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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설화 속 인물원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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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

갈래 : 신화
시대 : 삼국
신분 : 승려
지역 : 영남
출처 : 편집부 ()
내용 :당 속고승전(唐續高僧傳)에 의하면, 신라 황륭사(皇隆寺) 승 원광은 진한(辰韓) 사람으로 성씨가 박 씨이다. 나이 25세에 진(陳)나라로 유학하는 동안 수(隋)나라가 강해져 진나라 양도(楊都)에 쳐들어왔다. 수나라 대장이 절의 탑에 불이 붙어 있는 것을 보고 달려와 보니 불은 없고 원광이 탑 앞에 있어 원광을 죽이려 하다가 그 신이함 때문에 놓아주었다. 원광이 귀국하자 왕의 높은 대접을 받고 백성을 위한 설법을 하다가 나이 99세인 건복(建福) 58년, 거처하던 황륭사에서 앉아 운명했다. 곧 왕의 장례절차로 교외에 장례했는데, 한 사람이 태사(胎死)한 아이를 위대한 사람 무덤 곁에 묻으면 자손이 끊어지지 않는다는 속설을 믿고, 원광의 묘 옆에 몰래 묻었더니 아이 시체가 튕겨 나와 던져졌다. 고본수이전(古本殊異傳)에 실린 원광사전에는 원광의 성은 설 씨이다. 처음에 승려가 되어 불법을 공부하며 나이 30세에 삼기산 아래에서 혼자 거처했다. 4년이 지난 어느 날 한 비구니가 근처에 와서 역시 절을 짓고 거주했는데 2년 후, 어느 날 밤에 신령이 말소리만 들리면서, 이웃 비구니가 주술을 행해 나의 길을 방해하니, 스님이 가서 옮겨가게 얘기해 달라고 했다. 이튿날 가서 사실을 얘기하자, 비구니는, 스님이 여우 귀신의 말을 들은 것이라 하면서 듣지 않았다. 이날 밤 신령이 다시 나타나서는 잠자코 내가 하는 일만 보라고 하고 사라졌다. 다음날 밤 벽력 치는 소리가 났는데, 아침에 보니 뒷산이 무너져 비구니의 절을 덮쳤다. 이날 밤 신령이 다시 나타나, “내 힘이 어떻더냐 나는 3천년 된 몸으로 온갖 신통술을 다 부릴 수 있고 과거사와 미래사를 다 안다. 스님이 비록 열심히 수도하지만 이대로는 이름을 크게 떨칠 수가 없으니 중국에 가서 공부해 큰 업적을 쌓을 생각이 없느냐” 하고 물었다. 원광이 중국에 가서 공부하고 싶지만 방도가 없다고 말하니, 신령은 중국에 가서 행동하는 모든 과정을 설명해 주면서 그대로만 실행하라고 했다. 원광은 그 신령이 일러준 대로 해 중국에 가니, 모든 과정을 차질 없이 실행할 수가 있었다. 이렇게 해 공부를 마치고 11년 만에 중국에 온 신라 사신을 따라 귀국하니 진평왕 22년이었다. 귀국 후, 원광은 자신을 인도해 준 신령에게 감사드리기 위해 삼기산 절에 가 있으니, 밤에 신령이 나타나 그간의 안부를 물었다. 원광은 인도해 주어 고맙다는 감사를 드리고, 신령의 모습을 한 번 보여 달라고 하자 신령은 “내일 아침 해 뜰 때 하늘을 쳐다보라.”했다. 원광이 아침에 하늘을 보니 긴 팔이 하늘을 가로질러 있어서 그 산을 비장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날 밤 신령은 다시 나타나서, “이제 몸체를 버릴 때가 되어 죽을 테니 어느 날 한 곳에 와서 나의 정체를 보라.” 하고는 사라졌다. 원광이 약속한 날 가서 보니 검정색의 늙은 여우가 누워 숨을 몰아쉬면서 죽어가고 있었다. 원광이 귀국하니 고구려와 백제의 침공이 날로 심해져, 왕은 당나라에 구원병을 요청하는 걸병표(乞兵表)를 원광에게 지어 달라 했다. 원광이 지은 이 걸병표를 당 황제에게 올려, 30만 병력이 고구려를 침공하게 되었다. <삼국사기> 열전에 의하면, 선비인 귀산과 추향이 훌륭한 군자가 되기 위해 원광에게 와서 가르침을 요청했다. 원광은 세속의 다섯 가지 계명을 일러 주었는데, 충성으로 임금을섬기고(事君以忠), 효성으로 어버이를 섬기며(事親以孝), 신의로 벗을 사귀며(交友以信), 전쟁에 나가 물러서지 않으며(臨戰無退), 살생은 택하여 한다(殺生有擇)는 것이었다, 가르침을 받은 두 사람은 뒤에 전쟁에 나가 용감히 싸우다가 전사했다. 진흥왕 35년 수나라 사신이 와서 황룡사에서 ‘백좌도량’을 열었을 때 원광이 가장 상좌에 앉았기 때문에 원광이 거처하는 가서갑에 점찰보를 설치했다.