다. 오부인은 아들의 몸이 상할까 걱정되어 글읽기를 금했다. 이에 정경이 말하기를,
“소자, 저희 가문을 이을 사람이 저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비록 소자가 못났사오나 제 몸이 중한 줄을 어찌 모르오리까? 그러므로 소자는 매사에 조심할 뿐 아니라, 행여 조그만 병이라도 생겨 부모님의 염려를 끼칠까 두려워하오니, 어찌 병이 나도록 지나치게 공부를 하겠나이까? 소자는 몸이 평안하고 기운도 건강하여 걱정할 것이 없사옵니다. 그런데 어찌 사람으로서 새벽과 저녁의 문안과 하루 세 때 올리는 문안을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소자, 대의를 알고 있으니 어머님께서는 염려하지 마소서.” 하였다.
그해 겨울, 유처사는 지나치게 학문에만 빠져있는 정경을 걱정하여 함께 청향산에 유람하기를 원했다. 서악 화산 가운데 청향산이라는 이름난 산이 있었다. 청향산 깊은 곳에 옥로동이라는 동네가 있었는데 동네 가운데에 높이가 몇 칸이나 되는 정자가 있었다. 커다란 기둥과 띠로 엮은 큰 정자 주위에는 사철 기이한 꽃이 피어 그 모습이 버드나무가 냇가로 푸른 가지를 드리운 것 같아 빼어나게 아름다워 무릉도원이라 할만하였다. 옥로동에는 무진대사라는 한 도사가 있었다. 일찍 동남산에서 도를 깨우쳐 많은 도법과 신술이 꿰뚫어 알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 도사는 세상에 구속됨이 없으니 여자라고 해도 무방했다. 몸에는 하얀 천으로 된 광포와 머리에는 푸른 두건을 써 그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길이 없었다. 유처사는 무진대사에게 정경을 보여주고 정경의 앞날을 헤아려보려 했으나 어찌된 일인지 무진대사는 찾을 길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유처사는 정경과 함께 산을 내려와 집을 향했다. 이때는 설이 지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인데 예년에 비해 따뜻한 겨울이었다. 유처사의 집에서 가까운 마을에는 아직도 새해 문안을 다니는 사람들이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아이들은 연을 날리고 있었다. 방패연, 가오리 연등 제각각 솜씨를 다한 연들이 겨울 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연날리기에 알맞은 바람이 불고 있었다. 유처사는 정경에게 연을 날려보라고 하였으나 정경은 집에 홀로 계실 어머님을 걱정하며 돌아가기를 원했다.
이날 밤, 갑자기 일기가 나빠지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심한 눈보라가 불어닥치니 오후가 되자 날이 저문 듯 어두웠다. 유처사와 정경은 바삐 산을 향해 갔는데, 길은 갈수록 험해지기만 했다.
그러는 사이 유처사와 정경은 집이 있는 산 어귀에 다다랐다. 하늘빛은 수심이 가득한 듯 흐리고, 안개가 자욱한데 들녘에는 흰눈이 쌓여 더 이상 나아갈 수가 없었다. 유처사는 홀로 있을 부인을 생각하며 탄식했다. 산이 깊어 눈이 쌓이면 밖으로 나오기가 힘이 들었고, 산에는 산짐승들이 많아 비록 노복과 시비들이 있다하나 부인의 안전이 염려 되었던 것이다. 어린 정경 역시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어머니를 생각하며 마음을 졸였다.
하늘을 바라보던 정경은 친히 눈을 치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유처사도 함께 눈을 치워 길을 열며 산을 넘었다. 눈을 치우느라 찬 기운이 유처사와 유정경의 뼈에 사무치는 듯하고 찬 기운에 눈도 뜨지 못할 지경이었지만 그들은 숨을 헐떡거리며 산을 넘어갔다.
이렇게 하여 겨우 집에 도착하였다. 집의 처마에는 눈이 가득 쌓여있고, 고요한데 다행히도 불빛이 은은히 빛나고 있었다. 유처사와 유정경은 반가운 마음에 집으로 걸음을 빨리했다.
그러나 집으로 들어가기 전, 유정경은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집에서 좀더 들어가는 북쪽 산에서 불빛이 새어나오는 것이었다. 북쪽 산에는 수풀이 우거지고 나무가 융성하여 그늘이 깊은 곳이었다. 그곳에는 승성사라는 절이 하나 있었는데, 오래 전 폐사(廢寺) 되어 스님들이 모두 떠나고 여기저기 허물어진 요사채만이 남아 있는 곳이었다. 밤이면 승냥이와 이리들만이 뛰어 노는 곳이었던 곳에 불빛이 비추자 정경은 이상하게 생각한 것이었다.

칠 년 전까지만 해도 승성사는 경치가 아름다워 찾는 이가 많았고 맑고 고고한 스님 십여 명이 수련을 하고 있는 절이었다. 승성사의 스님들은 시재(詩才)가 아름다웠고 가무(歌舞)나 경을 외우는 일에도 능통하였다. 그 절에서는 매해 봄 첫날에 승려의 신분과 지위에 차별 없이 모이는 모임을 가졌는데 본사(本寺)의 중들이 뽑아 공적이 될 만한 행실을 많이 한 자를 뽑아 두 사람씩 성불하는 예식을 행하였다. 그 두 사람은 칠일 동안 음식을 먹지 않고 몸을 깨끗하게 하며 기약한 날이 오면 사면에 짚은 쌓아놓은 나무로 만든 높은 대(臺)에 올라 성불하였다. 두 사람이 높은 대(高臺)에 오르면 신도들이 와 구경을 하였는데 백성이 대(臺) 주변을 둘러싸고 구경하였고 관원들도 다 나와 예배(禮拜)하고 분향(焚香)하였다. 이때 사람들이 시주를 했는데 재물 아까운 줄을 모르고 시주하였다.
그러던 중 칠 년 전 여름 폭우가 쏟아지는 날, 대웅전에 벼락이 떨어지며 본전 불상이 훼손되는 일이 벌어졌다. 스님들은 대웅전을 재건하려고 했는데, 그때마다 바람이 불고 큰 불이 나는 등 흉흉한 일이 벌어졌다. 또한 까닭을 모르게 스님들이 한 두 명씩 죽어가니, 어느새 승성사는 망한 절이 되어 찾는 이가 아무도 없게 되었다.
한편, 유람에서 돌아온 유처사와 유정경을 맞이한 오부인은 따뜻한 차로 두 사람의 추위를 녹여주었다. 정경이 아버지와 어머니께 말씀드리기를,
“일전에는 승성사에 불빛이 보인 적이 없었는데, 오늘 보니 불빛이 보이더이다.”
하였다. 이에 유처사가 놀라는데, 오부인이 웃으며 말하였다.
“네가 유람을 떠난 후 며칠 지나지 않아 웬 여도사가 집에 찾아와 승성사를 찾은 일이 있었다. 도사는 비록 여자의 몸이었으나 신이한 도술을 익힌 사람 같았는데, 승성사를 부흥시키겠다고 하며, 그 이후로 홀로 승성사에서 계시고 있다.”
유처사가 걱정을 하며 말하기를,
“오다보니, 마을에 여우의 해가 많다고 하던데, 집은 무사하였소?”
하고 물었다. 그러자 부인이 또한 미소를 지으며 답하되,
“여우가 가축을 훔쳐 달아나는 일이 있었으나, 여도사가 승성사에 온 이후로는 여우의 해가 없었사옵니다. 아랫마을에서 흉흉한 일이 있었다는 얘기를 첩도 들었사오나, 오히려 산 밑의 이 집은 무사하였나이다. 이 모두가 여도사의 높은 도술 때문이라 여겨지옵니다.” 하였다.

그러나 이로부터 몇 일이 지난 후, 큰일이 일어났다. 그것은 아랫마을에서 일어난 일이었는데, 요망한 여우가 아랫마을에 사는 한 부부의 갓난아이를 물고 산으로 도망친 것이었다.
여우가 승성사 쪽으로 도망을 쳤다하여 사람들이 횃불과 몽둥이를 들고 산으로 올라왔는데, 마침 유처사는 집을 비워 아무도 없었고, 정경은 아랫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는 노복들을 시켜 같이 아이를 찾도록 명령하였다. 그리고 비록 어린나이였지만, 사내대장부가 이러한 일이 몸을 사릴 수 없다하여 자신도 몽둥이를 들고 승성사로 올라갔다. 오부인이 말렸지만, 정경은 듣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이 추격을 하니, 곧 여우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정경은 그 흔적을 따라 승성사로 가 드디어 갓난아이를 발견했는데, 다행히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유정경이 아이를 안고 밖으로 나와 마을 사람들을 본 순간 커다란 여우 한 마리가 정경을 향해 뛰어들었다. 정경은 아이를 내려놓고 반대편으로 도망을 쳤다. 마을 사람들은 급히 아이를 데려왔으나, 정경의 안위는 알 도리가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한참 동안이나 정경의 자취를 찾았지만, 어디에서도 정경을 찾을 수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유처사의 집을 찾아가 이 사실을 밝혔다. 오부인은 넋이 나간 듯 놀라서 앉아 있더니 홀로 산으로 올라갔다. 사람들이 만류했지만, 그를 말릴 수는 없었다.
오부인이 한참 정신없이 산길을 달려가는데, 아들 정경이 여우에게 쫓겨 저만큼 시야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중이었다. 오부인은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아 땅을 치며 통곡했으나, 그것은 아무 소용도 없는 일이었다. 오부인은 눈물을 훔치고 다시 산 속으로 뛰어갔다.

다음 날, 오부인이 집으로 돌아왔다. 밖에 나갔다 급히 노복에게 소식을 들은 유처사가 집에서 오부인을 맞았다. 유처사가 오부인을 보고 반가워 말하기를,
“부인이 돌아와서 다행이오. 정경은 어젯밤 무사하게 돌아왔다 하오이다.”
하였다. 정경이 앞으로 나와 큰절을 하며 사죄하였다.
“소자 경망하여 어머님께 큰 심려를 끼쳤습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오부인은 정경을 본체만체하며 그대로 내당으로 가버리는 것이었다. 정경은 황망하였으나, 오부인의 심려가 커서 그랬던 것이라 생각하며 반성을 하였다.
다음날 오부인이 정경을 불러 놓고 이르기를,
“시골 사는 사내로서 글만 읽어서 무엇에 쓰겠느냐? 이제부터는 농사일을 배워야 할 것이다. 지금 눈이 쌓여 땔감이 많지 않으니 너는 오늘부터 삼복이를 따라 땔감을 해오너라.

몇 일만에 창고에 땔감을 가득 쌓아 놓고 정경은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부인이 정경의 처소에 나아와 말하기를,
“어린 아들이 어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뜨뜻한 방안에서 서책만 대하니 이를 어찌 효라 하겠는가?”
하며 한탄하였다.
정경이 놀라고 송구스러워 무릎을 꿇고 무조건 잘못을 비니, 오부인이 고개를 외로 꼰 채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정경이 말하기를,
“소자, 불초하여 어머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였으니 그 죄가 하늘에 닿아있사옵니다. 바라옵건대 어머님께서는 부족한 소자를 가르쳐주옵소서.”
하고 몇 번이나 거듭하여 사죄하였다.
그러나 오부인은 정경을 흘겨보기만 할 뿐, 아무 말이 없었는데 드디어 정경이 눈물로서 사죄를 하자 말하기를,
“이 겨울에 과일을 먹은 일이 없어 내가 힘이 하나도 없기를, 아무도 구해주는 사람이 없으니 이 신세가 어찌 한탄치 않으리요? 다른 사람들이 말하기를, 어린 네가 효자라 하나, 나는 그런 것을 하나도 모르겠으니, 너는 언제 한 번 모친의 마음을 풀어주도록 할 마음이 있겠느냐?” 하였다.
한 겨울에 과일이 먹고 싶다는 어머니의 말에 정경은 놀랍기만 하였으나, 오부인이 한숨을 쉬며 불효를 야단쳤으나 한 겨울에 어찌 과일을 찾을 수 있겠는가? 정경이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자, 오부인은 그대로 자리보전을 하고 누워 식음을 전폐하였다. 온 집안이 까닭을 몰라 전전긍긍하되, 유처사도 정경을 불러 그 불효를 야단치기만 하였다. 정경은 하는 수 없이 어머니의 병실을 찾아 무릎을 꿇고 대답했다.
“일주일만 말미를 주옵소서. 소자, 무슨 일이 있어도 어머님께 과일을 가져다 드리겠사옵니다.” 하고 집을 나섰다.
정경이 생각하기를, 얼마 전 아버지 유처사와 함께 다녀온 청향산은 사시사철 봄 같다 하였으니 과일을 찾을만하다 생각하였다.
정경이 아직 눈이 녹지 않은 늦은 겨울 길을 걷고 있는데, 온 세상에 사람의 기척이 없고 매서운 삭풍이 불었다. 그러던 중 정경이 큰 강에 다다랐으나 날이 저물고 배가 없어 건널 길이 없었다.
옛 성인께서 길을 서두르는 것을 경계하여,
‘별만 있는 밤에는 길을 가지 말고, 달빛이 있는 밤에 길을 가라.’
하셨고, 얼음 덮인 강이나 폭포에는 가지 말라는 가르침도 받았으나 정경은 그것을 잊은지 오래였다. 정경은 다만 집에 누워 식음을 전폐하고 있는 어머님의 병세가 더해졌을까 알 수 없는 것만이 안타까웠다. 생각 같아서는 지금이라도 과일을 찾아가 어머님의 마음을 풀어드리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는 자신이 부족하게 여겨졌다. 정경은 만일 청향산에 가서도 과일을 찾지 못한다면 어머니께 그 불효를 용서받고 죽기를 결정하고 싶었다.
정경은 하늘을 바라보며,
“저, 유정경은 천지간에 죄를 지은 일이 없사오니, 오늘 밤 이 물을 건너 청향산의 과일을 얻을 수 있게 해주소서. 아울러 어머님의 병을 살피시어 제가 가져올 과일을 맛보시게 해 주옵소서.”
하고 옷을 벗어 넓은 옷과 큰 띠는 다 버리고 가벼운 옷을 챙긴 뒤 머리 위에 이었다.

정경은 자신의 재주와 힘을 다하여 물을 헤치고 건너기 시작했다. 이때 모래가 쌓인 강변에 그 마을의 한대인 집안의 침모가 옷을 빨고 있었는데 우연히 이 광경을 보았다. 침모는 강을 건너는 이가 정경인 줄 몰랐으나 초조한 마음으로 정경이 강을 건너는 모습을 보았다. 마침내 정경이 물을 무사히 건너 평지에 다다라 옷을 내려 입고 멀리 떠나자 지켜보던 침모는 감동을 이기지 못하여 정경이 벗어 두고 간 옷을 거두어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다.
주인댁으로 돌아간 침모는 그 주인에게 정경의 옷을 맡기며 그 일을 말하니 그 주인인 한대인의 부인 예씨가 놀라서 말하기를,
“정녕 열 살 정도의 사내아이가 그 차가운 물을 건넜단 말이냐? 옷으로 보아서는 양가의 소년인가 본데, 필시 예사인물이 아니로구나.”
하며 급히 노복을 보내 그 소년을 도우라 하였으나 소식을 듣지 못한 채 돌아왔다. 예부인이 감탄하기를, 노복과 같이 건장하고 천한 사람도 힘에 부친 길을 존귀한 집안의 자손이 이처럼 걸음을 재촉하니 천하의 효자라 여겼다.
정경은 제 몸을 돌보지 않고 길을 재촉해 다리와 발에 피가 가득한 모습으로 청향산을 찾아가니, 청향산은 유처사의 말대로 봄날처럼 아름다웠다.
청향산 깊은 산골로 들어가 산 정상에 도착하니 한 초가집이 있었는데 흰 구름이 자욱하게 끼어 있고, 학의 울음소리 맑았다. 정경은 생각하기를,
‘분명 높은 사람이 있는 곳이리라.’
하며 찾아올라 가자 한 도인이 앉아 있다가 정경을 보고 말하였다.
“그대는 필경 무엇을 구하러 온 사람이로다”
정경이 말하기를,
“옳습니다.” 도인이 또 묻기를,
“장현동 유백 처사의 아들이냐? 얼굴이 매우 닮았도다”
뜻밖의 아버지의 함자를 말하는 도인을 보자 정경이 눈물을 머금고 바른대로 대답하자, 도인이 웃고 말했다.
“존공이 일전에는 나와 함께 자각봉에서 바둑을 두고 가곤 했는데 무슨 일인지 본지 오래되었고, 그 신수가 환히 보이지 않으니 걱정을 했는데, 그 아들을 보니 기쁘도다. 필시 무슨 까닭이 있겠거니와 천기를 말할 때가 아니니 내가 도울 것이 적으니라. 그러나 그대는 이미 이곳에 왔으니 여기 머물러 자고 내일 필요한 것을 얻거든 가도 늦지 아니하리라.”
정경이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모시고 앉았다. 도인은 한동안 정경을 바라보더니 푸른 옷을 입은 동자를 보내어 무엇인가를 시키고 벽에 걸린 벽옥 퉁소를 돌아보면서 말하기를,
“이것을 불 수 있는가?”
정경이 겸손하게 대답했다.
“비록 좋아 하지만 스승을 만나지 못하여 높은 경지를 얻지 못하였나이다.”
도인이 퉁소를 내려와 정경에게 가져다주며 타보라고 하였다. 정경은 풍엽송(風入松)이란 곡조를 연주했는데 도인이 웃으며 말했다.

“음색이 유처사와 닮아 시원하니 가히 가르칠 만 하도다.”
하고는 퉁소를 건네 받아 세상에 전하지 않는 옛 곡조를 차례로 연주했는데 맑고 그윽한 음이 세상 사람이 듣지 못했던 곡조였다. 정경은 음률을 좋아하고 총명하여 한 번 들은 뒤 곧 연주를 할 수 있었다. 도인은 크게 기뻐하며 다시 벽옥퉁소를 건네 받아 한 곡조를 불러 정경에게 가르치고 말했다.
“지음(知音) )을 만나는 것은 예로부터 사람이 원하던 바다. 이제 이 벽옥퉁소를 잘 다루는 너를 보았으니 너의 집안이 어둡지 않도다. 내 이것을 줄테니 후일에 필연 쓸 곳이 있을 것이다.”
정경이 절을 하고 받았다. 도인이 말하기를,
“그대는 돌아가지 말고 나와 함께 여기에 머무르며 나의 제자가 되지 않겠는가?”
하였다. 그러자 정경이 절하고 말하기를,
“소자가 선생을 만난 것은 천운이며 훗날 궤장(机杖) )을 뫼셔 제자가 되고자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모친께서 병에 걸려 계시고 집안을 다스릴 자식이 저 혼자뿐이므로 능히 선생을 따를 수 없음이옵니다.”
도사 웃고 말하기를,
“돌아가면 집안의 액운이 그대를 괴롭히겠지만, 가지 않는다면 그대는 편하되 집안은 필시 어려울 것이다. 또한 그대는 인간부귀를 면하지 못할 것이니 나중에라도 어찌 이 늙은이를 따라 굴속에서 살 것인가? 하물며 나중에야 돌아갈 곳이 있을 것인데 나의 무리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대의 굳음을 도와줄 날은 올 것이니 퉁소를 잘 간직하라.”
하고 동자를 불러 큰 대바구니를 묶어 내어주며 말하였다.
“이는 청향산의 음식이니 모친은 맞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대는 이것을 버리지 말고 부친께 드리면 그 목숨을 연장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니 반드시 부친께 드리도록 하라.”
정경이 다시 절하고 받았다.
“이 은혜 각골난망이옵니다.”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이날 도인을 모시고 석실(石室)에서 잤는데 하늘이 채 밝기 전에 도인이 생을 깨우고 말하였다.
“길이 이미 트였고 과거는 내년 봄으로 미루었으니 그대의 부친이 문을 의지하고 기다리고 있으니 돌아갈지어다.”
하고 여비를 준비해서 주었다. 생이 백배 사례하고 퉁소와 대바구니를 챙겨 산에서 내려오며 돌아보았는데, 도인의 집은 간 곳이 없었다.
정경이 집으로 돌아오니 문이 굳게 닫혀 있어 들어갈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정경이 문 밖에서 문을 열라 하니, 한참 만에야 시비가 나와서 말하기를,
“마님께서 공자께서 집을 나간지 오래 되었으니 아들이라 생각할 수 없다시며 문을 열지 말라 하옵니다.”

하며 송구스러워했다. 정경이 황망하였으나, 다시 고하기를 부탁하니 시비가 급히 달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다시금 똑같은 얘기를 들었을 뿐이다.
정경은 하는 수 없이 과일을 구해왔노라 말씀드리라 하였다. 그러자 문이 열렸다.
정경은 그길로 내당으로 들어가 어머님인 오부인을 뵈니, 오부인은 이미 병이 다 나아 저녁상을 받고 있었다. 그 저녁상에는 닭고기와 돼지고기가 삶아져 있었는데, 미처 채 익지 않아 핏물이 흥건했다. 정경이 생각하기를,
‘어머님은 부처의 제자로 자처하시어 채식을 하시고 비린 것을 일체 입에 대지 않으셨는데, 어찌된 일인고? 혹 병이 깊어 그러신가?’
하면 급히 무릎을 꿇고 앉아 대바구니를 바쳤다.
“이것이 무엇이냐?”
오부인의 물음에 정경은 청향산에 다녀와 구한 과일이라 말씀드렸다. 오부인이 슬쩍 대바구니 틈으로 안을 살펴보았다.
대바구니 안에는 밤, 대추, 귤, 은행, 호도, 사과, 배, 감, 복숭아 등이 가득 들어 있었다. 오부인이 그 중 복숭아를 들어 한 입 베어 물었는데 먹자마자 뱉어내며 소리치되,
“네 복숭아 모양으로 독을 만들어 온 것이냐? 이토록 쓴 과일을 내게 가져왔으니 이는 곧 내 자식의 한 일이 아니로다.”
하며 파랗다 못해 노랗도록 낯빛을 흐리며 벼락같은 소리로 정경의 부친 유처사를 불렀다.
유처사는 오부인이 노한 것을 보고 다짜고짜 정경을 마당에 꿇어 앉힌 뒤 소리 지르기를,
“자식이 되어가지고 그 모친을 늘상 불안하게 하니, 너를 용서할 수 없노라.”
하며 노기 더하여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태장을 시작하니, 매마다 그 잘못을 고하였다.매가 육십여 장에 이르매 정경의 눈 같던 흰 살결이 헤어지고 피가 땅에 고였으나 정경은 한마디 비명도 지르지 않고 매를 맞았다. 비록 건장하고 강하다 하나 아직 어린 아이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정경이 곧 혼절하였으나 유처사는 노기가 점점 더하여 용서할 뜻이 없었다. 시비와 종목 등이 달려들어 머리를 조아리고 눈물을 흘리며 그만 용서하시라 빌었지만 유처사와 오부인은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았다. 모두가 두려워하며 처사 부부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유모인 녹희가 달려들어 말하기를,
“처사 나으리와 마님의 행사가 마치 광인의 것과 같소이다. 공자가 어떤 자손인지 잊었사옵니까? 한 겨울에 과일을 얻어온 공자의 효를 칭찬하지는 못할 망정 매로 죽이려 하시니, 그 까닭을 모르겠나이다. 부인께서는 진실로 공자의 어머님이 맞으십니까? 저는 도무지 귀신에 홀린 것 같나이다.”
하며 정경을 안고 감싸니 오부인이 유모를 노려보다가 유처사에게 매를 멈출 것을 권하고 모두 나가라 하였다.

이때 정경이 정신을 차리니, 대바구니를 들고 기어가듯 아버지가 계신 외당으로 가 과일을 드리며 드시기를 청했다. 유처사는 정경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과일을 먹었는데, 그 맛이 매우 달고 시원했으므로 하나도 남김없이 과일을 먹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녹희는 오부인에게 미움을 받아 쫓겨나니 집안에서 정경을 돕는 이가 하나도 없게 되었다.
정경이 점점 자라매 오부인의 구박도 점점 심해졌는데, 서책을 대하는 꼴을 보지 못하고 험한 일을 도맡아 시켜 그 행색이 농사꾼 보다 못하고 종복들 보다 대접을 받지 못하였다. 혹 유처사의 집에 오는 사람들은 농사일을 고되게 하여 그 모습이 어린 시동이나 하인과 다를 바가 없는 정경이 그 댁의 독자인지 알지 못했다.
정경은 단정히 앉아 자신에게 글을 가르쳐주고 책 읽는 모습에 가장 즐거워하시던 어머니를 생각하며 서글퍼졌으나, 어머니를 탓하는 일없이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글을 읽으며 살았다.
이상한 것은 유처사 또한 그런 오부인을 탓하기는커녕 더 많은 일을 시키도록 부추기는 것이었다.
유정경이 십 오세가 되었을 때 과거에 응과하고자 하였으나, 오부인이 극렬히 반대하며 책을 불태우는 바람에 정경은 과거 시험도 볼 수 없었다.
정경이 나이 십 팔세가 되었으나 오부인과 유처사가 아들의 혼사에 관심이 없으므로 정경은 혼인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정경에게 한 매파가 와 혼담을 얘기하니, 청향산 가까이 있는 마을의 한 대인의 따님인 한 소저와의 혼담이었다.
한 소저의 어머니는 예씨였는데, 예전 정경이 오부인을 위해 과일을 구하러 강을 건넌 일을 알고는 정경이 필시 훌륭한 인물일 것이라 여기고 한 대인에게 말했던 것이다. 한 대인 역시 정경의 인물됨이 범상치 않다 여겨 백방으로 정경에 대해 알아보라 하였는데, 그때가 되어서야 정경의 집안을 알게 된 것이었다.
한 대인은 정경의 집안을 소상히 알아보았다. 정경의 집안은 명문이었으나 언제부터인가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고, 유처사 부부가 독자인 정경을 구박한다는 소문이 아랫마을까지 들리고 있었다. 한 대인이 직접 유정경을 만나보니 옷이 허름하고 손이 거칠어 농사꾼이나 다를 바 없었으나, 그 눈빛만은 형형하여 범상한 인물이 아님을 알 것 같았다. 또한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학문 또한 대단하여 따님인 소운 소저와 혼인을 해도 결코 모자라지 않을 듯 하였다. 예씨부인은 정경의 집안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으나 정경의 인물됨을 알고 있으므로 그대로 혼사를 시키고자 하였다.
정경은 뜻하지도 않게 대갓댁의 중매를 받자 놀라웠다. 그 동안 정경의 집안이 한미한 관계로 하찮은 집안도 유정경과의 혼인을 꺼려했던 것이다. 오부인과 유처사는 처음으로 중매가 들어오자, 정경의 나이와 주위의 이목이 무서워 하는 수 없이 혼사를 승낙하였다.
이렇게 하여 정경은 도성 밖 한 대인의 집에 가서 혼사를 치르고 집으로 돌아왔다. 한 소저는 단아한 아미에 아름다운 자태를 지닌 숙녀였다.

시댁에 이르렀을 때 소저는 십 이세 가녀린 몸으로 머리에는 봉황을 수놓은 채봉구희관을 쓰고 구름과도 같은 운상무의를 입고 있었다. 모두 부유한 집안의 금지옥엽임을 나타내는 차림새였다.
소저는 조신한 걸음걸이로 유씨댁 사당으로 걸어가 새로운 사람이 유씨댁에 왔음을 조상께 고했는데, 걸음걸이마다, 저고리에 달린 명월패옥이 청아한 소리로 울렸다. 소저는 삼십 개의 층계를 올라 사당에서 제를 올렸는데, 예를 갖춘 정숙한 몸짓과 바른 걸음걸이마다 어지럽고 혼란한 점이 하나도 없었다. 이때 유처사는 예복을 입고 사당에 올라와 집안에 새로운 며느리를 맞았음을 조상께 고했다. 유처사와 오부인은 빈한하다는 이유로 친척들도 청하지 않고 잔치도 벌이지 않았으나 유공자의 인덕을 흠모하는 마을 사람들이 몰려와 유공자의 혼례를 축하해 주었다. 손님으로 온 이들은 정숙한 한 소저의 몸가짐에 칭찬이 자자했다. 그러나 오부인과 유처사만은 얼굴에 웃음이 없었는데, 이를 본 유공자는 슬픔을 느꼈다.
예가 끝나고 중당에 돗자리를 깐 후에 주벽의 좌를 이루어 유처사와 오부인은 함께 폐백을 받았는데 한 마디 덕담도 하지 않아 구경하는 손님들이 모두 괴이하다 하였다.
그러나 신부와 신랑의 예의는 조금도 변함이 없었고 신부의 아리따운 자태는 이슬을 머금고 아침 햇살에 떨어진 삼색 복사꽃 같았고 여유로운 기질은 초록색 잎에 싸인 흰 배꽃과도 같았다. 신부의 남풍에 실려오는 연꽃 향기를 머금은 듯한 얼굴과 아름다운 자태는 견주어 비교할 만한 사람이 없었으니 자리를 가득 메운 여인들은 그 빛을 잃는 듯 했다.

한 소저와 유공자는 모두 명문가의 숙녀요 군자이므로 부부간의 화락하고 부모님을 섬기는 것을 즐겁게 생각하였다. 부부는 최선을 다해 부모님을 공경하였다. 부모님 앞에서 언제나 얼굴빛을 공손히 하여, 즐겁거나 노여운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는 일이 없었다. 밤이 되면 승상과 정부인의 잠자리를 몸소 살폈고 새벽이 되면 다소곳하게 예로써 문안을 드렸다. 한시도 부모 곁을 떠나지 않는 부부의 효성은, 부모의 뜻에 순종하여 부모를 봉양한 증자(曾子)의 효도나, 나이 칠십에 때때옷을 입고 부모 앞에서 재롱을 피웠던 노래자(老萊子)의 효성을 본받은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유처사의 얼굴에는 기쁜 모습이 하나도 없었고, 오부인은 유공자에게 하듯이 늘 한 소저를 욕하며 구박했다.
“시골에 사는 촌부가 비단옷을 입는 것은 보기 좋지 않다. 또한 비단 옷을 입을 일이 없으니 그 많은 패물은 무엇에 쓰겠느냐?”
하며 소저가 시집올 때 해온 비단옷과 패물을 빼앗았고, 또한
“집안에 여자가 들어왔으면 입을 하나 줄여야할 것 아니냐? 하루종일 방안에 틀어박혀 수나 놓는 일을 하려면 내 집에는 그런 며느리가 필요없으니 친정으로 가거라.”
고 하며 그나마 하나 남아있던 시비를 내보내고 청소와 나무 해오는 일, 아궁이에 불 때는 일, 빨래 하는 일, 그리고 크고 작은 집안일을 모두 어린 소저에게 시켰다

소저는 명문가의 여식으로 귀하게만 자랐으니 그 모든 일이 손에 익지 않았으나 불평 한 마디 없이 시어머니와 시아버지 봉양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유공자는 귀한 집안의 딸이 자신을 만나 고생하는 것을 가련히 여겨 소저를 만날 때마다 자리를 가까이하고 말했다.
“내 비록 그대를 편안히 하게 해주지는 못하지만 마음만은 편안히 해줄 것이오. 또한 아버님과 어머님도 본래는 자애하신 분이시니, 만약 손자를 품에 안으신다면 어찌 지금과 같겠소? 이 모든 고생이 나의 모자람에 있어 그저 미안할 따름이오.“
그러나 한 소저는 유공자에게 공손히 대하며 부모에게 효를 다하는 일일뿐이라고 대답을 하였다.
“어머님께서 엄하신 것은 첩의 부족함을 가르치시기 위함이니 서운할 것이 있을리 없습니다. 또한 가난한 선비의 안사람으로서 해야할 일을 미처 배우지 못하고 시집을 왔으니 손끝이 야물지 못하여 살림에 보탬이 되지 못해 송구할 따름입니다. 첩이 비록 나이가 어리고 용렬할지라도 배우는 것에 게으르지 않으며 불평이 있을 리 없사오니 공자께서는 상심치 말고 앞으로의 일을 지켜보도록 하십시오.”
이렇듯 부부가 합심하여 유처사 부부를 공경하였으나 부부는 기뻐하지 않았다.

한편 한 소저와 유공자가 유처사 부부에게 미움을 받아 구박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한 대인의 집에서는 걱정이 많았다. 특히 예씨 부인은 귀한 집안의 여자로 귀하게 자란 한 소저가 오부인의 시집살이를 잘 견딜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다.
한 대인 역시 걱정이 많았으나 예씨 부인이 소저의 걱정을 하며 사돈댁을 원망하는 기색이 있으면 너그럽고 후덕한 말로 유공자를 칭찬하며 부인에게 사돈댁을 원망하지 말기를 당부하며 늘 유처사 부처의 치졸함을 덮어주었다. 그러나 예씨 부인은 본디 유공자의 인물됨을 높이 사 혼인을 시킨 것으로 유공자가 곧 입신출세 할 것을 기대했는데 사돈인 오부인의 교만한 행사와 겸손한 부덕이 없는 것을 불만스럽게 여겼다. 또한 그 아들을 미워하는 것이 지나쳐 혼인한 지 여러 해가 지나도록 유공자가 책 읽는 것을 싫어했고 응과하지도 못하게 했을 뿐 아니라, 늘 친정에서 재물을 가져오게 하여 집안을 호화롭게 꾸미고 늘 술과 고기를 끊이지 않게 하였다. 시아버지 유처사는 비록 함께 구박을 하지는 않았으나 오부인의 행동을 꾸중하지 않았으므로 오부인은 더욱 기탄 없이 아들 부부를 구박했다. 오부인은 며느리가 잘하면 잘할수록 미워하는 마음이 커지는 듯 늘 노기가 충천하여 툭하면 며느리를 데려다가 어지러이 때리고 유공자에게 며느리를 다스리지 못한다 하여 꾸짖기 일수였다.
이러한 사실을 들은 예씨 부인이 남편인 한 대인에게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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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무진대사가 말하였다.
“수행을 하자면 백년을 해도 모자랄 그릇인데, 어느 날 청향산에서 도를 닦다보니, 문득 천기를 본 일이 있었습니다. 자운산 쪽에 음기가 강하여 그것을 다스리지 않으면 장차 세상이 어지러울 듯 하여 그것을 다스리려 세상에 나갈 수가 없었을 뿐이옵니다. 오늘은 몇 가지 여쭤볼 일이 있으므로 대인의 댁을 찾아온 것입니다.“
무진대사는 풍감이 정확하고 밝아 사람의 길흉을 예견할 수 있었다. 한 대인은 무슨 말에든 대답을 하겠다고 하였다.
“요사이 귀부(貴府)를 바라보니 복선화음이 가득하여 복덕이 가득하고 가운이 북두성과 견우성 사이에 있으니 기이하고 특별했사옵니다. 하오나 소생 중에 재앙의 기운이 섞여있어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한데 그 기운이 요사스러운 기운에 덮여 있는 것으로 보여 살피니 예전에 제가 놓쳤던 요괴의 것과 비슷하였습니다. 혹 소생 중에 화를 입거나 신병을 앓는 이가 있는지요?”
한 대인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말하였다.
“큰아들은 나라 일로 매일 바쁠 뿐 아니라 집안도 평안한 편입니다. 여아는 몇 년 전에 유처사의 아들 정경과 혼인을 이루었는데 아직 소생이 없고 가세가 넉넉지 않으나 그럭저럭 살고 있다 합니다. 다만......” 한 대인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무진대사는 일부러 묻지는 않았으나 한 대인의 안색이 어두워지는 것을 보고 한 소저의 사주를 일러달라고 하였다. 이에 한 대인이 소저의 사주를 알려주자 무진 대사는 오랫동안 침묵하며 깊이 생각하다가 말하기를,
“괴이하고 괴이하도다. 한 소저는 남해 용왕의 셋째딸의 관상과 다름이 없으나 액을 끼고 태어났으니 어찌 괴이하지 않으리요? 용색이 여린 옥과 맑은 얼음 같으니 몇 년 동안은 액운을 피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청춘에 요절할 상도 있으나 쌓은 덕이 산과 같으니 그 덕으로 그것을 피할 수는 있을 것이오나, 급히 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한 대인이 크게 놀라 실망하였으나 곧 안색을 정돈하고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변함없이 단정히 앉아 근심이 없는 듯 보였다. 한 대인이 침착하게 구원할 방법을 묻자 무진대사가 말했다.
“소저가 아버지와의 인연을 길게 했더라면 이 화를 넘길 수 있었을 것이나 그랬다면 평생 함께할 짝을 만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괴의 작난을 피할 수는 없으되, 이를 슬기로이 넘기면 고생은 하시겠으나 필경 보람이 있을 것이고 나중에는 재물과 영화가 끝이 없을 것입니다.”
무진대사는 말을 마치고 요괴를 잡기 위한 부적을 만들기 위해 오악을 향했다.

세상에 이름난 산이 다섯이 있으니, 동쪽의 태산(泰山), 서쪽의 화산(華山), 가운데의 청향산(淸香山), 북쪽의 자운산(恒山), 남쪽의 형산(衡山)이다. 이를 일컬어 오악(五岳)이라 하는데 세상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형산이다. 형산 남쪽에는 구의산이 있고 동정호가 북쪽에 있으며 그 밑으로 상강(湘江)이 흘러 세 방향을 둘러싸고 있다. 형산에 일흔 두 개의 봉우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높은 다섯 봉우리가 있으니, 축융봉, 자각봉, 천주봉, 석름봉, 연화봉이 그것이다. 이 봉우리들은 항상 구름 속에 묻혀 있어 청명한 날이 아니면 그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일찍이 태조께서 홍수를 다스린 뒤 형산에 올라 그 공덕을 기록한 비석을 세웠는데, 그 내용이 지워지지 않고 완연히 남아있었다.
형산 중에서도 가장 높은 자각봉에는 세상을 어지럽히는 요괴들이 갇혀 있었는데, 이들을 잡아 가두었던 것이 무진대사였다. 무진대사가 요괴들을 잡게 된 것은 몇 년 전의 일이었다.
어느 겨울, 무진대사가 유처사를 만나러 자운동에 갔는데, 유처사는 아들 유공자를 데리고 무진대사를 만나러 청향산으로 떠났다 하였다. 오부인이 무진대사가 헛걸음을 했음을 안타깝게 여기고 하룻밤 유하고 가시기를 청하였다. 그러나 무진대사는 비록 집안에 노복과 시비들이 있으나 오부인 혼자 지키는 집에서 머물기가 마땅치 않아 거절하고 다른 곳을 찾아 쉬겠다고 했다. 무진대사가 말하기를,
“마침, 이곳에는 폐사된 승성사가 있으니 하루쯤 눈과 바람을 막기에는 족합니다.”
하였다. 이에 오부인이 말하기를,
“다행히도 며칠 전부터 그곳에 머무는 대사와 스님들이 계실 것이니 저희 집보다 몸은 불편하시겠지만, 마음은 편하실 것이옵니다.”
하며 배웅했다.
무진대사가 승성사에 가보니 과연 한 스님이 그를 맞이하였다. 무진대사가 하룻밤만 재워달라고 하자, 스님은 고개를 저으며 승성사에 요괴들이 있으니 목숨을 부지하려거든 그냥 돌아가라고 하였다. 무진대사가 말하기를,
“부처님 계시던 곳에 요괴가 있다니 금시초문이요. 요괴란 욕심이 과하여 생긴 미물인데, 욕심내는 것이라고는 바람과 물뿐인 사람에게 요괴가 무슨 걱정이겠소?”
하며 웃었다. 스님이 경계하는 눈빛으로 말하되,

무진대사 말하기를,
"죽어도 나의 일일 것이니, 스님이 알 바가 아니오."
하고 객당으로 안내하라 재촉했다. 스님은 할 수 없이 서쪽으로 수십 보만 가면 작은 초당이 있다고 말하며 불을 건네주었다. 무진대사가 불을 들고 가니 과연 세 칸의 객당이 있었는데 거의 무너져 티끌이 가득하였다. 무진대사가 불을 밝히고 요괴를 벨 참요검(斬妖劍)을 집고 기다렸다. 갑자기 찬바람이 불더니 문이 스스로 열리며 오색 옷을 입은 자가 다섯 가지 장창을 들고 나아와 앞에 섰다. 무진대사가 단정히 앉아 있자 그 사람이 소리를 질렀다.
"그대는 죽을 줄 알면서 왜 이 객당에 머물러 있는가?"
무진대사가 목소리를 높여 말하기를,
"너는 곧 산에 사는 짐승이다. 네가 어찌 감히 군자를 범하겠느냐?"
기인이 크게 화를 내며 달려들자 무진대사도 또한 칼을 들어 요괴의 다리를 베었다. 요괴가 거꾸러지는 것을 보니 산에 사는 닭이었는데 크기가 큰 학만 했다. 무진대사가 한구석에 밀치고 앉아있자 또 한 요괴가 들어왔는데 키가 매우 크고 허리는 가늘고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그 뒤에 또 한 요괴가 서 있었는데 황색 옷을 입고 얼굴은 옥 같고 대담해보였다. 두 요괴가 말하기를,
"네 무슨 일로 나의 사형을 죽였느냐?"
하고 달려들거늘 무진대사가 참요검을 들어 먼저 황색 옷을 입은 자를 베니 늙은 흰 여우였다. 검은 옷을 입은 자가 화를 내며 독기를 뿜었다. 그러자 광풍이 일어나 정신이 혼란하고 눈을 뜨기가 힘들었다. 대사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급히 칼을 휘둘러 검은 옷을 입은 자의 허리를 베었다. 검은 옷을 입은 요괴가 큰 소리를 지르고 쓰러졌는데 본 모습은 검은 뱀이었다. 이윽고 한 바탕 세찬 바람이 이르는 곳에 두 사람이 들어오는데 얼굴이 흉악하고 그 악한 기세가 강해 보였다.
무진대사가 질책하기를,
"네가 아무 이유도 없이 내가 자는 곳에 들어와 핍박하였으니 만일 물러가지 않는다면 앞의 세 요물과 같은 꼴을 당할 것이다."
두 요괴가 꾸짖었다.
"우리가 일찍이 너에게 원수진 일이 없거늘 우리를 죽였으니 어찌 원수를 갚지 않으리오?"
하고 일시에 달려들어 싸움이 시작되었다. 원래 무진대사의 도술과 힘이 특별할 뿐 아니라 오묘한 칠성검으로 요괴를 제어하니 오래지 않아 한 요괴를 제압할 수 있었다. 그 요괴는 거북이었다. 한 요괴는 삼경에서 오경까지 싸웠지만 승부가 나지 않았다. 이때 새벽닭이 울고 동방이 밝아오자 요괴가 갑자기 달아나 버렸다. 대사가 급히 달려갔지만, 꼬리 밖에는 자르지 못했는데 불빛이 하늘을 찌르며 땅에 떨어진 그 꼬리는 여우의 것이었다.
무진대사는 그 요괴를 잡으려 핏자국을 따라 자운산을 떠났으나 끝내 찾을 수 없었는데, 이제 천문을 보니 도성의 한 대인과 유처사의 댁에 요기로운 기운이 가득하여 그 여우임을 짐작하고 그를 찾으러 간 것이었다.

한편, 유처사의 댁에서는 점점 더 많은 소동이 있었으니, 그것은 오부인이 며느리 한 소저를 극히 미워하여 아들 부부가 함께 잠자리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오부인은 순실이라는 여자를 데려와 아들 유공자와 혼인을 시키고 싶어했다. 유공자는 집안이 가난하며 한 소저에게 부족함이 없음을 이유로 꺼리고 거절하였다. 그러자 오부인은 대로하여 이유 없이 한 소저를 구박하고 심지어 구타까지 하여 마침내 병이 들게 되었다. 유공자는 한 소저를 불쌍히 여겨 병이 나은 후 주야로 옆에 두어 아끼고 사랑했다. 오부인은 자신이 싫어하는 한 소저와 유공자가 행복해 보이자 심술이 나서 부부 사이를 갈라놓으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부인에게 쫓겨났던 유모 녹희가 유처사의 댁으로 와 허드렛일을 하겠다고 하였다. 오부인은 마땅치 않았으나 유처사와 유공자가 모두 허락을 하므로 마지못해 그러라고 하였다.
녹희는 며칠 동안 오부인을 관찰하다가 하루는 그 손을 자세히 보았는데, 오부인의 혼례 때 썼던 예물인 옥지환이 보이지 않았다. 녹희가 한 소저에게 그 옥지환에 대해 물어보자, 소저는 시집왔을 때부터 본 일이 없노라는 것이었다. 녹희는 한 소저를 은밀히 불러 말하기를,
“옥지환은 본래 두 쌍으로 하나는 늘 손에 지니고 계셨고 다른 하나는 주머니에 넣어 며느리를 보게 되면 주리라 하셨사옵니다. 하온데 아씨마님께 드리지도 않았을뿐더러 마님의 손가락에도 없으니 이 어찌된 까닭이겠습니까? 또한 오부인이 유공자를 애중하던 것을 생각하면 실로 같은 사람일까 의심될 때가 많았습니다.”
하였다. 한 소저가 불효가 되는 말을 듣지 않겠다고 하며 자리를 떠나려 하자, 녹희가 저고리 춤에서 뭔가를 꺼내 소저의 손에 올려 놓았는데, 다름 아닌 옥지환이었다. 녹희가 말하기를,
“이 댁에서 쫓겨난 이후, 서러움을 이기지 못하였습니다. 예전 내당마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생각하자 필시 큰 병에 걸리신 것이라 생각하여 약을 찾으러 자운산을 뒤졌지요. 그러던 중 약은 찾지 못하고 마님의 손가락에 항시 끼워있던 옥지환만을 찾았습니다.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어서 처음에는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하였으나, 십여년 가까이 마님이 공자와 그 며느님을 구박한다는 말을 듣고 필시 요사스러운 일이 있을 것이라 여겨 다시 찾아온 것입니다. 아씨마님께서는 이 옥지환을 몸에 지니시기 바라옵니다.”
하였다. 한 소저가 옥지환을 보니 매화무늬가 새겨진 푸른 옥반지가 영롱한 기운을 발하고 있었다. 소저는 녹희의 말대로 반지를 품속 깊이 간직하였다.

자각봉으로 간 무진대사는 자각봉 제일 높은 곳에 있는 보은암을 향하였다. 보은암에 참요검이 있는 까닭이었다. 보은암은 조용했는데, 무진대사가 들어서자 한 여인이 밖으로 나와 대사를 맞이했다. 무진대사는 적이 놀랐다. 환하게 웃으며 대사를 맞이하는 여인은 중년의 오부인이었던 것이다.
“부인께서는 유처사의 부인이 아니십니까?”
대사의 말에 오부인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대사께서 늦으신 것은 아닌지요? 어서 드시오소서.”
무진대사가 보니 머리는 긴 채였으나 옷은 승복을 입고 있었다. 부인의 인사도 여승이 하듯이 합장을 하는 것이었다.
“부인께서 어인 일이신지요?”
대사의 말에 오부인이 십여년 전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어린 유공자가 아랫마을의 어린아이를 찾기 위해 승성사에 갔다가 실종이 되었을 때의 일이었다. 오부인이 유공자를 찾으러 산에 올라가보니, 꼬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여우가 유공자를 노리고 있었다. 오부인이 자세히 보니, 여우는 꼬리가 본시 아홉 개였는데, 그 중 하나를 잃은 듯 반이 잘려져 피를 흘리고 있었다. 오부인은 크게 놀랐으나, 자칫 잘못하면 아들이 죽을 것을 염려하여 몽둥이를 들고 가만히 여우의 뒤로 다가갔다. 그러나 사람 냄새를 맡은 여우가 돌아보며 말하기를,
“어떤 인간인데 두려움도 없이 나를 치려 하는가? 잘 되었다. 내 너를 먹고 저 아이마저 먹어 그 정기로 요망한 도사를 잡으리라!”
하며 오부인에게 달려들었다. 오부인은 유공자를 구하기 위해 될 수 있는 대로 멀리 도망을 쳤으나 곧 잡히고 말았고, 그 사이에 옥지환도 잃어버렸다. 구미호가 부인을 잡아먹으려한 찰나, 부인이 품에 가지고 다니던 부적이 나타나 큰 섬광을 비추므로 구미호가 놀라 달아나 버렸다. 이때 자각봉의 한 여도사가 오더니 오부인의 운세가 아직 집에 돌아갈 운세가 아니라 하며 자각봉 봉은암에 거처를 마련해 주었다는 것이었다. 무진대사는 그제야 유처사 집안의 액운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한편 유처사의 댁에서 오부인의 탈을 쓴 구미호는 드디어 한소저를 잡아먹으려고 하였다.
이때는 추 팔월 그믐이었다. 자각봉의 오부인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오부인을 구한 여도사는 천강진인으로 무진대사에 버금가는 도인이었는데 무진대사와는 달리 제자를 길러 수백의 제자를 키우고 있었다. 봉은암에 있는 동안 오부인 역시 천강진인의 제자가 되었는데, 천문을 보게 되어 아들의 곤란함과 며느리의 고생도 모두 알고 있었다.
이날, 남으로 가는 기러기가 무리 지어 울고 밝은 달빛이 백옥같은 난간을 비치는 가운데 오부인이 무진대사와 함께 앉아 있다가 멀리 자운산 쪽을 굽어보니 맑은 밤하늘에 화기가 뚜렷하게 보였다. 오부인이 무진대사에게 화기를 가리키며 물었다.
“얼마 전부터 자운산에 화기가 점점 붉어지는데, 아무래도 며느리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사옵니다. 어찌된 일이옵니까?”
무진대사가 말했다.
“저 집은 유씨의 집인데, 한 대인의 딸 한 소저의 액운이 극에 달하여 그렇습니다. 지금 요사스러운 짐승이 이윽고 사람들을 해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오부인이 애닮아하자 무진대사가 이어 말하기를,
“부인은 염려치 마소서. 한 대인의 집안은 적선지가라, 한 소저는 이 액운을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삼경에 제가 부인의 며느리를 만나게 하겠습니다.”
하고는 근두운을 타고 유씨의 집에 당도하였다.
이때, 구미호는 한 소저를 잡아 먹기 위해 집안에 불을 놓았는데 불기운이 매우 뜨거워 별당은 벌써 다 타고 유모 녹희가 한 소저를 업고 후원으로 나오고 있었다. 이때 오부인이 달려와 녹희를 때리고 한 소저를 납치하려했는데, 무진대사가 급히 도술로 소저를 구했다. 무진대사는 공중에서 소저를 구하여 업고 구름을 몰아 봉은암으로 돌아왔다.
진짜 오부인은 봉은암에서 며느리를 볼 생각에 마음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무진대사는 정신을 잃은 한 소저를 두고 구미호를 잡기 위하여 다시 자운산으로 돌아가 버렸다.
이날 오경이 다 되어 한 소저는 눈을 떴는데, 한 중년 부인이 소저를 보고 있었다. 소저가 놀라 일어났다. 비록 승복을 입고 있었으나 그 모습이 오부인과 같았기 때문이었다. 소저가 황망히 말하기를,
“어머님, 이곳이 어디이기에 승복을 입고 계십니까? 집안의 불은 어떻게 되었는지요? 어머님께서 무사하시니 다행입니다. 첩은 어제 흉한 요물을 본 까닭으로 잠시 정신을 잃었나이다.”
하며 사죄했다. 그 아름다운 자태에 오부인이 흡족해하며 자애롭게 말하기를,
“내가 며느리를 처음 보니 참으로 아름답다.”
하였다. 한 소저가 평상시와 다른 오부인의 어투에 놀라 다시 올려다보니 얼굴 생김은 똑같았지만, 은은한 미소와 부드러운 말투가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오부인은 웃으며 그 까닭을 말해주었다. 한 소저는 집안에 있던 오부인이 가짜이며 구미호라는 것을 알고 대경실색하였으나, 오부인이 주머니에서 옥지환을 꺼내자 의심을 거두었다.
“내 정경을 무엇보다도 아끼어 곁에서 가르치고 그 입신을 보며 보람을 찾으려 했거늘, 운수가 사나워 그동안 고생이 많았도다. 다행히 현숙한 여인이 그 짝이 되었으니 앞으로를 염려치 않아도 될 것이다. 이것은 내 며느리에게 주려고 간직한 것인데 비록 나의 것은 잃었으나 며느리의 것은 간직하였으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오부인이 한 소저의 손가락에 옥지환을 끼워주자 한 소저가 눈물을 흘리며 품에서 다른 옥지환을 꺼내어 오부인에게 드렸다. 오부인이 놀라 어디서 찾은 것이냐 묻자 한 소저는 유모 녹희의 이야기를 하며 그동안 유공자의 고초를 낱낱이 알려드렸다.

한편 집안의 불이 꺼지자 정신을 차린 녹희는 한 소저가 사라졌음을 알고 내당에 고하려고내당의 방문을 열다가 구미호의 꼬리를 발견하고는 대경실색하였다. 녹희는 그제야 전후사정을 알고는 우선 유처사에게 아뢰리라 마음 먹은 후 조용히 외당으로 나아가 유처사에게 그 사실을 고했다. 유처사는 녹희의 말을 믿지 않고 오히려 녹희를 꾸중하며 내 쫓았으나 며느리가 사라진 것에 크게 실망하여 백방으로 며느리를 찾았다.

구미호는 한 소저를 찾을 수 없고 녹희마저 자신의 본모습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유처사를 죽이기로 마음먹었다. 구미호는 유처사가 잘 때 그 양기를 다 앗은 뒤 유처사가 죽자, 자신도 병을 앓는 체 하였다.
유공자는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까지 잃을까 두려워 밤낮으로 구완을 하였다. 하루는 유공자가 간호를 하러 병실에 들어 들어갔는데 구미호가 등잔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어머님께서는 아직도 평안하지 못하신지요?”
구미호가 대답하였다.
“네 부친이 돌아가신 뒤로는 살고자 하는 마음이 없도다.”
유공자는 아버지를 잃은 슬픔과 어머니의 기체가 불편함을 한탄하였다.
‘이제 부모님 중 한 분을 잃고 다른 한 분은 불편함이 많으시니 지금 효도를 다 못한다면 평생의 한이 될 것이다.’
유공자가 어머니의 모습을 한 구미호에게 조용히 말하였다.
“석반을 보니 찬이 없어 그런지 많이 드시지 않더이다.”
“유공도 돌아가시고 며느리도 잃었으니 무슨 입맛이 있겠는가?”
하였다. 유공자가 그만 물러가려 하자 구미호가 말하기를,
“내 너의 책 읽는 모습을 보고 싶으니 너는 이곳에서 책을 읽으라.”
하였다. 이에 유공자가 의아해 하였으나 어머니의 명령이므로 하는 수없이 서안을 들고 병실로 가 등잔불 아래서 글을 읽었다. 구미호가 보니 옥골선풍이 촛불에 더욱 아름답고, 글을 읽는 옥성이 아름다웠다. 구미호가 속으로 엷게 웃으며 생각했다.
‘정경이 본래 군자의 기운이 맑음으로 그 양기가 대단할 것이다. 정경을 잡아 먹으면 내 힘이 커지리니 청향산의 도인이야 쉽지 않겠는가? 내 반드시 뜻을 이루리라.’
오부인이 매일 밤 유공자에게 방에서 책을 읽게 하고 한시도 그 곁을 떠나지 않으니, 아랫마을에서는 오부인이 드디어 망령이 들어 아들을 유혹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한편 구미호를 잡으러 온 무진대사는 아랫마을에서 이 소문을 듣고 유공자의 운세가 극히 어려움을 깨달았다. 무진대사는 자신의 모습 그대로 간다면 절대로 안에 들어갈 수 없음을 깨닫고 군자의 모습으로 꾸민 뒤 이름을 운성이라 하고는 아랫마을에서 명마를 하나 산 뒤 만리운이라 이름 지었다.
무진대사가 운성이 되어 만리운을 타고 자운산으로 올라가는 길었었다. 마침 계절이 늦가을 그믐이었다. 단풍이 산을 덮었고, 국화가 만발한 것이 완연한 가을이었다. 경치가 너무 좋으니 평상시라면 말 위에서 풍월을 음영하며 옛 사적을 들추어내는 것으로 흥을 돋우어 유처사와 같은 이와 함께 활기찬 기운이 맹동하도록 즐길 터였는데 이제는 요망한 구미호의 작난으로 유처사도 죽고 없었으며 그 집안이 망하게 되었던 것이다. 운성은 유처사에 대한 그리움이 또한 가득했다. 이에 말을 재촉하여 자운산을 올라 유처사의 집에 도착했다.

유처사의 집에 이르러 문을 열고, 그윽하여 잠시 쉬어가고자 한다고 하였다.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유공자가 나아 운성을 맞이했다. 객실로 안내하고는 술상을 차려왔다. 유공자가 공손한 태도로 말했다.
“존객은 어디에서 오시는 길이길래 이런 깊은 산골을 찾아오시느냐?”
운성이 말했다.
“학생 역시 깊은 산골에 사는 사람으로 우연히 이 곳에 이르렀노라.”
주인이 말했다.
“존객의 풍채가 기이하시니 올해 춘추가 몇이시냐?”
운성이 말했다.
“세상을 안 지 이십이 세로소이다.”
유공자가 그 용모를 칭찬하고 안으로 들어가더니 다시 나와 말했다.
“존객께 한 말씀을 청하나니 들으시랴?”
운성이 말했다.,
“무슨 말이냐?”
유공자가 대답했다.
“제가 얼마 전에 아버님을 잃었는데, 지금 어머님 마저 몸이 편찮으시오. 수일 전에 어머님이 꿈에 나타나 말씀하시기를, ‘오래지 않아 너를 구할 신인이 나타날 것이니 너는 헛되이 지나게 하지 말라.’ 하였사옵니다. 저는 그 꿈이 어머님을 구할 귀한 객이 올 꿈이라 생각하며 기다렸습니다. 그러던 중, 오늘 존객을 만나니 꿈이 과연 맞은지라. 평생의 소원이 풀리는 것 같으니 청컨대 존객은 제 어머님의 병을 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운성은 유공자가 어머니의 꿈을 봤다는 말을 괴이하게 여겨 즉시 괘를 벌려 점을 쳤다. 점괘 하나를 얻으니 ‘얻으니 길 한가운데 호복자’라는 괘가 나왔다. 이에 생각하기를,
‘유공자의 꿈에 나타난 어머니라면 봉은암의 오부인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유공자는 그 일을 전혀 모를 것이니 이상한 일이로다.’ 했다.
그러나 이 모두 구미호의 방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기회이므로 흔쾌히 말했다.
“주인의 간절한 뜻이 이러하니 할 수 없도다. 그러나 내 의술을 공부한 일은 없으니 장담을 못하겠도다.”
운성이 허락하니 유공자가 내일 아침에 어머니를 진맥해주기를 아뢰고 기뻐하며 내당으로 들어갔다.
유공자가 내당으로 들어가 구미호에게 아뢰기를,
“아랫마을에서 훌륭한 군자께서 오셨으니 어머님의 병을 고치실 분이라 여겨지옵니다.”
하였다. 그러자 구미호가 그 생김새를 자세히 물었다. 유공자가 말하기를,
“그 자태가 옥 같고 기세가 산의 정기를 지녀 쇄락하니 눈의 형형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소이다.” 하였다.

구미호가 생각하기를,
“요사이 하늘에서 삼태성이 자운산에 내려왔는데, 그것이 정경인줄 알았더니 이 군자였나 보다. 내 만일 그 놈의 정기를 앗으면 가히 모든 신령의 우두머리가 될지라.”
하고는 그날 밤은 유공자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하였다.
이윽고 밤이 되자, 운성의 방에 문이 열리면서 한 여인이 화려한 복색으로 등불을 잡은 여러 시녀들에 쌓여 나왔다. 운성은 저의 거동을 한번 보려고 미동도 하지 않고 정색하고 앉아 있었다. 여자가 운성을 향하여 네 번 절을 했다. 이에 운성이 추파를 들어 얼핏보니 비록 오부인의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는 있었지만 십여 년 전과 같이 전혀 늙지 않은 모습이 분명 요괴의 기운이 있었다. 운성이 속으로 대로하여 생각했다. ‘제 유처사의 양기를 어떻게 앗았기로 저리 젊은 기운을 보이고 있느뇨?’
그리고는 일부러 웃는 얼굴을 지어 약간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서로 마주보고 앉자 운성이 흔연히 말했다.
“나는 지나가는 선비이더니 우연히 쉴 곳을 찾아 참으로 다행스럽소이다. 어디가 불편하신지요?” 구미호가 교태를 머금고 대답했다.
“저의 몸이 아픔은 실상은 외로운 까닭이옵니다..”
청아한 소리가 또한 사람의 소리가 아니었다. 운성이 조금 앞으로 나아가 그 손을 이끌어 침상에 오르되 조금도 부끄러워하는 태도가 없었다. 이에 운성이 웃으며 말했다.
“내 그대와 더불어 오늘밤을 즐기고자 하되 부모 명이 없기에 그렇게 하지 못하나니, 내일 함께 서울로 가서 백년화락하리라.”
여자가 거짓으로 탄식했다.
“첩의 몸이 군자께 달렸으니 함께 갈지라. 어찌 거스르리요?”
운성이 더욱 괘씸히 여겨 요괴를 곁에 두어 못 달아나게 하였다. 요괴가 사람의 혼을 홀리는 술을 가지고 오려 했지만 운성이 움직이지 못하게 하니 할 수 없었다. 날이 밝았지만 운성은 그 여자를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아침이 되어 유공자가 내당에 문안인사를 하러 가자 어머니가 없으므로 당황하여 집안을 돌아다니며 찾았는데, 객방에서 운성이 나와 유공자를 불렀다.
유공자가 들어가보니, 어머니가 묶인 채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데 방에는 금침이 깔려 있었다. 유공자가 기이하고 황망하여 말을 잇지 못했는데, 운성은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 가니 무진대사의 모습이었다.
유공자가 깜짝 놀라니, 무진대사가 하인들로 하여금 오부인을 잡아내리라 하였다. 유공자가 만류하자, 무진대사는 유공자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였다.
그때까지도 이 요괴는 유공자를 속이고 무진대사를 속이기 위하여 앓는 소리를 과장되게 하며 하인들에 이끌려 마당에 끌려왔다.

구미호가 말하기를,
“아이고, 내 아들아. 네 어찌 요망한 파락호를 데리고 와 나에게 이런 수모를 주느냐? 저놈이 어젯밤 나를 능욕하고 이제는 우리 집안을 망하게 하려 한다. 너는 어찌 가만히 있는 것이냐?”
하였다. 이에 무진대사가 소리지르기를,
“네 요망한 것이 감히 요술로 사람의 얼굴이 되어 군자를 속이느냐?”
그 호령에 요괴가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풀어지게 되어 고개를 숙였다. 공이 다시 소리 질러 말했다.
“네 끝내 원래 모습을 숨기고자 하느냐?”
그러나 구미호는 그 동안 유처사의 집안의 기운을 빨아들인 뒤라 무진대사의 말에도 본 모습을 보이지 않을 수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무진대사는 참요검을 들어 구미호를 베려 하였다. 구미호가 크게 비명을 지르며 마당에 뒹굴자 이 모습을 보던 유공자가 안간힘을 다해 마당으로 달려가 참요검 앞에 몸을 던졌다.
그리고 말하기를,
“네 어떤 요승이 우리 집안에 들어와 힘없고 죄 없는 나의 어머니를 해하려 하느냐? 네 비록 도술이 강하다 하나 나의 효심으로 어머니의 죽음을 막으리라.”
하였다. 이에 무진대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이때, 하늘에서 구름이 몰려오더니 천강진인과 오부인, 한 소저가 함께 타고 날아왔다. 모든 시비와 종복들이 놀라는 가운데 유공자와 구미호도 크게 놀랐다. 특히 유공자는 구미호와 진짜 오부인을 차례로 바라보며 누가 진짜 어머니인지 찾으려 하였다. 그러나 진짜 오부인은 조용히 웃고만 있을 뿐이었다.
천강진인이 말하기를,
“무진대사께서는 제가 선물해드렸던 퉁소를 잊으셨습니까?” 하였다.
이에 무진대사는 그 퉁소를 유공자에게 준 일을 기억해냈다.
“어느 겨울 과일을 찾으러 갔던 날 받았던 퉁소를 지니고 있는가?”
무진대사의 말에 유공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무진대사는 유공자를 묶고 있던 도술을 풀어 퉁소를 가져오게 하였다. 퉁소라는 말을 들은 구미호는 몸을 뒤틀며 도망치려 했지만, 무진대사의 도술에 묶여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윽고 유공자가 퉁소를 가져오자, 무진대사가 말하기를,
“너는 그때 내게서 배운 곡조를 연주하라.”
하였다. 유공자가 기억을 되살려 그 음악을 연주하니, 집안을 가렸던 그림자가 점차 사라지며 환한 해가 마당 가득 쬐었다.

뿐만 아니라 음습했던 승성사의 숲에도 환히 길이 뚫리며 그 옛날 아름답던 절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것이었다. 아랫마을 사람들은 자운산 유처사 댁에서 들리는 퉁소소리에 이끌려 유처사의 댁으로 가니, 온 마을 사람들이 유처사의 댁 마당에 모였다.
사람들은 모두들 두 사람의 오부인을 보고 크게 놀라는 것이었다.
이윽고 무진대사가 큰 소리로 외치되,
“네 이래도 본 모습을 보이지 않겠느냐?” 하였다.
이 말이 끝나자 여자가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 모습을 바꾸니 과연 누런 털을 가진 구미호였다. 이에 무진대사가 참요검을 빼 두 조각을 내니 주위 사람들이 모두 놀라 비명을 지르더라.
무진대사가 참요검을 천강진인에게 드리며 말했다.
“요괴 스스로 사람인 체하여 유처사를 해하고 이 집안을 곤경에 처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유처사의 잘못이 아니니 유처사의 명을 다시 되살리는 것이 옳으니이다.”
천강진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무진대사는 즉시 유공자에게 유처사의 무덤을 알렸다.
유공자가 무진대사의 가르침에 따라 관을 꺼내어 보니 얼굴이 산 사람 같았다. 유공자는 눈물을 삼키고 유처사의 시신을 거두어 방에 누이고 은차와 향내나는 뜨거운 물에 목욕을 시키자 3일 만에 신체가 움직였다. 모두가 놀랐는데, 천강진인은 소리를 금하고 삼으로 만든 차에 미음을 넣어 입에 떠 넣었다. 식경이 지나 유처사가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떠 방을 둘러보았고 다음날이 되자, 생전의 모습과 같았다.
이에 유공자는 다시 살아 돌아온 유처사를 보며 통곡하였고, 그동안 헤어져 있던 진짜 어머니 오부인과도 감격을 나누었다.

이처럼 유처사의 집안이 편안해지자, 무진대사와 천강진인은 다시 자각봉으로 올라가 요괴의 은거지가 되었던 곳을 불태우기로 하고 나무를 하나 찾았다.
눈앞에 나무가 있는데 이미 수 천년이 지난 홰나무였다. 그 길이가 구름에 닿았고, 둘레는 세 아름이었다. 무진대사와 천강진인은 함께 염을 외운 뒤, 붓과 먹을 내어 나무를 둘러 글을 썼다. 그러자, 갑자기 안개가 자욱하고 천지가 진동하며 산이 무너지는 듯한 천둥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어 바다가 끓는 듯 일천 줄기나 되는 불빛이 번쩍이더니 그 나무를 쳤다. 그러자 수많은 요괴들이 불이 붙은 채로 밖으로 뛰쳐나왔는데, 그때마다 무진대사의 참요검에 목숨을 잃고 사라져버렸다. 한 식경이 지나자 나무는 비로소 뿌리째 가루가 되었다.
마침내 밝은 햇빛이 구름 사이에서 나타나고 고요해지니 그 이후로는 세상에 요괴의 변을 당하는 자가 생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