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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흠휼전칙원본

-조선시대 당쟁과 정치의 문란으로 고문과 형벌이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고 인격을 모멸하는 수단으로 전락함에 따라 정조(正祖)는 범좌 혐의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형구(形具)의 규격과 사용법을 제정하게 된다.

1777년 6월에 정조의 어명으로 홍국영(洪國榮)과 관련 학자들이 형구의 제도를 파악하고 ≪대명률(大明律)≫
≪경국대전(經國大典)≫ ≪속대전(續大典)≫ 등으로부터 관계된 조항을 정리하였는데, 그것을 이듬해 1월에 반포한
흠휼전칙이다.

원제목은 어정흠휼전칙(御定欽恤典則)으로서 내용은 형구지식(刑具之式), 곤제지식(棍制之式), 형구지도(刑具之圖),
곤제지도(棍制之圖), 태장(笞杖), 신장(訊杖), 가(枷), 유(杻), 철안(鐵案), 수금(囚禁), 곤(棍) 등에 관하여 경국대전
(經國大典), 속대전(續大典)과 대명률(大明律)의 규정을 비교 참조한 상세한 해설이 있으며 뒷부분에는 승정원도승지(承政院都承旨) 홍국영(洪國榮)(1748∼1780)이 봉교서(奉敎書)한 발문(跋文)과 이에 참여한 제신(諸臣) 함각(銜各)으로 구성되어있다.

흠휼전칙에서 흠휼(欽恤)이란 민본사상(民本思想)과 인정(仁政)에 그 기반을 두고 있는 우리나라 과거 형법 정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개념이다.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의 형전단옥에서 부득이 형률로 다스릴 수밖에 없는 경우에는
그 일을 삼가고 그 사람을 애처롭게 여기는 단옥(斷獄)의 근본인 흠휼(欽恤)에 입각해야 한다고 지적하며 죄지은 자는 법에 따라 엄중하게 처벌하되 용서해 줄 여지가 있으면 이를 적극적으로 용서함으로써 인성을 중히 여기는 형행의
미덕을 제시하고 있다.

흠휼전칙은 예문관에서 간행하여 전라도. 경상도. 평안도 감영에 보내 각기 번각한 후 판각을 소장하게 함으로써 민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 여러 가지 행형의 폐단들을 고치는데 기여했다.

특히 양반관리, 사족들이 백성들에 대해 사형(私刑)을 많이 행하고 있는 현실을 바로잡고 형정을 쇄신하는 계기를
마련함으로써 우리 고유의 지혜로서 완성된 경국대전의 법질서 체계와 함께 형 집행의 제도를 원형문화의 형태로
전승하게 되고 현재에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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