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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설화 속 인물보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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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양

갈래 : 신화
시대 : 조선
신분 : 승려
지역 : 기타
출처 : 삼국유사 (권4)
내용 :보양전에 의하면, 그의 성씨나 출생 고을 등은 알 수 없다. 보양이 중국에서 돌아올 때 서해를 건너는데, 용이 나타나 용궁으로 맞이해 염경(念經)을 부탁했다. 또한 금라가사(金羅袈裟) 한 벌을 선물로 지어주고, 또 용의 아들 ‘이목(璃目)’을 딸려 보내면서, 작갑사(鵲岬寺)를 지어 같이 살면 후삼국시대의 전란을 피할 수 있고, 얼마 있으면 불교를 받드는 군주가 나타나 후삼국을 통일할 것이라 했다. 이 지역에 이르니 원광이라고 자칭하는 노인이 나타나 인궤를 주고 사라졌다. 산봉우리에 올라 바라보다가, 까치들이 땅을 쪼고 있는 곳을 책해 탑을 쌓고 여기에 절을 세우니 작갑사이다. 고려 태조가 후삼국을 통일하고, 태조 20년에 여기 근처 다섯 갑(岬)의 토지를 합해 보양사에 귀속시키고, ‘운문선사’라는 간판을 내려주었다. 용의 아들 이목은 절 옆 못에 살고 있었는데, 한 해는 심한 가뭄이 들어 보양은 이목을 불러 비를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비가 내렸는데, 얼마 있으니 하늘의 상제 명령 없이 이목이 마음대로 비를 내렸다고 하여, 하늘 사자가 이목을 벌주려고 내려와, 보양에게 이목을 내놓으라 했다. 보양은 이목을 침상 밑에 숨기고, 하늘 사자에게 뜰 앞의 ‘이목(梨木, 배나무)’을 가리키면서 “저것이 이목이다.”라고 말하니 하늘 사자는 그 배나무를 내리치고 올라갔다. 곧 이 배나무가 말라 죽었는데, 용의 아들 이목이 나와 만져주니 다시 살았다. 보양이 퇴화(推火)의 봉성사(奉聖寺)에 머물 때, 고려 태조가 견성(犬城)을 공격하면서 보양에게 성을 함락시킬 방법을 물었다. 보양은, 개가 밤에 잘 살피고 또 앞만 살피며 뒤를 소홀히 하니, 마땅히 낮에 북쪽으로부터 공격하라고 일러주었다. 태조가 그 말대로 해 성을 함락시키고, 고마움의 표시로 근처 고을 세금으로 받은 곡식 50석을 해마다 절에 바치게 했다. 이 절에 태조와 보양 두 성인의 영정을 안치해 봉성사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